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합참 작전통제선 근접한 北 새 해상경계선, ‘50년 바다싸움’ 종식 신호탄인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8-01-09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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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년 전 고속정 작전관으로 서해 NLL 넘나들어
    • ‘진실’은 경계선 미합의, ‘사실’은 실효적 지배
    • 유엔司, 연평해전 이전까지 이중적 태도
    • “소청도·연평도 사이 NLL은 유엔해양법 위배”
    • “남북은 국가 간 관계 아니므로 유엔해양법 적용 무리”
    • NLL, 영해선, 영토선은 별개의 개념
    • 통일부의 ‘기대’와 해수부의 ‘비관’
    • 어민들 “NLL 이남 공동어로수역 할 바에야 현행대로”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1990년 봄 어느 날 백령도 서북방 바다. 해군 2함대사령부 소속 고속정(PKM·Patrol Killer Medium) ‘기러기’ 269호정은 황해도 장산곶에서 발진한 북한 경비정과 NLL(Nor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에서 대치했다. 뒷날 ‘참수리’로 대체된 기러기는 당시 한국 해군에서 가장 작고 빠른 군함이었다(길이 33.9m, 폭 6.9m, 배수량 만재 140t).

    고속정의 전체 승조원은 30명 안팎. 해군 함정엔 수병보다 부사관이 많다. 고속정 역시 부사관이 다수였고, 장교는 정장을 포함해 4명이었다. 정장 아래로 부장과 작전관, 기관장이 있었다. 정장은 대위였고, 나머지 장교는 중위나 소위였다.

    해군 학사장교(OCS)로 입대한 기자는 당시 기러기 269호의 작전관이었다. 계급은 중위. 작전관은 전탐(電探)과 통신 분야를 관장한다. 조함권은 정장의 절대적인 권한이다. 하지만 특별한 작전이 없는 ‘평시 체제’에서는 부장이나 작전관이 정장으로부터 조함권을 넘겨받아 항해를 지휘하기도 했다.

    함정 병과 소속인 기자는 고속정을 타기 전에는 약 1년간 구축함(경기함)을 탔다. 구축함을 탈 때 장교들은 매일 아침 돌아가면서 작전 브리핑을 했는데, ‘북괴’라는 용어 대신 ‘북한’이라고 했다가 함장(대령)에게 지적받은 일이 생각난다.

    당시 2함대 소속 고속정 기지는 대청도와 연평도, 이작도 3개 도서에 있었다. 고속정은 편대 단위로 기동한다. 1개 편대는 3척으로 구성되며, 편대장은 소령이다. 평상시엔 2척만 작전에 나서고 1척은 기지에 대기한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들이 NLL에 다가서면 3척 모두 출동해 방어벽을 구축하곤 했다. 기러기 269호가 소속된 203편대는 주로 대청도 기지에 정박하며 작전을 수행했다. 대청도와 소청도, 백령도 일대 바다가 작전 구역이었다.



    각기 해상방어의 최일선을 맡고 있던 남쪽의 고속정과 북한의 경비정은 NLL을 사이에 두고 수시로 무력 대결을 펼쳤다. 주로 우리 어선의 월선(越線)이나 중국 어선의 출현 탓이었다. 반면 북한 어선이 월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북측에서 철저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총원 전투배치!”

    우리 어선이나 중국 어선이 NLL 인근 수역으로 다가서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기 욕심이었다. 남과 북의 해상경계선인 NLL 부근 바다는 황금어장이다. 양쪽 다 어선 조업을 금지하는 까닭이다. 휴전선의 비무장지대가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당시 우리 어선의 월선 사례를 보면, 조업에 열중하다 무의식적으로 북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고의적으로 선을 넘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원래 어선 통제는 해양경찰 소관이다. 해경정은 어선이 지정구역을 이탈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어선이 어로한계선이나 지정 어장을 벗어나 접경수역으로 들어서면 해군 함정이 쫓아간다. 해경정의 빈약한 무장으로는 북한 경비정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백령도 앞바다 NLL 부근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 건너편 육지는 북한의 장산곶.

    우리 고속정은 가끔 NLL을 넘기도 했다. 대부분 월선한 어선을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북한 경비정이 채가기 전에 먼저 달려가 항로를 남쪽으로 유도하거나 홋줄을 던져 묶어서 끌어오는 것이다.

    그날의 충돌도 우리 어선의 월선이 원인이었다. 월선한 어선은 고속정의 유도로 NLL 이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늘 그랬듯이 그것을 핑계로 남진(南進)했다. 오래된 일임에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기자가 고속정 근무를 하는 동안 북한 경비정과 가장 가까이 마주한 날이자 가장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하를 계속한 북한 경비정이 NLL 코앞까지 밀고 내려왔다. 기자가 탄 고속정도 NLL에 최대한 근접했다. 레이더에 나타난 양측의 거리가 2노트마일(1노트마일=1852m) 이내로 좁혀지자 비상이 걸렸다. 사이렌과 함께 ‘총원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졌다. ‘전투배치’는 한마디로 실전 상황이다. 모든 장병이 개인 화기에 실탄을 장전하고 갑판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사통하사관이 포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함수의 30㎜포와 함미의 20㎜포가 경비정 쪽으로 포신을 돌렸다. 적 경비정이 20㎜포의 사정거리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어느 쪽이든 포문을 열면 상대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거리였다. 통신실은 지휘부와의 교신으로 악머구리 끓듯 시끄러웠다. 지시 내용은 ‘먼저 쏘지는 말라’ ‘적정거리를 유지하라’ ‘NLL은 절대 넘지 말라’ 따위였다.

    양측의 거리는 2㎞까지 좁혀졌다. 바다의 2㎞는 육지의 2㎞와 차원이 다르다. 적함이 육안으로도 또렷이 보였다. 망원경으로는 북한군 병사들의 얼굴까지 잡혔다. 정장의 지휘를 돕던 기자도 어느 순간 갑판에 엎드려 총을 겨눴다. 파도로 배가 흔들려 조준이 쉽지 않았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드넓은 바다에 보이는 것이라곤 적함뿐이었다. 눈부신 햇살이 파도를 쩍쩍 가르고 있었다.

    끌려가는 어선 낚아채 오기도

    이날 북한 경비정은 1시간가량 무력시위를 하다 돌아갔다. 당시 북한 함정과의 ‘NLL 대치’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다.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날 북상하는 우리 어선을 쫓다가 북한 경비정과 거의 부딪칠 뻔한 고속정도 있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북한 경비정에 끌려가는 우리 어선을 중간에서 낚아채 오는 ‘전과’를 올린 적도 있다. 203편대의 이웃 편대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이 편대 소속의 한 고속정은 북쪽으로 달아나는 북한 경비정과 우리 어선의 한가운데로 달려들어 두 배를 연결한 홋줄을 도끼로 끊어냈다. 그와 동시에 홋줄을 던져 어선을 묶고는 쏜살같이 끌고 내려왔다. 이 사건으로 이 고속정과 해당 편대는 함대사령부 표창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북한측은 NLL을 ‘현실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듯싶다. 가끔 NLL을 슬쩍 넘어오기도 했는데, 우리 고속정이 출동하면 곧바로 뱃머리를 돌렸다. 뒷날 발생한 연평해전이나 서해교전 같은 실제 전투는 없었다. 무력충돌은 피차 위험하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07년 11월 하순 기자는 NLL 취재차 백령도를 찾았다. 국회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NLL 시찰에 동행한 것이다. 한나라당 황진하·송영선 의원을 비롯해 국방위 수석전문위원과 보좌진, 국방부와 합참 및 해군 관계자 30명이 시찰 일정에 동참했다.

    오전 10시, 경기도 수색에서 헬기를 타고 백령도로 날아갔다. 의원들과 군 관계자들은 해군 헬기(UH-60)를, 나머지 사람들은 공군 헬기(CH-47)를 이용했다. 소요시간은 1시간 반. 배로 가면 4시간 걸릴 거리였다.

    통일부 평화체제구축팀 관계자는 “북측이 ‘이게 안 되면 저것도 안 된다’는 자세를 보였다면 정상회담 정신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지만, 그렇진 않았다”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어로수역을 뺀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선 합의하지 않았나. 북측이 공동어로수역을 협의하면서 NLL을 걸고넘어진 건 ‘앵커링’으로 볼 수 있다. 최대한 강하게 멀리 던져놓고 우리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남북수산협력팀 관계자는 “남북국방장관회담으로, 먼저 NLL 문제가 정리돼야 공동어로수역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됐다”며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공동어로수역은 2차적인 문제로 밀려났다. 북측에서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남측의 안을 반대했기 때문에 해수부로선 당분간 어떠한 의견도 낼 수 없다. 공동어로수역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회담에 기대감을 나타냈던 김연철 교수도 “공동어로수역 문제에 NLL 문제가 들어와버렸다”며 “원점으로 돌아간 면이 있다”고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어로수역은 군사회담 의제가 아니다. 양측 해양수산부가 협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을 군사회담에서 논의하는 게 그나마 해결방안일 듯싶다. 북핵 문제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등 환경적 변수에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김영구 교수는 “공동어로수역이나 평화수역을 논의할 때 NLL에 대한 북의 생각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NLL 무력화가 빚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은 애초 NLL을 부적법한 선으로 간주했고 지금도 그렇다. 북이 NLL 준수를 약속하고 협상을 한다면 이의가 없다. 하지만 북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그렇게 해왔다. 중요한 얘기를 피하고 적당히 넘어가면 오히려 분쟁의 원인이 된다. 북은 멋대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고는 통과 수로를 지정했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짚지 않고 공동어로수역이나 평화수역을 협의하는 것은 사기꾼들의 야합이다.”

    “북측과 따로 조업하겠다”

    김 교수는 일찍이 남북한 해상 특별항로를 제안한 바 있다(‘STRATEGY 21’ 9호, ‘북방한계선(NLL)과 서해교전 사태에 관련된 당면문제의 국제법적 분석’).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해주 직항로 개념과 비슷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내가 수로 지정을 제안한 것은 북한의 NLL 준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군에서 우려하는 것은 공동어로수역 내 군사적 충돌이다. 노무현 정부 고위직을 지낸 군 출신 인사는 “공동어로수역 설정시 기준선이 없으면 군사작전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공동어로수역 내에서 어선이나 지도선끼리 충돌할 경우 해경이 수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저쪽에서 무슨 핑계를 대고 군함을 들여보낼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도 군함이 출동해야 하는데, 기준선이 없으면 여러 가지 부차적 문제가 파생될 수밖에 없다.”

    과연 NLL 갈등은 해결될 수 없는 걸까. 10년 후나 20년 후 NLL은 어떻게 변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NLL과 해상경계선은 개념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은 NLL이 임시로 해상경계선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마저 통일이 되면 소멸하겠지만.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설정되더라도 NLL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유엔사령관이 이 선을 그은 목적이 있잖은가. 다만 성격이 바뀔 것이다. 1992년 불가침합의서에 따르면 해상경계선은 남북 간 협의로 조정될 여지가 있다.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상경계선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통일부 관계자)

    “NLL은 정전체제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타당한 잠정적인 대북한계선이라고 봐야 한다. 즉 정전체제하에서 비상시 잠정조치라 할 것이다.”(제성호 교수, ‘북방한계선(NLL)의 법적 유효성과 한국의 대응방향’, 중앙법학 7집 2호)

    해군 고위 장성 출신인 모 인사는 “NLL이 있어 불편한 게 뭐냐. 어차피 통일 되면 없어질 선이 아니냐”며 통일 전에 NLL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는 것에 반대했다. 반면 김연철 교수는 “통일이 되기 전에는 NLL을 건드릴 수 없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언젠가 NLL을 협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 남북 간 여러 가지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NLL 중심 사고 버려야”

    국민이 NLL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안보 불안에서다. NLL을 양보하면 더 많은 걸 북한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신뢰다. 아니,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이다. 김연철 교수는 “지금 우리가 북한과 협상하는 것은 그들을 신뢰해서가 아니다”라며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NLL을 중심으로 서해 문제를 풀려면 답이 없다.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이라는 창으로 서해를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999년과 2002년 같은 충돌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없다.”

    지난 10년간 남북 사이에는 ‘전쟁은 안 된다’는 인식이 확대되어왔다. 그것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배경이다. 현재 남북관계 도약의 최대 걸림돌은 NLL이다. 통일부 관계자의 말대로 남측에서는 국민정서상 NLL을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 당장 공동어로수역에 이해관계가 걸린 어민들 반응만 봐도 그렇다.

    서해 5도가 소속된 옹진군 수산지도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역 어민들은 공동어로수역을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공동어로수역을 만들더라도 양쪽의 어장을 구분해 북측과 따로 조업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NLL 이남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할 바에는 현행대로 조업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17년 전 고속정을 타고 NLL을 누비던 기자를 포함한 해군 장병에게 오늘날 벌어지는 NLL 논쟁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해군에게 NLL은 그저 ‘지켜야 할 선’이었고 ‘넘으면 안 될 선’이었다. 하지만 이제 NLL은 ‘시대정신’에 의해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클라크 라인’의 적법성 논란이 상식이 된 시대다. NLL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는 건 남북기본합의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군 고위직 출신 인사는 “남북문제는 시간이 해결한다”며 정부가 서두르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의 말대로 정부가 원칙과 인내를 갖고 북한과 신뢰를 쌓다 보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지 모른다. 북한이 새롭게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 NLL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NLL 갈등의 폭이 그만큼 좁아졌음을 뜻한다. 남이든 북이든 NLL이 해결되지 않으면 서해에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경직된 태도보다는 경제협력으로 NLL 갈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실용적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북은 신뢰할 집단 아니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NLL 시찰차 백령도를 찾은 국회 국방위 의원들. 가운데가 송영선 의원, 그 오른쪽이 황진하 의원이다. 송 의원 왼쪽은 이호연 해병6여단장. 해군 수송정에 올랐으나 파도가 심해 먼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도착해서는 곧바로 흑룡부대(해병 6여단)를 둘러봤다. 부대 정문 현판에 적힌 ‘우리는 조국의 총끝, 칼끝’이라는 구호가 인상적이었다. 여단장이 부대현황과 작전현황을 보고했다. 고지대에 있는 작전초소에 오르자 바다 너머로 북한 땅이 훤하게 보였다. 서쪽으로 삐죽이 뻗어 나온 장산곶 일대였다.

    백령도는 남한보다 북한 땅에서 더 가까운 섬이다. 백령도와 장산곶의 거리는 17㎞에 지나지 않는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는 173㎞, 평양까지는 143㎞다. 북한의 옹진반도가 백령도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북한 영토인 기린도, 창린도, 비엽도, 순위도 등이 위도상으로 다 백령도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바다를 가르는 NLL은 옹진반도와 대청도, 소청도의 중간 수역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뻗어 연평도와 해주만 사이를 가로질러 강화도 위쪽으로 흘러가 휴전선과 맞닿는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어선 10여 척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NLL 바로 위쪽인데, 모두 중국 어선이라고 했다. 중국 어선이 이곳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돈을 받고 조업권을 팔았기 때문이다. 가격은 1척당 1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중국 어선은 우리 어선보다 규모가 커서 거친 날씨에도 조업이 가능하다. 우리 어선이 7~8t인 데 비해 중국 어선은 30~100t급이라는 것. 이날 대청도, 소청도 우측방인 기린도와 순위도 부근 북한 해역에는 중국 어선 170여 척이 조업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백령도엔 고속정 기지가 없다. 해안 수심이 낮아 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남쪽 아래 대청도 기지엔 고속정 2개 편대가 상주한다. 고속정 1개 편대는 예전과 달리 2척으로 구성돼 있다. 2개 편대니 총 4척이다. 그중 한 척은 백령도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상시 대기하고 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대청도 기지의 고속정들이 달려와 돕는다.

    이날 오후 일정은 고속정을 타고 NLL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용기포항에서 YF(해군 수송정)나 어로지도선을 타고 출항해 고속정에 옮겨 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일정이 취소됐다. 일행은 YF를 타고 용기포 앞바다에 잠시 나갔다 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NLL 시찰 계획을 주도한 황진하 의원은 “백령도를 둘러보니 북한이 NLL 무력화를 시도하는 이유를 잘 알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한국의 직선기선 및 서해 5도 근해 영해 개념도

    소모적 논란 부른 ‘영토선 발언’

    “백령도는 북한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곳이다. 북한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북은 NLL 때문에 숨통이 막혀 있는 셈이다. NLL이 어떤 선인데, ‘안보선’이니 ‘영토선’이니 하는 논쟁을 벌이나. 평화논리를 내세워 NLL 양보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북은 아직 신뢰할 집단이 아니다.”

    군 장성 출신인 황 의원의 말은 NLL에 대한 보수층의 정서를 대변한다. 특히 NLL을 목숨 걸고 지켜온 군으로서는 이 선이 평화체제 전환의 걸림돌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NLL과 평화 구축, 혹은 경제협력은 별개라는 것이 군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NLL은 동해와 서해에 다 있다. 동해의 경우 1996년 이전엔 NBL(Northern Boundary Line·북방경계선)로 불렸다. 오늘날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는 곳이 주로 서해이므로 NLL 하면 통상 서해의 NLL을 뜻한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서해 5도 통항로 및 고속정 침몰 위치

    NLL 논란에 불을 지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영토선 발언’이다. 문제의 발언은 2007년 10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정당 대표와 원내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NLL은 처음에는 우리 군의 작전금지선이었다”며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같은 논리를 폈다.

    “NLL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다. 그 안에 줄을 그어놓고 이것을 ‘영토선’이라고 주장하고 ‘영토주권 지키라’고 얘기하면 정말 헷갈리게 된다. 우리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이것이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하며, 이 사실을 전제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남쪽에서는 NLL이 희석될까봐 겁내는데, NLL 때문에 남북경제협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냐. 선박이 내왕해도 NLL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냥 묻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세력은 총궐기하다시피 노 대통령의 발언을 성토했다. NLL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북측에 NLL을 양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NLL은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법적 개념과 현실적 개념 사이에 선을 그었다. 대통령과 같은 주장을 펴온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NLL은 실제 존재하는 선”이라며 “NLL이 군사경계선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다”고 NLL의 군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NLL 논란은 크게 두 갈래다. NLL의 성격에 대한 논란과 남북 경제협력과의 상관관계에 따른 논란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대선후보들의 엇갈린 시각에서도 드러났다.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는 “NLL은 영토선이 아니므로 협의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이명박, 이회창, 이인제 후보는 “NLL은 영토선”이라며 협의 불가를 주장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어로수역과 해주 직항로에 대해선 정동영·권영길·문국현·이인제 후보가 찬성했고, 이명박·이회창 후보는 반대했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북방한계선과 북한 주장 해상경계선<br>※ 출처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효적 지배로 기득권 인정”

    널리 알려졌다시피 NLL은 남북 간에 합의된 경계선이 아니다. 정전(停戰)협정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한국 해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설정한 선이다.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해상경계선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는 영토선이 아니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또한 헌법의 영토 개념으로는 NLL 북쪽의 바다도 우리 영해에 속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영해 안에 선을 그어놓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주장은 ‘NLL은 실질적인 영토선’이라는 법조계의 지배적인 견해와 어긋난다. 헌법의 영토 조항은 당위성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북한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NLL이 영토선의 의미를 갖는다는 게 법학자들의 해석이다. 휴전상태인 남과 북이 오랫동안 인식하고 지켜온 해상경계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종의 관습법으로서 규범적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해양법 전문가로 통하는 김영구 전 한국해양대 법학부 교수는 “국제법적으로 영토선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라면서도 “휴전협정 당시 해상 휴전선의 성격으로 설정된 선이므로 전쟁 당사자에게는 영토선의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NLL과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 분리 접근을 주장하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교수도 ‘영토선 발언’에 대해선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이 NLL을 얘기하면서 헌법3조의 영토 조항을 언급한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남쪽에서 흡수통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관련 고위직을 지낸 군 출신 인사는 ‘영토선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곤혹스러워했다.

    “대통령은 NLL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영토선 언급은 분위기 조성용 발언이라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의식한 정치·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니었나 싶다.”

    통일부 평화체제구축팀 관계자는 “NLL이 해상경계선이라는 건 상식”이라면서 “대통령의 ‘영토선 발언’은 NLL의 법적 성격을 말한 것이지, 지키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 않냐”고 해상경계선과 영토선의 의미를 구분했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7차 남북장성급회담 후 공개된 북한의 새 해상 경계선<br>한국일보

    이 관계자가 말한 NLL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김연철 교수는 NLL의 ‘진실’과 ‘사실’을 구분해 설명했다.

    “‘진실’은 정전협정 당시 서해 경계선에 대해 양측이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남측이 NLL 이남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대표적인 논리는 김 교수가 말한 실효적 지배의 원리다. 비록 남북 쌍방의 합의는 없었지만, 수십년 동안 NLL 이남의 바다를 한국이 지배해왔기 때문에 그 관할권 혹은 기득권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것. 이를 ‘응고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중앙대 법학과 제성호 교수는 “휴전 시점에서 지금까지 (NLL 이남은)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해왔다. 그것이 응고되고 장기화됐다. 역사적으로 기득권 논리가 인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진보적 학자들은 NLL이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비합법적인 혹은 불법적인 선이라고 주장한다. 국제법을 전공한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에 따르면 NLL 설정 사실은 정전협정 당시 북측에 통보되지 않았다. 1953년 8월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내부적 군사작전 규칙의 일환으로 한국 해군에만 전달하고 북쪽에는 정식으로 통고하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공식 해상경계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의 논리대로라면 NLL에는 응고의 법칙이 적용될 수 없다.

    “응고의 법칙이란 합의, 승인, 묵인 등 복합적 요인으로 권한 획득을 인정받아 그것이 현실로 굳어졌다는 법칙이다. 그런데 NLL은 남북이 전혀 합의한 바 없으며 그 누구의 승인도 받지 못했으며 북한이 묵인한 적도 없다.”(2007년 8월21일 ‘통일뉴스’)

    응고의 법칙과 비슷한 개념으로 ‘시효의 법칙’이란 게 있다. 시효의 법칙이란 영해 또는 영토주권에 관한 국제법상의 위법행위를 상대방이 항의하지 않고 오랫동안 묵인할 경우에 그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다. 박 위원은 북한이 그동안 NLL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해온 점을 들어 시효의 법칙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NLL 월선, 정전협정 위반 아니다”

    NLL의 성격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데는 유엔사의 모호한 태도도 한몫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유엔사는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요구하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NLL이 해상경계선이라는 우리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선이므로 북한 함정들이 적대적 행위나 도발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NLL 월선은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1996년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북방한계선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2007년 11월29일 평양 송전각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건배하고 있다.

    유엔사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1999년 6월의 연평해전 이후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해상 군사분계선을 합의하기 전까지 NLL이 실효적인 해상경계선이라는 점과 월선할 경우 도발로 간주하겠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NLL이 영해를 규정한 유엔해양법에 어긋난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영해는 12해리다(1해리=1노트마일=1852m). 영해 규정이 NLL과 부딪치는 것은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때문이다. 유엔해양법상 섬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자체 영해를 갖는다. 서해 5도의 경우 12해리 규정을 적용하면 북한 영해와 겹친다. 따라서 5개 도서와 북한 황해도 사이 바다에 중간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이 선은 NLL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섬과 섬 사이의 바다다. 특히 47해리에 이르는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가 문제다. 엄밀하게 말해 이곳은 한국 영해로 볼 근거가 없다. 따라서 국제법적인 영해 개념을 도입하면 적어도 두 섬 사이의 바다는 북한측 영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이 점을 감안해 1977년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내놓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영해선은 NLL을 남쪽으로 밀어낸다.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의 바다가 북한 영해가 된다. 그 경우 인천항에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로 가려면 북한 영해 아래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대응논리가 없지는 않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김태준 교수는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의 관할권에 대한 국제법적인 논란을 인정하면서 이런 반론을 폈다.

    “서해 5도의 좌측 부분인 백령군도와 연평도가 완전히 고립되어 그 안전이 심각하게 우려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군사적 견지에서 이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했다. 유엔해양법협약에도 군사적 필요에 의한 이러한 예외적 설정은 인정하고 있다.”(‘외교’ 71호, 2004. 10)

    “북한에겐 NLL이 영해선 구실”

    북한은 한발 더 나아가 1999년 9월엔 유엔해양법의 등거리 원칙을 내세워 서해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조선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했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연장선이 남측 경기도 해안과 북측 황해도 해안의 등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논리에서다. 이 분계선에 따르면 서해 5도는 북한 영해에 갇히게 된다. 북한은 이어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선포하고 모든 미군 함정과 민간 선박은 자신들이 지정한 두 개의 수로를 통해서만 서해 5도를 드나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성호 교수는 “남과 북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유엔해양법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남북관계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북한이 유엔해양법협약의 당사국이 된다면 NLL을 두고 국제적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국제재판소에 맡기면 NLL이 수정될지도 모른다. 서해 5도가 자체 영해를 갖긴 하지만 남과 북의 적절한 경계선은 NLL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헌법의 영토 조항과 (1992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보듯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NLL을 유지하는 명분과 논리가 나온다. 북한도 우리를 ‘남조선’이라며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엔 해양법은 평시관계에 적용된다. 남과 북은 정전 중인 특수관계다. 따라서 NLL을 국제법상의 국가간 영토 관할권의 한계선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분단국 내에서 쌍방 관할 지역의 한계선으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영토선이다.”

    김영구 교수도 북한이 내세우는 등거리 원칙을 공박했다.

    해군장교 출신 조성식 기자의 NLL 대해부

    서해 5도 조업구역도<br>※ 출처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논리적으로 부적절한 얘기다. 해양법에 규정된 해양국가와 인접국가 간의 경계 획정 원칙을 NLL에 적용할 순 없다. 남한과 북한이 해양국인가. 해양법은 국가와 국가 간에 적용되는 것이다. 남과 북은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해선은 불완전한 상태다. 서해안의 경우 소령도까지만 직선기선을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직선기선은 영해의 폭을 측정하는 기준선이다. 소령도는 태안반도 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소령도 위쪽인 경기만 일대와 서해 5개 도서 주변에는 영해선이 없는 셈이다.

    “영해선을 최소한 장산곶까지는 올려야 한다. 1995년 영해법을 개정할 때 외교부에 그런 건의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한도 압록강 하구까지는 직선기선을 그어 영해를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한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김영구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NLL은 해상경계선일 뿐 영해선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인 영토선이라는 미묘한 논리가 성립된다. 다음은 외교통상부 국제법규과 관계자의 견해다.

    “영해의 범위는 평시 국가간 관계에서 따지는 것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이 국가가 아니므로 영해 설정의 의미가 없다. 더욱이 남과 북은 현재 정전 상태다. NLL 이북은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도 NLL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서는 NLL이 영해선을 대신한다.”

    지난 11월말에 있었던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가장 큰 성과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안전보장 합의. 정상회담과 총리회담에서 합의한 문산-봉동 간 열차 화물수송,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북한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이용,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 경협사업이 활기를 띠게 됐다.

    차관급이 대표인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도 중요한 성과물이다.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논의할 공식 채널이 생긴 것이다. 군사공동위에서는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를 비롯해 무력 불사용,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군사직통전화 설치,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시 사전 통보, 대량살상무기 제거로 대표되는 단계적 군축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된다.

    ‘대각선 경계선’ 철회

    그러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공동어로수역 설정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합의는커녕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공동어로수역과 직결되는 NLL에 대한 양측의 현격한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남쪽은 NLL을 기선(基線)으로 남과 북이 같은 면적이 되도록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등면적 원칙이다. 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적용한다는 애초의 구상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북측은 NLL 이남에 공동어로수역을 정하자고 고집하며 NLL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NLL을 대체할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의 위치다. 북한은 1999년 9월 서해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해상군사분계선을 발표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공식적인 견해다. 국방부가 2007년 7월 펴낸 ‘북방한계선(NLL)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책자에도 이 선이 소개돼 있다.

    그런데 통일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비공식이긴 하지만 최근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경계선을 제시했다. 1999년 설정한 해상경계선에서 크게 물러선 지점이다. ‘뜻밖에도’ NLL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좌표를 정확히 찍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말하긴 곤란하다”면서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NLL과 매우 가까운 선”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합참 작전통제선과 비슷한 선이다.

    합참 작전통제선은 평상시 한국 해군의 작전반경을 제한하는 선이다. 해군 함정이 이 선을 넘을 때는 합참에 보고해야 한다. 대체로 NLL 이남 10㎞ 지점이다. 그 아래로 어로한계선이 설정돼 있다. 북한이 ‘대각선 경계선’을 철회하고 그보다 북쪽으로 한참 올라간 합참 작전통제선에 가까운 해상경계선을 주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동국대 북한학과 박순성 교수는 “최근 북측이 남측의 합참 작전통제선 구역까지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남북이 영토와 안보 논리에서 벗어나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LL 전문가’로 통하는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도 북측이 새롭게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 합참 작전통제선과 상당히 겹친다고 밝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보고서(‘서해연안 해양평화공원 지정 및 관리 방안 연구(Ⅱ)’)에는 이 선이 표기된 도면이 있다. 그에 따르면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인근에서는 NLL과 거의 일치한다. 백령도 북방의 경우 오히려 NLL 위쪽으로 올라가 눈길을 끈다. 또 연평도와 우도 사이도 NLL과 거의 겹친다. 다만 소청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넓은 수역에서는 NLL 아래로 내려와 있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측이 주장한 공동어로수역도 바로 이 선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이 말하는 해상경계선과 겹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요구하는 공동어로수역이 우리의 어로한계선 위쪽이라는 건 확실하다. 좌표를 그려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대체로 합참 작전통제선 위쪽이거나 인접한 구역이다. 이는 북한이 새로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에 가까운 수역이다.”

    2007년 12월14일 7차 남북장성급회담이 막을 내린 후 일부 언론을 통해 북한의 새 해상경계선이 공개됐다. 해양수산개발원 연구보고서에 실린 것과 비슷한데, 백령도 부근이 다르다. NLL 남쪽에 설정돼 있어 전체적으로 합참 작전통제선에 더 가까운 형태다.

    “새 경계선에 합의하기 전까지는…”

    남북 간에 해상경계선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1992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다. 기본합의서 11조에는 ‘남북불가침의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불가침부속합의서 10조다.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조문대로라면 남북 간 해상경계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진보적 학자들은 “NLL이 해상경계선이 아니라는 데 남북이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NLL이 남북 쌍방 간에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앞으로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남북 간에 합의돼야 하며, 남과 북 사이에 합의가 있기 전까지 NLL은 남북 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북방한계선에 관한 우리의 입장’)

    어쨌든 북한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부속합의서 조문을 내세워 지속적으로 해상경계선 설정을 요구하며 NLL 무력화를 꾀해왔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해 NLL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분쟁을 피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게 분리 접근이다. 이는 NLL을 건드리지 않고 공동어로수역을 다루는 것이다. 말하자면 NLL 분쟁은 향후 협의과제로 안고 가면서 경제협력이나 평화체제 구축 문제부터 협의하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때 NLL의 ‘N’자도 거론되지 않은 것도 이런 공감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서로 속셈이 다르긴 했지만.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김연철 교수는 “NLL과 공동어로수역은 상충되지 않는다.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정동영 의원이 통일부 장관을 할 때 정책보좌관이었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어로수역, 평화수역 설정 등은 정동영 장관 시절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공동어로수역은 꽃게철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중국어선을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때도 관건은 수역의 위치였다. 남쪽은 NLL을 기점으로 등거리·등면적을, 북측은 NLL 이남을 주장했다.

    통일부는 평화수역의 방안으로 해양생태공원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있는 홍해해양공원이 모델이다. 홍해해양공원엔 양국의 협의에 따라 군함이 출입하지 못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NLL 논쟁의 비효율성을 강조했다.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얘기하고 있는데 자꾸 NLL을 거론하는 게 이상하다. NL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면 그쪽으로 의견을 모아야 하지 않나. NLL 논란을 뛰어넘자는 게 정상회담의 합의정신이다. 공동어로수역의 목적은 남북 어민 모두에게 이익을 주자는 것인데, 그게 NLL에 어떤 영향을 줄지 따지는 것은 소모적 논쟁이다.

    NLL 문제는 평화체제로 바뀌는 과정에 다른 여러 문제와 함께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현 시점에서 NLL을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다. 1992년 기본합의서 정신에 따라 새로운 경계선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NLL을 준수해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그런데도 남쪽 내부에서 자꾸 NLL 문제를 제기하는 건 기우인지, 트집인지 모르겠다.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비판부터 하는 건 성급하지 않나.”

    통일부와 해수부의 시각차이

    2007년 10월4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은 총 8개항이다. 그중 NLL 문제와 관련된 것은 3항과 5항이다. 3항에 따르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것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서”다. 5항엔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비롯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 경제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담겨 있다. 하나같이 NLL을 떼어놓고는 논의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그럼에도 합의문에는 NLL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를 두고 군사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분리 접근한 ‘절묘한 비켜가기’라는 평이 있었다. 하지만 11월말 평양에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NLL 논쟁으로 공동어로수역 논의가 조금도 진전되지 않자 분리 접근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문제 해결의 관건이 NLL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것이다. 자연히 국방부의 NLL 우선론에 힘이 실리게 됐고, 분리 접근론을 펴온 통일부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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