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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불임 이겨낸 전문직 남성의 감동 수기

“개 아범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아내의 눈물은 원치 않았다”

  • 일러스트·박진영

9년 불임 이겨낸 전문직 남성의 감동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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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클리닉을 찾다

9년 불임 이겨낸 전문직 남성의 감동 수기

최근 불임클리닉을 찾는 부부가 늘고 있지만 필자는 “불임은 다른 질병처럼 치료로 당장 낫는 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동아리에서였다. 언뜻 남자처럼 언행이 당당한 그녀에게서 여성스러움을 느낀 것은 4학년이 되면서였다. 이후 둘은 수줍지만 격렬한 사랑을 했다. 그 과정에 아내가 1년에 두세 번 생리를 하는 중증 생리불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랑에 푹 빠진 내게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5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할 때 나는 집사람이 생리불순임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결혼해서 부부관계를 가지면 증상이 사라질 것이라 기대했다.

결혼 후 한동안 우리는 맞벌이를 했다. 남보다 바쁘게 뛰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나는 신혼 초 한동안 자정 이후까지 야근을 하거나 직업상 만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만취해 귀가하기 일쑤였다. 아내도 나름대로 회사 일에 바빠 평일에는 부부관계를 제대로 할 경황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남다른 노력은 했다. 둘은 휴일 전날에는 되도록 약속을 잡지 않고 퇴근하자마자 귀가했다. 그러고는 자동차 트렁크에 텐트를 싣고 무작정 서울 근교의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텐트를 치고 하루를 자고 아침에 일어나 등산을 하며 몸과 마음의 생기를 되찾은 뒤 집에 돌아와 관계를 했다. 결혼 후에도 집사람의 생리불순은 계속됐지만 그러다 보면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생각 같지 않았다. 결혼한 지 2년이 흐르면서 모두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내가 흔들렸다. 나이가 서른을 넘어서자 불안한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생리불순이 계속되자 ‘어쩌다 되겠지!’ 하는 마음은 ‘이러다 안 되면?’으로 바뀌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위 아래로 누이를 두고 있다.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켜 좋은 직장에 취직시켰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 아들을 결혼시켰으니 이제 손자손녀 볼 일만 남은 터였다. 마지막 생의 과업인 득손, 그게 안 되자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장인 장모의 주름살도 늘어갔다. 장모는 슬하에 딸만 셋을 뒀다. 아내는 둘째딸이다. 다행히 첫째딸인 처형이 건강한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둘째딸의 불임은 사돈과 사위에 대한 미안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결혼 2년 만에 A불임클리닉을 찾았다. 병원에 들어설 때 복도를 가득 메운 비슷한 처지의 신랑 신부들과 맞닥뜨리자 불임의 실태를 실감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소설 속 해리 포터의 주인공인 마법사들이 현실 세계에서 벽 하나를 넘어 순식간에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임클리닉 밖의 세상과 불임클리닉 안의 세상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음란 비디오방?

그날 나는 난생 처음으로 불임 치료를 위한 정액채취를 했다. 이 글을 보는 남성 여러분은 이곳에 들어가본 경험이 있는가? 없다면, 남자라면 누구나 대학시절 한번쯤 가보았을 음란 비디오방을 생각하면 된다. 2, 3평 남짓한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퀴퀴한 정액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간호사에게서 채취용 시험관을 받아들고 그곳에 들어가서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뒤로 젖힐 수 있는 의자에 앉는다. 리모컨으로 비디오를 켜면 서양에서 공식적으로 수입된 의료용 음란 비디오가 상영된다. 적당히 흥분되면 수음을 통해 사정을 한다. 정액을 받아 간호사에게 건네는 것으로 작업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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