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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 최운상 순천향대 교수, 전 駐인도대사

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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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의 휴전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지금, 큰 시사점을 던지는 반세기 전의 국제회의로 시선을 돌려보고자 한다.1954년 4월부터 6월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회의’가 그것이다. 유엔의 주최로 6·25전쟁에 참전한 모든 교전국이 참석한 이 국제회의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그 절차에 관해 여러 가지 원칙을 논의했다. 당시 외무부 정무국 제1과장(외교정책 및 법무)으로 이 회의에 깊이 관여한 최운상 전 대사가 그 구체적인 회의내용을 최초로 공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남북 의회의 구성 비율이나 외국군 철수 문제 등 한반도 통일을 둘러싼 각 쟁점을 놓고 냉전의 양대 진영이 국제무대에서 펼친 치열한 외교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위)와 1954년 한반도 통일회의 당시 광경.

1953년 7월27일 서명된 휴전협정 4조 60항은 협정 체결 후 3개월 안에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위급 관계국 정치회의를 개최할 것을 쌍방 정부에 건의했다. 그 직후인 1953년 8월28일 제7차 유엔총회는 결의 711호를 통해 휴전협정을 인준하고 협정 4조60항이 건의한 대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정치회의가 개최되는 것을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가한 미국 등의 유엔 참전국들은 과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이뤄진 모든 유엔 결의, 예컨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 실시 원칙 등이 유효하며, 제네바 정치회의의 어떠한 결정도 다른 유엔 결의를 위배해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정치회의 개최와 관련해 제일 먼저 겪은 진통은 소련의 참가자격이었다. 공산측은 중립국 자격을 주장했지만, 유엔군측은 정치회의는 ‘참전국 쌍방’의 대표 간 회의이므로 중립국 자격은 있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소련은 법적으로는 교전국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전쟁 중 공산 측에 필요한 모든 무기와 탄약을 공급한 바 있고 심지어 공군 전투기까지 파견한 실질적인 교전국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유엔군 측이 소련을 ‘특별초청’하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결국 정치회의는 1954년 2월18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미·영·프·소 4개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1954년 4월26일 열기로 결정됐다. 그 후 스위스 정부가 제네바에서의 회의 개최와 대표단 신변보호를 보장했고, 유엔은 제네바 소재 유엔 유럽본부를 회의장소로 제공하기로 했다.

제네바 회의 개최 수일 전, 주한 미대사관 존 칼혼 1등서기관으로부터 회의 진행방식에 관한 한국 측의 주장을 타진하는 문의가 있었다. 회의에는 원칙적으로 대좌형식(cross-table)과 원탁식(round-table)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를 물어온 것이다. 외무부는 즉시 장관실에서 차관, 국장, 담당과장인 필자가 모여 논의를 벌인 끝에 대좌형식을 택하겠다고 통고했다. 원탁식 회의는 논쟁이 돌아가며 한없이 계속될 우려가 있지만 대좌식 회의는 가부간 결정이 쉬울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한국 측 뜻과는 상관없이 회의는 결국 원탁식으로 진행된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핀잔

유엔군 측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 모든 참전국이 회의에 참석했다. 대한민국 대표단은 수석대표에 변영태 외무부 장관, 대표에 양유찬 주미대사, 임병직 주유엔 대표부대사 및 홍진기 법무차관으로 구성됐고, 북한 측은 수석대표에 친(親)소련파 남일 외상, 대표에 월북파인 백남운 교육상, 기석복 외무부상 및 장춘산 외무부상이 임명됐다. 기타국 수석대표로는 당대 국제정치를 주름잡는 초거물급 인사가 다수 등장했다. 미국은 존 덜레스 국무장관, 영국은 앤서니 이든 경, 프랑스는 조르주 비도 외무상, 소련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무상, 중국은 저우언라이 외상이 수석대표를 맡았다. 회의 첫날, 공동의장으로 영국의 이든 외무상과 태국의 프린스 완 외무상, 소련의 몰로토프 외무상이 선출되어 순번제로 사회를 보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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