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임직원 부품 취급하는 ‘야수 경영’은 가라!

기업 새 돌파구는 ‘인간존중 경영’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4-07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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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직원 부품 취급하는 ‘야수 경영’은 가라!
    대기업 사장을 지낸 K씨는 지난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회고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밖에 몰랐다.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국내 유수의 그룹 기업에 입사한 청년 시절엔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일했다. 새해 경영계획을 세우는 실무작업반에 차출돼 1주일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샘 근무를 한 적도 있다. 직장 회식과 가족 생일이 겹치면 당연히 회식을 선택했다. 아들, 딸이 초·중·고교와 대학을 나올 때까지 졸업식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해외 출장 때문에 가까운 혈족의 결혼식에도 못 갔다. 오후 6, 7시 ‘칼 퇴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입사 초기에 “예스( Yes)맨보다 노(No)맨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진정 필요한 사람”이라는 상사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쓴소리를 했다가 미운 털이 박히는 경험을 했다. 회사의 문제점을 비판하면 ‘불평불만자’로 낙인찍히는 사례를 체험한 뒤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조직인’으로 탈바꿈했다. 상사가 “까라”고 지시하면 ‘까야’ 하는 데 익숙해졌다.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오너 눈에도 들어 측근으로 발탁됐다. 30대 후반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40대에 사장이 됐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이 정도 지위에 오르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K씨는 조직의 비리에 연루돼 실형을 살았다. 수의를 입고 법정에 끌려들어가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더군요. 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생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엄습했고…. 저 역시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할 때 부하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생산요소의 하나로 본 측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업보이지요. 인건비가 많이 나가면 사람 자를 일부터 생각했으니까요.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존중 경영’을 하겠습니다.”

    대기업체 사장을 지낸 또 다른 K씨도 일밖에 모르는 직장생활을 했다. ‘잘나가는’ 수출 부서에서 줄곧 근무했기에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바이어 접대로 거의 매일 밤 룸살롱을 드나든 게 일과일 때도 있었다. 품위 있는 영어 대신 손짓발짓을 동원한 콩글리시로 외국인과 대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급 바이어들과 격조 높은 대화를 했더라면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부하들에게 밤샘 근무를 밥 먹듯 시킨 점도 후회스럽군요. 수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부하들을 엄하게 질책한 것도…. 월말 수출목표액을 닦달하면 직원들은 다음달에 나갈 물량을 우선 수출한 것처럼 꾸밉니다. 변칙이 동원되는 셈이지요. 좋게 말하자면 목표지향 경영이지만, 나쁜 말로 하자면 인간의 얼굴이 실종된 ‘야수 경영’이지요.”

    개발연대의 한국 기업에서는 두 K씨가 겪어온 조직문화가 당연시됐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은 조직논리에 묻혀 개성을 상실했다. 종업원은 감시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X이론’이 득세했다.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성선설 계통의 ‘Y이론’은 교과서에나 있는 이론이었다.

    “사람 투자가 가장 남는 장사”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는 X이론이 득세했다. 그러나 정보사회, 지식 기반 경제체제에서는 Y이론을 중시하고 적용해야 한다. 창의력, 상상력의 원천은 자발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인간존중 경영’ 또는 ‘인간중시 경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간존중 경영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우량 중견·중소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학교, 병원, 공기업, 연구기관 등에서도 인간중시 경영을 실천하는 곳이 늘어난다. 구체적으로는 ▲조직원에 대한 평생학습을 통해 개인의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거나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가 하면 ▲고령 인력을 적절히 쓰는 방안이 꼽힌다.

    임직원 부품 취급하는 ‘야수 경영’은 가라!

    다국적 홍보대행사 플래시먼힐러드코리아 최원희 과장(오른쪽)은 매주 열리는 사내 공부 모임에서 기업 홍보 사례를 발표하며 직원들과 업무 노하우를 나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영업 현장 돌아다니느라 바빠 죽겠는데 교육은 무슨 교육이야? 본사의 책상물림들은 현장 사정을 너무 몰라. 뭐? 1주일에 하루씩 꼬박 교육을 받는다고?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허허, 큰일 낼 발상이네.”

    제일화재해상보험 일선 영업점의 재무설계사(FP·Financial Planner)들은 2007년 4월 이렇게 투덜거렸다. 회사 측에서 ‘4조 1학습제’라는 학습계획을 발표했을 때다. 학습팀을 짜서 공부한다고 하니 듣자마자 짜증이 났다. 학습팀장 격인 퍼실러테이터(facilitator)의 지도 아래 공동학습, 개별학습, 활동준비 등의 과정이 실시된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도 일선 영업점의 이런 분위기를 잘 알았다. 학습 코디네이터 이재호씨가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점포장들조차 이 제도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자료집을 배포하고 꾸준한 설명회를 통해 점포장들을 설득했지요. 잘 진행되는 팀에 대한 각종 시상안을 마련하고 귀찮을 정도로 확인 전화를 자주 했습니다. 학습을 하지 않으면 사유서를 쓰게 했고 학습이 끝나면 학습일지를 내도록 했지요. 그렇게 몇 달을 했더니 일선에서는 이게 흐지부지 끝날 제도가 아니란 걸 깨달은 모양입니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더군요.”

    정적이 감도는 제일화재 경인지점 부천영업소 학습실. 이따금 마우스 클릭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성공열정팀’이란 이름의 학습팀이 공부하는 날이다. 국내외 경제동향, 보험영업 환경 등을 자습하는 개별학습 시간이다. 이 시간이 끝나고 영업 경험담을 공유하는 공동학습 시간이 이어진다. 13년차 베테랑 ‘보험 우먼’인 권순희 FP는 들뜬 목소리로 학습효과를 설명했다.

    학습제 정착 후 이직률 감소

    “평소 상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배울 게 정말 많더라고요. 상품과 고객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학습을 하면서부터입니다. 덕분에 고객을 상대할 때 자신감이 높아졌지요. 소득이 40%나 늘어난 것만 봐도 효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입사한 지 갓 1년을 넘긴 엄효진 FP도 학습효과를 인정했다.

    “처음에는 고객을 만나기가 두려웠지만 이제는 부단한 연습과 선배들의 꼼꼼한 지도 덕분에 능숙하게 상담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답니다. 활동준비를 통해 미리 고객정보를 분석하고 접근방법을 연구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요즘은 고객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제일화재는 2006년 말 영업소 두 군데의 FP 60여 명을 대상으로 4조 1학습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성과가 좋게 나타나자 2007년 4월 전체 101개 영업소로 확대했다. 1주일에 하루를 꼬박 학습에 매달리게 하므로 영업인원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FP 인원은 2007년 1월 1750명에서 10월엔 2000명으로 늘어났다. 비정규직인 FP는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학습제 이후엔 정착률이 높아졌다. 33.3%에서 42.7%로 상승한 것이다. 회사 측은 “회사가 비정규직 직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애사심이 높아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직률이 높은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FP 직원들의 학습효과는 재무성과에서도 나타났다. 전 영업소를 대상으로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한 2007년 4월 이후 6개월 동안 장기보험 누계액이 21.5% 늘어났다. 이는 순사업비 32억원을 절감한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 도입의 주역인 최형천 전무는 이 제도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보험업의 특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수한 인재는 보험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사실상 사람이 전부인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최근 보험업계가 초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매몰되고 인터넷과 홈쇼핑 등 온라인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 인재 키우기’에 소홀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을 제외한 발전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고장 난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릴 수 없듯이 준비되지 않은 영업사원은 영업현장에 나갈 수 없습니다. FP들을 철저히 학습시키는 것은 비정규직-정규직 양극화를 해소하고 영업실적을 높이는 방안도 됩니다. 오프라인 방식은 여전히 중요하며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투입 대비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제 스스로를 학습 전도사라 자처했는데 이제는 사원들이 하나둘씩 전도사가 돼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합니다.”

    1년에 최소 80시간 공부

    임직원 부품 취급하는 ‘야수 경영’은 가라!

    SK(주)의 `젊은 미래 엔진`들은 미국에서 글로벌 매니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업체인 바이로메드는 1996년 서울대가 세운 최초의 학내 벤처 회사다. 대표이사는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맡고 있다. 창사 이후 12년간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유전자 전달체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5개 제품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회사다. 자문위원으로 올리비에 다노스 프랑스 CNRS 연구소장, 폴 로빈슨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 등 세계적인 생명과학자들이 활동한다.

    김선영 대표는 평소에 “선진기술 습득과 연구개발에 회사의 사활이 걸린 만큼 임직원의 교육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연구인력들은 국내외 학회, 세미나 등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참여 비용은 회사에서 전액 지원했다.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고 2005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조직이 더욱 커졌다. 사무실도 세 군데로 흩어졌다. 조직 간 이질성이 나타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게 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 ‘체계적인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해 직무역량을 높이고 부서 간 장벽을 허물자’는 결론을 도출한다. 2007년 2월부터 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의 전문가들에게서 컨설팅을 받았다.

    우선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부서마다 다양한 수요가 있었다. 창의력, 사업통찰력, 자부심, 조직 몰입, 위기관리 대처능력 등을 배우고 싶어 하는 직원이 의외로 많았다. 다소 추상적인 이런 개념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영업비밀 관리, 산업기술 보호, 비즈니스협상 스킬, 투자유치 등 구체적인 실무 노하우에 대한 교육수요도 적잖았다.

    이런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면 좋을까. 이 사안을 놓고 숙고한 끝에 사내 집합교육, 사외 위탁교육, e-러닝, 독서, 학습 동아리(CoP) 운용, 멘토링 등의 방안이 도출됐다. ‘부서마다, 개인마다 특성에 맞춰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각자 연간 80시간의 최소 의무 학습시간이 정해졌다. 팀과 직급에 상관없이 전 임직원이 학습에 참여하기로 했다. 박사학위 소지자인 연구팀 직원들은 자신들이 해당 분야 전문가이므로 기존 교육기관을 통해 직무 훈련을 받기가 곤란해 학회, 세미나 참여 시간을 학습시간으로 쳐주기로 했다. 사내 강사도 적극 활용했다. 새로 인수한 회사의 조직원에 대해서는 기존 조직문화를 전수해줄 멘토를 붙여주어 이질감을 극복하도록 했다.

    뉴패러다임센터의 김현주 책임컨설턴트는 “많은 기업이 직장내 학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R&D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의 학습 필요성은 더욱 크다”면서 “이질적 조직 사이의 문화적 조화를 위해 멘토링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생산직 근로자→지식 근로자

    광복되던 날인 1945년 8월15일 설립된 대웅제약은 ‘삶의 질 향상을 선도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이라는 비전을 세운 바 있다. ‘삶의 질’은 소비자뿐 아니라 종업원에게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종업원이 행복한 삶을 누려야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것 아닌가. 생산 품목만 200여 종에 달하는 굴지의 제약회사인 대웅제약은 2006년 7월 ‘대웅인의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신바람 나는 초일류 공장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대웅 LBS(Life Balance Satisfacti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 생활을 하다 가업을 물려받은 윤재승 부회장은 평소 “인재를 키우면 개인과 조직에 모두 도움이 되므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도 오너의 결단에 따라 인재육성 계획의 하나로 추진됐다.

    경기도 화성시 제약공단에 자리 잡은 향남공장을 모델로 잡아 성공사례를 전 공장으로 확산하기로 했다. 300명에 달하는 향남공장 생산팀원의 근무시간을 조사한 결과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1.2시간이었다. ‘일과 삶’ 가운데 일에 무게 중심이 쏠린 편이다. 근로 시간을 줄여야 숨통이 틜 듯했다.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명시된 출퇴근시간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주 5일 근무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일과를 마친 후에 2시간씩 잔업을 했고 일부 생산직 직원들은 목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오후 8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철야근무를 하기도 했다. 여기다 격주에 한 번은 주말에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특근이 돌아왔다. 휴게시간까지 포함하면 직원들은 주당 54.1시간을 공장에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향남공장은 명절과 여름휴가를 이용한 공장 점검 기간을 빼면 사실상 24시간 가동되는 셈이다.

    2006년 7월 대웅제약으로 영입된 이종욱 사장은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출신이다. 유한양행은 평생학습 경영으로 이름난 유한킴벌리의 주주회사다. 이 사장도 유한킴벌리의 성공 사례를 경험해 이를 대웅제약에 도입하고 싶었다. 그해 9월 신입 직원 37명을 채용하면서 평일 2조 2교대제를 시범 운영했다. 신입 직원이 업무에 약간 익숙해질 무렵인 1월엔 3조 2교대제를 운영하면서 제약업계 최초로 본격적인 교대근무제를 실시했다.

    경영진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젠가 4조 2교대제를 도입해 근무 시간 이외에는 학습과 여가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7년 4월 사무직 핵심인력 5명도 생산팀에 배치해 생산 인력을 늘렸다. 1년 중 180일을 일하고 나머지 180일은 휴무 또는 학습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나흘 근무, 이틀 휴무, 이틀 학습, 이런 식으로 4조 2교대제를 실시했다.

    학습 프로그램은 ‘생산직 근로자가 평생학습을 통해 지식근로자로 탈바꿈하고 제2의 인생도 설계하도록 한다’는 목표로 진행된다. 6시그마 교육, 기초 통계과정, 외국어 교육 등 직무 교육뿐 아니라 골프, 영화, 볼링, 비즈공예 등 체육문화 활동도 포함했다. 직원들의 연간 교육일수는 3일에서 90일로 늘어났고 휴무일은 65일에서 105일로 늘어났다. 생산본부장(공장장)인 이진호 전무는 프로젝트 도입 효과를 높이 평가한다.

    “직원들의 역량뿐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대웅제약은 2010년까지 세계 50위 제약사 진입을 목표로 세웠는데 이 프로젝트 성공이 자양분 노릇을 톡톡히 할 것입니다.”

    이원근 품질향상센터 상무도 비슷한 의견을 들려줬다.

    “직원들 스스로가 자신의 연간 근무 스케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지요. 각자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게 됐습니다. 직무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고 교양 취미활동도 즐기면서 일과 삶을 조화시킨답니다. 모두 만족하는 듯합니다.”

    “발탁할 여성 직원 없나요?”

    “인력이 전부 남자니까 남자 위주로 내린 결정 아닙니까? 여성 인력 프로파일을 좀 봅시다. 올해에도 혹시 발탁할 여성 직원은 없나요?”

    허동수 GS칼텍스정유 회장은 이처럼 여성 직원에 대한 배려 발언을 자주 한다. 말로만 하면 실천하기 어렵다면서 아예 채용단계에서부터 매년 20% 의 여성인력을 뽑는 목표를 세우도록 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여직원회의에 허 회장이 직접 참석해 토론 내용을 경청한다.

    GS칼텍스정유는 대졸 사무기술직 신입사원을 뽑을 때 서류전형, 직무적성 및 조직가치 검사, 신체검사,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친다. 여성이 높은 점수를 얻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정유업종 특성상 여성인력에게 적합하지 않은 직군이 많아 여성인력을 많이 선발하기 어렵다. 그래도 여성인력 채용을 늘리는 노력을 기울여 지난 5년간 새로 뽑은 사원 가운데 20%가 여성이다.

    헤스본은 자동차 정비용 리프트를 생산하는 업체로 충남 당진군 송악면에 자리 잡고 있다. 1991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환경경영, 고령 근로자 채용, 장애인 고용증대 등 인간중심 경영으로 이름났다. 헤스본 공장에 들어서면 소나무, 은행나무, 해바라기 등 수목과 화초가 어우러진 작은 정원이 눈에 띈다. 공장 울타리에는 빨간 덩굴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공장 내부도 깔끔하다. 임직원들이 좀더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2006년 12월 근로 환경을 바꾼 덕분이다. 과거엔 공장 뒤편에 집진설비의 먼지 자루와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면 먼지가 공장 주변에 흩날렸고 비가 오면 오염수가 흘러나왔다. 지저분하던 공장이 정원처럼 바뀐 것은 인간중심 경영의 산물이었다.

    2006년 10월 대한상의와 HSBC은행은 7개 중소기업에 환경경영 컨설팅을 무료로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헤스본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김진생 품질경영팀 팀장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환경컨설팅업체 ISM에코베이션의 연성모 사장은 공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고철은 고물상에 보내는 대신 규격에 맞춰 재활용하고 유해먼지 자루는 별도의 보관소에 보관하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한 설비를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고물상으로 보내던 고철 가운데 5%는 간단한 설비와 작업장만 있으면 재활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8개월 동안 240t의 고철을 재활용하니 1000만원의 철강 구입비가 절감됐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빨간색(일반폐기물), 파란색(비닐류), 노란색(종이류)의 쓰레기통도 각각 만들어 공장 곳곳에 비치했다.

    고령 직원 위한 환경 정비

    헤스본에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직원이 많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정년퇴직한 직원들을 고용하는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임직원 150명 가운데 56세 이상 고령자가 29명, 정년(56세)을 앞둔 준고령자(54~55세)가 7명이다. 정년퇴직 후 직원이 희망하면 기본 10년, 최장 15년 범위 내에서 연장 근무하도록 한다.

    앞으로 고령 직원이 더욱 늘어날 것에 대비해 이들을 위한 소사장제 도입, 휴식근무제 도입, 고령자 근무현장의 점진적 개선 등 3개 전략을 추가적으로 마련했다. 소사장제는 전국 직영대리점을 늘려 여기에 능력이 검증된 고령 직원을 책임자로 보내는 제도다. 휴식근무제는 고령 근로자의 직무공유제 또는 단시간 근로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1개월 중 1주간 휴식, 파트타임제 근무, 1주 중 3일간 근무 등의 방식으로 연령대별로 근무시간에 차등을 두는 형태다. 현장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고령자가 쪼그려 앉아 일할 때 사용하는 작업대를 마련하고, 혼자서 무거운 물체를 옮길 때 허리 통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자동이송장치 지그를 개발하기로 했다.

    양승인 인사부장은 “고령 직원은 모두 숙련된 분들이므로 나이가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서 “내년에는 정년을 58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정인수 뉴패러다임센터 소장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작업장 질과 삶의 질 함께 높여야”


    임직원 부품 취급하는 ‘야수 경영’은 가라!
    인간존중 경영 방식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을 도와주는 기관으로 뉴패러다임센터가 있다. 2004년 3월 출범한 정부 출연기관이다. 지난해 10월 소장으로 취임한 정인수 박사를 만났다.

    ▼ ‘뉴패러다임센터’란 어떤 목적으로 지은 이름인가.

    “글자 그대로 작업장의 축(軸)을 새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밑바탕 철학은 인간존중 경영이다. 뉴패러다임센터는 이 혁신책을 한국 기업에 보급하는 선봉장 노릇을 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아 선진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이 경제성장의 가속도를 유지하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작업장 인력의 질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여나가야 한다.”

    ▼ 어떤 식으로 기업들을 돕는가.

    “컨설팅을 해주는 방식이다. 정부 출연기관이므로 컨설팅 비용이 무료다. 설립된 지 만 4년이 지나 노하우가 축적됐다.”

    ▼ 지금까지의 성과는?

    “뉴패러다임센터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기업들에서 일자리가 평균 11% 늘어났다. 노동부가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외부용역을 통해 컨설팅 이전과 이후를 비교 평가한 결과 기업경쟁력 효과, 지식근로자 양성 경쟁력 등 8개 항목에서 긍정성 지표가 7.7%에서 57.1%로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 대상 업체 숫자는?

    “작업장 혁신과 평생학습체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기업들과 꾸준히 맺어왔다. 지난해 10월 MOU 체결 건수가 200건을 돌파했다. 연평균 70여 업체를 도운 셈이다.”

    ▼ 향후 활동 방향은?

    “지식정보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작업장에서 선진 시스템을 구현하는 선구자 노릇을 하겠다. 노사관계 자문, 직무급 비중을 높이는 임금체계 컨설팅,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자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인간존중 업체들, 각 업계 1위

    인간존중 경영에 대한 경영학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아무리 그 가치가 중요하다지만 이를 실천하는 기업이 나쁜 성과를 낸다면 문제 아니겠는가. 대다수 학자는 기업 경영 현실에서 인간존중 경영은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성공한 기업의 특징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제품, 공정, 유통채널 등 하드웨어는 경쟁업체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지만 애사심이 강하고 높은 지식을 갖춘 임직원은 쉽게 구하기 어렵다. 신유근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간존중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성공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지어주는 것은 그들이 보유한 사람들의 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중심 경영 실현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저서를 낸 연세대 양혁승 교수(경영학)는 이 책의 맺음말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처럼 사람중심 경영이 한 조직 안에서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사람중심 경영에 대한 확신과 실천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이 종전의 시스템을 대체하고 자리 잡는 과정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중심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기는 분명 쉽지 않다. 일단 안정 궤도에 이르면 다른 조직들이 쉽게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만큼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누린다. 경쟁우위 확보는 누구나 하는 방식을 뒤따라가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남이 하기 어려워하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차별성을 확보할 때 그것을 통해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인사조직학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학자인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조직이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존중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어떤 기업이 경쟁업체에 비해 더 높은 성과와 수익을 내려면 낮은 원가, 더 좋은 품질, 고객만족 등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업 구성원을 최우선으로 여김으로써 그들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에 온 페퍼 교수는 한국의 일부 기업들이 인간존중 경영방식을 도입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미국에서는 인적자원관리를 잘하는 항공사, 자동차회사,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모두 실제로 시장점유율에서 선두를 달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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