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이 세상을 내 뱃속으로 지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입력2008-01-08 2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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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전경린의 새 장편소설 ‘엄마의 집’은 그의 이전 작품세계와는 달라졌다. 처녀의식을 간직한 채 모성을 깨달은 그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최근 딸과 함께 인도를 여행하며 ‘영혼의 씻김’을 경험했다는 전경린(全鏡潾·46)은 전보다 훨씬 밝고 건강하고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는 큰 나무가 있다. 이 마을의 수백년 지킴이인데 그 모양이 기괴하게 휘어 있고, 혹덩어리 같은 큰 옹이가 가는 줄기에 붙어 있다. 나무 기둥은 썩어들어가 텅 비어 흡사 동굴 같다.

    한때 그 안에 들어가서 놀곤 했다. 거기서 밖을 보면 동굴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 나무 동굴 안에서 무심히 지나갔다. 지금 와서 보니 이 나무 동굴은 부서진 건축물을 보수하듯 시멘트로 메워졌다. 오늘 만나기로 한 전경린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기억 속의 한 장소가 봉인되었다. 그 나무 아래 벤치가 있어 그 후로도 가끔 머리가 복잡하면 여기에서 와서 쉬었다 가곤 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나는 맹꽁이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이곳은 나와 인연이 깊다. 헤이리 마을이 개발되기 전인 2000년부터 인근 마을인 통일동산에 둥지를 틀고 산 적이 있다. 그때 가끔 찾은 이곳엔 숲과 습지가 있고, 수리부엉이와 철새들과 청설모와 아이들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 흔적이 많이 지워졌다. 이것이 사람들의 힘이다.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 인공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지어져 있다.

    이곳 풍경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돌아다니곤 했더랬다. 그때 딸아이가 사진장비를 들어주곤 했다. 대여섯 살 난 작은 아이가 사진 받침대를 낑낑대면서 들어 나른다. 아빠가 힘들까봐 그런다는 말을 듣고 감동해서,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굴욕적인 감정들이 눈 녹듯 녹았다. 그 모습이 지금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때 유치원생이던 딸아이를 수리부엉이가 잡아채갈까봐 하늘을 경계하곤 했다. 딸아이는 노란색 옷을 좋아해 하늘에서 보면 병아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노란 옷을 입기 좋아하던 딸아이가 이제 중학생이고 숙녀가 되어간다. 이젠 수리부엉이 대신 더 무서운 세상 걱정을 해야 한다. 머나먼 하늘보다는 가까운 거리와 어두운 골목길을 사람 사는 일이 이렇다.

    그런 시절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헤이리 마을은 파주 출판도시와 더불어 예술인들의 터전이 되었다. 이곳에서 머물던 나무의 영혼들은 나와 내 딸이 같이 머물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 품고 있을 것이다.



    수년 전 늦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마을 당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딸아이는 무지개를 보면서 탄성을 지르곤 침묵했다. 딸아이의 눈동자에 쌍무지개가 들어갔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딸아이를 신뢰할 수 있었다. 어린 딸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영원히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 역시 말없이 쌍무지개를 바라보았다. 그 무지개는 나와 딸아이의 보이지 않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불타는 검은 그림자의 음영

    오후 3시. 헤이리 마을에 있는 방송인 황인용씨의 음악실 ‘카메라타’에서 소설가 전경린을 만나기로 한 나는 일부러 1시간 정도 먼저 와 오랜만에 이 마을을 산책했다. 그때 무지개가 걸려 있던 자리를 마을 당나무에서 다시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한데 내가 변한 것 같다.

    음악실 카메라타를 배경으로 젊은 여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일요일 오후의 헤이리 마을은 철새들이 날아든 습지처럼 부산스러웠다. 모두들 잠시 날개를 접고 쉬기 위해 이곳으로 날아든 철새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깃털을 가진 새들이 종종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전경린을 기다리는 시간은 풍요로웠고, 그 풍요로움은 모성이거나 여성성에 가까웠다. 나는 남성의 거칠고 황량함에 지쳐 이 세상이 빨리 풍만한 여성성을 획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음악실에는 바흐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 짓는 표정이 떠오른다. 그 뒤에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열정적인 문장들은 그 그림자의 문장이기도 했다. 불타는 검은 그림자의 음영에 사람들은 빠져들었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생을 되짚었다. 그녀가 이번에 새 책을 냈다. 그 책을 편집한 ‘열림원’ 편집장은 평소 차분한 음성과는 달리 밝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경린 선생의 작품세계가 많이 변했어요. 아마 선생이 할 말이 많을 거예요.”

    그녀의 새 장편소설 ‘엄마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의 집’이라…엄마와 집은 동의어가 아니던가? 그녀에게는 이제 여대생이 된 딸이 있다. 여기까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전경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하고 인터뷰를 할 때와는 달라서 말이지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 걱정이 돼요.”

    나는 하하 웃었다. 이런 일이 간혹 아니, 자주 있었다. ‘신동아’에 쓰는 ‘작가 열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심으로 편하게 쓴 글이다. 그래서인지 친구, 후배, 혹은 선배 작가들이 인터뷰를 한 다음날 전화를 해서 걱정스러워하기도 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활자화하기 난처한 내용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적지 않았고, 적었더라도 쓰지 말 것이라고 느낌표를 찍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런 말씀을 드려도 어떤 어른은 직접 일산 작업실까지 찾아오셔서 원고를 보신 후에야 수고했다며 마음을 놓으셨다. 작가의 비밀은 이미 작품에 다 드러나 있다. 그걸 일부러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쓰지 말아야 할 것과 써야 할 것의 경계선을 안다. 전경린 역시 너무 오랜만에 만나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내 노트에 ‘이건 쓰지 말자’라고 표시해두었다고 안심시켰다. 그러자 인터뷰 자리에서 하지 못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동안 딸아이와 같이 보았던 헤이리 마을의 무지개가 내 작업실의 벽면에 벽화처럼 그려졌다.

    “출판사에 ‘엄마의 집’ 원고를 넘기고 딸과 같이 40일간 인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영혼의 씻김

    그녀는 40일간의 인도 여행 중 한 달 정도를 리시케시에서 보냈다. 요가와 명상의 도시로 유명한 리시케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비틀스가 초월명상의 창시자인 마하리시 메헤시 요기를 따라 이 도시에서 명상과 요가를 배운 후 현대 서구인들에게도 성지가 되었다. 비틀스의 영적인 스승이던 마하리시가 세상을 떠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강가(갠지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리시케시에서 그녀는 3시간은 요가를 하고, 1시간은 명상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정은 딸과 ‘딱 붙어서’ 지낸 시간들이었다. 딸과 함께 요가철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요가로 몸을 단련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같이 지내는 동안 딸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딸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든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 20년을 키우면서도 느끼지 못한 엄마로서의 자긍심이 찾아왔다. 내면의 충만감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보아서일까. 그곳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고 했다.

    “사원에서는 하루 종일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순례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죠. 사원을 참배한 순례자들이 강가에서 세례를 하듯이 목욕하는 풍경 알죠? 저는 차마 그 순례자들과 함께 강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물결이 발끝에 찰랑거리는 강가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만 보았어요. 그때였어요.”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그녀는 강물 위로 흐르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내 그림자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나의 모습이 온전히 드리워진 그림자가 강에 나타났어요. 흐르는 물이 내 그림자를 씻어주고 있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림자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림자는 상처, 고통, 비밀,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 어두운 기억, 나쁜 습관 등이기도 하다. 자신의 그림자를 씻어주는 강물을 보면서 순례자가 되어 강가에 들어가 몸을 정화시키는 않았지만, 그녀는 ‘완벽한 정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영혼의 씻김이라고나 할까.

    석가모니의 그림자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석가모니의 아들 라훌라가 생각난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의 궁으로 돌아왔다. 이른 새벽, 궁을 빠져나오면서 잠든 부인과 아이들에게 스스로 한 약속, ‘득도(得道)를 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석가모니에게, 아내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로 하여금 ‘깨우친 자’에게 절을 올리게 했다. 라훌라는 아버지에게 절을 하면서 “당신의 그림자가 너무 깊습니다”라고 했다.

    오래전 ‘불경이야기’를 집필할 때 ‘혼불’의 작가 고(故) 최명희 선생과 석가모니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라훌라는 석가모니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석가모니 역시 돌아와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고, 그림자인 라훌라는 이런 말을 하고 나서 아버지를 따라 출가한다. 그림자는 자아에게 깨달음을 준다. 그것은 거룩한 ‘음’이며 음양의 조화로 태극의 세계로 가는 한 과정이다.

    인도에 간 전경린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도 ‘깨달음’의 강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를 씻어주는 강물을 나는 그녀의 눈물로 본다. 뜨거운 그녀의 눈물이 이미 거기에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강을 보면서 마음을 그 강가에 던지는 순간 강은 그녀의 그림자를 품었고, 씻어주었다.

    인도에서 놀라운 경험을 해서인지 그녀는 환해 보였다. 그리고 S라인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가 싶었다. 2007년 연초에 많이 아팠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쩐 일인가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면서 아마도 인도여행에서 한 요가 덕분일 거라고 했다.

    “인도 요가를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비록 잠시이긴 했지만 요가를 배우고 나서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몸을 유연하고 건강하게 단련하는 요가는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행위라는 거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려는데 몸이 짐이 되어선 안 되잖아요.”

    죽을 것 같은 지독한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겨울이 되면 이웃집 손님처럼 찾아오는 감기에만 걸려도 내 몸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알게 된다. 몸이 짐이 되는 순간, 인생을 굴리는 육체의 수레바퀴는 멈추는 것이다. 거기에 타고 있던 정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밤이 되면 주점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살면서 꼭 지켜야 할 네 가지

    그녀는 인도 요가 철학을 배우고 나서 독자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살면서 지켜야 할 네 가지 말이다.

    첫째, 살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아는 것이다.

    둘째, 살아가는 동안에는 늘 ‘의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셋째, 돈을 버는 것이다.

    넷째, 우주와의 합일을 향한 마음가짐이다.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삶의 지침으로 삼기에 적당하다. 촌철살인이요 간단명료하다. 이 네 가지를 나는 시로 읽었다. 좋은 시를 외우듯이, 이 네 가지 말을 새가 알을 품듯이 하면 영혼과 몸에 날개가 달릴 것이다.

    해야 할 일보다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기는 무척 힘겹다. ‘하면 된다’는 해병대 정신에 익숙한 우리 문화는 의욕과잉으로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고, 때론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한다. 즉 ‘하면 된다’는 의식으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해나가는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는 ‘병든 몸’이다. 무겁고 더러운 몸이다.

    모든 걸 다 잃어도 의욕만 있다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 그리고 돈을 벌라는 말처럼 자유로운 말이 어디 있겠는가. 돈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에게 이 말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단, 자유를 위해선 돈이 있어야 된다고만 해두자. 그리고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은 내가 우주를 품고 있는 존재라는 각성의 경지에 올라가게 된다. 그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섹스를 하면 열반의 경지와 같은 황홀경일 것이고,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한다면 인도의 성자 간디가 될 것이다.

    그녀는 리시케시에서 ‘강가’ 강을 따라 2시간쯤 올라가는 곳에서 시작되는 히말라야의 경험도 들려줬다. 히말라야 산속의 폭포 아래서 보석처럼 쏟아지는 물방울에 온몸을 적시면서 딸과 함께 몇 시간을 ‘놀았다’고 했다.

    “폭포를 내려와 머리카락이 젖은 채 오두막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데, 정말 깨끗하게 씻겨진 기분이 들었어요. 딸과 함께 한 인도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줬고, 순수하게 좋았어요. 어떤 목적도 없이 오직 딸과 함께 완전하게 여행에 참여한 거죠.”

    엄마로서 딸과 한 여행은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싶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그는 예전보다 훨씬 밝고 건강하고 매혹적으로 변했다. 이 변화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장편소설 ‘엄마의 집’이다.

    인생을 닮은 곡릉천

    전경린은 1년 전 광화문에서 파주 금촌으로 이사를 했다. 광화문 근처 옥인동에서 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사는 공간을 바꿔야 글이 잘 써지는 습성이 있다며, 그래서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질 않는다고 했다. 파주로 이사를 왔다길래 지금 한참 개발 중인 교하지구일 거라 짐작했다. 그녀는 그곳에도 가보았는데, 금촌이 더 좋았다고 한다.

    따뜻하고 오래된 작은 마을인 금촌은 내게도 익숙하다. 마을에서 오래 산 사람들과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어울려 정이 듬뿍 담긴 아담한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 수년 전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긴 했지만, 기존의 구 시가지와 어울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그런 곳이다.

    그녀는 금촌에서 ‘곡릉천’을 만났다. 인도에서 ‘강가’를 만나기 전 경험이다. 곡릉천은 내가 통일통산에 살 때 내 마음에 흘러 사랑하던 곳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곡릉천 변을 지나가다 보면 가끔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 위쪽에는 낚시터가 있다.

    천변을 걸어가면 갯벌이 있고, 철새들이 날아와 머무는 풍경도 볼 수 있다. 통일동산 쪽으로 이어진 평야는 곡릉천을 끼고 있다. 통일동산에 살 때 이 곡릉천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기억이 난다. 일산으로 이사를 와서도 자전거를 타고 지인들과 천변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녀 역시 곡릉천 가까이에서 산책하고 자전거도 타며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천변풍경을 보면서 작가로서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내 앞을 흐르는 곡릉천을 보면서 저 작은 물길이 내 인생과 많이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릉천은 ‘독립자유파행하천’이라는 자료를 보았어요. 발원지에서부터 작은 시냇물들을 끌어모아 서해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굽이와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러면서 독립수계로서 자존감을 지닌 곳이죠. 그곳을 보면서 제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제가 사는 금촌에서 한강 쪽으로 흘러가는 곡릉천변에 서면 강과 바다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지난 1년간 곡릉천 곁에 살면서 이제 나도 저 물길같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작은 하천이어서 겨우겨우 흐르겠지만 상류는 명징(明澄)하고 하류는 감조(感潮)하는 곡릉천처럼, 나도 마르지 않고 흐르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녀는 동네 근처를 흐르는 하천을 통해 자신의 생을 투사한다. 강은 흘러 바다로 간다. 그 화엄의 바다에 가면 무엇이 소멸하고 무엇이 태어날까.

    사랑과 결혼

    그녀에게 책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가장 근래에 읽은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야기한다. 국내에서도 출판되자마자 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이 책은 고르가 평생 반려자인 아내 도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다. ‘사랑에 관한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60년간을 같이 살고 나란히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아내가 더 이상 병을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그의 심경을 밝혔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그는 도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안락사의 방법으로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그들의 곁에는 유서가 있었고,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는 ‘경찰에게 알려주세요’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으로 30년간 투병생활을 한 아내 도린. 그런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접고 곁에서 생을 보낸 고르. 하지만 그녀의 곁에서 쓴 책과 글들이 그를 세계적인 지성으로 만들었다. 전경린은 이 책을 읽고 우선 작가로서 글 쓰는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고 한다.

    “결혼을 망설이는 고르에게 화가 난 도린이 떠나려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왜 사랑하면서 결혼을 망설이는지 도린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때 고르는 며칠간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사랑이 사회제도 속에서 가능할까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둘은 결혼하죠. 그렇게 둘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하고 나면 똑같아지는 우리들의 삶을 보게 된 거죠. 결혼한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사회적인 압력 속에 사랑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이상적인 결혼이란 무엇이냐는 우문에 그녀는 말했다.

    “이상적인 결혼은 개개인마다 다른 것 같아요. 외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들의 특성을 잘 지켜나가면서 두 사람 중심의 삶의 의미에 가치를 두어야죠.”

    이렇듯 간단하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작가라는 존재로 이야기를 넘겼다.

    “고르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계에 대해서 글을 쓰는 데 소비되는 것은 글뿐이고, 이 세계는 다르게 쓰여지기 위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도 내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물을 놓고 변주곡 형태로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이 수천년을 이어온 것은 세상이 보는 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연륜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나이가 볼 수 있는 세상을 새롭게 쓸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모조리 사랑하면, 이 순간의 에너지가 네 미래의 문을 활짝 열어줄 것’이라는 외국 경구를 이야기했다. 이 경구가 그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 티베트 순례자들이 오체투지 하는 심경으로 살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다른 어떤 부류보다 문학하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었지만, 작가처럼 싱싱한 존재는 드물다. 작가들은 고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흐른다’. 그 흐름으로 작가들은 삶을 예외적인 시선으로 보고 그 확장된 시각으로 창작을 한다. 그녀는 황 교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가치와 윤리에 대해 예외적이고 비주류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는 작가들과 동료로 산다는 것이 행복해요.”

    그녀의 곁에는 좋은 작가가 많이 있다.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는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특히 힘이 되는 작가로 김훈, 윤대녕, 은희경씨를 꼽는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자극받고 격려를 얻기도 한다.

    가야국 소녀

    김훈 선생에 대해서는 그 문체에 매혹되기도 했지만, 최근 수년간 쏟아진 문단의 찬사와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항상 검박하고 결핍된 작업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엄결하게 창작하는 모습에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윤대녕씨의 날이 선 선비정신, 현실을 견디고 아름다운 작품을 써내는 모습은 예술가의 전형이다. 나 역시 윤대녕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은희경씨의 통찰력과 긴장감, 한결같이 진지한 글쓰기 자세와 따스함도 존경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카메라타의 웅장한 음악이 강물처럼 우리 곁을 흘렀다. 참 오랜만에 편안한 시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곳이 나의 나무 동굴 같았다. 그녀가 따뜻한 삶의 모닥불을 지펴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녀가 태어난 곳은 경남 함안이다. 옛 가야국이었던 마을이다. 가야에서 태어났다니,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감도는 묘한 분위기의 근원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서는 가야의 땅과 하늘에서 형성된 것이다. 옛 가야국 중에 하나인 고향 마을에서 중학교까지 그림 같은 시절을 보낸다. 그녀는 별것 아닌 듯 툭 이야기를 던지는데 내 마음의 연못에는 큰 돌멩이가 떨어진 듯하다. 소녀 안애금(그녀의 본명)이 놀고 있는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 뭐랄까 남도 정서라고나 할까, 그런 정서는 고향에서 형성된 것이리라.

    “우리 마을 언덕에 올라서면 옛 왕국의 고분이 40기가 넘게 있어요. 요즘 같은 겨울철에 눈이라도 내리면 아이들과 함께 비료 포대를 하나씩 가지고 고분 위에 올라가 타고 놀고, 마을에 뒹구는 토기 조각들을 가지고 소꿉장난을 하곤 했지요. 어릴 적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토기들이 나중에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전시된 것을 봤을 때, 내 손끝에서 생생한 질감이 되살아나더군요.”

    집안에 쥐가 많았는데, 고양이도 많았다고 한다. 그 고양이들이 좋았다고 한다. 고양이의 따뜻함, 가벼움, 포근함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양이의 가시 같은 발톱에 할퀴거나 찔린 기억이 많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고양이 발톱, 장미 가시, 탱자나무 가시에 찔린 기억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생을 마감했는데, 그녀는 그 가시들을 통해 성장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는 일이 가시에 찔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크게 작게 우리는 가시에 찔리고 놀라고 아파하면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 가시가 꽃이 되고 잎이 되는 이치는 또 무엇인가.

    제2의 자궁

    그녀는 말했다. 어릴 때 살던 고향을 다시 찾으면 마치 할머니처럼 쪼그라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고. 분명 산천은 변함이 없는데, 고향은 커버린 몸으로 보기엔 너무나 좁다. 그 실상을 그녀는 어릴 때 이미 어렴풋이 짐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른들과의 교류에서 불가능과 혼란과 어리둥절함을 많이 느꼈다. 이 세계에 대한 리얼리티의 기준은 아이와 소녀와 어른과 노인에게 각각 다르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 안에 다양한 타자를 담을 때는 마술적, 환상적 리얼리즘 형식이 해법이라고 행각한다. 요즘 고향을 무대로 소설화할 수 있는 형식을 생각해보고 있다.

    그녀의 부친은 공무원으로 일했다. 이후 도의원도 되고, 함안문화원장을 역임한 지역 유지다. 아버지가 보는 책들은 전부 전문서적류였지만, 그녀는 읽었다. 뭐든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리고 집안에 형제가 많아 늘 복닥거렸다고 한다. 그 부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혼자 있을 곳을 찾았다. 뭐든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가 숨기 좋은 방이 있었다. 사촌언니 방이었다. 그 언니는 어려서 마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척추장애인이 되었다. 전경린이 그 방을 찾아들어간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손길이 언니의 방으로 그녀를 안내한 것은 아닐까.

    “언니의 방에는 ‘문학사상’ 창간호부터 한국단편소설 전집, 당시 발행된 책까지 모조리 있었어요. 문학사상을 보면서 시와 소설을 읽게 됐지요.”

    소란스러운 집안에서 벗어나 숨어든 곳에 문학 서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피난처이자 놀이터이고 제2의 자궁이라고 했다. 그녀의 문학은 이 공간에서 싹이 움텄다.

    “언니가 몸이 아파서인지 무척 탐미적이었어요. 방이 예쁘게 꾸며졌는데, 한구석에 천 조각들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었지요. 거기에는 온갖 천 조각이 다 있었어요. 아기 배냇 옷감부터 상복 조각까지 천이란 천은 모조리 모아놓았죠. 천 조각 상자에 있는 천을 만지고 놀 때 느껴지던 천의 다양한 감각이 저를 황홀하게 했어요. 삶이란 이런 질감과 빛깔과 무늬들이 아닌가 싶은 거죠. 그땐 어서 자라고 싶었어요. 자라서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었어요.”

    나도 어릴 때 어머니가 잘라낸 천들을 만지고 놀던 기억이 난다. 이모가 사촌 여동생에게 만들어준 인형들, 천 인형들에 눈 코 입을 그려 넣던 기억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그들의 얼굴을 빈 화폭으로 본다. 거기에 내가 그려넣고 싶은 것을 그려넣었다.

    육조 혜능과 고승 신수

    그녀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쓴 시가 떠오른다고 했다. 교내에서 시화전을 하기 위해 쓴 시였다. 그 시를 담임선생님이 약간 윤문을 해서 시화전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조금 고쳐준 것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단단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그 시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내 마음 닦아 수정선반 위에 모셔놓으리.”

    이 문장을 전경린 문학의 첫 문장으로 보아도 될까. 선생님이 약간 고쳐준 이 문장이 그녀의 기억을 붙들고 있다. 아이 원고를 선생님이 조금 고쳐주면 어때서 그걸 이리 강조하나요? 라는 물음에 그녀는 그냥 웃었다. 문인들은 글에 대한 결벽증이 있다. 먼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글을 만져준 선생님 기억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 구절까지 외우고 있다니, 그녀가 글을 대하는 태도의 한 단면이 보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무심한 듯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문장을 들으면서 육조 혜능과 쌍벽을 이룬 고승 신수의 시가 떠올랐다.

    이 몸은 깨달음을 얻는 나무요

    내 마음은 맑은 거울 깨끗한 경계

    몸과 마음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번뇌 망상 일어나지 않게 하여라

    이 시를 보고 육조 혜능은 이런 깨달음의 시를 짓는다. 신수의 시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시였던 것이다.

    깨달음은 잡히는 존재가 없고

    밝은 마음 이름뿐 실체가 없네

    본래가 한 물건도 있지 않거늘

    어느 곳에 일어날 번뇌가 있을까

    남쪽의 오랑캐 취급을 받던 혜능은 이 시로 오조로부터 인정받고, 법을 물려받아 육조가 된다. 육조 혜능은 어떤 경지를 넘어선 대천재이자, 깨달은 자였다. 하지만 어린 전경린이 자신의 마음을 닦는다는 구절은 이제 문학을 향한 무의식적인 출발이 아니었을까. 문학이란 집착으로 가득 찬 그 마음에 집착해서 닦고 또 닦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대학에 가서 본격적인 문학을 하게 된다. 그 출발 역시 우연이다. 어느 가을날 교정을 걸어가는데 교내 문학상 공고가 붙어 있었다. 같은 과 선배가 한번 응모해보라고 부추긴 모양이다. 상금이 꽤 되니까 그걸 타서 술을 먹자며 문학적 재능이 있어 보이는 후배를 꾄 것이다. 그래서 며칠 만에 쓱 소설을 한 편 써서 냈는데,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이 소설가의 길을 걸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소소하게 작은 글들을 써서 발표했다.

    지방 방송국 프로듀서로 근무하면서, 방송 원고를 매일 쓴 경험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글이 매일 전파를 타고 날아가선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활자화된 책을 가지기 전에 그녀는 처음으로 이 원고들이 책으로 엮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사내를 만나 결혼을 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 작가가 되었다.

    글쓰기와의 화해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사막의 달’로 등단한 후 1997년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역시 같은 해에 ‘염소를 모는 여자’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상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탄탄한 역량을 인정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해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어떤 경쟁심 같은 것은 없을까. 그녀는 이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했다.

    “저는 경쟁해서 이긴 적이 없어요. 하다못해 달리기 시합을 해도 말이지요. 작가가 되는 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경쟁심이 몸에 해롭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제게 동료작가들은 영감을 주는 귀한 존재예요. 뛰어난 동료작가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서로에게 힘이 되지요.”

    그리고 전업작가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말했다.

    “난 작가로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것도 고마워요. 이 작가 생활은 누군가가 준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겠지요. 삶에서는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쓰고 싶은 욕망에 조급하게 끌려 다닐 때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것에 결국 내가 갇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힘든 글쓰기와 화해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글 쓰는 시간에 있지 않을까.

    “글쓰기의 한가운데에서 글쓰기의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반문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떤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주부로서 집안일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생활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모습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딸과 아들을 둔 엄마다. 딸은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아들은 신중하고 영특하며 딸은 진중하고 든든하다고 한다. 늘 엄마를 격려하는 어른스러운 말을 하기도 한단다. 딸의 사랑이 큰 힘이 된다. 딸은 자유롭고 건강한 아이라고 했다.

    모성과 처녀의식

    작가 전경린이 최근에 출판한 장편소설 ‘엄마의 집’까지 오게 된 여정을 두서없이 더듬어보았다. 이 소설의 서문에 그녀가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IMF 이후 맞이한 2000년대를 여러 관점으로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집을 가진 엄마들이 출현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혼한 엄마들이든, 미망인인 엄마들이든, 혹은 처음부터 남편 없이 아이를 가진 싱글 맘이든, 입양아들을 둔 미혼의 엄마들이든, 엄마의 모습은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다. 종래와 달리 엄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도 동시에 처녀의식을 간직하고 사는 새로운 엄마들의 이름을 미스 엔이라고 불러보았다.

    (…) 한 여자가 집을 갖는다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을 자신이 전적으로 통제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공허와 경제적 강박이 외풍처럼 넘나든다 해도 나의 집을 가지고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은 초월적일 만큼 즐거운 일이다.’

    이 문장에서 처녀의식이란 무엇인가.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통찰하며 평생 늙지 않는 정신으로 성숙해가는 여성의식을 처녀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처녀의식을 가지고 어머니로서 모성을 획득해나가는 소설이 ‘엄마의 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머니, 모성, ‘처녀의식’ 그리고 집. 울림이 큰 말들이다. 마음의 귀가 먹먹하다.

    “모성은 마술 같아요. 진정한 모성은 이 세상만큼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을 내 뱃속으로 지나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자궁이라는 자연현상과 한 개인으로서의 작다면 작은 모성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누구하고나 같이 할 수 있는’ 대자연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소설을 쓰고 나서 나와 타자의 관계의식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는 타자의 타자가 되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요.”

    그리고 이번 소설을 쓰고 나서 예전보다 자신의 존재 자리가 넓어지고 커졌으며 밝고 환해졌다고 한다. 나는 전경린을 보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번 작품에서는 웃음소리가 난다는 평자의 말도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장편소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황진이’다. 요즘 유행하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어서가 아니라, 황진이를 보면서 나는 이 작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뛰어난 역사소설이라고 여럿에게 이야기를 했다. 황진이를 통해 전경린은 여성으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사랑과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그 정도로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좀 더 많은 독자가 보았으면 한다.

    황진이의 ‘길’

    그녀와 이야기를 마치고 헤이리 마을을 조금 걸었다. 미인과의 산책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녀의 표정이 훨씬 따뜻하고 밝아졌다. 그간 전경린이라는 작가에게 따라다닌 수사(修辭)들, 귀기(鬼氣)의 작가, 정념의 작가,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그리고 이제 막 심장에서 꺼낸 문장을 쓰는 작가와 같은 수사들을 모두 비워버리고 그녀는 이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와 같이 길을 걸으니 소설 황진이의 한 단락이 떠올랐다. 황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원재훈

    1961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등


    ‘제게 몸은 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길을 밟으면서 길을 버리고 온 것처럼, 저는 한걸음 한걸음 제 몸을 버리고 여기 이르렀습니다. 사내들이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이, 저 역시 제 몸을 지나 나의 길로 끊임없이 왔습니다. 길이 그렇듯, 어느 누가 몸을 목적으로 삼고, 누가 몸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찌 몸에 담을 치겠습니까. 길이 그렇듯, 몸 역시 우리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우리가 돌아가는 방법이지요.’

    황진이의 사내들을 ‘전경린’의 사람으로 변환시켜 읽어본다. 그녀의 문학은 그녀의 몸을 지나가는 길일 수도 있으리라, 거기에 어떤 담을 칠 수 있겠는가. 담을 친들 그 담이 얼마나 견디겠는가.

    작업실의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실내등유를 넣은 난로의 눈금이 조금씩 줄어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 글을 쓸 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오늘 밤은 견뎌다오 난로야. 전경린의 소설을 읽는 시간 내내 난로는 나를 추위로부터 지켜주었다. 그날 밤은 몸과 맘이 참 따뜻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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