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공간연구 해운대

한국의 골드코스트? 어정쩡한 여름 휴양지?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3-07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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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륙 사람들에게는 바다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런 바다를 보려면 마음먹고 떠나야 하고, 그것도 기껏해야 한 해 한두 번. 힘들게 찾은 바다도 마음을 탁 트이게 하기에는 ‘2%’ 부족할 때가 많다. 그런데 껴안고 껴안아도 넘칠 만큼 드넓은 바다를 365일 50m 앞에 두고 산다면? ‘최고의 여름 휴양지’를 자부하는 부산 해운대가 최근 놀라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공간연구 해운대
    부산에는 ‘해운대 특별구’라는 말이 있다. 해운대가 갖는 복잡미묘한 정체성이 투영된 단어다. 부산 시민이라면 해운대에 산다는 의미, 해운대 구민이 느끼는 뿌듯함이 어떤 것인지 안다. 이런 인식이 형성된 건 해운대가 주거지로 ‘뜨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즈음부터다.

    한국 8경(景)의 하나인 해운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운치 있는 해안가’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주거지구가 확대되면서 ‘특별구’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저 자연경관을 활용한 관광지이던 해운대에 1989년 대우마리나 1차 아파트가 들어서고, 1992년 대규모 아파트촌인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본격 주거지로 변신한 것이다.

    해운대 신시가지는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 장산 바로 아랫자락 해운대구 좌동 305만7000㎡ 부지에 주택 3만3300여 가구가 들어섰다. 16년 전 신도시 설립 초기, 신도시는 부산 주택난을 해소할 유일한 해결책으로 각광받았다. 부산 출신인 기자가 중학생이던 1994~1996년, 한 반에서 대략 5, 6명의 급우가 신시가지로 옮겨갔다. 대규모 아파트촌이 드문 것은 물론 아파트 거주자와 주택 거주자가 각각 절반쯤 되던 당시,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새롭고 깔끔한 신시가지로 이사 가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신시가지 주민들이 오히려 박탈감을 갖는다고 한다. 해운대구의 놀라운 성장속도에 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매년 한두 번은 해운대를 찾는 기자도 실제로 갈 때마다 그 변화에 놀란다. 수년에 한 번씩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요즘의 해운대를 보고 “꼭 외국 해안도시 같다”고 감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운대 상전벽해’에는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개입됐지만, 그 핵심은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다.

    “마린시티를 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요. 층수도 상상외로 높고 건물 모양도 세련되고 분양가도 높고…. 신시가지 아파트 분양가는 기껏해야 평당 500만~600만원인데 그쪽은 1200만원을 훌쩍 넘으니, 사람 사는 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시가지에 10년째 살고 있다는 정영삼씨는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를 ‘해운대의 섬’이라고 표현했다. 해운대는 수영만에서 진입하는 길을 기준으로 왼쪽은 좌동, 가운데는 중동, 오른쪽은 우동으로 나뉜다.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는 해운대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마린시티는 수영만 매립지의 수영만 요트경기장과 이어져 있고, 거기서 차로 3분 남짓 달리면 센텀시티가 나온다. 요트경기장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댄 형상이다.

    두 ‘시티’는 보다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지구로 거듭나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여왔다. 마린시티엔 2000년 초부터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산업지구로 특화된 센텀시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얼개를 갖춰나갔다. 마린시티는 최근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72층 높이의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와 80층 높이의 두산 위브더제니스가 차례로 분양됐기 때문이다.

    위브더제니스는 70~80층 3개동(1788가구)으로 구성되며, 아이파크는 72·66·46층짜리 주상복합건물 3개동으로 지어진다. 해안에 인접한 주거빌딩으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높이다. 위브더제니스의 최고층(80층) 건물은 높이가 295.6m로, 호주 골드코스트 Q1타워(322.5m)와 호주 멜버른의 유리케 타워(297.2m)에 이어 세계 3위. 아이파크엔 250여 실 규모의 호텔이 들어서 복합 레저 단지로 꾸며질 계획이다.

    분양가는 위치와 조망에 따라 900만원대에서 4500만원까지 다양하지만, 두 곳 모두 3.3㎡(1평)당 1654만원 선. 부산시를 통틀어서는 물론 마린시티 내 다른 고층아파트 분양가도 훌쩍 뛰어넘지만, 두 곳 모두 과열 현상을 빚고 있다.

    80층에서 바다를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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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만 매립지에 조성된 ‘마린시티’는 동백섬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1월30일에 찾은 마린시티. 정체 모를 천막 20~30개와 서류를 손에 들고 길가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날인 29일 아이파크 분양권 당첨자가 발표되자 전국에서 ‘떴다방’들이 몰려든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는 아파트가 나왔어요. 그만큼 부산 부동산이 침체돼 있었던 겁니다. 어제 당첨자가 발표됐고, 오늘 투기과열지구가 해제되면서 전매제한이 풀렸잖아요. 그러니까 분양권을 매매하려고 벌떼처럼 몰려든 거 아닙니까. 떴다방, 복부인들이 전국에서 엄청나게 왔습니다. 딱 보면 보통사람들이랑 ‘포스’가 달라서 압니다. 그런데 한사코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라 단속하기는 힘듭니다.”

    막 단속작업을 끝냈다는 해운대구 토지정보과 박정식 토지관리팀장이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파크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침체된 부산 부동산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아이파크 1592가구 가운데 65가구 외에는 청약이 마감됐고, 바닷가 쪽과 전망이 빼어난 가구는 이미 3500만원에서 최고 2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지금 사두지 않으면 계속 값이 오른다”며 방문자를 부추겼다.

    아이파크 모델하우스 안도 사정은 마찬가지. 원래 고급 마케팅을 하느라 예약제로 손님을 받았다는 이곳은 분양권 추첨이 끝난 뒤여서인지 지금은 출입이 자유로웠다. 한 공인중개사가 다가와 “물건은 내가 다 갖고 있다”며 서류를 흔들어 보이자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던 이 몇몇이 물건의 조망권과 가격을 꼼꼼히 따져 물었다.

    아이파크 청약이 이렇게 호황을 구가한 것은, 해안가를 낀 신도시를 능가하는 입지조건을 내세워 부산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인 덕분이다. 전국의 재력가들이 ‘수십 층 높이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분을 느껴보시라’는 꼬드김에 홀라당 넘어갔다.

    두 빌딩의 인기몰이에 마린시티와 인접한 기존 아파트와 마린시티 내 다른 건물들의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오르듀부동산 남영우 소장은 “마린시티 지역 내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500만원씩 올라 대부분 1000만원 선을 넘겼다. 마린시티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대우마리나, 경남마리나, 경동아파트 등도 1년 전에 비해 5000만원~1억원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실수요가 아닌 떴다방들이 의도적으로 형성한 가격이라 거품이 빠지고 나면 피해가 속출할 수도 있다는 것. 아이파크 4층에 당첨됐다는 40대 주부 김모씨는 “당첨됐지만 계약할 마음은 없다. 조망권도 별로인 데다 구조도 안정감이 떨어져 그 돈을 내고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같이 당첨된 엄마들 가운데 비슷한 의견이 많다”고 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마린시티 내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해서 “형성된 가격이 오른 것이지, 저층 또는 오피스텔형에는 여전히 미분양 가구도 많다”고 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은 없다”

    두 초고층빌딩 외에도 마린시티에는 2000년 즈음부터 30~40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착착 들어섰다. 현재 우신 골드스위트(37층), 현대 하이페리온(41층), 포스코 아델리스(47층), 두산 위브 포세이돈(45층), 대우 트럼프월드(42층) 등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10개 단지 3800가구가 조성돼 있다.

    이곳 주민들은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수도권과 견줄 만한 지역으로는 마린시티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서울에도 고급 고층 주상복합빌딩이 10여 개나군집한 곳은 없다는 것. 특히 단순한 부촌이 아니라, 평생 몇 번 찾을까 말까 한 해변 휴양지를 집앞에 두고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

    한 시민은 “남천동→해운대 신시가지→메트로시티로 이어져온 부산의 고급 주거지 가운데 센텀시티, 마린시티 입주자들의 ‘수준’이 가장 높은 편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대구는 이 점을 고려해 위브더제니스와 아이파크 상가에 명품관을 우선 입점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명물 거리를 조성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두바이, 홍콩 같은 관광과 쇼핑의 명소로 키우겠다는 것.

    마린시티에서 사는 느낌이 어떤지 들어보기 위해 포스코 아델리스의 50대 주부 박은선씨를 만났다. “생활하기가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그는 “한번 둘러보면 알 것”이라며 빌딩 내부로 손을 잡아끌었다.

    아델리스의 조망권은 마린시티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3층 카페테리아에서도 바닷물이 눈높이에서 찰랑였다. 박씨는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특히 탁 트인 조망권과 집에서 한 발만 걸어나가면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마린시티는 해운대와 광안리 등 해변가에 위치한 기존 아파트들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방파제와 불과 100m 떨어진 매립지에 들어선 아파트군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성(城) 같은 비현실적인 풍광을 빚어낸다. 마린시티 내 대부분의 주상복합빌딩이 그렇듯, 아델리스에도 상시 이용 가능한 헬스클럽, 수영장, 골프, 사우나 시설과 VIP은행이 들어서 있다. 박씨의 말이다.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설은 모두 이곳 3층 ‘커뮤니티’에 모여 있어요. 통유리를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운동하고 수영을 하죠. 입주민들이 함께 사우나와 운동시설을 이용하다 보면 안면을 트고 친해지죠. 자녀가 없거나 어린 젊은 부부, 자녀가 장성해 출가하거나 외국으로 유학 간 노부부가 많아 인구밀도도 낮아요. 게다가 주민의 3분의 1 정도는 별장처럼 가끔 오갈 뿐이라 늘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마린시티에 비상주인구가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들이 호텔 대신 손님용 객실로 활용하거나, 부산 출신으로 서울, 대구, 창원 등지에 사는 재력가들이 주말이나 휴가 때 머무는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린시티에 최초로 들어선 아파트 까멜리아에 사는 한 40대 주부는 “오빠가 창원에서 사업을 하는데, 우리 윗집을 사두고 부산을 오갈 때마다 이용한다”고 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가수, 탤런트 등 연예인도 여럿 세대주로 있다”고 귀띔했다.

    동백섬, 달맞이고개, 송정…

    바다와 가깝다는 것말고도 마린시티의 매력은 많다. 일단 천혜의 환경과 밀접한 입지가 첫손에 꼽힌다. 해운대에 살지도 않으면서 온 가족이 동백섬까지 차를 몰고 가 새벽 조깅을 하던 때가 있었다. 자그마한 언덕배기인 동백섬은 30분~1시간용 조깅 코스로 그만일 뿐 아니라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설 연휴 첫날인 지난 2월6일 오랜만에 찾은 동백섬은 애완견과 함께, 혹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책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마린시티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동백섬은 해운대 시민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산책로다. 특히 2005년 제13차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쓰인 누리마루가 생긴 뒤로는 외지인의 발길도 잦아졌다. 완만한 언덕길을 10분 정도 올라 누리마루에 다다랐다.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했다는 지붕은 그야말로 아담한 ‘동백섬 속의 동백섬’이었다. 해운대 백사장은 물론, 운치 있는 달맞이고개와 부산 제1의 데이트코스로 꼽히는 송정도 지근거리에 있다.

    “마린시티에서 바라보면 동백섬, 해운대 백사장, 달맞이길이 일자로 늘어서 있고, 좀 더 가면 송정 해수욕장이 나옵니다. 해운대 백사장까지는 한 4㎞ 되고, 거기서 송정까지는 6㎞ 정도 되지요. 백사장은 걸어서 1시간 반이면 가고, 달맞이고개에서 송정까지는 2시간쯤 걸립니다. 그러니까 마린시티에서 송정까지 10km를 4시간 정도면 슬슬 걸어갈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밖에 올림픽공원, 장산, 신시가지 내 오산공원 등 놀러갈 데가 널렸습니다.”

    나들이 장소를 꼽는 해운대구청 김기욱 공보팀장의 손가락은 멈출 줄 몰랐다. 해운대구의 계획대로 향후 마린시티의 해안가를 잇는 방파제에 나무데크 산책로가 조성되고, 이 산책로로부터 동백섬까지 연결 축이 생기면 백사장으로 가는 길이 더 편해진다.

    생활환경도 편리하다. 유통시설로는 홈에버, 홈플러스가 있고 센텀시티에는 롯데백화점이 개점했다. 특히 해운대의 잠재수요를 예견한 신세계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2008년 말 완공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유통시설은 물론 16관 규모의 영화관, 레저센터, 아쿠아랜드가 들어서 해운대구민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 전망. 또 차로 5분 거리에 12개 영화관을 구비한 스펀지와 신시가지의 ‘프리머스 시네마 해운대’와 요트경기장의 ‘시네마 데크’가 있고, 쇼핑 거리로는 신시가지의 로데오거리가 있다. 달맞이고개를 따라서는 ‘부산의 인사동’인 미술관 거리도 조성됐다.

    1990년대까지 큰 차이가 없던 광안리와도 이젠 성격이 뚜렷하게 갈린다.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이윤영씨는 “광안리는 10, 20대들이 편안히 먹고 놀 수 있는 공간인 데 비해 해운대는 훨씬 더 고급화됐다. 나도 30대를 넘긴 뒤에는 집이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해운대 쪽으로만 가게 된다”고 했다.

    부산의 강남?

    이런 사정 때문에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는 서울 강남에 빗대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호텔, 레저 등 관광시설이 늘어나면서 외부인의 발길이 잦다는 점, 그리고 학원, 유아시설, 노인시설 등 생활기반시설이 드물다는 점 등은 서울 강남과는 다른 고급 주거지로서의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고급화한 것에 비해 주거지로서 실용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부산대 최열 교수(도시공학)는 마린시티를 가리켜 ‘실용성이 떨어지는 부촌’이라고 했다.

    “마린시티는 고급 주거지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주거기능을 잘 갖췄다고 보기 힘듭니다. 아파트와 달리 교육시설, 노인정 등 기반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주상복합빌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또 마린시티만 떼놓고 보면 시티 안의 상업시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변에는 유통시설이 많지만요. 분위기도 안정적이라기보다 다소 들떠 있습니다.”

    센텀시티는 성격이 좀 다르다. 부산시가 2000년경 전시 컨벤션, 영화, IT 등을 위한 산업단지로 조성한 센텀시티는 주거 기능보다 상업 기능이 중심이다. 해운대구청 주택팀 박정훈씨에 따르면 센텀시티는 산업단지로 조성되면서 공장, IT 시설이 들어서다 2004년 3000가구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로 이목을 끌었지만, 일단 초고층빌딩 개발에 있어서는 마린시티에 다소 밀리는 형편이다.

    최 교수는 “센텀시티는 산업지구로 개발됐지만 1, 2차 3750가구의 센텀파크, 850가구 규모의 센텀스타 등 아파트 형태 주거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피스텔형 주상복합빌딩보다는 아무래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린시티, 센텀시티 등 대규모 주거단지가 형성되면서 해운대의 이미지도 변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장단점이 두루 거론되지만, 일단 해운대의 전반적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나아가 해안을 낀 초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과 몇 년 뒤 들어설 100층 이상의 관광 리조트는 부산의 랜드마크 노릇을 하리라는 기대도 있다. 이를 토대로 해운대가 다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명소로 성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이다.

    그러나 “해운대가 주거지화하면서 잃는 부분도 얻는 것 못지않게 많다”는 의견이 있다. 1994년부터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살아온 ‘해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세욱 대표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건 해운대를 망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씨는 그 근거로 미관을 해치는 스카이라인과 혼잡한 교통을 들었다.

    “건물만 높다고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닙니다. 동백섬, 달맞이고개, 바다 위 유람선, 어디에서 바라봐도 경관이 보기 싫더라고요. 주욱 늘어선 백사장 끝에 콘크리트 더미들이 모여 있는 모습입니다. 마린시티에 70~80층 초고층빌딩이 완공되면 기존의 40층대 건물들과 조화를 못 이뤄 들쭉날쭉하니 더 엉망이 될 겁니다. 미관, 층수, 디자인 등을 고려해서 좀 더 치밀하고 종합적으로 밑그림을 그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얻은 것과 잃은 것

    생활의 쾌적성을 결정짓는 교통과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있다. 해운대는 부산시 주요 지점으로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광안대교를 타면 광안리까지는 차로 5분, 서면은 30분, 부산역은 40분쯤 걸린다. 경부고속도로까지도 30분이면 간다. 지하철도 개통됐다.

    그러나 구민이 늘어나면서 교통체증이 훨씬 심해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10년 넘게 해운대 대우마리나 아파트에서 살아온 이대열씨는 “여름과 주말이면 해운대로 향하는 교통량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특히 센텀시티에 벡스코와 롯데백화점이 생기면서 주말 공연, 전시회 관람과 쇼핑을 하러 나온 차량들 때문에 해운대에 진입하기가 힘들 지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환경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바다, 뒤로 산을 둔 해운대는 최근 모래 유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고층빌딩이 바다 바람길을 차단해 해류를 교란,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모래길이 막힌다는 것이다. 장산 쪽 토사도 아스팔트 도로에 막혀 백사장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상태다. 자연유실에 인공유실까지 겹쳐 해운대구는 ‘모래 채우기’에 고심하고 있다.

    주거시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이런 부작용은 관광지 기능에도 걸림돌이 된다. 시민들의 교통량에 치여 관광이 불편해지고, 고급화된 주거지로 말미암아 관광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아파트촌이 아닌 체류형 관광지로 해운대를 개발했으면 장기적으로 국제적인 관광지를 조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서세욱씨의 얘기다.

    “해운대는 관광지에서 다운타운화됐습니다. 초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벡스코를 비롯한 각종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고소득층이 모여들었지요. 그런데 해운대는 관광자원이 풍부해 관광지로 최적지입니다. 거기에 맞게 개발해야 최고의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죠. 관광지는 문화와 자연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요즘 해운대는 너무 물질적인 것만 발달한 느낌이에요. 축제가 많이 열리고 미술관, 영화관 같은 시설이 들어섰다고 구민들이 높은 문화 수준을 향유하는 건 아닙니다. 생활 속에 스며든 문화, 자연스럽되 격이 있는 문화여야 하는데, 해운대는 너무 번잡하고 화려해서 그런 느낌이 없어요.”

    품격 있는 관광지

    부산은 20여 년 전부터 해운대를 부도심으로 키우고자 했다. ‘신이 내린 입지’를 허허벌판으로 방치할 순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현재 일고 있는 해운대 붐이 침체된 부산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리라는 희망이 피어오른다. 해운대가 부산의 허파 노릇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다. 과연 ‘해운대 효과’로 부산 경기가 살아날까. 다음은 부산대 최열 교수의 분석이다.

    “해운대에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되고 전국적인 부동산 바람을 일으킨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은 다시 따져볼 문제입니다. 일단 주민등록상 인구 외의 사람이 많이 와서 사는데, 그건 경제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크게 보자면 전반적 경제 활성화는 관광 또는 산업에 초점을 맞춰야 가능합니다. 해운대라면 그 명성에 맞는 관광기능을 갖춰야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쓰게 되지요. 해운대가 고급 주거지로 개발돼도 관광객 숫자엔 별 변동이 없다니 큰 도움은 못 된 셈입니다. 주거지에 들어선 한두 개의 초고층빌딩이 랜드마크 노릇을 하기도 역부족이고요.”

    관광객의 처지에선 해운대의 고급화가 큰 매력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최 교수는 부동산 호황도 해운대에 국한된 현상으로 본다. 부산 전체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주는 파급효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개혁 러시를 맞은 것처럼 해운대도 짧은 기간 이런저런 변화를 겪었다. 최근 마린시티, 센텀시티가 아닌 기존 아파트에 거주하던 주민들 사이에는 “곧 놀랍게 변할 고급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여름 한철 소란하고 3계절 내내 조용하던 해운대에 투기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16년에 걸쳐 최근 완성된 해운대 신시가지를 두고 “당시 주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관광 자원으로 써야 할 부지를 주거지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근시안적 시각으로 해운대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라 말, 속진(俗塵)을 떨어버리려 해인사로 향하던 최치원이 절경에 반해 발길을 돌렸다는 곳. 해운대의 지명은 그가 동백섬 암반에 자신의 호를 따 새긴 ‘海雲臺’에서 비롯됐다. 숲과 나무가 있고, 나무 기둥과 가지가 있다. 해운대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본말(本末)을 제대로 품은 지혜로운 바람인지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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