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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사람의 삶

‘유럽 간첩단 사건’ 피의자에서 국내 최고 도금 전문가로… 김판수사장의 인생 유전

“빨갱이 됐냐” 묻던 이청준과는 결별, “넌 괜찮은 인간” 하던 염무웅과는 오랜 친분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유럽 간첩단 사건’ 피의자에서 국내 최고 도금 전문가로… 김판수사장의 인생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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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교수를 만나다

‘유럽 간첩단 사건’ 피의자에서 국내 최고 도금 전문가로… 김판수사장의 인생 유전

케임브리지 대학 교정에서(1966년). 가운데가 박노수 교수 부부이고 오른쪽에 김판수가, 왼쪽에 김신근이 서 있다. 뒤쪽에 선 사람이 임민식. 사진 속의 박 교수 부인은 박 교수가 사형된 후 아이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촉망받는 인문학도였다. 당시 광주지역 수재들의 정규 코스는 광주서중→광주일고→서울대였고, 김판수 또한 당연히 이 코스를 밟아갔다. 서울대 영문과 3학년을 마칠 즈음 인생을 전환할 기회가 왔다.

“중고교 동창인 임민식이란 친구의 외숙부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있었어요. 도쿄대를 나오고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케임브리지에서 국제법 강의를 맡고 있는데, 광주서중-광주일고-서울대 후배들을 위해 영국 유학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때야 외국서 공부할 수 있다면 최고죠 뭐.”

행운을 놓칠 수 없었다. 집안이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장학금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중고에 대학까지 동창인 김신근이란 친구에게도 함께 유학 갈 것을 권유했다. 셋은 꿈을 안고 영국으로 날아갔다. 일정상 출발은 따로 했다.

“도중에 일본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내가 묵은 옆집에 조총련 관련자가 산다고 했어요. 그때 조총련이라는 말만 듣고도 머리칼이 쭈뼛했던 기억이 나요. 북한 정권과 민중을 구별할 줄도 몰랐어요.”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상태에서 출발한 유학길이었다. 민족의식 같은 것도 생기기 이전이었다. 그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 영화였다. 소설을 탐독하고 사물을 깊이 궁구하는 사색적인 기질의 그에겐 내심 미래 사회엔 소설보다 영상이 문화를 선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1966년 봄, 영국에 도착했고 케임브리지에서 박노수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빼어난 수재였고 멋쟁이였다. 젊고(당시 30대 중반이었다) 지적이고 다정하고 편안했다. 그가 방을 얻어줘 김신근과 함께 하숙을 했다.

“북쪽을 찬양한다거나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다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여서는 곤란하다.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서 있는 한 국제관계 속에서 통일은 이루기가 요원하다’ 같은 원론적인 얘기만 했어요. 서울서도 얼마든지 하던 얘기들이었어요. 우리가 6·3세대라 친구들 중엔 1964년, 1965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하다 옥에 갇힌 이도 여럿 있었거든요. 나도 단식도 몇 번 해보고 경찰서에 잡혀가보기도 했지만 체질상 정치 문제엔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혼자 틀어박혀 소설이나 읽었지 바깥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거든요.”

케임브리지에서 어학 코스 1년을 마치고 덴마크로 갔다. 박노수 교수가 그렇게 권했다.

“거절할 처지는 아니었어요. 학비와 체제비를 박 교수가 대주고 있었으니까….”

핀란드 여학생과의 첫사랑

동백림 사건이 터진 것은 덴마크로 온지 반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맑고 밝은 초여름, 그는 그 무렵 한 여학생과 애뜻한 정을 나누는 중이었다. 핀란드에서 온, 첼로를 안고 있는 소녀. 눈이 지중해 바다처럼 신비하게 파란 여학생이었다.

“그 학교엔 남학생은 40명쯤밖에 안 되고 여학생이 80명쯤 됐어요. 그러니 남학생들이 인기가 있었지요. 내가 평소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그 핀란드 여학생에게만은 적극적이었어요. 같은 클래스의 독일 남학생이 그 아이와 친했는데도 아랑곳없이 말을 붙이고 그랬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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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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