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K대 교수, 여제자 상습 성폭행 피소사건 전말

박사학위 받고 싶으면 몸 바쳐라?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08-03-07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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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두 여학생이 지도교수를 경찰에 고소했다. 지도교수라는 직위를 이용, 학위와 학점을 매개로 수차례 성폭행과 성추행했다는 이유였다. 해당 교수는 “터무니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 사건의 전말을 짚어봤다.
    K대 교수, 여제자 상습 성폭행 피소사건 전말
    2007년 11월 서울의 한 경찰서로 K대 K교수가 여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 및 성추행했다는 두 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이 대학 대학원생 김정은(가명·27)씨는 K교수로부터 2006년 9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성폭행당한 것을 비롯, 상습적으로 성추행당했다며 고소했고, 같은 학과 대학원생 이선영(가명·23)씨도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했다.

    이에 대해 K교수는 “경찰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며 “성폭행, 성추행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세한 것은 경찰에 물어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소장이 접수된 이후 석 달 동안 사건을 수사해 온 경찰은 지난 2월13일 K교수의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K교수를 고소한 김씨 측에 따르면 K교수가 김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일삼은 곳은 자신의 연구실과 랩실(대학원생들의 연구실) 등이었다. 김씨는 소장에서 K교수가 박사학위 지도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말을 듣지 않으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다”는 등의 취지로 협박,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실에서 버젓이…



    김씨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한 달여 동안 고소인과 피고소인,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K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는 “통상적인 이유로 기각됐다”고 말했다. K교수가 신분이 확실한 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이다.

    K교수는 지난 2월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찰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성폭행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자세한 것은 경찰에 물어보라”고 했다. 14일 두 번째 전화통화에서 “과학적 근거라는 게 뭐냐”고 묻자 K교수는 “경찰이 기소했지만 기각됐다”며 “그것(과학적 근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K교수는 경찰이 청구한 영장이 기각된 것을 기소 자체가 기각된 것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K교수가 주장하는 ‘과학적 근거’는 뭘까. 경찰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참고인 등의 증언을 통해 K교수가 주장하는 ‘과학적 근거’를 간접적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K교수 성폭행 사건과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 대학 출신 이성호(가명·37)씨는 “김정은씨가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성폭행당한 날짜와 시간을 확정적으로 기술했는데, 이 부분을 문제 삼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2006년 9월4일 21:30경…’이라고 성폭행 당시 시간을 특정했는데, K교수는 보안업체가 보관하고 있던 당시 랩실 출입 기록시간이 김씨가 주장하는 시각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성폭행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이씨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정확한 시간을 기억해내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이를 빌미로 성폭행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또 다른 고소인 이씨, 그리고 동료 대학원생 민수희(가명· 36)씨 등의 진술에 따르면 K교수는 김씨를 성폭행한 것 외에도 여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대 교수, 여제자 상습 성폭행 피소사건 전말

    K교수의 성추행(성폭행 포함) 횟수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0여 회에 이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여학생들은 처음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실수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추행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여학생들은 K교수가 술자리 때마다 “박사는 술도 잘 마셔야 하고 남자 같아야 한다” “오늘은 집에 안 들어가는 날이다”라면서 계속 술을 마시게 했고,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얼굴을 부여잡고 강제로 키스를 했다고 진술했다. 여학생들은 “키스를 거부하면 다음날부터 ‘인간성이 안됐다’ ‘논문의 질이 낮다’ ‘사회성이 안됐다’는 등 면박을 주고 인격적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며 “회식이 너무 싫었다”고 입을 모았다.

    K교수를 고소한 두 대학원생과 참고인들의 진술서 등에 따르면 K교수의 성추행(성폭행 포함) 횟수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0여 회에 이른다.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성추행(성폭행)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때 말렸어야 하는데…”

    김정은씨는 K교수 성폭행 고소 건으로 박사학위 취득이 물거품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김씨는 마지막 학기인 2007년 2학기에서 K교수가 김씨에게 F학점을 주는 바람에 졸업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종합시험에서 3과목을 통과해야 졸업자격이 주어지는데, 김씨는 2과목은 통과했지만 1과목에서 탈락했다. 탈락한 과목은 지도교수인 K교수의 과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과목에서는 김씨는 물론, 함께 시험을 본 다른 학생들도 모두 탈락했다고 한다.

    한 학생은 “K교수가 김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학원생 모두를 불합격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제출한 박사학위 청구논문은 현재 심사 단계에 있지만 종합시험 탈락으로 학위 취득이 불투명한 상태다.

    김씨와 이씨가 지난해 11월 K교수를 고소하면서 그의 성폭행·성추행 의혹이 학교 안팎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K교수의 성추행은 학교 안팎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K대 출신 학생들에 따르면 K교수는 2001년 10월에도 학부생 여제자를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학교에서 학생회 간부들이 “K교수를 학교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학생회의를 열자, K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소문은 학내 전체로 퍼졌다.

    당시 학생회 간부였던 K씨는 “당시 해당 학과 학생으로부터 정확히 들었다”며 “K교수 퇴진운동까지 불사하자고 얘기했지만, 피해 학생이 잠적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졸업생도 “그때 막았어야 했는데, 그때 못 막아 또다시 이번 일이 터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자필 진술서의 진실

    K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소문으로 끝났다”고 해명했다. 학생들은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은 당시 피해 여학생의 자술서 때문이라고 했다. 성추행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 관여한 이성호씨는 “당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지도교수인 K교수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 여학생을 만나 ‘아무 일도 없었고, 이러한 허위 소문을 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를 받아 보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성추행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기를 꺼린 피해 여학생이 조교로부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라”는 말을 듣고 당황해 자신에게 상의하러 왔다는 것. 이씨는 이 사실을 K교수에게 전했고, K교수는 “(피해 여학생이) 보호받으려면 자필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써서 조교에게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학교 당국이 K교수 피소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K대를 찾았다. 우선 K교수를 만나기 위해 연구실을 찾았다. 출입문은 출입카드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도록 돼 있었고, 몇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다음에는 김씨가 두 차례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 랩실을 찾았다. 마침 한 석사과정 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랩실은 미로 같은 건물 내에서도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해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K교수 사건 때문에 왔다”고 하자 이 학생은 “복학한 지 얼마 안 돼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K교수는 좋은 분”이라며 “우리는 K교수를 믿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은 K교수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는 학생이었다.

    대학본부를 찾아 교무지원처장을 찾았다. 교원 면접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부속실에 명함을 건네고 꼭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두 차례 확인전화를 걸었음에도 학교 측으로부터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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