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초대 총장

“내년 3월, 울산에 ‘한국의 MIT’가 뜹니다”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입력2008-02-12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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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의 국립대학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가 2009년 3월1일 개교를 앞두고 준비작업으로 분주하다. 그 선봉에 조무제 총장이 있다. 조 총장은 울산과학기술대를 카이스트, 포스텍과 함께 국내 최고의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나아가 MIT와 같은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초대 총장
    2009년 3월1일 개교 예정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 Technology)의 초대 총장에 조무제(趙武濟·64) 전 경상대 총장이 임명됐다. 국립대 총장을 연이어 맡은 것은 조 총장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1일 취임식을 치른 조 총장은 울산 시내에 얻은 사무실에서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간 서울을 드나들기만 수십 차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새해 초에 만났다.

    “아직 개교도 하지 않은 대학의 초대 총장직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처음’이라는 것이 큰 부담감을 안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처음’이라는 것에 설레기도 합니다. 울산과기대는 백지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인 만큼 도전해볼 만합니다. 멋진 그림을 그린다면 여느 대학 총장보다 몇 배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조 총장은 경상대 총장 시절 국내 대학 최초로 미국 명문대학인 퍼듀대와 공동박사학위제를 시행, 경상대를 생명과학 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만든 바 있다. 무언가에 도전하기를 즐긴다는 그의 말투에서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울산과기대 설립이 추진된 것은 울산에 국립대를 신설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2004년 10월 울산국립대학설립추진위원회와 추진기획단이 구성되면서부터다. 2005년 9월 정부와 울산시가 ‘울산국립대학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지난해 9월13일자로 법인 설립과 함께 이사회가 구성됐다. 그 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일대 약 100만㎡ 부지를 매입, 지난 11월1일 기공식을 마쳤다. 2010년 말 완공을 앞두고 우선 대학본부, 학술정보관, 제1공학관 등의 필수시설을 지어 내년 3월 개교할 예정이다.

    입학 정원은 1000명, 대학 정원은 대학원 1000명을 포함해 5000명이며, 교수 인원은 250여 명.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카이스트는 학생 7000명에 교수 450명, 포스텍은 학생 3000명에 교수 250여 명이다. 울산과기대는 그 중간 정도다. 전공 분야는 전자컴퓨터공학부와 기계재료공학부, 생명화학공학부, 도시환경공학부, 에너지공학부, 인간공학부, 테크노경영학부 7개로 나뉜다.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다수 자리 잡은 산업중심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공급하고 산학협력을 통해 산업체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국립대학을 만들어달라는 울산 시민들의 오랜 염원에 따라 설립되는 대학이 울산과기대입니다. 또한 정부에서 모든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대학들의 반대로 입법화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울산과기대를 최초의 국립대학법인으로 설립, 국립대학 법인화의 성공 모델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국립대 법인화 모델 대학

    국내 최초의 국립대학법인. 이는 울산과기대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국립대학법인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절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정부가 모든 것을 주관한다면 국립대학법인은 예산의 대부분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지라도 법인이사회를 통해 대학이 자율성을 갖는다. 하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는 대신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 특히 재정 문제에서 그렇다.

    “정부가 울산과기대를 법인화한 것은 일정 비율의 재정을 지역과 대학이 자체적으로 충당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은 교수 경쟁력, 학생 경쟁력, 최첨단 교육 및 연구 인프라 경쟁력, 재정 확보 경쟁력, 그리고 리더십의 경쟁력이 합해져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재정 확보 없이는 불가능해요. 총장으로 발령받고 나서 무엇보다 재정 확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초대 총장

    2009년 3월 개교 예정인 울산과기대 조감도. 울산시가 1000억원을, 정부가 2500억원을 부담했다.

    제가 지난해 9월1일자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땐 이미 2008년 정부 예산 편성이 끝난 시점이었어요. 2009년 3월에 개교하니까 정부는 2009년 예산에 반영해도 된다고 판단, 우리 대학 예산을 2008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서울을 20여 차례 오가며 기획예산처, 교육부, 국회를 설득해 다행히 2009년 3월 개교하는 데 큰 차질은 없을 만한 예산을 받아냈습니다. 예산 심의가 확정된 지난 12월28일까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울산시가 부지 매입과 기반시설에 필요한 1000억원을, 정부가 건축비 2500억원을 부담해 울산과기대가 설립된다. 그런데 문제는 해마다 들어가는 대학 운영비다.

    “매년 대학 운영 예산으로 카이스트는 3000억원, 포스텍은 2000억원이 소요됩니다. 우리 대학은 매년 운영비로 200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출범해서 정착할 때까지는 정부, 지자체, 산업체, 지역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대학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국비 지원 외에 울산시에서 연간 100억원씩 15년간 1500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중소기업인 경동도시가스에서 50억원의 장학기금을 지원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울산과기대 지원모임인 ‘국사모’를 만들어 지원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큰 힘이 됩니다.”

    국내 이공계 분야의 대표적 특성화 대학인 카이스트, 포스텍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울산과기대의 우선 목표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은 그 나라의 대학 경쟁력에 비례하며, 대학을 살려야 과학기술 경쟁력이 확보된다고 생각한다”는 조 총장은 울산과기대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같은 세계적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한다.

    첨단융합학문 특성화 대학

    “현재 교육의 두 가지 키워드는 글로벌화와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6, 7위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췄으면서도 대학 경쟁력이 매우 낮아(스위스 경영개발원에 따르면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60개 조사대상국 중 2006년 50위, 2007년 40위에 그쳤다) 매년 10만명의 학생이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연간 약 10조원에 달하죠. 한국에도 하루빨리 MIT 같은 세계적 대학이 만들어져야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에 머물 뿐만 아니라, 해외의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로 들어올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학 특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앞으로 울산과기대를 글로벌 대학, 이공계 첨단융합학문 분야 특성화 대학으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

    우선 글로벌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 강좌를 영어로 진행하고, 전체 학생과 교수 인원의 20~30%를 외국인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계획에 대해 많은 이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 총장은 “어렵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믿는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또한 에너지, 환경, 인간공학 등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첨단학문 분야 중 몇 개 분야만 선택, 집중함으로써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육성할 것이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문 간 ‘융합’이다. 조 총장은 전 학생 무(無)전공 입학제 및 복수전공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 교수를 학과별로 세분화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학과로 구분짓다 보면 학과 내 소속감은 생길지언정, 다른 학과와는 벽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지적. 다양한 전공자가 참여하는 융합연구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과를 넘어 관심 분야끼리 더 쉽게 묶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더불어 산학협력 특성화 대학도 지향한다. 산업중심도시 울산이라는 좋은 여건을 충분히 활용, 효율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의 산업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울산과기대를 카이스트나 포스텍과 차별화하고자 한다.

    외국 학생도 선별 유치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초대 총장
    글로벌 인재 양성 특성화 대학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학생 선발부터 신중하고 엄격하게 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전 강좌를 영어로 진행하는 만큼 이를 따라갈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생 모집 정원이 1000명이지만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준 높은 학생을 뽑을 계획입니다. 외국인 학생 유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중국, 인도, 베트남 등지의 상위권 학생 유치에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장학제도와 기숙사제도를 대폭 확충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 만한 분위기를 만들 것입니다.”

    그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 못지않게 우수한 교수 확보가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국제 경쟁력 있는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교육 및 연구를 위한 최고의 인프라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교수 1인당 학생수를 외국 실정(평균 10명)과 크게 차이 나지 않게 할 것이며,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능력 있는 교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겠다는 것.

    “우수한 학생과 국제 경쟁력 있는 교수를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수한 교수가 있는 곳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우수한 학생들이 있는 곳에 우수한 교수가 몰리는 법이죠.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신설 대학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우수한 학생과 국제 경쟁력 있는 교수를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버지 같은 총장’

    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다 보면 자칫 인성교육에 소홀해질 수 있지 않느냐고 우려를 내비치자 그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특성화 대학을 지향한다고 해서 인성교육에 소홀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면 뭐합니까. 예컨대 수많은 연구원이 오랜 기간 함께 개발한 것을 해외나 경쟁사에 팔아먹는다면 말입니다. 우리 대학은 앞으로 특강이나 교양강좌를 통해서도 인성교육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무감독 시험제’ 전통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학내에서부터 양심과 질서를 지키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울산 시민이 요구하는 지역학생 수용 문제에 대해 묻자 조 총장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울산에만 국립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울산 시민이 국립대 설립을 요구해왔습니다. 울산과기대가 시민의 숙원으로 설립된 만큼 시민의 욕구와 열망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울산과기대를 국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지역학생을 일정 비율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울산 시민들과 성실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학교 처지를 이해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앞으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할 수 있는 아버지 같은 ‘따뜻한’ 총장이 되고 싶다고 한다. 더불어 존경과 신뢰를 받는 총장이 되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 그는 학생들이 들어오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자주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이 가장 쉽게 친해지는 방법”이라며 웃는다.

    마지막으로 조 총장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큰 바람이라고 답했다. 건강해야 뭐든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난 35년간 대학교수, 학자, 대학총장으로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울산과기대를 MIT 같은 국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그는 “꿈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만든다”며 “이 꿈을 하루 빨리 현실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각오를 다진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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