2007년 12월호

삼성 사외이사가 본 ‘삼성 사태’

“기업 생존 자구책 매도할 수 없으나 무리한 경영승계 작업은 오점”

  •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 yepok@hanmail.net

    입력2007-12-10 17: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세계 일류’를 자부해온 삼성에 대한 갖가지 의혹과 폭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쪽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시기에 삼성마저 발목 잡히면 어쩌나’ 우려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외국에서 만난 삼성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자부심이지만, 나라 안에서 존경할 만한 기업이냐 하면 몇 가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삼성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는 한양대 예종석 교수가 이번 삼성 사태의 본질을 들여다보았다.
    삼성 사외이사가 본 ‘삼성 사태’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다’ ‘세계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기업이다’ ‘차갑다’ ‘얄밉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이상은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삼성에 대한 이미지다. 응답에 애증이 교차하고 있다.

    이렇듯 삼성은 늘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우리 기업 중 최초로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기업으로 국민에게 자긍심을 주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각종 비리와 의혹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로 국민으로 하여금 공분을 갖게 하는 얼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삼성은 이런 두 개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며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그런 삼성이 최근 그 부정적인 얼굴에 또 한 번 덧칠을 하면서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삼성그룹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50억원가량의 현금을 입출금했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이른바 ‘떡값 파동’이다.

    김 변호사의 폭로를 근거로 참여연대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야 검찰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이참에 삼성 문제의 본질에 대해 객관적으로 따져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데다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은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삼성의 위상을 실적 중심으로 살펴보자. 삼성은 지난해 14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20%를 상회하는 규모다. 이 매출에서 세전이익 14조1000억원을 달성했고, 국가 전체 수출 규모의 20%가 넘는 663억달러를 수출했다. 삼성 주식의 시가총액은 140조원에 달하며, 브랜드 가치는 162억달러로 세계 20위다. 연간 납부하는 세금이 7조원이고, 25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계열사 중 삼성전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반도체, 휴대전화, 디지털TV 등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공략해 세계 5위권의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무역수지는 340억달러 흑자로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 167억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올해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34위, ‘포브스’지 선정 세계 2000대 기업 63위에 랭크되는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은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연간 4000억원이 넘는 돈을 사회공헌사업에 지출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용철 변호사조차 “삼성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기업이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지금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위상과 그에 따른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라도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분될 수밖에 없다. 뛰어난 실적만큼 삼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이 재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할 때 삼성을 표적으로 삼았다.

    2005년 8월, 참여연대는 삼성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해부한 ‘삼성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삼성그룹은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정계, 관계, 법계, 학계, 언론계 등에 엄청난 인맥을 형성해서 사실상 스스로 국가가 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성그룹은 법 위에 군림하면서 ‘법 앞의 평등한 정의(Equal Justice under Law)’가 한국 사회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삼성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위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러한 평가는 삼성에 대한 규제 문제로 연결된다. 사실 삼성으로 상징되는 재벌에 대한 규제 관련 찬반논쟁은 해묵은 것이다. 삼성의 위상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규제에 대한 논쟁은 점점 더 열을 띠게 되고 양 진영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한다. 재벌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재벌이 1960~7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으로 집중 육성된 이래 압축 성장 과정에서 그 원동력으로 중요한 몫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제력 집중, 정경유착 등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벌총수나 그 일가가 작은 지분율로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족벌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지배구조 왜곡 vs 적대적 M·A 위협

    삼성 사외이사가 본 ‘삼성 사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근거로 이건희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와 민변.

    실제로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정보공개’를 보면 공정위가 지정한 62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43개 기업집단의 전체 지분 중 총수 일가의 지분 비중은 4.90%에 불과하다.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11개 가운데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 일가의 지분 비중은 3.45%에 불과하다. 심지어 재벌그룹 계열사 10개 가운데 6개 이상은 총수 일가가 사실상 단 1주의 주식도 없이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43곳의 총수 일가는 평균 9.52%의 지분을 소유(소유지분율)하고 있으면서 40.80%의 의결권(의결지분율)을 확보, 행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소유지분율과 의결지분율의 차이인 소유지배 괴리도는 31.28%포인트, 두 지분율간 비율(의결권 승수)은 6.68배로 나타났다. 의결권 승수가 2배면 총수 일가가 실제 가진 지분의 2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유지배 괴리도와 의결권 승수가 클수록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유지배구조는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총수 일가의 지분 비중은 낮고,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심해 소유지배구조가 왜곡돼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기업에 대한 총수 일가의 의결권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상장사들에 비해 훨씬 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나라의 경우 의결지분율이 소유지분율과 거의 일치한다.

    삼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삼성의 소유지배구조가 심하게 왜곡됐다고 지적한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고작 0.81%의 지분으로 제왕적 지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보유지분에 비해 엄청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돈은 고객이 맡긴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 강화나 보호 등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14개 재벌 29개 금융·보험사가 86개 계열회사에 1조7567억원을 출자하고 있는 등 재벌은 여전히 금융계열사에 맡겨진 고객 돈을 쌈짓돈처럼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다.

    삼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삼성이 주장하는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위협론’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지배구조 개선 압력에 직면한 삼성이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협상카드 성격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삼성의 이 같은 ‘작업’ 때문에 자신들이 아무리 재벌규제 강화를 외쳐도 정치권은 물론 정부에서조차 공공연히 금산 분리나 출자총액제한 폐지가 거론되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또한 정부의 재벌정책이 이대로 계속되면 다음 정권에서 ‘삼성은행’이 탄생하고 다른 재벌들도 은행권에 진출함에 따라, 한국 경제가 산업과 금융을 함께 장악한 재벌에 의해 명운(命運)이 좌우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 견제 위한 규제’

    재벌에 대한 규제, 나아가서 삼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재벌이 잘돼야 수출이 잘되고 경제도 좋아지고, 재벌이 투자를 늘려야 고용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 생명보험사 상장억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 방어방안 반대 등이 글로벌시대에 뒤떨어지는 정책이고 우리나라밖에 없는 제도라며 규제 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나 폐지를 요구한다. 그들은 “환상(環狀)형 순환출자를 끊는 것은 시대적 과제”라는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세계적으로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나라가 없는데 이것을 어찌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통박한다.

    그들은 “재벌 총수가 5%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40~50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세계적 대기업의 총수지분을 보면 대부분 그리 높지 않고, 오히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대기업이 한국 대기업보다 훨씬 복잡한 출자구조로 얽혀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지금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려면 대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도록 북돋워줘야 하기 때문에, 삼성공화국 운운하는 재벌 때리기는 경제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삼성전자가 한국에서는 우뚝 선 기업일지 몰라도 세계시장에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로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세계가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경제력 집중 운운하면서 규제를 하겠다는 공정위의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심지어 삼성 때문에 우리나라의 주요 경제정책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삼성을 견제하고, 삼성이 절대 권력으로 떠오를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 삼성이 없었다면 대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규제는 벌써 폐지됐을 거라는 얘기다. 삼성이 없었다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막는 금산분리 정책도 벌써 풀려 다른 나라들처럼 산업자본이 자유롭게 은행을 소유했을 것이고, 재벌의 20년 숙원사업인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도 벌써 해소됐을 것이며, 외국 자본의 적대적 M·A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제도도 진작에 도입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경영권 승계 위해 로비?

    삼성 사외이사가 본 ‘삼성 사태’

    ‘에버랜드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 전 삼성 에버랜드 사장.

    삼성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이제 삼성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보자. 삼성 현안의 본질은 다름 아닌 기업지배구조, 나아가 경영권 승계 문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기업은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집단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신망 받는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가장 많이 받는 기업이라는 사실이 기업이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을 잘 말해준다. 기업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한 노력을 법 이외의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자구책을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해 매도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적법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법에 의해 처벌하면 될 일이다. 정치자금이나 떡값 같은 것은 받는 사람이 있으니 주었을 것이다. 심한 경우엔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기업만 탓할 수도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다. 따라서 삼성이 주체가 돼 해결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경영권 문제는 다르다. 그것은 법을 뛰어넘어 국민감정과도 직결된 문제이고 삼성이 해결방안을 쥐고 있는 이슈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삼성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무리한 로비를 벌인 것은 경영권 승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배타적인 기업 지배권을 총수 가족에게 물려주려다 기업 경쟁력에 부담을 주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이해하려면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전모를 잠깐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96년 10월 삼성에버랜드 이사회는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하고 두 달 뒤 전환사채 125만4000여 주를 이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 4명에게 우선 배정했다. 당시 에버랜드 이사회는 1주당 8만5000원대로 평가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7700원에 넘겨 ‘헐값’ 시비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삼성에버랜드 주주들이 거의 모두 인수를 포기하고 이 전환사채 대부분을 이재용씨를 비롯한 삼성일가가 인수함으로써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 후 삼성그룹의 환상형 순환출자구조 덕분에 이재용씨는 실질적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그 무렵 에버랜드에 100억원의 자금을 긴급히 조달해야 할 급박한 자금 수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환사채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는 그 돈을 조달할 수 없을 정도로 신용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2000년 6월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학교수 43명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편법으로 이뤄졌다며 이건희 회장 등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3년 만인 2003년 4월 수사를 시작, 그해 12월 초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 법원은 22개월간의 재판 끝에 회사에 970억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을 인정, 허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두 피고인은 즉각 항소했고,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2심 판결에서 1심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2심 법원은 특히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로 인해 법적 요건을 원천적으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함으로써 발행결의는 물론 그에 따른 취득과 전환 등 후속조치도 모두 원천무효임을 암시했다.

    발렌베리, 도요타의 경우

    이 과정에서 이재용씨가 전환사채를 인수한 ‘종자돈’을 마련한 과정도 논란거리가 됐다. 그는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은 뒤, 삼성에스원 주식 등을 사고팔아 600여 억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 사이에 낸 세금은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16억원이 전부였다.

    이쯤에서 뒤집어 보면 삼성 문제의 발단은 근본적으로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된 일이다. 일의 앞뒤를 살핀다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문제 중에서도 경영권 세습이 과연 옳은가하는 사안부터 따져봐야 할 일이다. 모범답안은 없지만, 한국의 재벌은 일본의 재벌과 자주 비교된다. 일본의 경우 창업자나 그 가족 또는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하는 비율은 1950년대 이후 10%대에 머물고 있다. 전문경영인체제가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재벌들은 아직도 경영 세습을 최고의 선택으로 여긴다.

    세습하더라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고 세금 낼 것 다 내면서 경영만 잘한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스웨덴의 발렌베리가(家)는 대부분의 부를 발렌베리재단에 넘기고 지분이 아닌 능력으로 기업을 이끌어 무려 5대, 150년에 걸쳐 재벌과 사회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에는 창업자 일가의 지분이 아주 미미할 정도이지만 그 후손들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종업원들에 의해 경영자로 추대될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세습 문제는 에버랜드사건이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시기상조지만, 그 과정이 국민에게 석연치 않은 감정을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치고는 분명히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설사 그 과정이 합법적이었다 하더라도 국민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런 방식의 승계로는 그 후계자가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당당한 대처, 투명한 사후처리

    삼성 사외이사가 본 ‘삼성 사태’
    예종석

    1953년 부산 출생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 석·박사(경영학)

    미국 인디애나대 비즈니스스쿨 연구원, 조교수

    現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장, 제일모직 사외이사

    저서 : ‘뉴마케팅’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 등


    세금만 하더라도, 삼성그룹보다 훨씬 작은 규모인 신세계가 약 3500억원, 교보생명이 약 1800억원을 상속과 관련해 세금으로 낸 것을 감안하면 이재용씨가 낸 증여세 16억원은 국민에게 해도 너무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처신 때문에 삼성이 8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헌납해도 국민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 공은 삼성에 넘어간 셈이다. 삼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다운 당당한 대처와 투명한 사후처리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경영권 승계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풀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래도 삼성은 국민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