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내가 최고가 되든지, 최고를 내 편으로 만들든지”

  • 김일동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ildong@donga.com

    입력2008-06-10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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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질병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구단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던 전창진 감독. 하지만 그는 한국 프로농구의 최고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무 출신이 감독을 해?” “선수 덕분에 잘나가는 감독?”이라는 비아냥은 오히려 우승의 거름이 됐다. ‘주무’처럼 선수를 다독이고, 버려진 조연을 주연으로 발탁하는 용병술은 ‘배려와 인화’의 리더십으로 안착했다. “꿈과 미래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는 전 감독의 3시즌 우승 비법.
    ‘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전창진(45) 감독을 만난 곳은 동부프로미 소속 김주성 선수가 웨딩마치를 울린 5월1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커피숍이었다. 오후 1시 결혼식에 앞서 한 시간가량 시간이 난다고 해서 그렇게 시간을 잡았다. 4월25일에 삼성을 상대로 한 2007~2008 프로농구 챔프전을 끝냈지만 그는 보름이 지난 이날까지 스케줄이 빡빡했다. 먼저 그가 우승 후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로 얘기를 시작했다.

    “우승하면 인사 다닐 데가 참 많거든요. 21개 언론사 인사 다니는 데만 사흘이 걸렸어요. 4월30일에는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KIA전 시구행사에도 참석했고요.”

    여기저기서 열어주는 축하연을 거절할 수도 없다. 구단 축승회, 원주시 주최 축승회 같은 공식행사 외에도 지인들이 불러주는 모임이 여럿 있다. 이런 데 안 갔다가는 뒷말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이 이야기는 비밀인데…” 하면서 5월 초에 중국에 며칠 갔다 왔다고 털어놨다. 중국 리그는 끝났지만, 아직 홍콩 등지에 머무르고 있는 선수들을 살펴보고 왔다는 것.

    동부프로미 팀은 5월9일 저녁 선수단 회식과 10일 김주성 선수 결혼식을 끝으로 2007~2008 시즌을 종료했다. 6월16일까지는 휴가다.

    선수 덕분에 잘나가는 감독?



    “이 기간에도 할 일이 많아요.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에 갈 예정입니다. 또 훈련계획서를 작성하고 선수 수급계획을 짜야지요. 가족들도 만나야 하고요.”

    그의 가족은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가 있다. 길어야 1년에 3주 정도 같이 지낼 뿐이다. 가족과 떨어진 지 6년째인데, 아이들이 몇 살이냐는 질문에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아…큰애가 지금 열일곱, 작은애가 열하나…” 하면서 자신 없어 한다. 갑자기 아이들 나이가 생각이 안 난 모양이다.

    선수들도 휴가기간이라고 무작정 놀 수 없다. 선수에 따라 웨이트나 러닝 등 각자 몸을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대개는 하루 1시간 정도 하면 되는 분량이지만, 어쨌든 긴장을 놓지 않게 한다. 전혀 안 움직이면 근육이 ‘기억력’을 잃기 때문이다.

    간혹 신인들 중에는 이 숙제를 잘못 받아들여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연세대를 졸업한 이광재 선수는 선수단 첫 미팅에서 실시한 체력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몸이 10kg 이상 불어서 온 것이다. 왜소한 체구의 그는 프로세계에서 힘을 키우려면 체중을 불려야 한다고 착각을 했다. 포스트에서 몸싸움을 하는 선수는 살을 찌울 필요가 있지만, 스피드가 생명인 가드는 살이 찌면 안 된다. 전 감독에게 혼쭐이 난 그는 한 달 만에 다시 10kg을 뺐다. 혹독한 훈련과 식사조절이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했다.

    2001년 말 원주 삼보(현 동부) 감독 자리에 올라 정규 리그와 플레이오프를 합쳐 통산 241승을 거둔 명감독. 자신이 감독을 맡은 일곱 시즌 중 4번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3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 감독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농구계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농구 명가 실업팀 삼성전자에 입단했다 1년 만에 고질병인 발목 수술을 받고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 후에는 줄곧 프런트에서 일했다. “주무 출신이 감독을 해?”라는 비아냥과 함께 “김주성 선수 같은 특A급 선수를 두고 누구는 우승 못하나”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좋은 선수 만나 성적 내는 감독’ ‘선수 덕분에 잘나가는 감독’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5월2일 한국농구대상 감독상을 받은 전창진 감독.

    하지만 전 감독의 진짜 힘은 사람을 아끼는 ‘배려’와 ‘인화’라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동부의 우승을 김주성 선수의 공으로만 돌리는 시선들에 대해 전 감독은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밤낮없이 훈련하고 고생한 다른 선수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합니다.”

    그는 만년 후보에서 정상급 포인트 가드로 우뚝 선 표명일과 은퇴 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강대협, 신인에서 당당히 주전을 꿰찬 이광재 등을 서슴없이 우승 주역으로 꼽았다.

    선수는 들어주는 감독에게 감동

    “감독은 선수들이 똑바로 나가도록 툭툭 쳐주는 노릇만 하면 됩니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는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붙어 제가 할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는 선수를 뽑을 때 열정을 제일 중요시한다. 팀에서 조금 처지지만 눈빛이 살아 있는 선수, 뛰고 싶은 욕망이 강한 선수, 한번 잡은 기회는 놓치지 않는 선수를 그는 선호한다. 기량은 그 다음이다. 그는 일례로 삼성과 KT·G를 들었다. 삼성은 스타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한 반면에 KT·G는 포기를 모르고 끝까지 덤비는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요는, 하려고 하는 선수가 제일 무섭다는 얘기지요. 잘하는 선수도 잠깐 방심하면 형편없이 무너지는 게 이 바닥입니다.”

    그는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고민이 있는 선수는 따로 불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자필 카드를 자주 보내고,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1년에 한 번은 선수뿐 아니라 코치, 트레이너, 프런트 직원, 밥 해주는 찬모까지 모두에게 스킨세트 등의 선물을 보낸다. 쉬운 것 같지만 아직 감독-선수 사이에서는 잘 안 되는 얘기들이다.

    “잘 못하는 선수에게, ‘쟤 왜 저래? 바꿔’ 이러면 그 선수는 끝입니다. 대신에 ‘무슨 일 있어?’하고 대화를 해보면 반드시 문제가 나옵니다. 여자 문제, 가정 문제, 돈 문제….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선수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독에게 감동하는 겁니다. 저는 벤치를 지키는 선수에게도 오늘 못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선수들이 마음을 열면, 특히 식스맨 선수들은 죽어라고 뜁니다.”

    평범하면서도 신통한 이 방법을 그는 어디서 배웠을까.

    “삼성 프런트 시절 느낀 점들이지요. 선수들이 참 잘한 날, 이런 날은 감독이 맥주 한잔 사주면 좋겠다, 또는 선수들이 엉망으로 뛴 날, 이런 날은 감독이 ‘혼꾸멍’을 내면 좋을 텐데 하면서 생각해둔 것들이지요.”

    전 감독이 맡았던 주무 노릇은 선수관리부터 숙소 식당 예약, 감독 코치 수발 등 허드렛일부터 기자를 상대하는 홍보업무까지 다양했다. 지금은 농구단 직원들의 업무가 분담됐지만, 1980~90년대는 1인 다역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처음에 홍보와 마케팅을 맡았다. 두 가지 모두 생소한 분야였다.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기자들과 10분 만나기 위해 3시간 분량의 얘깃거리를 준비했다. 게임 홍보를 위해 밤새 만든 전단지를 새벽 4시 반부터 신문에 넣어 들고 아침 6시부터 수원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세계적인 주무’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선수관리를 맡은 이야기는 더 눈물겹다. 밤늦은 시각 어린 선수들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고참선수들에게는 소주 한 병과 갯장어 구이 한 접시를 방으로 넣어준다. 그래야 술 먹으러 나가지 않는다. 어떤 선수는 맥주를 좋아하고, 어떤 선수는 소주를 좋아하고, 어떤 선수는 고스톱을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울적해 하는 선수를 데리고 나가 탕수육 한 접시 시켜놓고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최고가 되거나, 아니면 최고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존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삼성에서 ‘세계적인 주무’라는 칭호를 듣던 그는 이인표 단장이 삼성을 떠날 때 따라 사표를 내고 원주 나래 코치로 옮겼다. 나래로 그를 끌어들인 사람은 용산고 선배인 최형길 사무국장과 2년 후배인 허재 선수 등이다. 그는 이 시절 최형길 현 KCC단장이 보여준 자세를 잊지 못한다. 초짜 감독을 믿고 기회를 준 것. 또 잘했을 때는 칭찬하지만, 잘못했을 때는 잊어버리고 소주 한잔 하자던 마음씨가 특히 생각난다.

    ‘우승 제조기’ 원주  동부프로미 전창진 감독의 ‘인간관리학’

    강동희 코치(가운데), 김승기 코치(오른쪽)와 작전을 숙의 중인 전창진 감독.

    “저는 성격이 조금 예민해요. 이기면 펄펄 뛰고, 지면 하늘이 무너지죠. 최 단장님이 보여준 의연한 태도에서 참 많이 배웠지요.”

    지난해 동부는 8위를 했다. 김주성 선수가 카타르 도하 아시안경기대회에 차출돼 전체 54게임 중에서 30게임에 빠지고 양경민, 손규완이 부상으로 빠졌다. 구단에서도 은근히 불만을 표시했다. 방법이 없었다. 어느 해보다 훈련을 많이 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 훈련이 조금 독특하다.

    전 감독은 기초훈련을 중시한다. 수비의 기본동작부터 패스, 드리블 등을 꾸준히 연습시킨다. 머리가 굵은 프로선수들은 어처구니없어한다. ‘소싯적 훈련을 지금 왜 시키느냐’는 식이다. 그는 대화를 통해 선수들에게 이 방법을 이해시킨다. 이런 훈련이 왜 필요한지, 기초훈련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실전훈련을 하느냐고 묻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실제로 이 같은 기본기 훈련이 실전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생긴 건 곰, 하는 건 여우”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지도자가 그들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가 좌우되기도 한다. 전 감독은 국내 선수나 외국 선수나 똑같이 대하는 방법을 쓴다. 고참이든 신참이든, 주전이든 비주전이든 팀워크 해치는 걸 못 봐주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도 훈련을 소홀히 하면 똑같이 욕먹어야 하고, 어떤 때는 아예 훈련장 밖으로 쫓아낸다. 하지만 따뜻하게 대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냉탕-온탕식 관리를 적절히 활용한다. 연세대 명감독 출신으로 현재 전자랜드를 맡고 있는 최희암 감독은 전 감독에 대해 “생긴 건 곰이지만, 하는 건 여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코치들에게도 쉽지 않은 주문을 내린다. “낮잠 자지 마라, 꼴 보기 흉하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생각 하지 마라” 등등. “프로농구 감독 전부 합쳐야 10명뿐이다. 계약 끝나면 실업자 된다. 기회가 많지 않다”도 자주 들먹이는 말이다.

    “챔피언이 되는 것은 꿈이 아니지요. 준비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거든요. 이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얘기지만,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지요.”

    그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자주 선수들에게 ‘꿈과 미래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고 말했다. 이 구절은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어느 월간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자신이 인용했다고 덧붙였다. ‘월간조선’ 2008년 1월호에 실린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인터뷰 기사를 보면, 김 회장이 고향인 강원도 동해시 북평초등학교 교정에 세운 비석에 ‘미래는 꿈과 이상을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0개 구단 중에서 아직 4팀은 우승 맛을 못 봤습니다. 저는 세 번씩이나 우승했으니 운이 좋은 거지요.”

    그는 초년 감독 시절부터 공부를 많이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묻는 감독으로 소문나 있었다. 심지어 게임이 끝난 후 상대 감독을 찾아가 오늘 내가 실수한 게 뭐냐고 물어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에는 그가 가장 나이 어린 감독이어서 무난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선수들에게 노력하라고 하면서 감독이 놀면 선수들이 그걸 모르겠어요? 또 요즘은 선수들도 공부를 많이 해서 제가 긴장을 풀 수 없어요. 가끔 선수들이 작전을 짜기도 하는데 제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예요.”

    “조연이 잘해야 주연이 빛난다”

    원주 동부는 다른 팀에 비해 환경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팀은 대개 용인 등 수도권에 훈련장을 갖고 있다. 숙소가 인근에 있어 슬리퍼 끌고 가서 훈련해도 된다. 동부는 전용 연습장이 없다. 아파트 숙소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치악체육관으로 가야 한다. 웨이트 훈련도 아주머니들이 바글바글한 동네 헬스장에서 한다.

    2004~2005년 통합우승 후 TG삼보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다. 동부로 넘어가기까지 6개월간 월급 한 푼 못 받고 식사도 외상으로 버틴 적이 있다. 올해의 경우, 김주성 선수 혼자서 팀 전체 연봉의 38%를 차지했다. 표명일 선수까지 합치면 두 선수의 연봉이 전체의 47%에 달한다. 나머지 12명의 선수는 샐러리캡이 18억원에 묶여 있어 저연봉일 수밖에 없다. 동부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국 우승까지 이뤄냈다.

    “제가 운이 좋은 거지요. 특히 코치운은 더 바랄 게 없어요. 강동희 코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아무 소리 안 하고 시키는 일 다해냅니다. 강 코치와 둘이 나가면 사람들이 저는 몰라도 강 코치는 다 알아봐요. 몇몇 팀에서 감독직을 제의했지만, 꿈쩍 안 하고 잘 있습니다.”

    전 감독은 술을 못해서 남는 시간에 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주연보다 조연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조연이 뒷바라지를 잘해줘야 주연이 빛나는 거 아닙니까. 또 조연은 주연으로 올라가겠다는 목표의식이 있잖아요.”

    그가 다른 팀에서 벤치로 내몰린 선수를 모아서 주전으로 재탄생시킨 이유를 알 것 같다.

    전 감독은 사립인 상명초등학교를 거쳐 용산중·고와 고려대를 나왔다. 중앙대에서 농구를 했던 아버지는 주유소를 서너 개 운영했고, 어머니는 전북 군산의 사립학교 이사장 집안이어서 그는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그의 집은 그가 대학 3학년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어려워졌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액세서리 수입사업에 손을 댔다가 통관 문제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암에 걸렸다고 한다.

    그는 고1 때 연세대 입학을 제의받았고, 고3 때는 청소년 대표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다 연세대 감독의 선수 기용이 마음에 안 들어 고려대로 방향을 틀었다. 고려대에서는 법대든 상대든 마음에 드는 학과를 고르라고 했다. 부모님과 상의했다. 어머니는 체육학과를 가라고 했고, 아버지는 경영학과를 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너는 다음에 체육학 관련 공부를 해서 그 방면으로 나가라”고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너는 공부를 못했지만, 대신 공부 많이 한 친구를 사귀라”며 경영학과를 권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경영학과에 들어가 ‘4년 장학생’으로 학교를 마쳤다. 아버지가 기대했던 ‘공부 많이 한 친구’는 못 사귀고, 경영대학 동창회비 고지서만 꾸준히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KBL에서 일하고 싶다”

    요즘 들어 새삼 안타까운 것은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와 대화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 때 미팅 한번 못 해보고 MT 한번 못 가본 것도 후회스럽다. 그가 선수 숙소에 책장을 비치하고, 선수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것도 자신의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운동선수들은 교유 범위가 좁고 사회를 잘 몰라 나중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면 그만큼 사회에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다.

    185cm라고 하는데 농구선수 출신치고는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도 한창 운동할 때는 75kg을 유지했는데, 프런트 생활할 때 망가졌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기자 상대하고, 학부모 만나고, 낮에는 멍하니 있다 보니 어느새 0.11t 가까이 돼버렸다고 한다. 요즘은 허리가 별로여서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지인들과 골프를 치는데, 스코어가 짱짱하다. 보통 76타에서 78타를 친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KBL(프로농구연맹)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12년째에 접어들면서 KBL이 주춤거린다고 느껴서다. “각 구단의 성적 지상주의로 관객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구단의 개별 이해보다는 관객을 더 끌어올 수 있는 홍보와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로농구 인기가 출범 초보다 하락한 데는 외국인 선수 기용의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경쟁 시절 월 3만달러를 상한선으로 정해놓고 뒤로 10만달러까지 주는 반칙이 프로농구를 골병들게 했다는 분석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외국인 선수 선발을 트라이아웃제로 돌린 것에 대해 그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무엇보다 프로농구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줘야 합니다. 그 방법에 대해 저를 포함해 농구인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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