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감기? 페렴? 글로벌 경제 정밀진단

스태그플레이션 괴담 솔솔, ‘마지노선’ 아시아 경제가 희망

  •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jyj@seri.org

    입력2008-03-07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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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소로스는 세계경제가 60여 년간 지속된 슈퍼 붐을 끝내고 심각한 조정국면을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간 단일 성장엔진 노릇을 해온 미국이 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어 세계경제가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선진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경제도 동반 침체가 점쳐진다. 새로운 경제성장 해법을 찾지 못하면 저성장 기조에서 탈피할 수 없다.
    감기? 페렴?  글로벌 경제 정밀진단

    미국 경기 하강 탓에 세계경제도 요동치고 있다. 1월말 다보스 포럼에선 세계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2003년 이후 5년간 세계경제는 연평균 GDP 성장률 5%의 고속행진을 거듭해왔다. 호황과 침체를 반복하던 변덕스러운 경기 흐름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無平無陂 無往無復)’는 ‘주역’의 효사(爻辭)처럼 이제 세계경제의 호시절은 지나간 듯하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는 올 초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경제는 60여 년간 지속된 슈퍼 붐이 끝나고 매우 심각한 조정국면을 맞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과연 소로스의 말대로 지금이 전후(戰後) 최대의 위기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향후 세계경제가 둔화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거의 둔화기와 달리 현재 상황이 더욱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가 지금까지 유례없는 활황을 보여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을 것’이라고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제까지의 호조가 건실한 바탕 위에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그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간 세계경제의 호황을 이끈 중심축은 미국과 중국경제였다. 2003년 이후 중국경제는 연간 10%를 상회하는 놀랄 만한 고도성장을 달성해왔다. 그런 성장을 견인해온 것이 수출, 특히 대미 수출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세계경제는 미국이라는 단일 엔진에 의해 가동돼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경제는 왕성한 소비를 바탕으로 자국의 높은 성장을 실현함과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각국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하며 세계경제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이처럼 활발한 소비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점이다. 2001년 IT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이 불황을 맞게 되자 당시 미 연방준비은행(FRB)의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를 1%로까지 끌어내리는 초강수를 뒀다. 저금리에 힘입어 미국의 소비자들은 차입을 통해 소비를 늘려왔고, 제조업 기반이 약한 미국경제의 특성상 이는 곧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잔치는 끝나고…

    한편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은 수익을 좇아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뛰어올랐다. 부동산 가격상승은 부동산 담보가치의 상승을 촉발했으며, 미국의 가계는 높아진 담보가치를 바탕으로 대출을 늘려 더 많은 소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 가계 부문과 부동산 부문에 부실과 과잉이 축적됐다. 2001년 IT 부문에 과잉 투자하면서 발생한 부실이 고스란히 가계와 부동산 부문으로 떠넘겨진 것이다.

    부동산 과열을 우려한 FRB는 2004년 하반기부터 금리를 올리며 과잉유동성 흡수에 나섰지만, 이미 부동산 버블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뤄진 금리 인상은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이에 따른 부동산 담보 대출 부실화를 야기했다. 유동성 과잉 상황에서 저신용자에 대한 무리한 대출 확장으로 빚어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는 결국 세계경제 호황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과잉 유동성에 기댄 미국경제의 호황이 세계경제의 동반 상승을 가져온 것과 반대로, 이제는 미국경제의 침체가 세계경제의 둔화를 이끌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과 이로 인한 금융불안 및 실물경제의 둔화는 그동안 누적된 문제점들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세계경제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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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금리와 성장률 추이

    디커플링은 없다?

    일부에서는 미국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 즉 세계경제와 미국경제 흐름 간의 차별화 현상이다. 2007년 한 해만 보더라도 미국경제는 이미 성장률 2%에 못 미치는 뚜렷한 경기 하강세를 나타낸 반면 세계경제는 4.9%라는 건실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래서 ‘미국이 기침을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 성장률의 상관계수는 2000∼2003년의 0.97에서 2004∼2007년 0.68로 낮아졌으며,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미국의 기여율도 2003년에는 30.8%에 달했으나 2006년에는 23.6%로 크게 낮아졌다. 이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 불리는 신흥개도국의 성장세가 미국경제의 둔화를 보완했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중국경제의 고성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많고, 고유가 및 원자재 가격상승이 이어질 것이며, 자원 부국의 경제 호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여 미국경제 침체로 세계경제의 성장세는 다소 둔화되겠지만 큰 폭의 경기 위축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각각 따로 노는 디커플링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것이라 속단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경험을 볼 때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세계경제는 예외 없이 동반 침체했다. 현재까지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미국경제가 아직은 본격적인 불황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미국경제는 부동산 부문의 침체로 인해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으나 소비는 그다지 위축되지 않아 완만한 경기 하강 형국을 보이고 있으며 수입도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경기가 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능성은 금융불안의 확산 및 부동산 경기의 침체 지속, 그리고 고용 상황의 악화로 인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올 한 해 미국경제가 1% 중반대의 완만한 침체 국면(mild recession)이 아닌 1% 미만의 불황에 돌입한다면 세계경제 역시 그 둔화 폭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대미·대중 수출감소 동반

    BRICs 등 신흥 개도국의 경제가 미국경제의 부진을 만회하는 것도 점점 힘에 부칠 것이다.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되고 있음에도 아직은 소비성향이 가장 높은 미국을 대체해 세계경제를 이끌 만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높은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은 있지만 중국의 고성장이 미국만큼 여타 국가의 수출과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최근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중 최소 35%가 중간재 형태로 조립 및 재공정을 거쳐 제3국, 특히 미국 등 선진국으로 다시 수출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미국경기의 급속한 침체는 대미 수출 감소라는 직접적인 효과 외에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에 따른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라는 이중고를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경제 침체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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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경제 성장률과 세계경제 성장률 추이

    또한 비록 미국과 개도국의 경기 동조화 현상이 약화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선진국, 즉 유로지역과 일본 사이의 경기 동조화 현상은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유로지역은 미국처럼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 따른 금융기관의 피해가 집중돼 있어 미국경제 둔화와 보조를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선진국 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호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더욱이 중동과 러시아 등 자원 부국이 세계경제의 안전판 노릇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들 국가가 자원가격 상승에 힘입어 고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성장의 원동력인 자원가격의 상승을 뒷받침하는 것은 지난 몇 년간의 세계경제 호황이었다. 만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둔화된다면 수요 하락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세도 한풀 꺾일 것이며, 이에 따라 자원 부국의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는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상승 국면을 마감했으며 경기 사이클상 둔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경기의 둔화 폭은 누적된 부실과 과잉이 해소되면서 조정국면이 진행 중인 미국경제 상황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경제에 누적된 부실과 과잉이 컸기 때문에 조정 과정에서 둔화 폭이 클 것이며, 설사 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그 과정이 완결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기간에 세계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개 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1990년대 후반 미국경제가 IT 부문의 투자 확대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당시 언론들은 미국경제를 두고 ‘신경제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신경제란 경기가 부침을 반복하는 사이클이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 경제를 일컫는 용어다. 이후 IT 버블이 붕괴되고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신경제 시대에도 경기 사이클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없는 경제라는 의미에서 ‘신경제 시대’는 적어도 최근까지는 유효했다. 2003년 이후 미국은 4%를 넘나드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이 2%대에 머물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연 10%대 이상 성장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이 3%를 넘지 않아 고성장-저물가의 이른바 골디록스 경제(Goldilocks Economy)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성장은 둔화되는 반면 물가상승률은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의 핵심은 비용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른바 비용압박형(cost-push)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 유가는 수급 불균형, 달러 약세, 그리고 지정학적 불안 요인 등 트리플 악재가 가세하며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도 중국, 인도 등의 급속한 수요 증가세에다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투기자금 유입 등이 겹쳐 강세를 띠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불러일으켜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으로서 값싼 제조품을 공급하며 디플레이션을 수출해온 중국이 이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주역이 되고 있다. 중국 자체에 물가상승 압력이 누적되며 중국의 수출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들어 중국의 소비자 물가는 4.7% 상승해 199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감기? 페렴?  글로벌 경제 정밀진단

    1월16일 미국 최대 금융회사인 씨티그룹이 196년 역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이날 홍콩의 항셍지수는 5.37% 떨어졌다.

    중국의 달러 표시 수출 물가도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2.7%, 4.2% 상승함으로써 중국의 인플레이션이 수출단가 상승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잇따른 금리인하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2007년 9월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로 금리를 3%로까지 낮췄다. 이는 달러 약세를 심화시켜 원자재 가격 및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는 마당에 물가 상승 압력마저 발생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닥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시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비용 측면에서 초래됐는데,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공급 측면의 충격보다는 그간의 세계경기 호황에 따른 수요 측면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침체하면 원유 및 원자재 수요가 점차 둔화되고 이에 따라 비용 측면의 압력이 완화되어 물가 상승 흐름도 주춤할 것이다. 다만 경기 하강이 본격화하는 2008년 한 해에는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성장이 위축되는 이중의 어려움을 안고 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흔들리는 달러화 위상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가 과잉 유동성을 바탕으로 성장을 지속하면서 범세계적 차원의 불균형이 심화됐다. 글로벌 불균형은 미국이 초저금리에 따른 소비 확대로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불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등 동아시아 중앙은행이 미국의 대외적자를 보전해줬기 때문이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미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다시 미국 자산을 매입하는 아시아-미국 간의 ‘달러화 리사이클링 구조’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지탱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늘 국제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상수지 적자 수준은 GDP의 3%를 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6.5%에 달해 지속 가능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처럼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 수준을 유지할 경우 언젠가는 통화가치의 급격한 절하나 경기 급락 등으로 인한 대외 불균형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침체 위험에 빠지고 있음에도 아직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 과정은 본격화했다고 볼 수 없다. 연이은 금리인하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만,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지 않는 한 당분간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중은 6%대에 머물러 위험 수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어들려면 소비가 감소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경기 침체의 장기화를 의미하므로 과연 미국이 그러한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2000년을 100으로 한 달러화의 실질 실효환율지수가 2007년말 현재 76.5로 역대 최저 수준인데도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줄지 않고 있어 환율만으로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경기에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미국 가계 부문의 부실을 무난하게 제거할 수 있는지가 글로벌 불균형 해소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는 불가피하며, 이를 위한 조정이 시작되고 있어 이 과정에서 달러화 위상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경제의 침체와 신뢰 저하로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뒷받침해온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가 약화되고 있는 데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경제의 비중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달러가 헤게모니를 잃고 있으며, 유로화가 부상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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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4대 투자그룹의 투자자산 축적규모 및 전망

    유로화 부상(浮上) 뚜렷

    최근 들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가 흔들리면서 미국으로부터 자금이 이탈할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최고조에 달한 2007년 8월 한 달 동안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유가증권을 1630억달러어치나 매도했다. 미국으로 해외 자본이 유입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를 균열시키는 촉매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달러화 약세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경우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는 깨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달러화 가치의 추가 하락과 기축통화로서의 위상 실추를 모면할 수 없어 ‘국제자본의 미국 자산 매입 축소→달러화 가치하락→국제자본의 미국 자산 매입 축소’라는 역(逆) 리사이클링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역할이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달러 헤게모니를 내놓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화 위상이 도전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부각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세계적 금융불안이 심화할 수 있다. 더욱이 금융 부실이 확산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많은데, 달러화 불안은 이러한 금융불안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엔진이 하나뿐인 비행기는 엔진에 사소한 결함이 발생해도 추락 위험에 노출된다. 여러 엔진을 가동하는 비행기는 엔진 하나가 작동을 멈춰도 비행을 지속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경제는 미국경제의 부침에 크게 의존해왔다. 양적으로는 세계경제에서 미국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지만, 성장의 내용을 볼 때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세계경제 침체와 이후 단기간의 침체 탈피, 그리고 2003년부터의 세계경제 호조는 미국경기의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 지금 미국경제가 둔화되며 세계경제도 하락 양상을 보이는 것은 미국이라는 단일 엔진에 의존해온 당연한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경제의 성장이 차입을 바탕으로 한 소비에 매달려 있는 한, 미국경제에 의존한 성장은 더 많은 부실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경제는 그간의 부실과 과잉을 해소하는 조정 과정에 놓여 있다. 조정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 고통을 회피하려 한다면 2001년 IT 버블 붕괴 이후 과잉을 떨어내는 조정 대신 초저금리로 부실을 가계 부문에 떠넘김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실의 크기를 불려놓은 잘못을 반복하는 꼴이 된다. 다만 고통의 최소화와 원만한 조정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이 지나친 미국 수출 의존에서 탈피해 지역별로 내수를 키우고 역내 교역을 활성화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을 분산시켜야 한다.

    고통 따르는 경제 재편

    감기? 페렴?  글로벌 경제 정밀진단
    전영재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 석사(경영학), 성균관대 박사과정(경제학) 수료

    국회사무처 근무

    現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 수석연구원

    저서 : ‘SERI 전망 2008’외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안정 성장을 위해서는 아시아의 역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의 경제통합은 역내 시장의 교역 활성화를 통해 아시아 지역 자체의 성장동력을 활용, 경제성장을 촉진할 뿐 아니라 침체가 예상되는 미국, 성숙경제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유럽을 대신해 세계경제의 성장축으로 작동할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조정과 재편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에 한국경제가 대외 여건의 호조에 기대어 성장할 수 있는 여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아직 한국경제는 대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충분한 자생력과 복원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성장잠재력 저하로 인해 경제 체력이 떨어지고 있어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경제의 맥박이 빨라지지 않고 있다. 향후 세계경기가 둔화되는 등 대외여건이 악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현재의 저성장 기조를 타개하지 못하면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경제성장의 해법을 찾아 수출 부진을 보완하고 저성장 체질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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