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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괴짜들 2

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지휘봉 든 남자와 망치 든 남자의 아름다운 인생 연착륙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yacho@hanmire.com

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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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오가 노리오와 각별한 우정을 나눈 세계적 지휘자 카라얀(왼쪽)과 번스타인.

‘촉탁’이란 타이틀로 첫 인연을 맺었다. 지금 흔히 이야기하는 ‘아르바이트’였으리라. 당시를 떠올리며 노리오는 “꿈을 꿈으로 끝내버리지 않고 현실사회에서 이뤄보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해줄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회상했다.

노리오는 대학을 마치자 독일로 유학, 국립 베를린예술대학 음악학부를 졸업했다. 노리오가 귀국하자 소니의 두 창업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겼다. 그들의 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노리오는 1959년 정식으로 소니 사원이 됐다. 그가 입사한 후에도 한동안 바리톤 가수로 활동한 것으로 미뤄볼 때 ‘대학생’과 ‘촉탁’이던 시절처럼 양다리를 걸치기로 미리 양해가 됐던 모양이다.

그에게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 것은 광고부장과 디자인실장을 겸무하면서였다. 소니라는 브랜드의 초석을 놓는 작업이었다. 이때 그가 이룬 결실이 지금껏 ‘SONY 디자인’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노리오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해(1964)에 불과 서른넷의 나이로 중역(이사) 자리에 오른 이래 승승장구했다. 사장, 회장, 이사회 의장, 명예회장.

노리오가 사장이 된 다음 소니는 잇달아 대형 뉴스를 쏟아냈다. 48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컬럼비아영화사를 매수했는가 하면, 새롭게 내놓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두 바퀴나 마찬가지다”는 지론을 폈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합쳐 1조엔(2002년)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로써 게임기기 메이커의 독보적 존재인 닌텐도와 불꽃 튀기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두고두고 화제를 뿌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노리오는 회고담 ‘소니의 선율, 나의 이력서’에서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세 가지 부분을 적시했다. 브랜드 이미지 향상, 프로덕트 플래닝(상품개발), 스탠더드(표준규격) 마련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염려도 했다.

“일본인들이 상쾌했던 ‘소니의 선율’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맹렬하게 소니를 추격하는 한국의 삼성이 벌써 시가총액에서 소니를 능가했다고 한다. 일본 경제를 뒤덮은 어둠 속에서 밝은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교향곡에 빗대자면 이미 연주는 제3악장까지 나아갔다. 혼돈 가운데 가냘프게 시작된 제1악장의 테마는 첫 일제 테이프리코더였다. 이 테마는 트랜지스터로 크게 성장했다. 제2악장의 테마는 CD 발매를 계기로 한 디지털이었다. 그리고 제3악장에서는 영화와 게임을 위시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간다. 피날레인 제4악장은 과연 어떻게 될까?”

2003년에 쓰인 위의 회고담에서 언급된 콤팩트디스크(CD) 개발에 얽힌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노리오는 사장으로 취임하기 몇 해 전 네덜란드에 있는 필립스 본사를 방문했다. CD라는 신제품을 에워싼 필립스와 소니의 규격 조정을 위해서였다. 두 회사의 협의는 난항을 거듭했다. 그중에서도 CD의 기록시간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두고 첨예하게 맞선 모양이었다. 필립스는 60분, 소니는 75분을 고집했다. 이때 노리오는 이런 근거를 내세우면서 필립스를 설득했다고 한다.

“기록시간의 길이는 악곡의 시간에서 역산해서 결정해야 마땅하다. 중요한 악곡을 CD 한 장에 담으려면 직경 12cm에 75분의 용량이 필요하다.”

결국 노리오의 호소가 받아들여졌다. 그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음악가이기도 했기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LP 레코드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이 다 수록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작품 수록에 필요한 시간 75분이 제시됐다는 것. 다만 일설에는 그것이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주장에 의해 채택됐다고도 한다.

카라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 노리오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미국의 레너드 번스타인, 그리고 번스타인의 라이벌이던 카라얀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먼저 번스타인과의 일화부터 소개하면, 번스타인은 무척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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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yacho@hanm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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