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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와 ‘일드’ 그 치명적 즐거움

‘미드’와 ‘일드’ 그 치명적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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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열악한 자본과 유통망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류에 대해 과도하게 비관적인 전망은 근거 없는 기대만큼이나 어리석다. 우리가 가진 부분과 갖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비관적 전망을 어떻게 낙관적 기대로 바꿔갈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가령 드라마 제작에 있어 일본 자본이나 중국 자본의 수용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인기 있는 특정 배우를 얼마만큼 출연시켜야 한다는 식의 개입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그 조건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보다 발전적인 자세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드라마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고, 그 구체적인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전략 수립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처럼 시즌제를 도입해 사전 제작을 완료하고 방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규모나 열광적인 태도의 우리나라 시청자를 고려한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사전 제작을 할 경우 시청자의 상호소통적 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가 왜 우리를 열광케 하는지 그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할인율이라는 결정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드라마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다양성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능력 덕분이 아닐까.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아니더라도 ‘태왕사신기’나 ‘하얀 거탑’ 등의 예만 보면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광개토대왕이라는 소재를 드라마화했을 때, 중국 시장에서 일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하고 적대세력으로 내부의 연호개 집안과 화천회라는 가공 단체를 내세운 ‘태왕사신기’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매우 유효했다. 이미 일본에서 두 번이나 드라마화한 것을 한국식 정서로 전환한 ‘하얀 거탑’도 스토리텔링 전략의 승리였다. 열악한 자본과 아직은 부실한 유통구조를 지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실천적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드’와 ‘일드’ 그 치명적 즐거움
박기수

1966년 청주 출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국어국문학)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문위원, 광주스토리텔링 아카데미 전문가위원장

現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저서 :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미디어교육과 사귐’ ‘지식의 사회, 문화의 시대’ ‘문화콘텐츠학의 탄생’ 등


‘섹스 · 더 시티’ ‘CSI’ ‘프리즌 브레이크’ ‘히어로즈’ 같은 미국 드라마와 ‘코쿠센’ ‘히어로’ ‘춤추는 대수사선’ ‘1리터의 눈물’ ‘언페어’ 등의 일본 드라마에 열광만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벤치마킹하고, 우리 드라마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좀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그들의 미덕을 찾고, 그것들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며, 그들이 갖추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시기다. 읽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의 열풍을 우리의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높여준 계기라 믿자.

이제는 더 이상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동냥 시청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리 잃은 텔레비전이 이제는 손 안에 들어와 있다. 내가 ‘임진왜란’을 보며 조선의 역사를, ‘월튼네 사람들’을 보며 가족을 배웠듯이 큰아이가 DMB폰으로 보는 드라마를 통해 따뜻함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그래야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우리 드라마였으면 더욱 좋겠다. 논문을 쓰기 위해 ‘태왕사신기’를 분석하며 자꾸 할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가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신동아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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