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차기’ 급부상… 오세훈 서울시장

“대권 도전? 나, 시장 한 번 더 할 겁니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8-02-12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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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직후 파악한 서울시…‘처음부터 끝까지 다 손봐야’
    • “창의시정, 공무원 퇴출제는 내 존재 이유, 단위사업으로 평가받지 않겠다”
    • “무자비한 원칙주의자? 앞뒤 안 재고 시민고객만 생각”
    •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디자인과 신설…중앙정부는 여전히 관할 다툼
    • “‘자율형 사립고 100개’ 공약은 비현실적”
    • “규제완화면 다 된다? 서울시가 안 나서면 ‘아니올시다’예요!”
    ‘차기’ 급부상… 오세훈  서울시장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다. 2006년 4월14일 오후, 거의 녹초가 된 채 여의도 선거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일을.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 경선을 앞두고 있던 그는, 한때 등 돌리고 떠난 정치판의 냉혹함과 다시 맞닥뜨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루 4시간밖에 못 자며 밀어붙이는 강행군으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면서도 ‘문화도시 서울 만들기’ 계획을 조목조목 설명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역시 “선거 당시 유일하게 문화시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던 인터뷰라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로 당선되고 본선에서 승리해 벌써 시장 취임 3년차로 접어드니, 상투적이지만 세월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다.

    오세훈(吳世勳·47) 시장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한 1년은 묵묵히 시정을 파악하면서 보내겠다”고 했다.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했을 때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취임한 지 얼마 안되서부터 자의반 타의반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뉴타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창의시정, 3% 공무원 퇴출제, 디자인본부 신설…. 조용할 것만 같던 그의 공격적 행보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더욱이 전임, 그것도 직전 서울시장이 대통령으로 선출됨에 따라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한층 노골화하고 있다.

    ▼ 취임 1년 반, 서울시가 좀 달라진 것 같습니까.

    “저 자신은 엄청나게 바꿔놓았다고 생각하는데, 밖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요.”



    ▼ 취임 당시 파악한 서울시는 어땠습니까.

    “끊임없이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적 트렌드와 유리된, 변화를 수용하는 데 인색한, 상당히 고집 센 조직이었어요. 어느 기업이나 인사, 교육훈련, 서비스-서울시로 보면 민원처리 시스템-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는데, 서울시는 인사제도도, 교육훈련제도도, 민원 시스템도 10년, 20년 전 것을 그대로 존치해온 조직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손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선거 준비할 땐 처음 1년은 지켜보겠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안 지킨 셈이죠. 들어오자마자 두 팔 걷어붙이고 뜯어 고치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기반이 잡혔어요. 일에 치여 정신없었지만, 한편으론 할 일이 많아 행복한 1년 반이었어요.”

    “나는 시장 아닌 시민대표”

    ▼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3% 퇴출제도와 창의시정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혁신의 대상이 된 서울시 내부 직원들로선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서울시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저항이 없지 않았지요.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그런 게 남아 있을 겁니다. 왜 우리가 변화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여전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협조적이었어요. 그건 제가 제시한 비전이 결코 틀린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에 들어와서 처음 두 달간 집중적으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서울시에 상당한 잉여 인력이 있는 걸 파악했어요. 임기 중에 꼭 손을 봐야겠다는 강한 동기유발이 그때 이미 된 겁니다.

    조직이 헐겁게 운영되고 있다는 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다 알고 있는 점이에요. 다만 조직의 수장이 새로 들어와 손을 대면, 언젠가 내게도 그 여파가 미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거죠. 그러한 불신은 신뢰와 진정성으로 다독이는 수밖에 없어요. 모든 직원을 못살게 구는 ‘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니다, 조직이 활기차게 돌아감으로써 최종적으로 시민고객의 행복을 만드는 데 목표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어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자나깨나 그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면 이해의 공감대가 생기죠. 그런 노력을 계속했어요. 직접 만나는 간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메시지를 전했어요.

    처음에 직원들이 가졌던 오해, 특히 노조가 성명서에 쓰는 그런 류의 저항, 이를 테면 정치적 공명심 때문에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생각이 변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과 화학적 결합을 해서 밑바닥에 불신을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어요. 제가 굉장히 섭섭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그럼에도 직원들이 신뢰를 담아 편지를 보내왔어요. 저도 직원들에게 e메일을 많이 보냈는데, 편지를 읽으면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직원들의 반응이 꽤 있었어요. 서울시는 제가 직접 인사권을 갖는 인원만도 1만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이지만, 스킨십을 시도하려고 꾸준히 노력했고요. 요즘은 직원들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 같아요.

    지금껏 저 스스로 시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시민의 대표로서 사고해 왔습니다. 어떤 정책을 놓고 토론하든 오세훈은 시민의 대표 노릇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구나, 어떻게 하면 시민을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민의 행복총량을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구나 하는 믿음이 직원들 마음에 자리 잡으면서 본능적으로 생긴 거부감이 이해나 공감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동시에 여러 변화를 모색했기에 상당한 오해도 있었고, 무리수도 두었지요. 일 잘하는 부서, 일 못하는 부서 가리지 않고 (퇴출대상자) 3%를 내놔라 하는 건, 사실 무리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궁극적인 목표와 열정이 공감대를 형성해 지지와 협력 속에서 잘 진행되고, 열매를 맺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옳으면 그냥 합니다”

    ▼ 평소 이미지도 그렇고, 창의시정이나 문화시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봐서 온화한 분인 줄 알았는데, 요즘 하시는 일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과거 인터뷰에서 “일을 하면 독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원래 성격에 독한 구석이 있는 건지, 서울시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던 건지…. 어느 쪽입니까.

    “직원들이 종종 저더러 원칙주의자라고 합니다. 그 말뜻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뭐가 틀렸다,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하는 판단이 섰더라도 보통은 지금 손대는 게 잘하는 건지 전략적으로 고민할 거예요. 방향이 맞더라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접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공직 경험이 많을수록 그런 성향이 강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옳으면 그냥 합니다. 오래 걸리건, 임기 중에 성과가 나건 안 나건, 쉽건 어렵건, 저항이 있건 없건, 그 방향이 옳으면 하는 거예요. 이런 저를 밖에서 보면 원칙주의자이고 독하다고 하겠지요.

    답답해하는 간부들도 있어요. 맞는 얘기이고 이상적이긴 한데, 현실에 이러이러한 장애요소가 있는데도 꼭 이 시점에 진행해야 하냐는 거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늘 시민 고객의 처지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때 고민할 이유가 없어요. 전략적 판단을 하느라 미룰 이유도 없고요. 애정을 가진 분들일수록 정치인으로서의 고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언을 합니다. 임기 중에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기는 데도 신경 써야 한다고요. 그러나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게, 4년을 할지, 제가 희망하는 대로 8년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는 동안만큼은 후회 없이 일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 창의시정과 공무원 퇴출제는 계속됩니까.

    “그건 제 존재이유이기도 하고, 취임 초 저 스스로 성공한 시장과 실패한 시장을 판가름할 때 그걸로 잣대를 삼겠다고 다짐했어요. 청계천이나 버스중앙차선 같은 한두 개 굵직한 사업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창의시정으로 평가받겠다고 했어요. 창의시정이라는 게 결국 모든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생각의 주체를 바꾸는 겁니다. 모든 걸 시민 고객의 처지에서 사고하라는 거죠. 이런 유전자를 서울시 공무원에게 심어놓을 수 있으면 성공한 시장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다양한 사업을 벌였어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지 않을 겁니다.”

    ▼ 성공할 것 같습니까.

    “적어도 공무원들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에는 와있어요. 이런 노력이 쌓이면 서울시의 격이 높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문화자본 축적이 우선

    ‘차기’ 급부상… 오세훈  서울시장

    한나라당 신년인사회에서 잔을 부딪치는 이명박 당선자와 오세훈 시장.

    ▼ 후보 시절부터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드는 데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올해 서울시의 화두를 문화시정으로 꼽으셨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날까요.

    “취임 초부터 쭉 문화시정을 강조해왔지만 문화시정이라는 게 손에 확 잡히는 뭔가가 없어요. 지난해 가을부터 수백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서울시민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는 게 기본적인 방향입니다. 특히 주머니가 얇은 시민들이 변화를 실감하도록 할 거예요. 돈 있는 사람이야 10만원 넘는 공연티켓도 선뜻 구입해 문화생활을 하지만, 주머니 얇은 사람들에겐 사실 문화생활이라는 게 먼 나라 얘기 같거든요. 그런 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가 혹은 무료의 우수한 공연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서울시가 노력할 겁니다. 그런 프로그램 수십, 수백 개가 지난해까지 시험가동을 마쳤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됩니다. 가히 ‘문화폭탄’이라 할 만합니다.

    서울시민의 문화체험 기회가 늘어나면, 유료 공연도 즐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생길 테고, 서울은 문화도시로 바뀌는 겁니다. 그로 인해 서울의 매력도가 올라가면 외국인 투자가 몰리고, 관광객이 몰리고, 돈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고 경제운용에 필요한 정보가 몰리는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게 미국 같은 사회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전세계 사람들이 공부하겠다고 찾아오고, 또 눌러앉아 그 나라를 발전시키니 점점 더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다른 나라가 추월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가는 겁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려면 문화자본 축적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창의·문화도시 서울을 목표로 삼은 거죠.”

    관광에 대한 총체적 사고 전환

    오세훈 시장은 2007년 1월, 네티즌끼리 묻고 답하는 ‘네이버 지식IN’에 ‘서울을 찾는 관광객 2.5배 확대 방안은?’이라는 질문을 올렸다. ‘네이버’가 마련한 ‘명사들이 묻습니다’ 이벤트 중 하나였는데, 1386명이 이 질문에 답했다.

    ▼ 소득이 있었습니까.

    “대단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질문했던 게 아니에요. 임기 초, 서울을 찾는 관광객을 2.5배 늘려서 1200만명이 되게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왜 그래야 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분이 많았어요. 시민들 스스로 그 점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취지로 질문을 올렸지요.

    제가 늘 강조하지만, 서울이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세계적 도시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관광산업에서 창출해요. 서울은 4%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관광산업에서 창출해야 할 경제효과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그만큼 게을렀다는 얘기도 되죠. 많은 사람이 굴뚝이 있고 수출을 해야만 산업다운 산업이고, 경제효과로 연결된다고 오해해요. 진짜배기 고급 장사는 직접 뭘 팔고, 짓고, 외국으로 내보내는 게 아니라 뭘 사가는 줄도 모르고 돈을 쓰게 만드는 관광산업이죠.

    기반을 잘 마련해서 관광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쓰게 할 수 있는데, 지금껏 중앙정부나 서울시 모두 제대로 된 노력을 못했어요. 시민은 물론 시의원들조차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데 왜 서울시가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요. 이미 서울에서 제조업은 13%에 불과하고 대부분 서비스업으로 먹고사는데, 그마저도 고부가가치 서비스가 아니라 음식점이 태반이에요. 서비스업이 살아나려면 사람이 넘쳐나야 하고, 사람 끌어모을 방법은 관광산업밖에 없어요. 이러한 사정을 시민들도 알아야 하기에 관광과 관련된 질문을 올린 겁니다. 우선 서울시가 왜 이런 고민을 할까 생각해 보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하면서 관광산업이 생각보다 큰 경제효과를 창출한다는 걸 네티즌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 일종의 캠페인이었죠.”

    ‘차기’ 급부상… 오세훈  서울시장
    ▼ 관광산업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서울이 관광도시로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현실적 고민이 있습니다.

    “밑천은 든든해요. 다만 우리가 상품화할 줄 몰랐던 거죠. 우리는 ‘관광’ 하면 비원을 떠올리잖아요. 그게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세일즈 포인트라고 생각하죠.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맞아들이는 관광객 중 일본인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수년 내에 중국의 신흥부자들이 가장 큰 고객이 될 거예요. 일본 관광객이나 중국 관광객이 우리 고궁을 보고 감동할까요?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뭘 얻고자 하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자명합니다.

    관광은, 내가 살던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돈을 주고 사는 거예요. 그게 풍부해야 돈을 씁니다. 그걸 전제로 우리의 강점이 뭔지 생각해봐야죠. 일례로 중국 관광객 중에 최근에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국이 어째서 IT 선진국인지를 보고 싶어 할 겁니다. 그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그것을 충분히 맛보면 우리로선 성공한 관광인 거죠.

    서울시가 U-투어(Ubiquitous Tour)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어요. 간단히 설명하면, 인천공항에 도착한 중국 관광객이 휴대전화 같은 단말기를 빌리면 그것 하나로 많은 IT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그것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고, 호텔이나 레스토랑 정보도 얻고, 관광명소에 가면 중국어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버스 안에서 와이브로 접속을 해서 주식거래나 서류결재를 하고, 지하철에서 TV도 볼 수 있고요. ‘이런 환상적인 세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스템은 미국 보스턴에서 앞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이상적인 도시 모델로 방송했을 만큼 강점을 갖고 있어요. 관광객들이 이런 경험을 하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겁니다.”

    ▼ 그런 시스템이 완성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관광객들이 찾아가볼 만한 관광 포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시장 한 사람 결심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있습니다. 유럽 관광을 가 봐도 ‘이게 뭐야’ 싶은 실망스러운 곳도 적지 않아요. 아무개가 태어난 곳, 죽은 곳, 연애한 곳…, 이런 데가 다 관광지예요. 원래 있는 것에 스토리를 엮으면 되지, 하드웨어를 새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말하자면 스토리를 파는 거죠. 그럴 만한 곳이 서울시내에 무궁무진합니다. 그런 개념을 갖고 지난 1년 반 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밖에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보완하는 등 경쟁력강화추진본부를 중심으로,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를 상당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디자인은 절박한 기본”

    서울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오 시장은 취임 초부터 ‘디자인’을 강조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서울시에 디자인총괄본부를 신설하고,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를 책임자로 영입했다. 또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됨에 따라 서울을 그 위상에 걸맞은 도시로 가꿔간다는 계획이다. 동대문구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들어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디자인은 이제 기본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기본이죠. 너무나 절박한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아무도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갈증이 폭발했어요. 서울시가 지난해 5월 부시장급 디자인총괄본부를 만들어 서울시의 모든 행정을 디자인으로 통할해가고 있어요.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디자인과가 생겼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행정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여태껏 관할을 놓고 다투고 있어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산자부, 행자부, 문광부, 심지어 건교부까지 나서 관할 다툼만 하고 있으니….

    기업은 이미 오래 전에 디자인 경영을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결코 특별한 게 아닙니다. TV에 10분에 한 번씩 디자인 얘기가 나오고, 광고를 봐도 대부분 디자인을 강조합니다. 아파트도 디자인, 상품도 디자인, 심지어 서비스 광고에서도 디자인 얘기가 나오는 걸요. 그러니 디자인 행정을 하지 않는 분들을 이해할 수가 없죠.”

    ▼ 디자인 행정이 본격화하면 가시적인 변화들이 나타날까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냥갑 모양이 아닌 아파트를 지으려면 3~4년은 걸릴 테고, 프랑스 파리는 거리의 시설물과 간판을 바꾸는 데도 7~8년 걸렸어요. 저항이 거세서. 10년쯤 뒤엔 지금 씨를 뿌린 것에 대해 평가받을 수 있겠죠. 그때면 도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올 겁니다. 올해부터도 그러한 조짐을 조금은 느끼게 될 거예요.”

    “서울에서 즐길 게 있나요?”

    ▼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한국을 동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임기가 거의 끝난 지금까지 별 성과가 없습니다. 오 시장께서도 최근 서울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금융허브는 중앙정부가 추진해야 할 일이 있고,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지방정부가 해야 할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올해 ‘글로벌존’ 사업이 시작되면서 가시화합니다. 인수위에서 규제완화를 비롯한 여러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속도가 붙을 것 같아요. 정부의 의지를 서울시가 뒷받침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단적인 예로 서울시가 문화도시를 주창해 매력도를 증진시키면, 외자유치나 외국 금융기관 유인 등에 크게 기여합니다.

    규제만 완화해서는 금융허브가 될 수 없어요. 금융도시가 되려면 준비된 양질의 금융전문가들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대다수가 외국인이에요. 화이트칼라인 이들은,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그 도시가 가족을 데려가 살기에 부적합하고,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주말에 가족과 손잡고 품격 높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면 가족을 데리고 가겠습니까. 내 아이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시인가도 중요한 요소예요. 결국 외국인학교를 충분히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지방정부가 상당한 에너지와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힘든 일입니다.

    외국의 금융전문가들은 제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서울은 언제쯤 문화도시가 되죠?’ ‘우리가 와서 즐길 게 있나요?’ 뉴욕이나 런던에 세계인이 몰리는 이유는, 일하는 시간 이외의 생활이 즐겁기 때문이에요. 가족과 함께 나갔을 때 늘 볼거리가 넘쳐나는 뉴욕 같은 도시로 발령이 나면 일단 아내가 환호작약합니다. 생활비가 비싸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거든요. 먼저 그런 도시를 만들어야 외자도 유치하고 기업도 들어와서 금융도시가 되죠.

    요새 인수위나 언론에서 규제만 완화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마치 돈이 막 흘러들어올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니올시다’예요. 외국인을 위한 학교, 영어가 통하는 병원, 외국인 주재원이 저렴하게 임차할 수 있는 주택…, 이런 것들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1년6개월 꾸준히 준비해왔고, 올해 가시화하면 중앙정부의 의지와 맞아떨어져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내 15곳을 글로벌존으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명동, 인사동, 한남동, 여의도 등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관광·생활·비즈니스하는 데 불편함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외국인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세 종류의 글로벌존이 있습니다. 빌리지존(Village Zone), 비즈니스존(Business Zone), 문화교류존(Cultural Exchange Zone). 이촌동, 방배동, 한남동 등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글로벌 빌리지존으로 지정해, 우리가 외국에 나가 살 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동사무소에서 프랑스어로 서비스하고, 일본어로 공문서 발급해주고…. 외국인들로 하여금 이 사회가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잘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겁니다. 빌리지존의 글로벌센터장은 앨런 팀블릭(Alan Timblick·인베스트 코리아 초대 단장)이라는 외국인이 맡습니다. 외국인을 고용한 건, 외국인 시각으로 외국인에게 서비스하라는 뜻이죠. 외국인에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비즈니스존은 사업하는 사람이 그런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절차를 원스톱으로 간소화하는 등 개선된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합니다.

    문화교류존은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명동 인사동 남대문 동대문 이태원 등의 도로 표지판을 교체하고, 음식점에선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하도록 유도해 외국인이 적어도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은 없도록 할 계획입니다.”

    ▼ 서울시가 여러 면에서 중앙정부를 견인하는 느낌입니다. 최근 새 정부에 자체 기초질서유지권한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렇습니까.

    “원론적으로는 외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자치경찰권과 자치교육권한을 함께 갖습니다. 우리가 엉터리, 반의 반쪽자리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권한을 하나하나 지방으로 가져오려고 시도하는 거예요. 또 집단민원을 해결하려면 지자체가 기초적인 질서유지 권한을 가져야겠더라고요. 그렇지 않고는 민원인에게 끌려다니는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교통 통제를 비롯해 시위나 농성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이양해달라는 건데, 16개 광역 시·도지사가 협의한 내용이에요. 다만 서울시가 총대를 멨죠.”

    반의 반쪽 지방자치

    ▼ 서울시가 자체 기초질서 유지 권한을 확보하기로 한 발단을 제공한 게 노점상들과의 갈등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더불어 문화시정을 강조하는 시장께서 오히려 관리나 통제 위주의 시정을 펴는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얘기도 나옵니다만.

    “공권력을 발동해야 할 때는 해야죠. 그러나 노점상 문제는 생계가 걸린 일이라 무조건 밀어붙여선 안 돼요. 채찍과 당근을 다양하게 구사해야 하는데, 당근은 이런 겁니다. 노점상이 중구난방이라 도시 디자인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기에 노점상 디자인 표준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디자인만 바꾸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대로 두면 노점상 숫자가 무한정 늘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제안한 게 노점상 시범거리예요. 디자인 표준안을 선택해서 시범거리 안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영업하라는 겁니다. 일정한 틀 안으로 유인하는 거죠. 이게 당근이라면, 이 틀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단속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채찍이죠. 처음엔 전노련(전국노점상총연합회)을 중심으로 강하게 저항했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어요. 시범거리를 만들어놓으니 보기에도 좋고 영업도 더 잘 되거든요. 2009년부터는 아주 강력한 단속을 예고했기에 제도권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 대통령직인수위는 교육권한을 대체로 지자체로 이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교육정책 방향은 어떻습니까.

    “교육 권한에 있어선 서울시가 유일하게 준비된 지자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요. 제가 취임했을 때만 해도 서울시내에 교육에 관한 조직이 없었어요. 교육을 전담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단 얘깁니다. 취임 직후 3급 상당의 교육기획관을 신설하고 교육전문가를 채용했어요. 현재 그 부서 인원이 30~40명 됩니다. 그렇게 조직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확보됐어요. 강남·북 교육격차 해소 및 인재양성에 관한 특별 조례가 만들어져 1년에 500억원씩, 제 임기동안 2000억원을 비강남 지역의 낙후된 교육환경개선 및 교육 인프라 구축에 쓸 겁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해 올해 안으로 서울시내 초·중·고등학교의 10년 이상 된 책걸상은 모두 교체됩니다. 15년 이상 된 화장실도 사라집니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원어민 교사 지원이 내년부터 본격화합니다. 인적·물적 준비 작업을 마친 셈이에요. 인수위는 학사운영에 관해서는 교육청이 계속 권한을 갖고, 교육시설 개선 및 보완에 관해선 지자체에게 권한을 주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은데, 서울시는 그 부분에서 충분한 준비가 돼있습니다.”

    ▼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공약 중 ‘전국에 자율형 사립고 100개 신설’이 학부모들 사이에선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서울시에도 자율형 사립고가 여러 군데 생겨날까요. 이것이 평준화를 깰 가능성도 있을까요.

    “그 문제는 제 의지만 갖고 되는 건 아니고, 인수위나 새 정부가 교육정책의 큰 틀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렸죠. 다만, 제가 보건대 전국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100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의지만 갖고는 안 되고, 하겠다고 나서는 사업자가 있어야 하는데, 메리트가 있어야 사업자가 나타나죠. 자사고가 100개나 된다면, 사업자에겐 전혀 메리트가 없죠. 그러한 프로세스를 간과한 채 야심찬 계획을 내놓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면이 있어요. 그러나 곧 다듬어질 겁니다.”

    “전략적으로 살지 않는다”

    ▼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계속 부정하셨는데, 정말 생각이 전혀 없습니까.

    “서울시장 한 번 더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성공한 시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 전제조건인 창의시정을 시청 공무원들이 내면화하고, 그것이 업무 표면에 드러나도록 하기까지 4년으론 부족해요. 체질화하는 데 8~10년은 걸릴 거라고 제 스스로 목표를 정했는데 지금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죠. 시장 한 번 더합니다. 그게 부동의 목표입니다.”

    상황이 묘하게 반복되고 있다. 오 시장이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날 때부터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결국 당내 경선을 2주 남겨두고 서울시장선거에 뛰어들었다. 후보 시절 그는 “총선 불출마 선언 당시 이미 서울시장 자리를 마음에 뒀던 게 아니냐”는 물음에 “억측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때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전략적으로 살지는 않는다”였다.

    단 2번의 인터뷰로 한 사람을 파악하려는 기자가 ‘나이브’한 것일 수 있으나, 오 시장은 꽤 솔직한 편이다. 2006년 인터뷰 당시 뒤늦게 경선에 뛰어든 이유를 대단한 사명감으로 포장하는 대신, “덫에 걸린 것 같은 느낌, 이 순간에 나서지 않으면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승패에 생각이 미쳤다”고도 했다.

    오 시장이 지금 목표한 대로 서울시장 임기를 무리 없이 마치고 재선에도 성공하면 유력한 대권후보로 부상할 게 뻔하다. 그가 지나온 길을 감안하면, 그는 그러한 상황이 조성되는 걸 애써 외면한 채 맡은 일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를 향한 열망이 무르익으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또 한 번 중대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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