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그게 민주주의냐?” vs “제 앞가림이나 하시지!”

  • 김기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8-01-08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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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의 부활’이 새로운 냉전(New Cold War)을 불러오는가. 2008년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치솟은 기름값 덕분에 늘어난 외화수입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기묘한 권력연장’을 온몸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어 이를 비판하는 서방 지도자들의 목소리와 크렘린의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문제는 어느새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과연 푸틴의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가.
    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2007년 6월7일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를 사이에 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표정과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새해에는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칠 두 번의 중요한 대통령선거가 있다. 왕년의 초강대국 러시아와 현재 세계 유일의 ‘슈퍼 파워’인 미국이 차례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미국에서는 2008년 11월이 돼야 백악관의 다음 주인이 누구일지 분명해진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에 ‘형식적으로’ 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크렘린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은 일단 3월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고향(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후배이자 대학(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부) 후배이며 크렘린 행정실장(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친 오른팔이다. 일부의 예상처럼 푸틴 대통령이 국가지도자로 남아 수렴청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푸틴의 노선을 충실히 승계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렇게 볼 때 2009년 이후 워싱턴의 대내외 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예상되지만, 잃어버린 초강대국의 위상을 되찾고 위대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푸틴 정부의 노선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최근 외신과 이를 옮긴 국내 언론의 보도를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옛 소련 붕괴 후 경제난에 허덕이던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만나고 고(高)유가에 힘입어 ‘오일 머니’를 벌어들이기 시작한 후의 일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국제사회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면서 미국(서방)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뒤에는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과 절대권력 유지를 꾀하면서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빠짐없이 덧붙여진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 위험론’까지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인식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냉전 시절에야 ‘악의 제국’인 소련이 서방세계의 가장 큰 적으로 인식됐지만,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후부터는 러시아를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러시아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적 혼란까지 겪자 서방의 경계심은 더 약해졌다. 오히려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황화(黃禍)론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철의 장막’을 열어젖힌 소련의 마지막 최고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혹은 소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러시아를 세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대에는 서방과 러시아가 전에 없는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냉전시대는 진정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두 지도자는 러시아 국내에서는 ‘국가를 망친 원흉’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지만, 서방에서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았다.

    이런 상황은 분명 2000년 푸틴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달라졌다.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푸틴 정권이 등장하면서 생긴 것일까. 푸틴 정권이 물러난다면 서방과의 관계는 회복될 것인가.

    1기와 2기의 차이

    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2007년 11월21일, 러시아 총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필자는 무명의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계에 막 등장한 1999년 8월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부임해 2006년 7월까지 7년여 동안 푸틴 정권의 탄생과 재집권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또 앞서 1990년대 초중반에는 모스크바에 유학하며 옐친 정권 시대의 혼란스럽던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 초기까지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는 부드러웠다. 2001년 9·11사태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옛 소련의 공화국이던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미군이 들어왔다. 러시아 내 민족주의 성향의 강경파 세력이 “푸틴 대통령의 친(親)서방 정책으로 러시아의 국익이 손상되고 있다”고 반발할 정도였다.

    이런 구도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푸틴 대통령이 재집권해 2기 정권을 출범시키면서부터였다. 경제 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굳건하게 확보했고, 옛 소련 시절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지렛대’를 찾아냈다. 바로 석유와 가스였다.

    러시아가 2000년부터 해마다 6, 7%대의 경제성장을 계속해온 것은 천연자원 수출 덕분이었다. 러시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에너지 자원을 국제정치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6년 1월, 러시아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 옛 동맹국 우크라이나로 이어진 가스관을 차단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으로 집권한 빅토르 유셴코 정권이 친서방 성향을 드러내자 여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가 경악했다.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가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 새로운 가스관 건설이 잇달아 추진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는 오히려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빗발치는 국제사회의 비판 때문에 러시아는 곧 우크라이나로 연결된 가스관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그 파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러시아가 언제라도 에너지를 무기로 주변국과 서방을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푸틴 정부는 또한 BP(British Petroleum)와 셸, 엑손모빌 등 서방의 메이저 에너지 회사와 유코스 등 러시아의 민간 재벌들이 지배하던 유전과 가스전을 다시 국유화해 내부적으로도 에너지 장악력을 높였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서방에서는 ‘푸틴의 러시아’가 과거 소련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방이 옛 소련과 중국을 압박할 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하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가 다시 동원됐다.

    물론 옐친 정권이나 푸틴 정권 초기에도 서방이 러시아 국내 문제에 간섭한 적은 있었다. 러시아가 두 차례에 걸쳐 체첸을 침공했을 때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군의 과잉진압과 가혹행위 등을 문제 삼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조사단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러시아는 푸틴 정권 초기까지만 해도 내정 간섭이라고 내심 불쾌해했지만 직접적인 반발은 자제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지난 11월28일 푸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크렘린으로 각국 대사를 초청해 “러시아는 외국의 간섭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 탄압에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한 직접적인 반격이었다.

    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2007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집을 방문해 그에게 국가공로상 상패를 건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산시키겠다고 나섰다.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의 주변국인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키르기스탄에서 ‘색깔 혁명’이 일어나 친서방 정권이 수립됐다. 아제르바이잔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에는 앞마당과 같은 중요한 지역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05년 초 외교전문지 ‘세계 현안과 러시아’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주의는 외부에 의해 강요돼선 안 되며 체제를 힘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그 지역의 정세만 불안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러시아에 미국이 얘기하는 ‘민주주의의 확산’은 러시아와 동맹국들의 내정에 개입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일 뿐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러시아는 미군이 이라크의 아브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알카에다 용의자와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자행한 고문 등 가혹행위를 예로 들어가며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물론 서방측에서 보면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리처드 란 세계경제성장연구소 소장이 보수적 일간지인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한 ‘푸틴주의(Putinism)’라는 글이다. 란 소장은 “푸틴 대통령이 공산주의보다 전체주의에 가까운 새로운 독재 체제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외교관계회의(Council on Foreign Relations)는 2006년 3월 ‘러시아의 잘못된 방향,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나?’라는 보고서까지 발표했다.

    솔제니친의 변호

    정말 푸틴의 러시아는 서방이 생각하는 대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에 대한 러시아 국내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대다수 국민은 푸틴 정권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여전히 푸틴 대통령을 ‘에너지가 넘치고, 권위와 능력이 있으면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러시아 지식인 사회의 인식도 일반 국민과 큰 차이가 없다. 소련 체제에 저항해 7년 동안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고 그 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러시아 문단의 원로이며 행동하는 지성(知性)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런 그가 2007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을 적극 변호하고 나섰다.

    솔제니친은 “옛 소련 몰락 후 많은 러시아인이 서방세계를 찬양했지만, 곧 미망(迷妄)에서 깨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사(騎士)’로 인식됐던 서방 국가들도 결국은 이기적인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방측이 고르바초프와 옐친 치하의 15년간에 걸친 혼란 상태를 지켜보면서 러시아를 ‘제3세계 국가’로 보는 데 익숙해졌으며, (푸틴 정권 이후) 러시아가 경제와 국가체제를 재건하기 시작하자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경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측의 러시아 비판이 불공정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 중 가장 친서방적인 인물로 꼽히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1990년대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위주의 통치는 불가피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아직 러시아가 민주주의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있다”며 푸틴 대통령을 감쌌다.

    이러한 ‘왕년의 영웅들’의 분석은 상당수 러시아 지식인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이다. 러시아 지식인 사회도 물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지한다. 1990년대 초반 상당수의 자유주의 지식인이 서구 민주주의와 급진적인 시장 개혁을 지지하고 서방의 지원을 기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때만 해도 러시아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소련체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이 많았다.

    그러나 시장개혁과 민주화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혼란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자본주의화의 과실(果實)은 국유재산을 싼값에 사들여 순식간에 억만장자가 된 올리가키(과두재벌)들이 독차지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제 대신 지방분권을 하면 각 지방의 주지사와 군관구 사령관 등 토호세력들은 그 지역의 작은 ‘차르(황제)’가 됐다. 선거와 의회는 졸부들의 잔치가 돼버렸고, 자유는 무질서로 변질됐다. 이 때문에 러시아 국민은 한때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떠받들던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서도 점점 반감을 갖게 됐다.

    대외적으로는 형편없이 낮아진 러시아의 위상이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철저히 구겼다. 1990년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러시아인들은 너나없이 기회만 있으면 비행기에 올랐다. 철의 장막 속에 갇혀 살면서 보지 못했던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외에 나가보니 어디를 가나 마치 제3세계 국가에서 온 국민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서 러시아 남성은 무조건 ‘보따리 장사’, 젊은 여성은 ‘인터걸’로 취급받기 일쑤였다는 것.

    실제로 냉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별 볼일 없는 나라’ ‘가난한 대국’ 정도로 전락했다. 이념의 퇴조로 사회주의 종주국 위상도 잃었고, 동서 군사대결이 끝나면서 유지하기도 버거운 거대한 군사력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이 돼버렸다. 서방 언론은 걸핏하면 러시아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괴상한 나라’로 묘사했다. 곰처럼 우둔한 러시아 남성은 하루 종일 보드카에 취해 있고, 마피아가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의 사회라는 이미지가 재생산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분노와 좌절감을 가슴속에 쌓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인물이 푸틴 대통령이라고 대다수 러시아 국민은 믿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러시아 정계의 판도가 가장 잘 보여준다.

    푸틴 정권 초기만 해도 크렘린에는 서방이 믿고 신뢰할 만한 ‘자유주의 성향의 친서방(liberal Westernists)’ 정치 지도자가 꽤 있었다.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전 부총리와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크렘린 행정실장,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푸틴 정권 2기 들어서 이들의 이름은 정가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푸틴 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는 오랫동안 서방과의 경제 협상을 도맡은 경제관료다. 서방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고 신뢰도 받고 있지만, 러시아 내에서 정치적 입지는 약하다. 그는 자유주의 야당 세력을 모아 3월 대통령 선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으나 당선 가능성은 미미하다. 이처럼 러시아 정가에서 친서방 세력의 퇴조는 두드러진다.

    슬라브주의 vs 서구주의

    서방과 러시아의 분열, 특히 민주화와 시장경제 개혁을 둘러싼 이견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서방측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후퇴시킨다고 보는데도, 정작 러시아 국민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란 소장은 “(푸틴 정권 들어서) 높은 경제성장 덕분에 생활수준이 높아지자 러시아 국민들은 이런 온건한 압제(soft repression)를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 정권이 압제의 채찍을 가하면서 국민들에게 당근(경제)을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내놓은 서방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푸틴 정권이 언젠가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경제성장은 에너지와 천연자원에 의존한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러시아 경제는 진정한 시장경제로 성숙하지도 못했고, 아직 국제경제체제 안으로 편입되지 못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푸틴 정부가 서방의 충고를 무시하고 시장 개혁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경제가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되고 국민도 지금의 열광적인 지지를 거둬들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방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러시아가 다시 서방으로부터 떠나가는 것(Russia leaves the West again)’으로 표현한다. 러시아에선 역사상 슬라브주의자들(Slavophiles)과 서구주의자들(Westernizers) 사이의 대립이 오랫동안 계속돼왔다. 어떤 시기에는 슬라브주의가 득세했고 어떤 시기에는 서구주의자들이 서유럽 강국들을 모델로 삼아 러시아를 발전시키려고 시도했다. 두 세력 간에 일정한 균형관계가 형성된 때도 있었다. 역대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은 두 이념 사이를 오가거나 때로는 중도 노선을 나타냈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이 도시는 서구화를 추구한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가 ‘서방으로 열린 러시아의 창(窓)’으로 삼기 위해 건설한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유럽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덕에 모스크바와는 다른 자유롭고 서구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시다. 한편 이 도시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혁명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옛 소련의 비밀경찰이자 첩보기구였던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근무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 경력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KGB는 음침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옛 소련 시절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기도 했다. KGB 출신들은 소련 해체 후에도 이런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고, 푸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005년 4월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소련의 붕괴는 세기의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독재자로 일방적으로 매도돼온 스탈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주도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KGB에서 해외정보수집을 담당했고 동독에서 5년 동안 정보외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독일어에 능통하고 유럽과 국제정세에도 밝다. 서구에 대해 잘 알고 서구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옛 소련에 대한 향수(鄕愁)를 간직한 이중적인 인물이 바로 푸틴 대통령이다.

    그동안 필자가 관찰한 푸틴 정부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실용주의다. 집권 직후 아직 국내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지 못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의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자 앞마당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당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서방의 지원과 경제협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2004년 집권 2기에 들면서 정치·경제적인 안정을 확보하자 점차 서방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푸틴의 외교는 늘 국익을 바탕에 깔고 있다. 러시아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지지했지만 이라크 침공에는 반대했고,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 하자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국제정세의 변화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라크와 이란에는 러시아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는 러시아의 거대 석유회사인 루코일이 진출해 있고, 러시아 정부는 이란에 핵발전소를 건설해주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 침공, 이란에 대한 압박은 똑같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었지만, 러시아의 대응은 그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지원한 대가도 충분히 챙겼다. 2002년 6월 캐나다에 모인 G7(선진 7개국) 정상들은 러시아를 2006년부터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는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가 G7+1 형태로 모였으나 러시아까지 포함한 G8으로 확대된 것이다.

    “一極 넘어 多極으로 가야”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푸틴 대통령이 외치는 ‘위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일부 서방 언론이 묘사하는 것처럼 소련 비밀경찰 출신인 푸틴이 소련 제국 부활의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하는가.

    러시아의 현재 대외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존경하는 KGB 선배이자 같은 해외첩보원 출신이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의 외교론은 ‘냉전 해체 후 미국 중심으로 단일화된 국제질서를 다극화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러시아와 중국·인도의 3각 동맹론도 그가 처음 구상했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이 국제질서의 다극화론은 러시아가 미국과 동등한 위치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겠다는 것이지 미국과 다시 국제사회의 패권을 놓고 겨루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은 푸틴 이후의 러시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지금처럼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결과를 벌써 점치기는 어렵지만, 독일과 프랑스에 차례로 우파 정권이 들어선 것은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가 그리 밝지 않으리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새로운 냉전시대가 오는 것은 러시아도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 스스로 소련 시절처럼 서방과 맞서기에는 정치·경제적으로 아직도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러시아 재건’이 국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수사(修辭)라면, ‘새로운 냉전시대로의 회귀’ 역시 아직까지는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서방 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지나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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