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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40주년 특집

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 정재영 철학 저술가 seoulforum@naver.com

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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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68운동 당시 시위대는 혁명가 체 게바라(사진)를 연호했다.

“1936년 이후 나는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했다. 내 아버지도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했다. 이제 나는 TV와 냉장고, 그리고 폭스바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보스와는 타협하지 말라. 보스를 추방하라.”

그렇다. 68운동에서는 거룩한 이념만 없는 것이 아니라, 빵을 달라는 눈물겨운 이야기도 없다. 그래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는 1789년 대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쓴웃음 자아내는 이야기도, 1848년 시민혁명을 시대 배경으로 한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처럼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가슴 아픈 사연도 1968년의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68시위의 불을 점화한 것은 빵이 아니었다. 시위의 불씨를 지핀 것은 엉뚱하게도 남녀 성별로 나눠진 학생 기숙사를 없애라는 요구였다.

철부지들. 이건 미쳤군. 기성세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낭테르 대학은 68운동 이후 ‘미친 낭테르(Nanterre, la folle)’라는 별칭이 붙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들과 배부른 노동자들이 어우러진 난장판, 이것이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68운동이었다.

시위대는 거꾸로 생각했다. 정말 미친 것은 낡은 세계의 틀 속에 갇혀, 그 하찮은 체제 가치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성세대 아닌가. 그래서 시위대는 외쳤다. “나이 서른이 넘은 사람과는 이야기하지도 말라.”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시위대는 “체”(체 게바라)와 “마오”(마오쩌둥)를 연호했다. “체 체 체” “마오 마오 마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남미 혁명에 온몸을 던진 체 게바라, 중국 문화혁명을 기획한 마오쩌둥 등이 68운동의 아이콘이었다. ‘빨강 낭테르(Nanterre, la rouge)’라는 또 하나의 형용어가 낭테르 대학에 붙게 됐다. 여기서 빨강은 공산주의를 뜻한다.



68운동이 좌파혁명의 색조를 띤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좌파 이데올로기를 신념체계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좌파가 가진 저항정신을 사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마치 체 게바라의 형형한 눈빛과 불꽃같은 이미지가 좋아서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요즈음 젊은이들처럼.

68시위에는 이런 구호도 있다. “공산당을 떠날 때는 당신이 공산당에 왔을 때처럼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 뒤 떠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루초 경향의 마르크시스트다.” 전자는 공산당(코뮤니스트 파티)을 별장 파티에 비유해서 패러디한 것이고, 후자는 공산당 선언을 한 카를 마르크스가 아닌 뉴욕 출신의 코미디언 그루초 마르크스를 등장시켜 마르크시즘을 비튼 것이다. 시위 구호가 아니라 마치 한바탕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68운동에 우호적 시각을 가진 앙드레 글뤼크만은 68운동을 신좌파운동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시위대는 낡은 세계에 대한 ‘이의제기’의 표시로 돌멩이를 던졌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문제는 그 돌멩이가 정확하게 낡은 세계의 무엇을 겨냥했는가 하는 점이다.

‘무늬만 민주주의’ 겨냥

모든 사회운동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68운동도 예외가 아니다. 68운동같이 세계를 한 바퀴 돈 운동이라면 더 복합적이다. 단일 코드로 움직인 사회운동이었다면 세계적 반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68운동을 권위주의에 저항한 반정부운동으로 해석하는 흐름이 있다. 사실이다. 시위대의 돌멩이는 권위주의적 드골 정부를 겨냥했다. 프랑스의 전쟁 영웅 드골은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드골은 이듬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했다.

이런 해석은 독일과 미국의 68운동에서 더 설득력을 갖는다.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는 독일 68운동은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독일에서는 나치 독일 잔재의 청산, 베트남전쟁 반대, 정부 통제의 언론 조작 철폐, 대학 개혁 등이 시위의 전면에 강하게 부각됐다. 미국에서는 베트남 반전 운동과 함께 그해 4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로 대학 캠퍼스가 이미 들끓고 있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 뜨거운 가마솥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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