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돈 수출 전도사’ 조환익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새로운 수출 패러다임으로 위기의 한국경제 구원”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8-01-08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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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불안의 목소리가 높은 요즘, 한국수출보험공사 조환익 사장의 ‘돈 수출’론이 재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드물게 공격경영으로 새로운 수출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는 조환익 사장의 남다른 경영철학과 ‘돈 수출’론을 들어봤다.
    ‘돈 수출 전도사’ 조환익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1950년 서울 출생<br>●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뉴욕대 석사(경영학), 한양대 박사(경영학)<br>●1973년 제14회 행정고시 합격<br>●상공부 국제협력과장,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중소기업정책관,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차관보·차관

    경기 회생의 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실업 문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고 현상(고유가, 고원화가치, 고금리)으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금융권이 출렁거리면서 주가가 급락한 데 이어 시중 은행에선 돈이 씨가 말랐다고 아우성이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돈 수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하고 나선 조환익(趙煥益·58)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재계와 금융계에선 이미 그의 ‘돈 수출’론이 화두다.

    한국수출보험공사(이하 수보)는 국민에겐 낯설지만 급성장을 거듭해온 알토란 같은 정부 산하기관이다. 기획예산처에서 실시하는 정부 산하기관 경영평가에서 수년째 1위를 차지했다. 조 사장은 2007년 5월 사장으로 취임한 후 이에 안주하지 않고 수보의 개혁과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단순한 ‘수출보험사’ 기능에서 더 나아가 ‘상품’과 ‘금융’을 결합한 새로운 수출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등 ‘제2의 창업’을 하고 있는 것. 방만하기 쉬운 공공기관에 새로운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고 있는 조 사장은 훤칠한 키와 서글서글한 눈매가 편안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 한국수출보험공사는 일반 국민에게는 다소 낯선데,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많은 분이 요즘 경제가 불안하다고 합니다. 3고 현상으로 수출은 위축되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금융질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선 수출대금을 못 받는 등 수출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에 대한 손해보상을 해줘 기업이 마음놓고 수출할 수 있게 하는 ‘보험사’ 노릇을 합니다.



    수출기업의 구원투수

    또한 기업들이 선박이나 플랜트 등 대형수출을 하거나 해외진출, 해외투자, 해외자원개발 등 큰돈이 필요한 사업을 할 때 은행에서 쉽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증하는 일을 합니다.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우리가 대신 지급하겠다는 거죠. 한마디로 우리나라 기업이 마음껏 수출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기관입니다. 2006년엔 전체 수출액의 21%가 넘는 82조7000억원을 보증 섰습니다.”

    ▼ 수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떠안는 셈인데, CEO로서 리스크 부담을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험을 싫어하는 공기업 특성상 역대 사장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걸 주저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어느 정도까지는 리스크를 감수하자는 주의입니다. 한쪽에서 수익이 나는 만큼 리스크가 높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는 거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손실 없이 잘되고 있습니다.”

    ▼ 2007년 수출이 3700억달러에 달하고, 수출건수도 300만건에 달합니다. 수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수출대상 국가나 기업에 대한 풍부한 DB 구축이 중요한데, 수출보험공사가 보유한 해외 수입자 신용정보 DB가 16만여 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선 우리 정도의 DB를 구축한 곳도 없지만, 세계적인 기관과 비교하면 완벽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많은 부분을 세계적인 신용기관에 의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신용조사 파트를 더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자회사 형식으로 신용조사 파트를 독립시킬 생각도 하고 있고요.”

    실물경제와 금융의 결합

    ‘돈 수출 전도사’ 조환익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현대종합상사는 수보의 보증보험을 통해 예멘 LNG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외국 은행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사진은 지난 12월7일 열린 금융협약 체결식.

    조환익 사장은 1973년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하며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1990년부터 3년간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1995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2000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4년 산자부 차관을 역임했다. 주로 산업과 통상 분야에서 근무해온 무역 전문가다.

    ▼ 수출보험공사는 금융계통인데,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산자부와는 전혀 다른 영역 아닌가요?

    “1992년에 수출보험공사가 수출입은행에서 분리됐는데, 저도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그 작업에 관여했습니다. 인연이 있는 편이죠. 솔직히 산자부 시절에 금융을 조금 다루긴 했지만 수박 겉핥기라 잘 모릅니다.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모르는 용어가 많아요. 그런데 제 전공이 무역, 통상입니다. 산자부에서 실물경제를 다뤘기 때문에 여기 와서 그 경험을 금융과 접목시키니 많은 게 보이고, 경영방침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 2007년 5월에 취임한 후 수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직원들이 ‘전에는 자기가 하는 일을 밖에서 설명하는 걸 어려워했는데, 이젠 명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수출의 최후 구원처이고,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긍지와 자부심도 생겼고요. 뭘 해야 하는지 목표가 명확해지니까 더 열심히 일해요. 오히려 제가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일찍 퇴근하라고 독려할 정도입니다.

    기업들로부터도 ‘수보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전화 받는 태도부터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전에는 기업을 대하는 게 딱딱했고 기업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까지 보였는데, 이젠 직원들이 제도와 규정을 바꿔가면서까지 기업을 도와주려 하는 등 자세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 데에는 제가 와서 인사 외풍을 차단한 걸 직원들이 좋게 받아들인 점이 작용한 것 같아요. 그때 청탁과 압력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하지만 끝까지 인사를 정도(正道)로 하니까 믿음을 가진 모양입니다.”

    조 사장은 취임 후 직원들의 업무부담 해소를 위해 보고기간을 단축하는가 하면 임원회의실 폐쇄, 사장 및 임원집무실 축소, 외부 행사시 의전 담당직원 축소 등 관료화된 조직에 변화를 일으켰다.

    “저는 무조건 정시에 퇴근합니다. 오너가 10분 늦게 퇴근하면 말단 직원은 100분 늦게 퇴근하게 되잖아요. 또한 웬만한 건 미루지 않고 당일에 결정합니다. 가장 모시기 힘든 상사가 애매하게 지시하고 뭐든 챙기려 하는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라잖아요. 윗사람이 모든 것을 확실히 알고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 실무진을 믿고 맡겨야죠.”

    취약한 금융구조

    이렇듯 그의 경영은 실용주의, 합리주의, 성과주의에서 출발한다. 2001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초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정부의 경상운영비 지원을 받지 않고 프로젝트성 사업을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수주함으로써 인건비와 운영비를 확보하는 공기관 운영의 신개념을 도입해 3년 만에 수익규모를 20배 이상 성장시켰다.

    ▼ 여느 공공기관 CEO들과는 경영 발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역발상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걱정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는 게 역발상입니다. 역발상은 엉뚱한 발상이 아닙니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것이죠. 예를 들어 아직도 금융회사들은 공채 지원자격을 경영학, 경제학, 법학 전공자로 한정하더군요. 고정관념에서 못 벗어난 것이죠. 그런 전공자도 중요하지만 수학, 심리학, 미학, 철학 전공자도 필요합니다. 다양하게 뽑아서 다양한 능력이 발휘될 때 회사는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돈 수출 전도사’ 조환익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 수출을 지원하는 금융기관에서 본 우리 경제는 어떻습니까.

    “우리 경제는 앞으로 실물경제와 금융을 접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양극화 문제, 고용 문제가 풀리지 않아요.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제조업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해결될 게 아니에요. 제조업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이익도 두 배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수익률만 더 떨어질 뿐이죠. IT산업 역시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렸어요.

    프로젝트 파이낸싱

    상품수출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현대중공업이 1억달러짜리 선박을 1척 만들어 수출하면 560만달러의 이익을 남깁니다. 그런데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그 선박에 대해 10년짜리 선박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연리 6%, 즉 10년 동안 매년 600만달러의 이자를 챙깁니다. 몇 배의 수익을 얻는 셈이죠. 우리가 세계 10위 교역국인데도 정작 금융의 해외진출은 거의 없어요.”

    ▼ 우리나라 금융구조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거군요.

    “흔히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원인을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나빠서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당시 호주는 우리보다 훨씬 안 좋았어요. 그런데 호주는 위기를 넘겼고, 우리는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어요. 금융이 취약했기 때문이에요.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릴 신용을 가진 은행이 호주엔 있었는데 우리나라엔 없었던 겁니다. 최근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은 주가가 4% 떨어지는 데 그쳤고 영국은 오히려 올랐어요. 반면 우리나라 주가는 8% 이상 떨어졌어요. 아직도 우리 금융이 취약하다는 증거입니다.”

    ▼ 외국과 비교해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외국 은행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평균 40% 이상 돼요. HSBC처럼 큰 은행은 80% 이상을 벌어들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은 3%밖에 안 돼요. 단적으로 비교해서 씨티은행 해외 점포가 9000개인 데 비해 국내 전체 금융기관 해외점포는 114개에 불과해요. 스포츠, 문화 등 다른 분야는 다 세계로 뻗어나갔는데 금융만 그러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젠 은행도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도 나가고는 싶은데 네트워크가 없고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노하우가 없어요. 그걸 도와주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 그래서 ‘돈 수출’을 강조하신 거군요.

    “돈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헤지펀드에 대해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최근엔 중동의 오일머니를 비롯,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도 국부펀드를 조성해 해외에 투자하고 돈을 벌어들입니다. 우리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엔 500조원의 유동자금이 있습니다. 상품수출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국내 유동자금을 해외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자본수출이 대안입니다. 제가 돈 수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공감합니다.”

    2007년 3월 중동지역 최대 발전·담수설비 건설공사인 사우디아라비아 마라피크 프로젝트(총 공사비 34억달러)를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이 수주했다. 여기엔 수보가 현대중공업 등 국내 기업 수출분 13억달러 중에서 8억달러를 ‘중장기 수출보험’으로 지원해 수주 경쟁력을 높인 게 한몫했다. 또한 수보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 프로젝트 금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발주자를 설득,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금융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했다.

    정부기관의 한계

    8월에는 대한E·C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구시가지 재개발 사업을 수주했는데 역시 수보가 3700만달러를 ‘해외투자보험’으로 보증 섰다. 대출금 미회수 위험이 사라지자 대우증권, 하나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이 차관단을 구성해 사업 착수자금을 대출해줬다.

    지난 12월 현대종합상사가 9000만달러 규모의 예멘 LNG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에도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자 ‘자원개발보증보험’으로 보증을 해줘서 프랑스 SG은행, 칼리온은행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할 생각입니다.”

    ▼ 영화펀드보험과 영화수출진흥보험도 있는데,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요.

    “제가 영화 마니아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세븐데이즈’를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이런 좋은 영화는 많이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내수용으로 만들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세계에 수출하려면 제작 규모를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영화펀드에 투자해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영화펀드보험을 만들면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또한 영화를 해외에 수출할 때 극장에 상영보증금을 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합니다. 수십억, 수백억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영세한 우리 영화사에서는 그럴 돈이 없어요. 그래서 제대로 홍보를 못하고 상영관을 못 잡아 흥행에 실패하곤 했어요. 외국 배급사가 한국 영화를 수입해 손실을 입어도 일정부분 보상해준다면 우리 영화 수출이 좀더 용이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가 잘 돼야 여타 관련 콘텐츠 산업이 발달할 수 있습니다. 영화 투자야말로 서비스 산업 위주의 패러다임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시행착오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추진할 생각입니다. 이미 세계 3대 수출신용보험회사에서 이런 상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첫 영화펀드보험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 그밖에 구상 중인 새로운 상품이 있습니까.

    “탄소배출권 거래의 경우 현재 세계시장이 300억달러 규모인데, 5년 내에 3000억달러로 커질 겁니다. 이에 대한 보험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한미FTA, 한-EU FTA 체결 등으로 농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텐데, 농산물도 결국 가공수출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중국 시장은 우리의 커다란 농산물 수출시장이 될 겁니다. 그런데 농사짓던 사람이 수출을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가격변동, 환율변동, 거래선의 신용위협 등 각종 위험을 뭉뚱그려 보장하는 농산물보험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처럼 수보는 수출을 돕는 데 무궁무진한 기여를 할 겁니다.”

    ▼ 이런 일을 다 하려면 재원이 대폭 늘어나야 할 텐데요. 한전이나 포스코처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해 자본금을 대폭 늘린다든지 하는 식의 구상이 있습니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돈을 벌어서 기금을 늘리자’입니다. 올해도 1000억원 정도 순수익을 올려 기금을 확충했습니다. 또한 적게라도 정부출연기금을 계속 받을 겁니다. 올해도 250억원을 출연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의 유수 은행이나 기업들이 우리와 보험계약을 맺는 게 우리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무역대국의 정부가 보증하는 기관이기에 신뢰하기 때문이죠.”

    ▼ 정부기관이어서 유리한 면도 있지만, 한계도 많이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예산구조가 경직돼 있어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이익을 냈으면 임금을 올려준다든지 정원을 늘린다든지 해외지사를 더 설치한다든지 하는 데 쓸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임금인상도 공공기관 규정에 일률적으로 따라야 하고 정원증가, 홍보비 등 모든 걸 일일이 간섭받아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어려운 애로점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 ‘돈 수출’도 중요하지만 기본 설립목적인 중소기업 수출 지원이 가장 중요할 텐데요.

    “물론입니다. 중소기업 수출보험료가 세계에서 제일 저렴합니다. 특히 환율이 떨어져 손해를 보면 보상해주는 ‘환변동보험’은 보험료가 0.01~0.02%에 불과해 1만~2만원만 내면 1억원을 보장받는 셈입니다. 또한 수출원자재 구매자금 대출금을 보장해주는 ‘선적 전 신용보증시용보험’은 담보 없이도 지원해주는데, 현재 지출이 수입의 11배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큽니다. 하지만 수출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원자재가격변동보험을 준비 중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원자재가격의 급등으로 손해를 보면 이를 보상해주는 보험인데 이 역시 적자가 예상됩니다.”

    無慾의 관료 생활

    조환익 사장은 1980년대 초 상공부 아주통상과장 자리가 공석이 돼 한동안 과장대리로 근무했다. 당시 금진호 상공부 차관은 과장직무대리로 별 탈 없이 근무한 그를 과장으로 승진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선배들이 먼저 해야 한다”며 두 번이나 과장 승진을 거절했다. 차관이 그에게 “인사를 내가 하지 네가 하냐”고 소리쳤을 정도였다.

    1990년대 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근무한 그는 남보다 일찍 국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이때도 그는 선배들보다 먼저 진급할 수 없다며 2년여를 한직에 머물다 뒤늦게 승진했다. 2001년엔 산자부가 인사적체로 어려움을 겪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스스로 사임, 당시 관가에서 ‘아름다운 퇴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3년 만인 2004년에 산업자원부 차관으로 발탁된 그는 1년7개월간 산업, 통상, 자원, 행정을 총괄한 후 또다시 미련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직 생활의 원칙이 있었다면 ‘욕심 부리지 말자’였습니다. 저는 한번도 승진을 탐하질 않았습니다. 남보다 반 발자국만 일찍 가자는 주의였죠.”

    한국무역투자보험공사

    ▼ 공직 생활을 하는 데 영향을 받은 선배가 있다면.

    “데이콤 사장을 지낸 박운서 전 상공부 차관입니다. 상공부 통상총괄과 시절부터 저를 이끌어준 상사인데, 수제자처럼 그분을 따르려고 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땐 격정적으로 하고, 욕심 안 부리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접고 필리핀 원주민촌에 들어가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걸 보며 많은 것을 배웠죠.”

    ▼ 지금 구상하는 한국수출보험공사의 비전은 어떤 것입니까.

    “앞으로 해외투자, 해외자원개발 등을 아우르는 대외교역 종합지원체제를 구축해 우리나라 ‘수출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할 생각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거점지역에 현지영업조직 설립을 통해 우리나라 기업이 전세계 어디에서나 수출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생각이고요. 이를 바탕으로 현재 세계 수출보험시장의 85%를 차지하는 율러-헤르메스(독일), 아트라듀스(네덜란드), 코파스(프랑스)와 어깨를 겨루는 수준으로 수보를 끌어올릴 작정입니다.”

    ▼ 2008년의 구체적인 계획은.

    “2008년엔 수보의 보험계약고가 100조원이 넘게 됩니다. 이런 외형 성장뿐 아니라 마인드를 바꿔야 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공공기관의 타성, 군림하려는 문화 등 잘못된 마인드를 바꿔갈 생각입니다. 또한 상품 수출 지원뿐 아니라 무역과 투자 등 종합적인 지원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해 명칭을 한국무역투자보험공사로 바꾸려 합니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도록 노력할 겁니다.

    무엇보다 2009년에 WTO, IMF, IBRD와 함께 4대 기구의 하나인 ‘국제보험투자연맹’의 정기총회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무역선진국 50여 개국이 참가하는 기구인데 수출지원에 대한 중대한 사항이 여기서 결정이 됩니다. 총회가 열리면 한국은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겁니다. 이를 위한 준비도 완벽하게 해야겠죠.”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수출보험공사를 관심있게 지켜봐달라”는 조 사장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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