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학벌·사교육·입시지옥, 미국 교육 3가지 착각을 깨다!

임신 전 유치원 대기자 등록, 학업·예체능·특활 전방위 과외에 휘청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입력2008-06-10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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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에게 미국은 애증의 나라다. 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은 미국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더욱이 지금껏 미국에 대한 논의들은 대개 정치적이었다. 정작 일상에서 만나는 미국의 실상은 접하기 어렵다. 늘 비난 혹은 동경이라는 양가적 태도로 투영돼온 미국은, 직접 살아보니 무조건 거부해야 할 대상도, 무작정 배워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3년째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필자가 미국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벌·사교육·입시지옥, 미국 교육 3가지 착각을 깨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최근 출산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그는,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기대와 희망보다는 염려와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아들만큼은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에서, 자녀가 좀 더 자유로운 곳에서 편하게 공부하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의 ‘정당한’ 욕심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이가 그렇듯 그 친구 역시 장기적으로는 자녀의 미국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들을 바라보는 초보엄마의 마음에 벌써부터 작은 그늘을 드리울 만큼 한국의 교육이 절망적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그런 한편 미국이 우리에게 그렇게 ‘만만한’ 대안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학’ 하면 ‘도피유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한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미국행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보다는 ‘한국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라며 암묵적인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학을 이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려는 적극적인 동기에서 자녀의 미국행을 선택하는 부모가 많아졌고, 유학을 결정하는 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유학생 출국현황에 따르면 2006년 초·중·고 조기유학생은 3만명에 육박하며,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47%를 차지했다. 최근 한 은행에서는 유학자금 대출상품을 내놓는 등 조기유학에 대한 관심층도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공교육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의 교육에서 대안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미국 대학 졸업장이 한국 대학 졸업장보다 더 큰 공신력을 가질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과, 미국 교육을 통해 자녀를 입시지옥에서 구원해주고 싶다는 감성적 판단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토론하고 방과 후에는 여가를 즐기는 영화 속 미국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야간자율학습과 사교육으로 새벽이 돼서야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한국 고등학생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입시전쟁을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국 애들은 놀면서 대학에 간다는데 나는 왜 한국에서 태어나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는 미국의 참모습이 아니다.

    하버드가 아니면 죽음을!

    우선 ‘미국에선 능력만 있으면 학벌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미국은 한마디로 시장논리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는 ‘경쟁’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의 능력은 곧 학력으로 증명되기에 명문대 진학 경쟁은 그 어느 사회보다 치열하다.

    이미 십수년 전 ‘뉴욕매거진’은 ‘하버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Harvard or give me death)’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미국 중산층 자녀들의 일류대 입시 경쟁이 치열함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입시철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전쟁 같은 수험기가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는가 하면,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당신에게 맞는 대학 고르는 법’ 등 합격의 비결을 담은 각종 실용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에는 사교육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오해다. 무엇이든 상품화하는 미국 자본주의에서 학원사업이 번창하지 않았을 리 없다. 미국의 교육전문 컨설팅업체 에듀벤처스에 따르면 2004년 미국 초·중·고생의 학업 관련 사교육비는 연간 21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하며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학벌·사교육·입시지옥, 미국 교육 3가지 착각을 깨다!

    미국의 많은 엄마는 종일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스케줄을 관리하는 ‘미니밴 맘’ 노릇을 자청한다.

    또한 학교 내 교직원 형태로 존재하던 진학상담사라는 직종이 빠른 속도로 비즈니스화하고 있다. 2005년 공영 라디오 NPR(National Public Radio)의 보도에 따르면 사설 진학상담사는 학생당 3000달러(약 300만원)라는 고가의 상담료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30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약 3000명의 사설 진학상담사가 있으며 이들의 연간 소득이 웬만한 학교 교장의 연봉과 비슷하다는 보도도 있다.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 시장이 대략 연간 20조원으로 추산되는 것과 비교하면 미국의 사교육 시장이 별것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 사이트 ‘CNN머니’에 소개된 한 미국 고등학생의 대입 준비과정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사교육의 상당부분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학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고등학생 케이틀린 양은 지난 한 해 대학입시 준비 비용으로 약 1만3000달러(약 1300만원)를 지급했다. 수학과외 및 ACT(미국대학입학시험) 학원비로 낸 2300달러는 저렴한 축에 든다. 진학상담비용 800달러, 방과후 활동비 1350달러, 남미 봉사활동 여행경비 1375달러, 스페인 살라망가 대학 여름캠프 참가비용 7000달러 등, 사교육비의 대부분은 학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활동에 쓰인다.

    세 번째 오해는, 미국의 대학 입학은 학교 성적을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수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겉만 보면 그렇다. 미국의 입학사정은 내신 성적이나 대학 입학시험 성적은 물론 학업 외적인 활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력서에 얼마나 많은 특기사항을 기재할 수 있는지가 합격 여부를 가른다. 말하자면, 학생이 가진 ‘문화자본’ 전반을 측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문화자본의 축적이 학업성취도의 증진보다 장기적인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릴 때부터 스포츠, 미술, 음악을 접하거나 해외 체류경험을 통해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힌 사람일수록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진다. 이는 결국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직결되고,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미국의 민간 정책연구소 센추리재단의 한 연구결과는 이 같은 우울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미국 상위 146개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사회·경제적 지위 상위 25% 가정의 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74%를 차지한 반면 하위 25% 가정의 학생은 고작 3%에 불과했다.

    졸업 선물은 대출빚

    게다가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해도 고액 등록금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어야 한다. 사립명문대의 1년 등록금은 3만달러(약 3000만원)를 상회하며 기숙사 비용까지 포함하면 그 액수는 훨씬 커진다. 이는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미국교육협의회(American Council on Education)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미국 대학생의 60%가 평균 1만6000달러(약 1600만원)의 학자금 대출빚을 안고 졸업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이 장학금에 기대를 걸지만, 대학원생과 달리 학부생에게는 장학금 혜택의 기회가 적은 편이라 이마저 쉽지 않다. 2007년 9월말 ‘뉴욕타임스’ 주말판은 ‘대학입시 특집’으로 뉴욕주 브롱스빌의 한 수험생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뉴욕 시 외곽에 위치한 브롱스빌은 전형적인 중상류층 주거지로, 마리아 양이 다니는 브롱스빌 고등학교의 경우 재학생의 98%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할 만큼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리아 양의 가족은 전형적인 중산층에 속하지만 입시를 앞두고 결코 만만치 않은 학비 문제를 고민하다 한 대학의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경쟁률은 약 100대 1. 미국에서도 수재들만 뽑힌다는 국가장학생(National Merit Scholarship) 준결선 진출자인 마리아는 각종 경시대회 및 백일장 수상경력은 물론 플루트 연주회 경험까지 이력서에 빽빽이 적어 넣었지만 합격을 자신할 수 없다.

    학벌·사교육·입시지옥, 미국 교육 3가지 착각을 깨다!

    미국 중산층 자녀들의 입시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미국의 한 사립학교.

    미국 대학이 입학 사정 때 평가에 반영하는 학업 외 활동이란, 마리아의 경우에서 보듯 단지 악기 한두 개를 연주하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학교 대표로 출전할 만큼의 실력이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립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세 살 때부터 아이에게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종종 소개된다.

    애리조나의 한 지역신문은 최근 빠르게 확장되는 취학 전 아동의 사교육 시장에 대한 심층기사를 게재했다. 미취학 아동의 사교육은 전체 사교육 시장의 18%를 차지하며 교육기업들 사이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제적 사교육기업인 구몬이 2000년 3~4세를 대상으로 신설한 읽기 및 산수 교습과정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다. 아직 세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를 이 과정에 등록시킨 한 학부모는 “요즘 대학 가기가 너무 어려워져 남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미국의 명문대 입시야말로 임신과 동시에,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육아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열성부모들은 심지어 임신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명문 영·유아원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 임신 사실을 안 뒤면 이미 늦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뉴욕의 일부 명문 사립유치원의 등록금이 2004년 처음으로 2만6000달러(약 2600만원)를 돌파했으며 이는 프린스턴 대학의 당시 등록금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니밴 맘’의 고달픈 일상

    본격적인 ‘게임’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른바 ‘미니밴 맘(Minivan Mom)’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엄마가 등하교시에는 물론 각종 방과후 활동을 위해 아이들을 미니밴에 태워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닌다. 아이의 스케줄 관리에서 운전사 노릇까지, 말하자면 ‘로드 매니저’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학부모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봉사활동에까지 참여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천신만고 끝에 만족할 만한 이력서를 만들었다 해도 끝이 아니다. 미국 명문대의 입학사정 과정에는 학생 혹은 학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작용한다. 교육분야 탐사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니엘 골든은 2006년 저서 ‘합격의 비용: 어떻게 미국의 지배계층은 일류대 진학을 구매하는가(The Price of Admission: How American Ruling Class Buys Its Way into Elite Colleges)’에서 미국 명문대들의 투명하지 못한 학생선발 관행을 꼬집었다.

    골든에 따르면 학부모가 상당한 재력가이면서 지원학교의 동문일 경우 합격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입학 이후 학부모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 골든은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입시전쟁에 나선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내세울 게 없는 출신배경 때문에 합격률이 낮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 영화에서 봐온, 방과 후면 파티를 즐기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모두 허구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언론에는 통상 평범한 사례보다 평범하지 않은 사례가 더 많이 등장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소개한 이야기들이 미국의 평균적 수험생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는 2500여 개의 4년제 대학이 있다(2년제까지 포함하면 4000여 개). 아무 대학이나 가기로 마음먹는다면 말 그대로 ‘놀면서 대학 가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문제는, 미국 유학을 꿈꾸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미국에서는 입시전쟁을 겪지 않고도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명문대의 경쟁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올해 하버드대의 경쟁률은 14대 1로, 대학 설립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0명의 지원자 중 고작 7명이 합격하는 꼴이다. 예일대나 컬럼비아 등 다른 명문 사립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프린스턴대는 지난해 입시에서 내신성적 만점자를 수천명이나 떨어뜨려야 했고, 하버드대도 SAT 수학 만점자 1100명에게 불합격을 통보해야 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대략 세 가지 요소가 언급된다. 우선,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서 해마다 수험생 숫자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예전에 비해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또 여러 대학에 동시 지원을 하는 경향이 높아지면서 명문대 바로 아래 급으로 분류되는 대학의 경쟁률까지 동반상승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닳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는 상류층의 명문대 진학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교육의 불평등 문제가 학계에서 논의될지언정,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식의 보도를 접한 기억은 별로 없다. ‘서울대를 없애겠다’거나 ‘(지역구 수험생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식의 한국적 포퓰리즘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초점은 학업이 부진한 학생에게 맞춰져 있는 듯하다. 오죽하면 부시 행정부가 발효한 공교육 개혁법안의 이름이 ‘어떤 어린이도 낙오자로 만들지 않는다(No Child Left Behind Act)’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사회적 믿음을 일면 엿볼 수 있다. 부(富)를 정당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교육이 빈부의 대물림을 고착시킨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교육을 통한 부의 세습은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미국 사회에 자기모순을 던져준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003년 영국 주간지 ‘네이션’에 기고한 칼럼에서 소득 불평등이 사회정의를 해치는 동시에 인적자원의 심각한 낭비를 불러올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호레이셔 앨저의 죽음(The Death of Horatio Alger)’이라는 제목을 통해 미국 사회에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단언한다. 호레이셔 앨저는 가난한 소년이 근면 성실을 통해 성공한다는 줄거리의 소설을 대거 발표해 ‘아메리칸 드림’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작가. 그는 칼럼에서 “부유하지만 똑똑치 않은 소수의 아이들이 미국의 경제를 지배하고, 똑똑하지만 돈이 없는 아이들은 경쟁에 끼지조차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미국의 경제적 계층 이동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도 미국 사회의 이러한 염려를 읽을 수 있다. 보고서는 서두에서 간단한, 그러나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살아 있는가”, 대답은 “살아 있긴 하지만 많이 닳았다 (frayed)”는 것.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인종 간 계층 간 교육격차가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이동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특히 ‘아메리칸 드림’의 불균등한 분배, 즉, 중산층 이상에는 더 많은 기회가, 저소득층에는 더 적은 기회가 주어지는 현실은 미국 사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2.8%로 미국의 69%에 비해 월등히 높다(국립교육통계센터·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 발표, 2005년 기준). 산술적으로만 보자면 한국의 입시는 미국에 비해 덜 치열해야 맞다. 물론 이는 대학의 ‘서열화’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문제는,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이다.

    혹독한 불공정 게임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는 대학 서열화가 없을까.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1983년 이래 매년 입시철이 되면 대학별 순위를 세세하게 보도한다. 미국 사회에서는 동부의 아이비리그 8개 대학을 포함한, 대략 25위 내 대학들이 명문대로 분류된다. 두세 대학만이 세칭 ‘일류대’로 규정되는 한국보다는 상황이 덜 빡빡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수험생 규모가 한국 수험생의 약 5배에 달하고 미국 대학의 정원도 한국보다 적은 편임을 감안하면 미국의 상황도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경쟁이란 천형 같은 것이어서, 어디서나 일류대는 들어가기 힘들고 또 들어가기 힘들어야 그게 일류대다. 오히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같은 출발점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오늘날 교육이 희망이 되기보다 절망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교육은 저만큼 앞서 출발한 자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 탓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학벌·사교육·입시지옥, 미국 교육 3가지 착각을 깨다!
    김수경

    197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아일보 문화부·사회부 기자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언젠가 본 모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 수험생 학부모는 한국의 사교육 열풍과 관련해 “아예 과외가 완전히 금지되던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교육에 대한 학생 및 학부모들의 불만이 경쟁 그 자체에 있는지 아니면 그 경쟁이 점점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데 있는지, 한국 사회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앞서 미국행을 생각하는 친구의 진심 어린 걱정을 나 역시 공감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미국이 아니라 지구 끝까지라도 가고 싶은 것이 부모 된 마음이리라. 한국의 현실은 이렇게 힘든데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는 무책임한 말로 그들의 고민을 가벼이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미국의 대학 진학 역시 살벌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한국보다 더 혹독하게 불공정한 게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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