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대한민국은 부조(扶助)공화국

체면치레? ‘원금 非보장 적금’ ? 경조사 쳇바퀴 도는 ‘봉투 인생’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8-05-09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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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조금에 등허리가 휜다는 얘기가 많지만, 부조 문화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주는 만큼 받는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에게 부조금은 준조세나 다름없다. 직장인들은 아예 다달이 납부하는 세금쯤으로 여긴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과거 정치인에게 경조사 부조는 지역구 관리의 기본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인의 부조 실태.
    대한민국은 부조(扶助)공화국
    대한민국 성인의 대다수가 원금이 ‘절대’ 보장되지 않는 ‘적금’을 들고 있다. 바로 부조(扶助)다. 부조의 사전적 의미는 잔칫집이나 상가(喪家) 등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 도와주는 것, 혹은 그 돈과 물건이다. 부조는 크게 조의금(弔意金, 남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내는 돈)과 축의금(祝儀金, 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내는 돈)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결혼식에서 국수가 부조 노릇을 했다고 한다. 혼주는 하객이 가져온 국수를 삶은 후 뜨거운 육수와 갖은 고명을 얹어 손님을 대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금이 국수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런 풍습의 흔적은 관용적 표현에 남아 있다. 결혼 적령기 남녀에게 건네는 “국수 좀 먹여주세요”라는 인사말에는 “빨리 결혼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부조금은 준조세나 다름없다. 직장인들은 부조금을 아예 다달이 납부하는 세금쯤으로 여긴다. 직장생활 20년차에 접어든 모 대학병원 진료협력팀장 박모(43)씨는 자신의 용돈으로 직장 내 부조금을 충당한다. 타부서 직원의 경조사나 적당히 예를 표시하는 정도의 관계라면 3만원을, 같은 부서이거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5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10만원을 부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경우 1만원짜리 10장을 준비한다.

    부조금 액수는 물가가 오르면서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껑충 뛰었다. 1998년 한국소비자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인당 평균 경조사 금액이 2만8800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5만원이 대세다.

    “어차피 나도 한 번은 받으니까”



    부조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의 지갑을 홀쭉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는 경조사비 문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취업포털 파인드잡이 지난해 12월 리서치 전문기관 엠브레인과 함께 직장인 1354명을 대상으로 ‘경조사비를 내는 문화에 찬성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6.3%의 직장인이 ‘찬성’ 의견을 밝혔다.

    경조사비 지출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전통적인 품앗이를 대신하는 현대적인 문화라서’라는 답변이 40.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어차피 나도 한 번은 받으니까’(25.1%)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 설문조사에서 ‘경조사비 문화에는 찬성하지만 액수는 축소됐으면 한다’는 응답이 33.1%에 달해 한꺼번에 경조사가 몰리면 부담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 부산 동래구 모 병원 영안실. 시어머니상을 당한 김모씨와 고모씨가 자정이 넘어 조문객의 발길이 끊어지자 부조함에서 봉투를 꺼낸 후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동서 간인 이들은 봉투 속에 담긴 현금을 헤아린 후 겉봉투에 금액을 기재했다. 부조금은 커다란 가방에 차곡차곡 쌓였다.

    손아랫동서인 김씨는 고씨에게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망정이지, 퇴사한 뒤라면 부조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겠냐”면서 “남편이 20년 넘게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뿌린 씨앗을 거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씨도 “남편이 현직에 있을 때 상을 당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남편들도 ‘직장 그만두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싶었다.

    대한민국은 부조(扶助)공화국

    결혼식장에 몰려든 하객. 많은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 자식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애쓴다.

    고씨의 남편은 공무원, 김씨의 남편은 대기업 종사자다. 고씨 남편의 직장 동료가 낸 조의금 봉투는 종종 5만원이 담긴 것이 눈에 띄긴 했지만 대체로 3만원짜리였다. 그러나 대기업 중견간부인 김씨 남편의 회사 동료나 지인이 낸 봉투에 든 조의금은 5만원이 기본이고 10만원도 적지 않았다. 3만원이 담긴 봉투는 가뭄에 콩 나듯했다. 김씨는 손윗동서에게 “공무원은 주로 3만원을 (부조)하느냐?”고 물었고, 고씨는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면서 “그마저 부담된다”고 털어놓았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이 경조사비를 가장 내기 싫을 때로는 ‘평소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낼 때’(38.6%)가 꼽혔으며, ‘각종 경조사비 지출이 유난히 많을 때’(25.2%), ‘내가 경조사비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을 때’(16.8%),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낼 때’(12.7%), ‘경조사비를 내는 문화 자체가 싫다’(6.2%)가 뒤를 이었다. 또한 ‘회사 상사의 경조사, 꼭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55.6%가 ‘꼭 참석해 부조를 한다’고 답해 상사의 경조사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이, 우리 보좌관이 결혼하는데 말이야, 집이 없어….”

    국회의원의 이 말 한마디면 산하 유관기관과 관련 기업들이 ‘알아서’ 거액의 축의금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결혼 축의금으로 집 마련”

    “14·15대 국회 당시 몇몇 보좌관은 결혼 때 들어온 축의금으로 집을 마련했다. 16·17대에서는 정치권이 많이 투명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 비서관이 결혼하면 축의금으로 수천만원이 우습게 들어왔다. 국회의원이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아랫사람을 챙기는 기회로 삼았다.”

    17대 국회에서 보좌관을 지낸 김모(43)씨는 “15대 국회 당시 국회의원 후원회를 열면 적게는 몇억원에서 많게는 10억여 원의 후원금이 걷혔다”면서 “국회의원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비서진의 애경사에도 기업들이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국회의원이 자녀 혼사를 치르거나 부모 상을 당할 경우 기업이 적지 않은 돈을 부조했다. 얼마를 했는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데다 거액을 부조한다고 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아 정치인에게 ‘돈’을 쥐어주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몇몇 사례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이 결혼 축의금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국회의원 당사자의 애경사인 경우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 국회의원 C씨는 14대 국회 임기 초 부친상을 당했다. 이른바 ‘끗발 있는’ 상임위에 소속된 데다 당 총재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터라 빈소엔 두툼한 봉투를 든 조문객이 줄을 섰다. 부조금 액수가 몇억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C의원은 14대 국회 임기가 끝날 즈음엔 모친상을 당했다. 부친상 못지않게 부조금이 쌓였다. 주변에서는 C의원을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의원 임기 중에 부모가 모두 사망해 부조금을 두둑이 챙긴 데 대한 부러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부조금 중 가장 큰 액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결혼식 때 축의금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18억여 원이다. 2004년 검찰은 재용씨의 괴자금 167억원의 출처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당시 전씨는 검찰에서 “결혼 축의금 18억여 원을 외조부 이규동씨가 관리해 167억원으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술해 화제가 됐다.

    같은 해 4월28일. 증여세 73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용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는 “결혼 축의금으로 내가 5000만원, 아버지(이규동씨, 작고)가 1억7000만원을 냈다”고 주장했다. 또 곁사돈인 진주 모 병원장 배모씨는 “촌스러운 말일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해서는 표시도 안 날 것 같아 3000만원을 하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고, 배씨의 처남은 1억원을 축의금으로 냈다고 털어놓았다. 또 완산 전씨 종친회장은 4000만원을 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아들 결혼 축의금으로 챙긴 돈이 모두 18억여 원이다. 1987년 12월에 18억원이면 서울 강남에서 132㎡(40평) 아파트 18채를 살 수 있었다. 어찌됐든 전재용씨는 결혼 축의금으로 한밑천 단단히 챙긴 셈이다.

    “현직에 있을 때 딸 치워야…”

    16대 국회 임기가 끝날 무렵. 취재차 이모 의원의 사무실에 갔더니 그가 “요즘 고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 선거 준비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에겐 과년한 딸이 있었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기 전 혼사를 치르고 싶은데 딸이 사귀는 남자와의 결혼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이 의원은 “현직에 있을 때 딸을 치워야(결혼시켜야) 사돈댁에 체면이 서고 자식한테도 도움이 될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어야 부조금이 더 들어올 텐데’라는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이 의원이 임기를 마치기 전 딸의 혼사를 치르고자 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부조금이라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부조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직업군이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이다. 자신의 애경사에 많은 부조금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부조금 때문에 정치 못 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만큼 부조로 나가는 돈도 많았다.

    16대 국회 때 ‘정치관계법’ 개혁을 주도한 오세훈 의원(현 서울시장)의 이름을 딴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정치개혁법)’. 이 법은 정치판의 부조 문화를 단번에 바꿔놓았다. 2004년 3월 여야 합의로 통과된 정치관계법(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중 특히 정치자금법은 후원회 모금행사와 기업후원금을 금지하고, 연간 100만원 이상의 후원금은 익명으로 기부할 수 없도록 해 불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근절에 초점을 맞췄다.

    “예전에는 기업이 관련 법안 개정 등을 청탁하면서 국회의원에게 1억원을 안겨주면 10억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직접 정치자금을 후원하거나 간접 방법인 부조 등을 통해 로비를 했다. 국회의원의 애경사는 보이지 않는 로비 창구였다. 얼마를 부조했는지 외부에 알릴 이유도 없고 쉽게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6·17대 국회에서는 부조 문화가 크게 변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정치개혁법으로 기업이 법에 저촉되지 않고 국회의원에게 돈 갖다 바칠 수 있는 길이 막힌 데다 정경유착 관행이 개선돼 기업인이 후원과 부조에 인색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김 전 보좌관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6월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의 윤모 보좌관이 암으로 사망했는데 법무장관이 화환 하나 보내지 않았다”면서 “17대 이전 국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엔 관련 부처 장관이 국회의원 보좌관의 애경사까지 챙겼다”고 했다.

    과거엔 국회의원은 물론,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상가와 결혼식장에 봉투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다. 그것은 ‘표밭 관리’의 기본이었다. 표를 어느 정도 몰고 다니는 유권자라고 판단되면 부조금과 함께 화환을 덤으로 보냈다. 그래야 유권자에게 욕을 먹지 않는다. 과거 정치인이 ‘뒷돈’을 챙기려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적지 않은 부조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한 정치인의 고백이다.

    ‘오세훈 정치개혁법’의 위력

    이번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전북 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김모(54)씨는 “5년여 동안 지역구 관리를 위해 주말마다 서울에서 내려가 경조사를 챙기는 게 주요 일과였다. 정치개혁법에 따라 부조를 하지 않고 지역구 내 상가와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면서 진심 어린 위로와 축하의 인사말을 건넸는데, 나중에 보니 ‘부조금 한 푼 안 낸 호래자식’이라는 소문이 돌더라”면서 “촌로에게 ‘선거법에 저촉돼 부조를 할 수 없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인은 “오세훈 전 의원의 주도로 정치개혁법이 개정된 이후 국회의원들이 오 전 의원에 대해 ‘패 죽일 놈’이라고까지 악담을 퍼부었다”고 털어놓았다. 법 개정 당시 국회의원의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한 점이 기업후원금을 금지하고 후원금 상한선을 낮춘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통용되던 돈줄을 막아놓은 데 대한 성토였다.

    “처음에는 국회의원 대다수가 정치개혁법에 대해 입에 거품 물고 오세훈 전 의원을 욕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부조나 화환을 보내지 못한다’라면서 상가나 결혼식장을 빈손으로 다니는 데 대해 유권자들이 딴죽을 걸지 않자 ‘이거, 돈 안 들고 편하네’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돈줄뿐 아니라 돈 들어갈 구멍까지 막히자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았던 것이다.”

    이 정치인은 “일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은 법망을 피해 형제 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부조를 하거나 화환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정치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부조금 부담이 사라져 정치 활동 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밝혔다.

    가정생활법률연구소를 운영하는 임양운 변호사는 “부조와 결혼식 청첩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네 청첩은 부모가 ‘혼주’ 자격으로 친인척과 지인에게 돌리는 것이 관례다. 임 변호사는 “결혼식에 하객을 초대하는 주최는 혼주가 아니라 신랑신부여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줬다.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석했다가 가슴 뭉클한 적이 있다. 신랑신부의 친구와 가까운 친인척, 그리고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줄 혼주의 지인 몇 명을 초대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부조금도 받지 않았다. 혼주는 자녀의 결혼식을 세상에 알릴 경우 하객 수가 1000여 명이 넘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만약 자신이 그동안 부조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다거나 뿌린 씨앗을 거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선택이 아름답게 보였다.”

    현금 대신 그림으로

    임 변호사는 “부조가 미풍양속임에는 틀림없지만 현대인의 실생활에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결혼식이 가족과 친구 중심의 조촐한 축제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애경사가 닥칠 경우 많은 사람이 찾아와주기를 바라고 화환과 부조금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장례식장은 서울 강동구 풍납동 아산중앙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다. 약 560㎡(170평) 규모인 이 빈소의 하루 사용료는 420만원. 지난해 8월17일 별세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미망인 변중석 여사의 빈소가 이곳에 마련됐다. 아산중앙병원 장례식장 의전담당 이하나(30)씨는 “20호실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은 부조를 거의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사람과 회사장 또는 학교장일 경우 20호실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20호실은 현대가(家)에서 자주 이용하는 빈소로도 유명하다. 지난 3월23일 사망한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빙모의 빈소도 20호실에 차려졌다. 변 여사와 정 명예회장 빙모상 빈소에서는 조의금을 받지 않았다.

    부조를 꼭 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서양화단의 거장인 고 오승윤(2006년 작고) 교수는 절친한 지인의 자녀가 결혼할 때 자신의 그림을 선물했다. 1974년 전남대 예술대 창설에 참여해 이 학교 교수로 재직한 이후 1980년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화풍을 개척한 오 화백은 10여 년 전 파리 유학시절 인연을 맺은 이모씨의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축의금 대신 한국의 전통색상인 오방정색을 잘 표현한 ‘풍수(風水)’ 시리즈 중 20호 그림 한 점을 선물했다.

    2006년 1월 자살한 오 화백의 20호 그림은 지난해 연말 ‘미술시장’이라는 화랑을 통해 7000만원(호당 350만원)에 팔렸다. 오 화백이 이씨의 딸에게 건넨 작품은 이 그림보다 높게 평가돼 현재 호가가 8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딸은 오 화백으로부터 거액의 부조금을 받은 셈이다.

    오 화백이 세상을 등진 이후 그의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오 화백으로부터 부조금 대신 그림을 선물 받은 지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경조사 때 돈 없는 화가들로부터 현금 대신 그림을 부조받아 나중에 큰돈을 만지게 됐다는 이야기는 화랑가에서 흔히 듣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사라지는 돌반지

    요즘에는 말 그대로 ‘금값이 금값’이라 돌잔치 선물 1순위이던 한 돈짜리 금반지를 구경하기 힘들다.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가 고시한 국내 금 소매 평균가격은 3.75g(1돈)당 13만3000원(4월2일 시세)이다. 예전에는 7만~8만원이면 금반지를 선물할 수 있었지만 10만원으로도 금 한 돈을 살 수 없게 되자 부조처럼 주고받던 돌반지는 자취를 감추고 현금이나 유아용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부 주부들은 예전에 자녀 돌잔치 때 받은 금붙이를 내다 팔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이 경조사비로 지출한 돈은 7조67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 통계청은 지난해 1인 이상 전국 가구의 경조비 지출 규모가 월 평균 3만8901원으로 전년(3만8188원)에 비해 1.9% 늘어났다고 밝혔다. 가구당 연평균 46만7000원을 경조비로 쓴 셈이다.

    반대로 지난해 우리 국민이 결혼·장례 등 자신의 경조사에 지출한 돈은 모두 4조729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구당 월평균 2만4019원으로 연간 28만8000원이다. 경조사 치르는 데 들어가는 돈보다 경조비로 나가는 돈이 3조원가량 많은 셈이다.

    ‘나의 경조사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 좋겠고, 나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부조금은 조금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좋은 계절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들려오고 환절기나 날씨가 싸늘해지면 문상 갈 일이 잦아진다.

    사시사철 부조금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삶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경조사에는 인생의 온갖 희비가 담겨 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경조사의 쳇바퀴 속에서 돌고 돌다 소멸하는 부조인생이 아닐는지.

    ‘나, 결혼 해.’ ‘우리 애 돌잔치야.’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우리 아들(딸)이 결혼한다.’ ‘마누라(남편)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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