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수능 한파? 과학 아닌 ‘미신’!

8년 동안 영하 추위는 단 2일… ‘무책임 보도’ 집단최면 탓

  • 공항진 SBS 기상전문기자 zero@sbs.co.kr

    입력2008-01-08 2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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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한파? 과학 아닌 ‘미신’!

    11월15일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춘천고교 앞에서 강원고 학생들이 선배들의 합격을 기원하며 상의를 벗은 채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11월은 날씨예보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달이다. 여름 내내 장마와 호우, 폭염과 태풍 등 요동치는 날씨 상황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던 기상청 예보관들도 이때쯤에는 날씨예보에 쏟는 힘을 아낄 수 있다. 어제 날씨가 오늘 같고 오늘 날씨가 내일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비가 오더라도 양이 적어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 않으므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기상 캐스터나 기상담당 기자들도 이때쯤에는 한숨을 돌린다. 비교적 예보가 잘 들어맞기 때문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크게 줄고, 그래서 모처럼 가슴을 쫙 펴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여름 내내 자주 틀리는 예보 때문에 늘 시청자나 독자의 눈치를 보던 주눅 든 표정에서 해방되는 시기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한 11월에도 예보관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것이 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일의 날씨 전망이 그것이다. 수험생은 수험생대로, 지켜보는 부모나 친지들은 친지들대로 워낙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다 보니 날씨예보는 물론 기온예보 1, 2℃ 차이에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렇게 말하면 ‘입시 때는 늘 추운데 무슨 걱정이냐’고 살짝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겠다. 입시 때만 되면 언제나 추워진다는 이른바 ‘수능 한파’가 온 국민의 믿음이 된 지 오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입시 때라고 해서 꼭 추운 날씨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경험과 인식, 그리고 사실

    오래된 개인적 경험을 떠올려보자.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그 자격고사 성격의 연합고사를 치른 것이 1975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숭문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른 기억보다는 포근했던 햇살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이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은 누구나 진학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원하는 학생이 정원보다 많아 고등학교 재수생도 있던 시절이었기에 제법 부담이 컸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예비고사를 치른 때는 1978년 12월 초였다. 이때 역시 매서운 입시 한파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공기가 차가웠던 것으로 기억하기는 하지만 추위에 꽁꽁 얼어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다만 대학입시 본고사를 본 1979년 1월은 눈도 많이 내리고 날씨도 상당히 추웠던 것 같다.

    그러나 똑같은 날 시험을 치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날 날씨가 무척 추웠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날의 몸 상태나 주변여건 등이 각각 달라 기억의 조각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기초로 입시 추위의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간직하는 습성이 있어 객관적인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연한 오류’를 막고 이른바 ‘입시 한파’가 과학적 사실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따지려면 통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물론 입시에도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입시 추위의 실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영하의 추위나 영상의 포근한 날씨가 모두 공존하는 11월에 치러지는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일반인이 포근하다는 느낌과 춥다는 느낌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기온의 변화가 큰 시기여서 ‘입시 한파’의 정도를 쉽게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춥다’는 기준 역시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경우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먼저 과연 수능일 날씨가 어땠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표에서 서울 지방의 수능일 날씨를 살펴보면 1998년부터 8년 동안 날씨가 무척 맑았음을 알 수 있다. 여덟 번 가운데 단 한 차례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11월이 1년 가운데 가장 비가 적은 달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특이한 기상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전과 대구, 전주 지방의 경우에는 2000년에 한 차례 비가 내린 적이 있고 광주는 1998년과 2000년, 부산과 제주는 2000년과 2003년 각각 두 차례씩 비가 온 것으로 기록됐다. 이 정도면 전국적으로 수능시험을 보는 날 날씨는 상당히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속설과는 정반대로 수험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늘에서 도와준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착각이 들 정도다.

    날씨가 좋았던 것만이 아니다. 기온도 비교적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수능 한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아침 최저기온을 보면 여덟 차례의 수능일 가운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경우는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영하의 추위가 찾아온 입시가 확률적으로 25% 정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기온이 영상 1℃에 머물러 조금 쌀쌀했던 1999년을 포함한다고 해도 ‘수능 한파’의 가능성은 절반을 크게 밑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2001년에는 아침에만 반짝 추위가 나타났을 뿐 낮 기온은 영상 12℃를 웃돌면서 오후 들어 추위가 바로 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은 다른 주요 도시도 마찬가지였지만, 대전의 경우에는 2005년에도 영하 0.5℃의 반짝 추위가 나타났다.

    체감온도의 비밀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또 하나 있다. 기온을 ‘느끼는’ 체감도다. 사람은 같은 기온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예를 들어 긴 겨울 혹한이 지나간 후 3월의 바람 없고 맑은 날 기온이 20℃라면 사람들은 아주 기분 좋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부는 여름 오후 기온이 20℃라면 사람들은 불안할 정도로 신선함을 느낀다. 이것은 사람의 몸이 열에너지를 환경과 조화시키는 과정 때문이다.

    체감기온은 피부표면에서 느끼는 체온의 변화가 좌우한다. 인체는 섭취한 음식을 주로 열로 전환(신진대사)시킴으로써 체온을 안정시키는데,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체에서 생성, 흡수된 열이 주위에 빼앗긴 열과 같아야 한다. 따라서 피부 표면에서 인체와 주변환경 사이의 열 교환이 끊임없이 진행된다.

    이 열 교환 과정에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것이 바람이다. 추운 날에는 따뜻한 공기분자로 이뤄진 얇은 층이 피부 가까이에 형성되어 주변의 찬 공기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며 몸에서 열이 급속도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준다. 하지만 일단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뜻한 공기분자의 단열막이 흩어지고 찬 공기가 피부에 닿음으로써 피부에서 열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바람이 빨리 불수록 열의 상실이 많아져 점점 더 춥게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체감온도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인 분석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기상청 통계로 분석한 결과는 한마디로 “입시 때마다 날씨가 춥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입시 추위’ ‘수능 한파’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8년간 수능일의 주요 도시 날씨와 최저/최고기온(단위:℃)
    1998년

    11월18일
    1999년

    11월17일
    2000년

    11월15일
    2001년

    11월7일
    2002년

    11월6일
    2003년

    11월5일
    2004년

    11월17일
    2005년

    11월23일
    서울맑음

    -5.3/0.7
    구름 많음

    1.0/8.0
    구름 많음

    7.9/13.1
    맑음

    -0.3/12.3
    구름 조금

    5.0/15.7
    구름 조금

    8.1/19.8
    맑음

    4.9/15.1
    구름 조금

    3.5/13.3
    강릉맑음

    -2.5/4.0
    구름 많음

    2.7/9.7
    흐림

    6.3/15.5
    맑음

    2.8/13.7
    맑음

    1.0/13.1
    구름 조금

    9.4/19.6
    구름 조금

    9.2/17.6
    구름 조금

    6.5/13.8
    대전구름 많음

    -3.6/2.4
    흐림

    0.0/8.4


    6.9/12.0
    맑음

    -2.0/12.1
    구름 조금

    2.4/18.4
    구름 조금

    4.4/21.1
    구름 조금

    2.5/15.1
    구름 조금

    -0.5/12.3
    대구맑음

    -1.0/6.2
    구름 조금

    2.1/10.3


    8.8/11.8
    맑음

    -0.7/14.2
    맑음

    2.0/16.0
    구름 조금

    6.5/18.9
    구름 조금

    3.0/15.7
    구름 조금

    0.5/13.0
    전주구름 많음

    -0.3/4.4
    구름 많음

    1.1/8.7


    8.2/12.5
    맑음

    0.5/12.3
    맑음

    6.4/19.5
    구름 조금

    6.7/21.8
    구름 조금

    4.9/16.4
    구름 많음

    0.6/13.7
    광주

    -0.8/6.1
    흐림

    2.5/9.9


    8.0/10.7
    구름 조금

    0.6/12.5
    맑음

    3.4/19.2
    구름 조금

    7.7/19.9
    구름 조금

    4.0/15.9
    구름 많음

    1.1/12.0
    부산구름 조금

    0.7/9.1
    구름 많음

    5.1/12.2


    11.5/18.6
    구름 조금

    4.7/18.2
    맑음

    6.5/17.9


    12.8/16.8
    구름 조금

    7.2/15.5
    구름 조금

    5.5/13.2
    제주구름 많음

    6.1/9.3
    소나기

    8.9/11.9


    12.5/16.0
    맑음

    6.8/14.4
    맑음

    11.8/18.8


    20.3/18.4
    구름 많음

    9.4/16.7
    구름 많음

    8.8/15.1


    ‘미신’ 확산시키는 ‘과학 기사’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토록 수많은 사람이 과학적 사실이 아닌 수능 한파를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은 입시가 대부분 추운 겨울에 실시된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다. 1년 가운데 가장 추운 시기에 시험이 치러지는 만큼 춥다는 선입관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입시 때는 늘 추위가 찾아온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누구나 한 번쯤 시험 당일 밖에서 수험생들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실외에서 대기하는 부모나 친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인데, 긴 시간 밖에서 기다리다 보면 체감 추위가 평소보다 심할 수밖에 없다. 마땅히 불을 쬘 곳도 없고 편안하게 쉴 공간도 없어 조금씩 몸이 차가워지고 결국 기온보다 더 심한 추위를 느끼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로는 입시에 대한 과중한 부담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많이 떨린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종류에 상관없이 입시는 수험생 개인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긴장의 정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느냐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그러니 ‘시험’하면 덜덜 떤 경험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이유야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입시 한파라는 속설에 언론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입시 한파’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이렇듯 널리 퍼진 것은 이 표현이 과연 정확한지 아닌지 검증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몰아가기 식으로 보도해온 그간의 경향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날씨나 기후의 변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의 관심을 먹고 사는 언론도 자연스레 기후에 대한 기사를 양산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문가적인 식견이 종종 무시되고 ‘남 따라 하기’ 식의 비과학적인 기사가 흘러넘친다는 사실이다.

    그 또 한 가지 사례로 2년 동안 연초마다 되풀이된 ‘가장 더운 한 해’ 전망 기사를 들 수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어느 학자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올 한 해 평균기온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당연한 전망을 내놓으면, 기다렸다는 듯 ‘100년 만의 더위’ 운운하며 각종 언론이 시끄러워진다. 전문기자나 기상청의 전문가, 혹은 학계에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바로 확인되는 상식적인 전망을 마치 대예언가의 종말론을 전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기온이 높다는 것과 덥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면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명확하게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겨울철 기온이 높다고 해서 ‘올겨울이 덥다’고 할 수는 없다. 연 평균기온이 가장 높다는 예측을 곧 여름철 기온이 가장 높다고 해석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기온을 평균 내보면 기온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은 가능하지만, 여름 기온이 가장 높을 것인지는 정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 속에는 ‘아니면 말고’ 라는 이상한 배짱이 도사리고 있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올여름이 정말 더울지 아닐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무책임한 보도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이런 보도가 인터넷과 라디오 등 다른 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속설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주요 언론사가 다룬 기사이니만큼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아무런 확인 없이 퍼나르기가 이어진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빙과나 냉방기 업체처럼 날씨에 민감한 업종을 포함해 각종 산업현장에서 이런 무책임한 보도를 장기 계획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확인도 하지 않고 속설과 오류에 기댄 이런 기사를 만드는 것은 언론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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