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쉘부르에는 우산이 없다, 재처리공장이 있다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05-08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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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쉘부르에서 아주 가까운 라아그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장이 있다. 1급 방산업체 이상으로 보안이 철저한 이 공장을 방문해 재처리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 이러한 프랑스로부터 일본은 재처리공장과 MOX연료 공장 일습을 수입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 한국은 사문화한 비핵화 선언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아레바 사의 라아그 재처리 공장 전경. UP-2와 UP-3으로 불리는 두 개의 재처리 공장에서 연간 1700여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다.

    아주 긴 여행이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꼬박 12시간을 날아 프랑스 파리의 드골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렌터카 사무실로 찾아가 차를 빌리는 데 두 시간이 지나갔다. 이후 다섯 시간을 달려 영국을 마주 보고 있다는 해변가의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아주 짧은 불어 실력으로 주위 푯말을 읽어보니 ‘쉘부르’가 아닌가.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이 된 지역이 이곳이라는 말인가? ‘신동아’ 4월호 마감을 끝내고 바로 출국했기에 방문지 정보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이미 사위는 어두워졌고 냉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매서워 더 이상 둘러보지 못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가장 좋다는, 하지만 ‘시골 냄새’ 가득한 호텔 로비에 들어선 것인데, 한켠에 판매용인지 장식용인지 구분되지 않는 작은 진열장 안에 꽂혀 있는 분홍빛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진짜로 쉘부르에 온 모양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크 드미 감독이 만든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년작)의 헤로인(heroine) 카트린 드뇌브는 우산 집 외동딸 주느비에브 역을 맡았다. 사랑만큼 강력한 묘약은 없다. 주느비에브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정비공인 기(니노 카스텔누오보 분)에게 빠져버렸다. 비 오는 날 두 사람은 그들만의 공간인 ‘우산 속’에서 사랑을 흡입한다.

    막막한 아쉬움, 쉘부르의 우산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프랑스는 1996년까지 국민 개병제를 유지했다. 성년이 된 건강한 프랑스 남성은 2년간 입대해야 했던 것이다. 사랑에 들뜬 자에게 날아든 징집영장은 강력한 포박과 같다. 영장은 주느비에브에겐 2년간 사랑 중지를, 기에게는 2년간 전투 수행을 명령했다. 영화는 ‘알제리전쟁’을 치르던 1957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전쟁은 1954년 프랑스의 식민지인 북부아프리카의 알제리가 독립을 시도함으로써 일어나, 1962년 드골 대통령이 독립을 인정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1957년은 한창 전쟁이 뜨거울 때였다. 이별을 앞둔 남녀는 절박한 사랑을 나누고, 주느비에브는 기의 아이를 잉태했다.

    그런데 전쟁터로 간 기에게서 오던 소식이 끊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녀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생활고에 직면한 어머니는 딸에게 돈 많은 보석상 카사르와 결혼할 것을 요구한다. 주느비에브가 카사르와의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전투 중 부상해 입원해 있던 기가 1년 5개월 만에 조기 전역해 돌아왔다.

    주느비에브의 결혼 소식을 듣고 상심한 기, 하지만 평정심을 되찾고 자신을 도와준 주인집 딸 아들렌과 결혼한다. 필름은 빠르게 세월을 감아버린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 기가 일하는 주유소로 기를 닮은 아들을 태운 주느비에브의 차가 들어온다. 울컥 하는 심정과 자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주 선 남과 여. 불꽃이 튀지만 심화(心火)를 꺼뜨리고, 각자의 삶으로 고개를 돌린다.

    주느비에브의 차가 떠나고 기가 멍하니 서 있는 주유소로, 시내로 나갔던 기의 아내와 아들이 탄 차가 들어온다…. 막막하고 해답 없는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이 영화의 플롯이다. 아~ 옛날이여! 쇳소리가 실린 듯한 쉘부르의 우산 배경음악 선율이 뇌리를 비집고 지나간다.

    그러나 쉘부르에 왔다는 흥취는 느낄 수 없었다.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한국 시각으로 맞춰져 있는 손목시계 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프랑스로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아침 6시였으니 24시간 만에 등을 붙이게 된 것이다. 정말 고단한 여행이었다.

    프랑스 최초 핵잠수함 르두타블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조선산업이 번창했던 쉘부르는 프랑스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르두타블을 건조한 곳이다. 퇴역해 쉘부르 해양박물관 앞에 전시된 르두타블 핵추진 잠수함.

    다음날 새벽 시차 때문에 일찍 눈이 뜨였기에 으스름을 무릅쓰고 사진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호텔 옆에는 요트 전용부두가 있었다. 그 부두 끝에는 방파제 구실을 하는 안벽이 깊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자 커다란 카페리 두 척이 휘황한 불빛을 뿌리며 더 큰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이곳은 서쪽으로 바다를 면한 곳이기에 육지에서 해가 뜬다.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카페리 위의 구름이 붉은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잘 찍어보려고 나아가는데, 난간을 두른 거대한 도크(Dock) 위로 시커먼 것이 삐죽이 솟아 있었다. 이게 뭔가?

    눈여겨 살펴보니 마스트에 ‘르 르두타블(le Redoutable·몹시 두렵게 하는)’이라고 써놓은, 프랑스의 핵추진 잠수함이 아닌가. 쉘부르는 조선업이 번창했던 곳이다. 1963년 프랑스 해군은 쉘부르 조선소에 프랑스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주문했다. 그리고 1967년 진수해 1971년 실전배치한 것이 이 잠수함이다.

    르두타블(9000여t급)을 건조할 때 프랑스 해군은 다탄두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된 차기 르두타블을 설계하게 했다. 차기 르두타블은 5척 건조됐다. 그런데 지금은 5번함까지는 퇴역하고 6번함인 렝플렉시블(L´enflexible·불굴의)함만 실전 운용되고 있다.

    퇴역하는 르두타블급을 대체하기 위해 건조한 전략 핵잠수함이, 신형 다탄두 탄도미사일인 M-45를 탑재하는 ‘트리옹팡(Le Triompahant·승리)’급 4척이다. 프랑스가 자력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르두타블을 쉘부르의 새벽에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잠수함은 가상 적국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지붕을 씌운 조선소에서 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크 뒤쪽에 지붕을 씌운 조선소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해양 박물관으로 개조됐다는데,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손님은 거의 없는 듯했다.

    어젯밤에는 쉘부르의 우산에 취하고, 오늘 새벽엔 르두타블과의 조우로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밝아오는 아침을 맞았다. 이제부터는 보다 큰 것을 만나야 한다. 시차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는데 잠에 빠져들면 안 된다. 단전에 힘을 준 기자는 렌터카에 올라 서쪽으로 달려갔다.

    쉘부르에서 30여㎞쯤 떨어진 곳에 ‘라아그 곶(串)’이 있다. 쉘부르에서 라아그(la Hague) 곶 사이는 영국을 향해 불쑥 솟은 코탱탕(Cotentin) 반도인데(노르망디 반도로 불리기도 한다), 이 반도 끝에 송곳처럼 바다를 찌르고 있는 라아그 곶이 있다. 라아그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원자력 회사 아레바(AREVA)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이 있다.

    “기자가 직접 사진 찍을 순 없다”

    이 공장은 방위산업체 뺨치는 1급 보안시설이다. 오전 9시를 막 넘긴 시각 공장 정문에 이르자, 프랑스 국기와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였다. 기자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정문에서는 보안요원이 출입하려는 차량을 샅샅이 검색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자가 탄 차량은 들이지 않고 정문 밖에 주차하도록 했다. 잠시 후 아레바에서 나온 관계자들이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은 아레바에서 찍어줄 테니 가져온 사진기는 영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원자로에서 때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플루토늄은 핵연료뿐만 아니라 핵폭탄도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재처리는 항상 예민한 주제가 된다. 이렇게 예민한 시설을 보러온 기자에게 아레바 측은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브리핑 룸으로 안내한 아레바 측은 재처리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우라늄에는 우라늄 235와 우라늄 238이 있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우라늄 238의 비율이 99.3% 정도이고, 우라늄 235의 비율은 0.7% 정도다. 중요한 것은 0.7% 인 우라늄 235이다. 우라늄 235가 바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아레바 재처리 공장을 사찰하던 IAEA의 카메라 시설. 투명한 운영 때문에 지금은 가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핵연료는 0.7%인 우라늄 235의 농도를 3~5%로 높인 것이고, 핵폭탄(원자폭탄)은 90% 정도로 끌어올린 것이다. 우라늄 235의 비율을 90%대로 끌어올린 고농축 우라늄은, 일정한 양(量)이 되면 바로 ‘폭발’이라는 핵분열에 들어간다.

    핵분열이 시작되는 일정한 양을 ‘임계 질량(臨界質量)’이라고 한다. 핵폭탄은, 고농축 우라늄을 임계질량 이하로 여러 개 만들어놓았다가 사용할 때 합쳐줌으로써 폭발(핵분열)시킨다. 여러 개로 나눠놓은 고농축 우라늄을 합치려면, 작지만 정교한 폭발을 일으켜 이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줘야 한다. 이 정교한 폭발을 ‘기폭(起爆)’이라고 한다.

    핵폭탄이 적국 상공에 도달했을 때 정교한 기폭을 일으킬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것이 매우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좋은 기폭장치는 1000여 차례 실험을 해봐야 만들 수 있다는데, 북핵 문제가 한창일 때 언론은 “북한이 70여 차례 이상 기폭 실험을 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핵연료는 3~5%로 저농축한 것이기에 바로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 핵연료는 원자로에 장전하고 난 다음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야 비로소 핵분열에 들어간다. 인위적인 조작이란 중성자를 쏴, 우라늄 235를 때려주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쏘아준 중성자를 맞은 우라늄 235는 쪼개지면서 큰 에너지를 내고 자신이 갖고 있던 중성자를 쏟아낸다.

    이 중성자가 쏘아준 중성자와 함께 핵연료 안을 돌아다니다 다른 우라늄 235를 때리면 다시 큰 에너지와 함께 중성자가 쏟아져 나온다. 원자로는 우라늄 235가 핵분열을 할 때 발생시키는 에너지로 물을 끓이고, 이 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대용량의 전기를 생산한다.

    플루토늄 생성 원리

    가동에 들어간 핵연료에서는 중성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중성자가 많아지면 핵분열 반응이 많아져 원자로가 과열된다. 원자로는 일정한 출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과열을 막아야 한다. 과열을 막기 위해 원자로 조종사가 사용하는 장치가 제어봉(制御棒)이다. 제어봉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중성자를 흡수하는 물질을 담은 막대기다.

    중성자를 흡수하는 물질에는 흑연과 경수, 중수 등이 있는데, 이들은 핵분열 속도를 줄이는 데 쓰인다고 하여 ‘감속재(減速材)’로 통칭된다. 원자로는 무엇을 감속재로 썼느냐에 따라 종류가 나뉘기도 한다. 흑연을 감속재로 채택했으면 흑연(감속)로, 경수를 사용하면 경수로, 중수를 쓰면 중수로가 되는 것이다.

    흑연감속로는 구소련에서 많이 개발되었다. 흑연은 중성자를 붙잡는 능력이 탁월하나 ‘불이 붙기 쉽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원자로가 많이 과열된 상태에서 흑연 제어봉을 집어넣으면, 불이 붙어 타버린다. 이렇게 되면 중성자를 흡수하지 못해 원자로는 더욱 과열돼 녹아내린다. 1986년 구(舊)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반면 자본주의권에서는 경수로와 중수로를 많이 제작했다. 경수(輕水)는 H₂O로 적는 일반적인 물이다. 중수(重水)는 일반적인 수소(H)보다 두 배 정도 무거운 수소 2개에 산소 하나를 결합시켜 만든 물이다. 중수는 경수보다 높은 온도에서 끓고, 낮은 온도에서 어는 것이 특징인데, 화학식은 D₂O로 적는다. 경수와 중수는 타지 않기에 흑연감속로보다 안전성이 훨씬 좋다.

    화덕에서 다 타고 나온 연탄재에는 더 이상 탈 것이 없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에는 태울 수 있는 것이 있다. 핵연료 안에서 중성자는, 97%를 차지하는 우라늄 238도 때린다. 이때 대부분의 우라늄 238은 중성자를 튕겨내나 소수는 중성자를 붙잡아 플루토늄으로 변모한다.

    이 플루토늄을 추출해 90%대로 농축하면 ‘플루토늄탄’이라는 핵폭탄이 만들어진다. 플루토늄탄은 우라늄 원광(原鑛)을 고농축해서 만드는 ‘우라늄탄’보다 훨씬 쉽게 제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처리는 항상 예민한 주제가 된다.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기차 화차에 실려 온 110t 무게의 플라스크. 안에는 6t 정도의 사용후핵연료가 담겨 있다.

    많은 플루토늄을 얻으려면 플루토늄이 많이 생기는 조건으로 원자로를 가동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으로 가동할 수 있는 원자로는 대개 연구용 원자로다. 따라서 대부분의 핵보유국은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는다. 1990년대 북한도 영변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를 이용해 플루토늄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발전용 원자로는 전기 생산을 주목적으로 하기에 플루토늄이 많이 생기는 쪽으로 가동할 수 없다. 발전용으로 사용된 핵연료에서는 1% 정도의 우라늄 238이 플루토늄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발전용 핵연료의 덩치는 워낙 크기에 1%에 불과해도 상당히 많은 양이 된다.

    아레바의 재처리 공장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가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90~100기의 원전에서 나오는 1700여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다. 프랑스가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59기이니, 이 공장은 외국에서 보내온 사용후핵연료도 재처리한다.

    아레바 측의 설명에 따르면 1966년 자그마한 시설로 개장한 이 공장은 이후 시설을 확충해 지금까지 2만3600여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했다고 한다. 이 중 프랑스에서 온 것이 1만3410t(57%)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독일에서 온 5479t, 일본에서 온 2944t, 스위스에서 온 766t, 벨기에에서 온 672t, 네덜란드에서 온 336t이다.

    시속 160km로 충돌해도 파손 안 돼

    재처리 설명을 끝낸 아레바 측은 흰색 작업복(방호복은 아니다)으로 갈아입어 달라고 했다. 환복(換服)을 마치자, 간단한 방사선 측정기를 작업복에 부착시키고 재처리 공장 안으로 데려갔다. 공장 내부로 이동하면서 강조한 것은 “이 공장은 규모 8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였다. 이는 원전과 거의 똑같은 조건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다.

    첫 번째로 보여준 것은 기차 화차에 실려 온 거대한 플라스크(Flask, 容器)였다. 플라스크 안에는 원전에서 보낸 사용후핵연료가 담겨 있다. 사용후핵연료에서는 강한 방사선이 나오므로 플라스크에는 이를 차단하는 시설이 탑재돼 있다. 플라스크에 넣을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은 6t 정도이나, 방사선 차폐 장치 때문에 플라스크의 무게는 110t에 이른다.

    사용후핵연료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곳에 도착한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은 주로 기차로 보내고 일본은 배로 보낸다. 그러나 일본에서 보낸 것도 마지막에는 기차에 실려 이곳으로 온다. 그러나 일부는 30~40개 바퀴를 달고 있는 대형 트레일러에 끌려오기도 한다.

    한 번에 6t씩 1700여t을 수송하려면, 1년에 300회 정도 기차나 트레일러가 이곳에 들어와야 한다. 1966년부터 치면 40년 이상, 쉘부르와 라아그의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를 싣고 이동하는 화차와 트레일러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 주민들이 반핵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는 소식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플라스크 운반시 가장 염려되는 것은 사고로 인해 플라스크가 파손되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스크는 시속 160㎞로 달리다 충돌해도 파손되지 않도록 제작한다고 한다. 아레바 측은 “어떠한 사고가 일어나도 사용후핵연료는 플라스크 밖으로 튀어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화덕에서 금방 꺼낸 연탄재가 뜨겁듯,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도 매우 뜨겁다. 따라서 원전에서 막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3~4년 수조(水槽)에 넣어 냉각시켰다가 이곳으로 가져온다. 재처리의 첫 공정은 화차 등에 실려 온 플라스크를 열어 사용후핵연료를 꺼내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강한 방사선을 쏘기에 아무 데서나 꺼낼 수 없다. 방사선을 완전 차폐하는 곳에서 플라스크를 열어야 한다. 플라스크에 담아온 사용후핵연료의 정확한 이름은 ‘핵연료 다발’이다. 핵연료 다발은 나라마다, 원자로의 노형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한국형 경수로의 핵연료 다발은 지름 1㎝, 길이 4m 정도의 핵연료봉 256~289개로 구성돼 있다. 핵연료봉 안에 핵연료가 담겨 있는 담배 필터 크기의 펠렛(pellet) 370여 개가 들어 있다.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안전유리창으로 들여다본 무인공정실 내부. 로봇팔이 플라스크를 열어 연료봉을 꺼낸다(왼쪽). 안전유리창으로 무인공정실을 들여다보는 취재진(가운데). 무인공정실에서 뽑아낸 연료봉을 담가두는 수조(오른쪽).

    한국형 경수로의 핵연료 다발의 무게는 655kg 정도다. 따라서 한국형 경수로의 핵연료 다발이라면 플라스크에 9개 정도 넣을 수 있다. 아레바는 플라스크를 무인실에 넣어 뚜껑을 연다. 무인실에는 1.2m 두께의 안전유리창이 설치돼 있었다.

    안전유리창으로 들여다본 무인실 안에서는 로봇팔이 플라스크를 열어 핵연료봉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아레바 측은 “이 방은 22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단 한 번도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2년 전에 만든 로봇팔이 단 한 번도 고장을 내지 않고 있다는 자랑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야

    과거 이 무인실에는 IAEA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따라서 핵연료봉도 빼돌릴 수 없어, 지금은 작동을 멈췄다고 한다. 아레바 측은 “투명하고 정직한 운영 덕택에 불필요한 분야에까지 뻗어 있던 IAEA의 사찰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로봇팔이 뽑아낸 핵연료봉은 바로 물이 담긴 수조로 옮겨진다. 수조는 핵연료봉을 다시 냉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냉각된 핵연료봉은 무인 절단실(切斷室)로 옮겨져 3.5㎝ 길이로 잘린다. 절단을 하기 전 아레바 측은 핵연료봉 안에 있는 핵연료 양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것인지도 또 한 번 확인한다.

    재처리의 핵심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다. A를 재처리하면 반드시 A-1이 나와야지, B-1이나 C-1이 추출되면 안 된다. B-1이나 C-1이 나오면 재처리를 의뢰한 국가나 회사는 바로 이의를 제기하고, IAEA는 아레바가 사용후핵연료를 빼돌렸다고 보고 조사에 들어간다.

    잘린 핵연료봉에서는 펠렛과 펠렛 안에 있는 핵연료가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서부터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기에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것인지 특정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절단 작업에 들어간다.

    펠렛 밖으로 나온 핵연료는 더욱 강한 방사선을 쏘므로 절단 작업도 무인실에서 한다. 절단된 핵연료봉과 펠렛 조각은 따로 추출하고, 절단되지 않은 펠렛은 질산에 담가 녹인 후 금속 성분으로 분리해낸다. 이러한 금속에는 강한 방사선을 쏘는 방사성 물질이 붙어 있으므로 이를 제거하는 제염(除染)작업을 몇 차례 한다.

    그리고 방사선 차폐 능력이 있는 컨테이너에 넣고 압축기로 눌러 금속 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금속에서 떼어낸 방사성 물질은 고온으로 녹인 액체 유리를 부어 식히는데, 유리가 굳으면 방사성 물질은 유리 안에 갇힌다. 이를 ‘유리화’라고 한다.

    금속 성분을 제거한 질산액에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그리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만 남는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폐기물 분리다. 이 폐기물은 지독한 방사선을 쏘므로 금속 덩어리를 넣은 컨테이너보다 차폐 능력이 훨씬 더 좋은 캐니스터(Canister, 容器)에 넣고 액체 유리를 부어 유리화한다. 그리고 생명체가 사는 공간과 영원히 분리되는 특수한 공간에 넣어놓는다.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갖고 있으므로 두세 차례 반감기를 넘기면 내쏘는 방사선이 크게 약해진다. 그러나 지독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상당히 긴 편이라 생명체와 접촉할 수 없는 곳에 넣어 영구 처분해야 한다. 이러한 방사성 물질에서는 상당한 열이 나온다. 따라서 캐니스터는 1100℃의 열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재질로 제작한다.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핵연료를 담았던 용기인 핵연료봉과 펠렛은 따로 추출해 몇 차례 제염 작업을 한 후 캐니스터에 넣어 금속 덩어리로 압착한 다음 밀봉 보관한다.

    아레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추출된 고준위 폐기물이 담긴 캐니스터를 의뢰자 측에 돌려준다. 유일한 예외는 프랑스이다.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프랑스를 포함해 전세계 어떤 나라도 아직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임시 저장만 하고 있는데, 임시 저장 장소가 바로 이 공장이다.

    아레바 측은 ‘핵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임시 저장 장소도 보여주었다. 핵무덤에 들어가는데도 그들은 “위험하지 않다”며 별도의 방호복을 제공하지 않았다. 핵무덤은 창고형 건물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텅 빈 공간이 나왔다. 무덤은 바닥에 있었다. 바닥엔 C-04, C-05 식으로 번호를 붙인 맨홀 뚜껑이 있는데 이 뚜껑 밑 12m 깊이의 구멍에 고준위 폐기물을 담은 용기를 9층으로 쌓고, 그 위에 2m 두께로 콘크리트를 쳤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 가보면 성당 바닥에 성인의 묘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 바닥에 깔린 거대한 돌에 십자가와 함께 ‘성인 아무개가 묻혔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핵무덤의 맨홀 뚜껑을 밟으면서 떠올린 것은 성당 바닥의 묘지였다. 아레바 측은 “이곳에는 모두 1만2000여 개의 캐니스터를 묻을 수 있는데 현재는 3500여 개가 묻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경수로 1기에서는 1년에 26t 정도의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되는데 이를 재처리하면 18개의 캐니스터에 들어가는 고준위 폐기물이 생산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맨홀 두 개에 한국형 경수로 1기에서 나오는 1년치 고준위 폐기물을 묻을 수 있다.

    南佛 마쿨에서 MOX 연료 제작

    금속을 제거한 사용후핵연료에서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분리한다. 이 작업에서 핵심은 플루토늄 추출이다. 추출한 플루토늄은 가루 상태로 전환돼 3kg 정도의 무게를 가진 강철통에 담긴다. 그리고 이 강철통 5개를 특수 제작한 캐니스터에 넣고 밀봉해 의뢰자가 찾아갈 때까지 보관한다.

    이 플루토늄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의뢰자가 결정할 사항인데 대개는 다시 핵연료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플루토늄을 이용해 만든 핵연료를 ‘목스(MOX: Mixed Oxide 혼합 산화) 연료’라고 한다. 남프랑스의 아비뇽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 교황이 유수된 곳으로 유명한데 아비뇽 부근에 마쿨(Marcoule)이라는 곳이 있다. 마쿨은 와인 생산지와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프랑스의 중요한 원자력 시설이 있다.

    프랑스는 1956년부터 마쿨에 플루토늄을 이용하는 다양한 실험 시설을 지어 운영해오고 있다. 이곳에 있는 대표적인 시설이 플루토늄을 많이 생성해 ‘꿈의 원자로’로 불리지만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아 아직도 개발 중에 있는 고속증식로의 실증로(實證爐)다. 실증로란 실험 단계에 있는 원자로로 현재 실증용 고속증식로를 가동하는 나라는 프랑스와 일본뿐이다.

    프랑스는 1970년대 마쿨에 세계 최초로 실증용 고속증식로를 지어 다양한 실험을 반복해오고 있다. 그리고 1995년 이곳에 MOX 연료 공장을 지었다. 프랑스는 자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을 이곳으로 보내 MOX 연료를 제작한다. 아레바 측은 “외국도 요구를 하면 이곳으로 플루토늄을 보내 MOX연료를 제조해줄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 MOX연료 제조를 의뢰한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재처리한 사용후핵연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우라늄 238이다. 이 우라늄을 질산액에 녹아 있는 액체 상태에서 특수 용기에 넣어 의뢰자에게 보낸다. 재처리로 얻은 우라늄 238에는 강한 방사선을 쏘는 방사성 물질이 묻어 있다. 재처리로 얻은 우라늄 238에서 강한 방사선을 쏘는 물질을 제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재처리로 얻은 우라늄 238의 재사용은 비경제적이라고 한다.

    라아그와 쉘부르는 대서양에 면해 있어 습하고 찬비가 자주 내린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 제작될 무렵 대부분의 프랑스 근로자들은 마이카를 갖지 못했다. 따라서 출근할 때마다 항상 우산을 들고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마이카를 갖고 있기에 우산을 들고 걷는 사람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세계 조선업의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쉘부르 조선소의 망치 소리는 더는 울리지 않게 되었다. 쉘부르에 르두타블 잠수함이 전시되면서 쉘부르의 우산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쉘부르의 조선소가 맡던 지역경제는 라아그의 재처리 공장이 이끌게 되었다.

    프랑스 라아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장 현지 르포

    재처리 작업으로 추출한 플루토늄을 강철통에 넣는 공정(위). 오른쪽으로 고준위 폐기물을 담은 캐니스터를 9층으로 집어넣은 맨홀. ‘핵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맨홀 두 개에 1기의 원전에서 나온 1년치 고준위 폐기물이 들어간다.

    한때 세계 원전 시장을 선도한 것은 미국이다. 그러나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를 계기로 미국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중지해 원자력 산업이 크게 후퇴했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선두주자였고 그 뒤를 프랑스와 독일이 추격했다. 그런데 독일은 1980년대 녹색당이 공동여당으로 정권에 참여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시켜 역시 후퇴하고 말았다. 영국도 기술력이 처져 물러앉았다.

    반면 프랑스는 원전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프랑스의 아레바는 영국의 BNFL과 재처리 분야에서 각축했으나 지금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태다. 이러한 아레바를 상대로 재처리 기술을 도입한 것이 일본이다.

    1967년 일본의 사토(佐藤) 총리는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비핵3원칙’을 선언했다. 이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던 시절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은 미 7함대의 모항인 일본의 요코스카(橫須賀)에 배치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핵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함이 배치돼 있다.

    한국은 ‘양날의 검’ 휘두를 것인가

    ‘비핵3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던 시절 일본에서는 재처리를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발전용 원자력은 비핵3원칙이 선포되기 전부터 있던 것이라 비핵3원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재처리를 추진했다. 처음에는 아레바 등에 일본산 사용후핵연료를 보내 재처리를 맡기다, 아레바의 기술을 도입해 일본 본토 최북단의 롯카쇼무라(六ケ所村)에 재처리 공장과 MOX연료 공장을 지었다.

    두 공장은 현재 실험가동 중인데 조만간 정식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본에 지은 재처리 공장은 연간 800t 정도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다. 800t은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최소한의 규모다. 800t은 50기 정도의 원전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양인데, 현재 일본은 55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20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고 6기는 건설 중, 2기는 계획 중에 있다. 2016년이 되면 한국은 28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2020년이 되면 30기 이상을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후발 원전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원전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30기만 되도 연간 800t 가량의 사용후핵연료가 쏟아진다. 이 때문에 한국도 2020년을 목표로 재처리 공장 건설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한국은 1991년 북한과 비핵화공동선언을 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 선언 3항에는 ‘남북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깨져버렸다. 그리고 이 선언 2항은 ‘남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돼 있는데, MOX연료를 만들기 위한 재처리는 평화 목적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이 MOX연료를 만들기 위해 재처리를 한다면 주변국은 양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세계 유일의 피폭(被爆) 국가로 비핵 3원칙을 천명했던 일본이 재처리 공장을 지었듯이, 한국도 재처리 공장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레바 사의 자크 베스네누 부사장은 “한국이 원할 경우 아레바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재처리 공장을 큰 규모로 지어 라아그 재처리공장처럼 다른 나라의 사용후핵연료를 위탁 재처리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80% 정도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치솟아도 에너지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 한국은 35% 정도를 원자력에 의존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진입한 지금, 한국은 원전 건설을 독려하고 재처리를 결정하는 ‘양날의 검’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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