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블라인드 스팟’

보이는 게 전부라는 착각!

  • 구번일 서울여대 강사·비교문학 bunilee@hanmail.net

    입력2008-01-07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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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인드 스팟’

    ‘블라인드 스팟’:매들린 L 반 헤케 지음, 임옥희 옮김, 다산초당, 330쪽, 1만3000원

    ‘내가 못 보는 내 사고의 열 가지 맹점’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인간 심리의 사각지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블라인드 스팟’이란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가리킨다. 자동차의 사각지대처럼 인간에게도 마치 본성처럼 맹점이 존재한다는 게 이 책의 출발점이다.

    심리학자인 매들린 L 반 헤케는 똑똑한 사람들도 종종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에 착안해 모든 인간이 지닌 정신적인 맹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맹점이란 인간의 사고방식 중 일부이기 때문에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맹점은 교육에 의해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도 있으며, 맹점이 모든 인간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쉬워진다고 덧붙인다.

    저자가 설명하는 블라인드 스팟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시하는지 깨닫게 된다. 보통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어리석다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경우나 회의를 할 때 원활한 의사소통과 화합을 가로막는다.

    저자는 이런 일의 대부분이 자기 자신과 상대의 맹점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맹점에 대해 이해하면, 다른 사람의 납득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단순히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윤리 문제로 연결시켜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맹점에 대해 파악하면 사람을 분열시키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좀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토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맹점은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보다 큰 집단, 국가나 민족, 종교나 인종 집단, 문화권 혹은 회사나 학교 등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세 가지 맹점



    이 책 ‘블라인드 스팟’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는 ‘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물체가 더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씌어 있다. 이 경고문을 ‘블라인드 스팟’ 버전으로 바꾸면,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다. 한마디로 말해 저자는 맹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권유하고 있으며, 그런 전환을 가능하게 해줄 바람직한 대화의 기술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들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맹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길 바라며, 누구든지 맹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을 때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한 비판과 조언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맹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저자는 특히 타인의 존재,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저자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최악의 맹점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비쳐 봐야 하며 타인의 관점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견해가 나와 다르고, 간혹 한계가 있다고 해도 내가 놓치고 있는 점이 상대의 관점으로 보면 아주 잘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저자가 지적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세 가지 맹점과도 연결된다. 보편적인 세 가지 맹점이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고, 흔히 전체를 놓치고 부분만을 보며,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맹점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이 진심 어린 조언이든 혹은 단순한 비난이든 간에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저자는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맹점에 빠지기 쉬운 것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 모습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의 결점 역시 내 모습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맹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발전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자신의 결점이나 능력의 한계를 알기 위해서 저자는 내가 안다고 확신하는 사실들이 정말 확실한 것인지 자문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는 맹점에서 벗어나려면 모르는 것을 열심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인이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배울 만한 가치가 없다는 듯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런 태도를 무지에 대한 자기 방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 묻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모르는 것을 물어올 때조차 조롱하는 식으로 대답하게 마련이다.

    저자는 이런 경우에 대처하는 요령까지 일러준다. 모르는 것을 물었는데 상대가 당연한 걸 묻는다고 멍청이 취급을 하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혹은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셨죠?”라고 되물음으로써 상대방 역시 그 정보를 태어날 때부터 안 게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됐다는 점을 일깨워주라는 것. 이렇게 하다 보면 사람들은 제각기 관심분야가 다르고 그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능도 다르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한 사람이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 수 없으니, 모르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저자가 지적하는 맹점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중 하나가 범주화해서 사고하는 방식이다. 이는 전체를 놓치고 부분만을 보는 맹점과 관련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패턴 안의 갇힌 사고, 패턴 밖의 열린 사고’라고 표현한다. 범주화는 본질적으로 대상을 단순화하는 방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 사고의 큰 맹점일 수밖에 없다.

    범주화는 대상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대상이 지닌 복잡한 차이를 무시하고 한두 가지의 특징에만 초점을 맞추므로 개별적인 특징은 모두 무화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런 사고의 위험성이 특히 개인을 집단적인 범주로 구분할 때 생긴다고 지적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임의로 분류한 집단에 명칭을 붙이고 그 집단 구성원들의 복잡한 특성을 간단한 명칭으로 대체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집단의 특성으로 자신이 단순하게 범주화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범주화의 위험성

    범주화의 맹점 때문에 특정 집단에 대한 오해가 마치 그들의 본질적인 특성인 것처럼 굳어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범주화의 맹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세르비아인들이 학살을 저질렀다’ ‘영국인들이 몰살시켰다’ ‘아랍인들이 거부했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을 하나로 뭉뚱그려 그들을 ‘집단 범죄, 집단적인 행동과 의견’을 가진 것으로 묘사한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서 이런 식의 범주화는 국가나 민족 전체에 대한 감정적인 적대나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저자가 지적하는 여러 가지 맹점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맹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을 새로 알았거나 혹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이나 자기 위안을 삼는 데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사실을 통해 자신의 맹점을 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저자 역시 ‘지혜는 경험을 통해 정보를 얻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를 통해 변화할 때만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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