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인수, 통폐합, 민영화, ‘낙하산’ 처리… 정권교체 후폭풍, 공기업 개혁안 심층취재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8-02-12 1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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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 통폐합, 민영화, ‘낙하산’ 처리… 정권교체 후폭풍, 공기업 개혁안 심층취재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곳 가운데 하나가 공기업일 것이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부터 “규모가 점점 비대해지고 효율성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감시와 견제 부족으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신(神)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은 ‘방만 경영’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실제 공기업의 정확한 숫자와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워낙 다양하게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을 제정해 기획예산처에서 공기업을 관리감독하게 했지만 이 법을 적용받는 공기업, 공공기관은 298개에 불과하다. 한국공기업협회 관계자는 “지방 공기업은 논외로 하더라도 KBS, 증권거래소처럼 별도 규정을 적용받는 공기업과 자회사가 500~600개는 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개혁은 김대중 정부 때도 추진됐다.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대한송유관, 포항제철, 한국종합화학, 한국중공업 등이 이때 민영화됐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전면 중단됐다. 오히려 공기업 수와 직원, 부채가 크게 늘었다. 한국공기업학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5년간 각종 명목으로 180조원이 넘는 돈이 공기업에 지원됐음에도 부채는 2002년 194조9000억원에서 2006년 295조8200억원으로 100조9000억원(51.8%)이나 증가했다. 공기업 종사자는 27만7000명으로 40% 이상 늘었고, 인건비 역시 13조3000억원으로 78% 이상 증가했다. 공기업 개혁 실패는 노 정부의 대표적 실정(失政)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까닭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공기업 개혁 주장은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아직 한나라당이나 인수위에서 공기업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온 건 아니다. 인수위에서는 이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그래서 공기업 임직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진다.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숨만 죽이고 있다.

    확실한 시장주의 메시지



    공기업 개혁은 어떻게 진행될까. 한나라당 관계자는 “언론에서 추측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현재로선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게 없다. 대선 당시에도 없었는데, 대선 후 짧은 시간에 그 광범위한 집단에 대한 세밀한 개혁방안이 마련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능한 한 모든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는 대원칙은 분명히 서 있다”고 말했다.

    한국공기업협회 관계자도 “언론에 보도된 인수위 공기업 개혁 추진방안을 보면 쉽게 민영화할 수 있는 기업, 일정한 테마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이미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걸 적극 검토하는 정도다. 종합적인 안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 부처 공무원도 “우리 부처의 존폐 여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산하 공기업의 미래까지 고민하겠나. 공기업 개혁은 부처 통폐합이 확정된 후에야 윤곽이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 구체적인 전망을 하기는 어렵지만 어떻게든 칼을 들이댈 것은 분명하다. 노동계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자가 한반도 대운하 등 의욕적으로 구상하는 사업들을 추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동산 세를 감면해야 하고 다른 세금을 올릴 수도 없는 처지다. 가장 쉬운 길이 공기업을 민영화해 자금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념인 시장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데 공기업 민영화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월8일 기자 브리핑에서 “상반기 중에 공공기관 민영화 기본계획을 확정해 대상 기관에 대한 민영화와 경영시스템 효율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 통폐합, 민영화, ‘낙하산’ 처리… 정권교체 후폭풍, 공기업 개혁안 심층취재

    공기업 민영화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노조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민영화가 사실상 결정된 곳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대우증권 포함)과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민영화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방안이었다. 인수위는 1월7일 산업은행을 정책금융 부문과 투자은행(IB) 부문으로 나눠, 투자은행 부문을 대우증권과 합병한 후 매각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발생하는 자금 중 20조원으로 정책금융 부문을 담당하는 공적기능 전담은행(KIF,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펀드)을 만들어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산업은행, 한전이 스타트

    이에 대해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민영화는 시기상조다. 국내 IB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정책금융과 IB 부문이 분리되면 산업은행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직원들은 민영화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 직원은 “지금까지 IB 부문에서 노하우와 경쟁력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민영화돼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민영화가 되면 승진, 성과급 지급 등 임금과 복지 부분에서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반면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지분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의 지분 매각 문제나 한국토지공사, 한국전력 등 공기업 지분 처리 문제 등이 난제다. 궁극적으로 민영화를 해야 하지만 2002년 카드 사태 때 보듯 산업은행이 ‘시장 지킴이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다른 기관이 이 역할을 맡기 힘든 만큼 단계적으로 민영화를 해 부작용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인수위에서 공식적으로 민영화를 언급한 또 다른 공기업으로 우정사업국(우체국)이 있다. 최경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는 “정보통신부는 우정사업국을 ‘우정청’을 거쳐 2012년 민영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굳이 우정청을 거칠 필요가 있는지 의견이 분분해 이를 보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곧장 민영화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우체국 민영화에 대해 내부는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체국은 우편업무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보험 등 금융업무로 메우며 근근이 흑자를 이어가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위 안대로 두 업무를 분리해 민영화하면 우편요금이 훨씬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 대통합민주신당 유승희 의원은 “금융부문은 민영화하더라도 우편은 계속 공기업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등 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되는 6개 공기업도 언론에서 민영화가 예상되는 곳으로 꼽고 있다. 대표적 기간산업체인 이들 공기업은 자체수입 비율이 85% 이상이면서 자산규모 2조원이 넘어 민영화해도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민영화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당시 한전은 민영화 전단계인 자회사 분리까지 했다가 중단됐고, 가스공사는 판매부문 일부를 민영화하는 선에서 멈춰 있다. 기획예산처도 김대중 정부 시절의 안을 토대로 1월8일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영화가 추진된다면 한국전력공사가 스타트를 끊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9년 12월30일까지 매각한다는 전력산업구조개편 관련 특별법이 살아 있어 법 개정 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한전 노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쉬운 곳이 금융에서는 산업은행, 공기업은 한국전력이다. 그중에서도 모양새로 한전을 남기고 한국남동발전주식회사 등 5개 발전사를 매각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가스공사 노조 관계자 역시 “이명박 정권에서는 어떻게든 가스산업 구조개편을 통해 민영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수위에서도 “지역별로 독점사업자가 있는 지금의 방식을 고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 관계자는 “언론에서 왜 과거에 중단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지 모르겠다. 민영화는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다. 가스 전국망을 특정 기업에 준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특혜가 되어 나중에 ‘게이트’로 번질 여지가 크다. 당장 민영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소비자의 반대

    인수, 통폐합, 민영화, ‘낙하산’ 처리… 정권교체 후폭풍, 공기업 개혁안 심층취재

    노무현 정부 시절엔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통합 문제를 검토했던 곳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오히려 규모가 확대됐다. 경쟁적으로 신도시 공급과 택지개발을 주도해 ‘부동산 폭등의 주범’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새 정부에선 한국공기업학회 등을 중심으로 두 기업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나오고 있다.

    한국토지공사는 한반도대운하와 새만금 등 대형 국책사업에 참여, 현상유지가 가능하겠지만 한국주택공사는 그 역할이 상당히 축소될 전망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중소형 주택은 공공에, 중대형 주택은 민간 시장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어서 주택공사는 예전처럼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주택만 관리하는 임무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대한주택공사 관계자는 “민영화나 토지공사와의 통합에 대해 정부나 인수위로부터 들은 바 없다. 솔직히 새 정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좋은 쪽으로 나가자는 것에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돌팔매를 맞을 기관인가, 그렇게 일을 못 했나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인수위에서도 실무자들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 분석해보면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을까 한다”며 억울함과 희망을 피력했다.

    지역난방공사 관계자 역시 민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과거에도 민영화 논의가 있었지만 노조는 물론 고객(아파트 등 100만 가구)들이 적극 반대해 중단됐는데 섣불리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민영화되는 순간 요금인상은 불 보듯 한데 당연히 고객들이 반대하지 않겠나. 민영화 이유 중 하나로 방만 경영, 구조조정을 들곤 하는데 이미 현 사장이 취임한 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국마사회 또한 민영화 대상에 올라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사행산업은 국가가 할 사업이 아니다. 그래서 민영화를 전제로 용역을 주고 연구를 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반면 마사회 노조 관계자는 “발권사업 등 일부를 민영화하는 것은 고려할 수 있지만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이른바 공신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대표적인 기관이 마사회인데, 그걸 포기하고 민영화하겠느냐”며 “농림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내용에서도 구조조정, 인건비 절감 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책임과 자율권

    이들 외에도 철도공사, 도로공사 등 적자 규모가 큰 공기업에 대해서도 섹터별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철도공사의 경우 철도 운영부문을 분할해 민영화하는 안이 나오고 있다.

    민영화와 함께 업무가 비슷한 공기업, 공공기관들에 대한 통폐합과 구조조정 등도 추진될 전망이다. 대상 공기업으로 산자부의 대한석탄공사·대한광업진흥공사·광해방지사업단, 정통부 산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과기부 산하 한국과학문화재단 ·한국과학재단,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기술진흥원·한국환경자원공사·환경관리공단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환경 관련 공기업 관계자는 “통폐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과연 거론되는 기관들과 우리의 업무가 같은지 의문이다. 폐기물이라 해서 다 같은 폐기물이 아니다. 언제는 독과점 체제라서 문제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통폐합하겠다니 웃음만 나온다”며 반발했다.

    언론에서 민영화 또는 소방방재청으로의 통합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가스안전관리공사 직원들도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응이었다.

    인수, 통폐합, 민영화, ‘낙하산’ 처리… 정권교체 후폭풍, 공기업 개혁안 심층취재

    지난해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외유는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초래한 도덕적 해이의 결정판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사진은 외유에서 돌아오는 공기업 감사들에게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우리는 가스의 안전을 책임지는 관리감독기관인데 관리감독기관을 민영화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안전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 민영화 대상이 아니다. 현재 우리 1년 예산이 1000억원인데 정부로부터 341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바꿔 말하면 원가의 60~70% 선에서 소비자의 가스 안전을 책임진다는 이야기다. 민영화된다면 소비자 가격이 몇 배는 오를 것이다.”

    그는 가스안전공사 민영화는 경찰 민영화와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을 민간경호업체에 맡기면 비용도 몇 배 더 들지만 현 수준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었다. 소방방재청과의 통합도 일부 겹치는 역할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산업자원부 공무원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 기간사업은 민영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들 공기업은 에너지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각 가정이나 기업에 공급하는 망 사업도 하고 있다. 망 사업을 민영화하면 자칫 큰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인수위의 강도 높은 민영화 방침에 우려를 나타냈다.

    노무현 대통령정책실 정부혁신 TF팀에서 일한 정두환씨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결국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이 소유주가 되기 쉽다. 소비자 가격이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 논의를 중단했다. 민영화한 후에 국민부담은 늘고 이익은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이 독점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먼저 검토한 후 민영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산자부 산하 공기업 관계자는 “민영화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운영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공운법’에서 공공기관의 정관, 임원, 예산회계, 경영목표, 경영실적 평가, 경영지침 등을 상세히 규정해 공기업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매고 있다. 그렇게 한다고 경영성과가 개선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개선은 정부의 손아귀에서 놔주는 경영자율화를 통해 가능하다. 채용과 조직개편, 포상 등에 대한 자율권을 책임과 함께 쥐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100억원의 수익을 내는 기관이 1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더라도 직원들에게 성과급 한 푼 더 줄 수 없다. 임금도 다른 적자 공기업이랑 똑같이 오른다. 그런 조직에서 누가 일할 마음이 생기겠나. 또한 매출이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늘어나면 조직 규모도 전보다 더 커져야 하는데 인원 한 명 늘리기가 정말 힘들다. 더 성장할 가능성을 막고 있는 셈이다. 지금 공기업 정책은 제도적으로 직원들이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낙하산 인사

    공기업의 민영화, 구조조정만큼이나 임원진 물갈이 여부도 관심사다. 정권이 바뀌면 공기업에 자기 사람을 내려 보내는 게 관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낙하산인사조사특별위원회가 2006년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출범 후 100여 개 정부 산하기관에 142명의 정치권 인사를 내려 보냈다. 영문학 전공자가 건설기관의 감사로, 국어교육 전공자가 토지공사로, 역사학 전공자가 전기안전공사로, 항공공학 전공자가 조폐공사로, 제약학 전공자가 한국항공우주산업 감사로 가는 등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 정부는 “군사정부 시절 군 출신을 요직에 기용한 데에서 ‘낙하산’이란 말이 유래했기 때문에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민주정권이 정착된 지금 낙하산 인사라는 말은 시대착오적 용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공운법’의 기본 취지는 공기업 경영에 대한 정치권, 관료 등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임원을 뽑을 땐 공모를 거쳐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민주적 절차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친노(親盧) 정치권 인사들이 내려오는 게 현실이다.

    2008년 1월10일 현재 기획예산처에서 관리감독하는 298개 공공기관 상임임원 792명을 분석한 결과 140여 명이 친노 인사, 열린우리당 출신, 노무현 정부 시절 장·차관이나 청와대에서 일한 이른바 낙하산 인사였다. CEO로 내려간 사람은 63명, 상임감사는 55명이었다.

    한국마사회, 한국가스안전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관리공단, 그랜드코리아레저(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등 8곳은 사장과 감사를 포함해 낙하산 임원이 3명씩이나 포진했다. 또한 한국조폐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산재의료관리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대한주택공사, 한국과학재단, 한국농촌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술신용보증기금,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13곳도 사장과 감사 모두 현 정부 출신이거나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였다. 총 20개 공기업, 공공기관이 CEO와 이를 감시하는 감사가 모두 낙하산 인사였다.

    이명박 후보 당선 후 가장 불안에 떠는 건 공기업 직원들이라기보다는 바로 이 낙하산 인사들이다. 실제로 많은 이가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지자 거취를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교통부 산하 한 공기업 간부는 “임원들이 임기가 정해져 있어 당장 옷을 벗지는 않겠지만 현 정부와 한나라당이 극도의 대립관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리보전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환경부 산하 공기업 임원은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으니 새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임기 보장을 희망했다.

    일부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퇴하라는 외압이 들어와도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출범 무렵엔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일부 기관장과 임원들을 해임한 전례가 있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공기업 임원들의 임기를 존중하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는 했다.

    ‘걸어다니는 혁신’

    그런데 ‘낙하산 인사’로 지칭됐다고 해서 무조건 자리 나눠먹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지 않은 공기업 관계자들이 이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마사회는 2005년 노조가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은 임원이 회장, 부회장, 감사, 본부장 5명 등 총 8명인데 당시 5명이 외부인사로 채워졌다. 2008년 1월 현재도 4명이 외부인사다. 열린우리당 출신이 3명이고 상임감사 역시 제주행정부지사 출신 공무원이다. 지난해엔 노승대 당시 상임감사(현 대통령인수위 정무분과 자문위원)가 ‘코드 인사’에 밀려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노승대 전 감사는 이우재 마사회 회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전임 회장이 둘이나 연속 구속될 정도로 부정부패의 소굴로 불리던 마사회가 이 회장 들어서면서 깨끗해졌다. 공기업 청렴도에서 6위를 할 정도”라고 했다.

    지역난방공사 김명남 사장 역시 노무현 정부 해양수산부 차관 출신이다.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걸어다니는 혁신’으로 불린다. 그동안 강력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해 공사를 본 궤도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직원은 “전임 사장 중에는 국회 진출을 노리고 회사 공금으로 지역관리를 하는 등 평판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 반면 지금 사장은 직원들 사이에 인식이 좋다”고 했다.

    환경관리공단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라는 말은 보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과거 군인들이 요직을 차지하던 시대와는 분명 다르다. 일정한 절차를 밟고 내려온다. 물론 정치인이 수장이 되긴 하지만 그들이기에 해결하는 일도 많다. 과거처럼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임원진에 정치인, 내부 직원, 환경전문가가 공존하니까 논의의 폭도 더 넓어졌다. 앞으로도 자리 나눠먹기식 인사보다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낙하산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자율성, 독립성을 키워 바깥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는 게 더 급하다. 경영효율성보다는 외압에 맞설 입김 센 정치인이나 CEO가 오길 바라는 게 공기업의 현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공약집에서 “공기업 사장에 대한 코드인사 연결고리를 해체하고 사장 실적 책임제를 강화하며 임원 선임제도를 개선하는 등 경영효율화와 지배구조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지난해 공기업 감사의 자격 요건을 신설하고 퇴직 공무원의 공기업 재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무분별한 정실인사의 폐단을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망이 썩 밝아 보이진 않는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캠프 일각에선 벌써부터 ‘공운법’ 폐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이명박 당선자의 포항 동지상고 후배가 농협중앙회장에 선출됐다. 선출직이긴 하지만 공기업인 농협으로선 대통령과의 학연에 기대려는 심리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5월,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외유 사건이 터지자 한나라당은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초래한 도덕적 해이의 결정판”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명박 정부는 낙하산 인사의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 주목된다.

    친노 인사, 열린우리당, 참여정부 출신 현직 공기업 상임임원
    한국가스공사 감사 배석범(열린우리당)
    한국전력공사 사장 이원걸(열린우리당, 산자부 차관)
    인천국제공항공사 감사 이명식(노무현 지역선대위원장)
    부산항만공사 감사 이병환(부산정치개혁추진위 대표)
    인천항만공사 감사 고남석(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출마)
    한국조폐공사 사장 이해성(청와대 비서관, 17대 총선 출마) 감사 김광식(열린우리당 17대 총선 경선 출마)
    한국관광공사 감사 강영추(열린우리당 중앙위원)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정순균(인수위 대변인, 국정홍보처 차장) 회장 이우재(열린우리당),
    한국마사회 부회장 김도훈(열린우리당) 상임이사 배응기(열린우리당 지자체 출마)
    대한석탄공사 사장 김원창(새천년민주당 정선군수) 감사 박상엽(청와대 행정관)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김영남(해수부 차관) 감사 장남진(노무현 후보 특보)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 심일선(대통령직인수위원) 감사 이범재(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제주국제자유도시 이사장 김경택(열린당 제주지사 경선 출마) 개발센터 감사 김형규(참여정부평가포럼 자문)
    한국철도공사 사장 이철(열린우리당)
    대한주택공사 사장 박세흠(친노 인사) 감사 성백영(열린우리당)
    한국토지공사 감사 최교진(열린우리당)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허상만(농림부 장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최석식(과기부 차관) 감사 허옥경(열린우리당)
    대한지적공사 감사 송선태(열린우리당)
    한국국제교류재단 상임이사 박준구(친노 인사)
    대한체육회 회장 김정길(열린우리당)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윤장배(청와대비서관)
    한국농촌공사 사장 임수진(열린우리당) 감사 박병용(열린우리당)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감사 김성진(총리 비서실장)
    에너지관리공단 감사 배갑상(정치개혁모임) 사장 이헌만(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출마)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 신부식(국민통합개혁신당, 대통령 자문기구 위원) 상임이사 정두환(열린우리당)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이사장 조보훈(열린우리당)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김병로(열린우리당)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양재열(청와대 경호실 차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김창엽(노무현 후보 자문교수단) 감사 전혜숙(열린우리당) 사장 이재용(열린우리당 지방선거 출마)
    국민건강보험공단 감사 이문령(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 상임이사 김재석(열린우리당)
    한국전파진흥원 원장 최수만(대통령직인수위원) 사장 박화강(친노 인사)
    국립공원관리공단 감사 염태영(열린우리당, 청와대비서관) 상임이사 권오걸(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
    한국환경자원공사 감사 홍성일(열린우리당, 청와대행정관) 상임이사 김현수(청와대비서관) 이사장 손주석(국민참여본부)
    환경관리공단 감사 정선순(대통령자문위원) 상임이사 유성찬(대통령 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국고용정보원 원장 권재철(청와대비서관)
    한국산업안전공단 감사 송이권(열린우리당) 상임이사 서한옥(16대 대선 선대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감사 김경협(청와대비서관)
    교통안전공단 상임이사 차정인(16대 대선 선대위원)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상임이사 조승우(열린우리당)
    선박안전기술공단 상임이사 문남주(열린우리당)
    한국소방검정공사 감사 박규환(청와대행정관)
    독립기념관 관장 김삼웅(민주당)
    기술신용보증기금 사장 한이헌(16대 대선 지역선대위원장) 감사 남수현(부산 정치개혁추진위)
    신용보증기금 감사 박철용(열린우리당)
    사립학교교직원연금 이사장 서범석(열린우리당) 관리공단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김완기(청와대비서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사장 박재호(열린우리당) 감사 김영득(노무현 후보 보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장 김정헌(노문모)
    한국수출보험공사 감사 임좌순(열린우리당)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원장 이성옥(열린우리당)
    한국자산관리공사 이사 김정수(열린우리당)
    한국사학진흥재단 회장 김학민(민주당)
    경상대학교병원 감사 김상진(청와대행정관)
    강원대학교병원 감사 최상집(청와대행정관)
    전북대병원 감사 장세환(전북정무부지사, 열린우리당)
    전남대뱅원 감사 서대석(청와대비서관)
    충남대병원 감사 박영순(청와대행정관)
    재외동포재단 상임이사 기춘(청와대행정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허진호(열린우리당) 상임이사 금병태(2002년 노무현 지지선언) 이사장 함세웅(친노 인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 정동익(4월혁명회)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 김영완(노무현 후보 조직특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감사 최광웅(열린우리당, 청와대비서관)
    한국해양연구원 감사 박래군(열린우리당)
    원자력의학원 감사 윤경태(열린우리당)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 김진태(인수위 자문위원) 감사 이정호(열린우리당) 사장 박정삼(국정원차장)
    그랜드코리아레저(주) 감사 양진석(청와대행정관) 상임이사 박성수(새정치국민회의)
    신문발전위원회 위원장 장행훈(친노 인사)
    신문유통원 원장 강기석(국정홍보처장 후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송재호(대통령자문 국가발전위 위원)
    한국문화진흥주식회사 감사 이성용(열린우리당) 상임이사 권오혁(국민참여연대)
    안산도시개발주식회사 사장 정동년(광주동구청장)
    (주)강원랜드 감사 최욱철(열린우리당)
    (주)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 이춘발(노무현 언론특보)
    한국남동발전주식회사 감사 이재선(열린우리당)
    한국동서발전주식회사 감사 허재안(열린우리당)
    한국중부발전주식회사 감사 강호식(청와대 행정관)
    한전KDN 감사 이윤정(열린우리당)
    한전KPS(주) 감사 김종구(열린우리당)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장준영(청와대비서관) 감사 박순환(열린우리당) 상임이사 정홍식(열린우리당)
    코레일투어서비스 감사 윤재근(열린우리당)
    주택관리공단 사장 고종문(새천년민주당) 상임이사 권기식(노무현 후보 비서실)
    인천항부두관리공사 사장 박영서(청와대 경호실) 상임이사 추연창(열린우리당)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종오(대통령직인수위원)
    통일연구원 원장 이봉조(통일부 차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고형일(열린우리당)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정강정(열린우리당 건설특위 위원장)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최영기(대통령자문단)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황성현(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이원덕(청와대비서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이종태(대통령직인수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이정환(열린우리당)
    한국여성연구원 원장 김경애(대통령 자문위원)
    88관광개발(주) 사장 김기영(열린우리당)
    중소기업유통센터 감사 이은희(청와대비서관)
    중소기업진흥공단 감사 박공우(열린우리당)
    한국교통연구원 원장 강재홍(노무현 후보 교통특위 부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윤덕홍(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출마)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이호일(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이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김용문(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출마)
    대한주택보증 감사 김성철(열린우리당,17대 총선 출마)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원장 김선배(열린우리당,17대 총선 출마)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박은수(열린우리당 중앙위원)
    한국우편사업지원단 이사장 선한길(열린우리당 국정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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