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이용률 8년 연속 90%대, IAEA 무사고 인증

  • 송명재 한국수력원자력 전무·보건물리학 박사

    입력2008-06-10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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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이온팀을 시작으로 탄생한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조종사들. 원전 운영 초기에 자주 발생하던 불시 정지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90%대의 원전 이용률을 기록하게 됐다. 원전 운전 30주년과 함께 맞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면 원전 기술을 정예화하는 수밖에 없다.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월성원전에 있는 원자로 중앙제어실 시뮬레이터. 원자로 조종사와 후보생들은 이곳에서 원자로가 처한 다양한 상태에 대응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20여 년 전에 나온 미국 영화 ‘탑건(Top Gun)’의 주인공인 해군 대위 매버릭(톰 크루즈 분)은 훌륭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탑건 훈련학교에 입학한다. 최신예 전투기 F-14를 모는 매버릭 대위의 실력은 천부적이면서도 거칠었다.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교관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사고로 절친한 친구를 잃기도 하는 그는 말썽을 일으켜 퇴교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한다. 항공모함으로 돌아온 매버릭은 비상출격 때에 놀라운 조종술로 미그기를 격퇴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교관이 되어 탑건 훈련학교로 돌아간다.

    최신예 전투기들의 멋진 대결과 톰 크루즈의 매력적인 연기에 흠뻑 빠져 이 영화를 몇 번씩 봤다는 사람도 많다.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가 남긴 족적은 다양하다. 그 후 탑건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봉에 오른 사람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가요계의 탑건은 최고의 가수, 골프계의 탑건은 최고의 골퍼를 의미하게 됐다. 미국에서는 해군 용어인 탑건이 한국에서는 공군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 공군은 매년 탑건을 선정해 시상한다.

    최신예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보다 더 까다롭고 힘든 것이 원자로 운전이다. 비행기는 수십만개의 정밀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기계다. 원자로는 비행기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비행기보다 열 배나 많은 수백만개의 첨단부품으로 만들어진 전기 생산 공장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작은 부지에서 아주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밀집형 발전소다.

    原電 탑건들

    원자력발전소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우라늄을 연료로 하기에 늘 위험을 수반한다. 그래서 많은 안전장치를 설치했지만, 아무리 완벽한 설비라 해도 운전을 잘못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실수를 막기 위해 원자로 조종사들은 공부를 많이 한다. 모의 훈련설비를 이용한 집중 훈련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원자로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정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받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1년부터 매년 최우수 원자로 조종사를 선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탑건을 선발하는 것이다. 2001년에는 영광원전의 조영보씨가 최초의 최우수 원자로 조종사로 선정됐다.

    최우수 원자로 조종사는 20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수백명의 원자로 조종사를 상대로 원자로가 이상 상태를 맞았을 때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능력과 안전의식, 사고 예방능력, 그리고 과거의 운전 실적을 엄격히 평가해 뽑는다. 이렇게 해서 선발된 원자력발전소 탑건은 매년 9월에 열리는 원자력안전의 날 행사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상을 받고 그 영예를 널리 알린다.

    지금은 부산광역시에 포함된 경남 동래군 장안면 고리에서 1971년 11월15일 착공된 것이 고리원자력 1호기다. 고리원자력 1호기는 1977년 6월19일 원자로를 가동하는 첫 임계(臨界, 원자로 점화)에 들어갔고, 1978년 4월29일에는 최초의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고리 1호기를 건설할 무렵 한국은 원전 설계와 건설 기술이 크게 모자라 많은 것을 미국 기업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고리 1호기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건설해, 발전소 소유주인 한국전력에 넘겨주는 턴키 방식으로 건설됐다. 그러나 한전은 원전 운영 경험이 없었기에 웨스팅하우스사가 발전소를 넘겨줘도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원전 조종술 이끈 자이온팀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1971년 11월15일, 지금은 부산시로 편입된 경남 동래군 장안면 고리에서 열린 고리1호기 착공식.

    원전을 넘겨받기 전 한전에 가장 시급한 것은 원자로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한전은 화력발전소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한편 외부에서도 우수 인재를 모집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자력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이들에게 원자력 기초이론과 실무지식을 가르쳤다. 당장은 원자력발전소가 없었기에 발전 원리가 가장 비슷한 화력발전소로 이들을 보내 발전소 현장 운영설비를 이용한 보충교육을 받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발한 것이 고리 1호기 운영요원 171명.

    한전은 이들 171명을 1970년 3월부터 1973년까지 순차적으로 미국의 원자력발전소와 유명 원자력기관에 파견해 실제 훈련을 받도록 했다. 이때 시카고 근교에 있는 자이온(Zion) 원자력발전소에서 훈련 받은 팀을 ‘자이온팀’이라고 부른다. 고리 1호기 초대 발전소장은 자이온팀의 수장 격이던 김선창씨가 맡았는데, 자이온팀은 한국 원전 운전의 선구자 노릇을 하게 됐다.

    고리 1호기 운영 팀은 귀국한 뒤에도 많은 교육을 받았다. 원자로 운전자는 원자력법에 따라 원자로 조종사 면허와 원자로 조종감독자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원자로 이론과 원자력법령, 구조 및 설계, 원자로 운전제어, 원전 연료 취급관리 등 6개 과목의 필기시험부터 통과해야 한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실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당시는 모의조종실이 없었고, 가동 중인 고리 1호기의 컨트롤 룸을 사용할 수도 없어, 발전소 그림을 그려놓고 각종 기계를 운전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림을 펼쳐놓고 실기시험을 치르는 처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발전(조)77-1호’라고 돼 있는 한국 최초의 원자로 조종사 면허는 자이온팀의 일원이던 김맹규씨가 받았다. 김씨는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1978년에는 원자로 조종감독자 면허까지 받았다. 김씨가 조종감독자 면허 실기시험을 치를 때 이 시험에 응한 사람은 김씨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기시험 심사위원들은 원자력 학자들과 과학기술처의 과장 등 5~6명으로 구성됐다고 하니, 김씨는 심사위원들에 둘러싸여 ‘공포의 테스트’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원자로 조종사 및 조종감독자 면허증 소지자가 지금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숫자는 대한항공의 여객기 조종사(기장, 부기장) 수와 비슷하다. 원자로 운영 자격자가 늘어나다 보니 여성도 참여하게 됐다. 최초의 여성 원자로 조종사는 1996년 10월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면허를 받은 윤봉요씨다.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29일 상업운전에 들어갔으니 지난 4월29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원자력발전소의 서른 번째 생일은 사람으로 치면 회갑과 같다. 30년이면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는 말이다.

    원전 운전 초기에는 애환이 많았다. 특히 운전 첫 해인 1978년에는 8개월 만에 발전소를 17번이나 정지시키는 운전 미숙을 드러냈다. 수동(스틱) 승용차를 운전하는 초보운전자가 걸핏하면 운전 중에 시동을 꺼뜨리는 경우와 비슷했다.

    운전 두 번째 해에도 고리 1호기는 운전미숙으로 13번이나 정지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는 8번, 7번 하는 식으로 점차 나아져 갔다.

    진공청소기 전자파에 멈춰 선 원전

    원자력발전소는 대단히 예민해서 운전 중에 여러 가지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한때 원인 모르게 발전소가 정지하던 적이 있다. 나중에 밝혀진 ‘진범’은 뜻밖에도 발전소 운전실에 있던 진공청소기였다. 진공청소기에서 나온 전자파가 발전소 제어장비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기계가 오동작을 일으켜 발전소가 정지된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운영이 서툴러서 발전소가 자주 정지되다 보니 발전소의 이용률도 매우 낮았다. 발전소의 이용률이란 1년간 생산 가능한 최대 전력량에 대비한 1년간 발전소에서 실제 생산한 전력량의 비율을 말한다. 발전소 이용률은 결국 발전소의 경제성을 좌우한다. 고리 1호기의 1978년 이용률은 46.3%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조금 나아져서 61.3%, 그 다음 해에는 67.4% 등으로 좋아졌다.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2007년 12월18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역주민으로부터 법적 수명 30년을 맞은 고리원전 1호기의 계속운전 동의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원전의 사회적 수용성이 좋아진 결과다.

    한국인의 뛰어난 손재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각종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뛰어난 손재주가 없으면 불가능한 모발이식 기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첨단기술의 상징인 원자력발전 기술만 해도 그렇다. 고리 1호기가 처음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하던 1978~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의 원자력발전소 운전기술은 완전 초보 수준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두뇌와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우리 원자력인들은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많은 공부를 하고 기계를 뜯어 부품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선진국의 운전기술을 배워갔다. 그러는 사이 원자력발전소 숫자도 늘어났다.

    한국은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10년이 지난 1998년에는 14기,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게 됐다. 그 사이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 대국이 됐다. 원자력발전 경험이 쌓이고 발전소의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원전 운전 기술도 향상됐다.

    90%대 원전 이용률

    20기의 원전이 돌아가는 지금은 운전 중 정지 사례가 각 원전당 연평균 0.5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세계 원자력 선진국들이 연평균 1, 2회 원전을 불시 정지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운전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 불시 정지 횟수가 줄어드니 결과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이용률도 향상됐다. 원자력발전 초기에는 60%대이던 이용률이 1990년대 후반에는 90%에 육박했고, 2000년 들어 90.4%를 기록하면서 ‘드디어’ 90%를 넘어섰다.

    운전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숫자가 10기를 넘어서면 이용률 90%를 넘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세계 원전의 평균 이용률은 7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이용률 90.3%를 기록함으로써 8년 연속 이용률 90% 초과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원전의 이용률이 아무리 높고 발전소 정지 횟수가 적다 해도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 실적을 자랑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두렵게만 여기기 때문에 원전 사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는 사고뿐 아니라 고장에 의해 멈춰 설 수도 있는데, 고장과 사고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고로 통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동차 사고와 자동차 고장은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원전에 대해서는 그러한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

    원자력발전소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명확하게 분류해놓고 있다. IAEA는 원자력 사고와 고장 등급의 객관적 분류 체계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투명성을 높이려 한다. IAEA의 이 제안은 경제개발기구 산하 원자력국의 동의를 얻어 1992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적용됐다. INES (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로 불리는 ‘국제원자력 사고·고장 등급 체계’가 그것이다.

    INES는 아주 경미한 고장을 ‘등급 0’으로 하고 최고로 심각한 대형 사고를 ‘등급 7’로 분류했다. 이 분류 체계에서 ‘등급 0’에서 ‘등급 3’까지는 사고라고 하기보다는 고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등급 4’에서 ‘등급 7’까지가 일반적인 의미의 원전 사고에 해당한다.

    한국, ‘등급 2’ 고장 1번이 전부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여러 사회단체는 원자력발전 사업자가 원전 사고를 은폐하고 있지 않은지 철저하게 따져본다. 그리고 IAEA나 세계 원전 운영기구 및 각종 전문기관도 정기적으로 우리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상태를 정밀 진단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선 INES에 따른 ‘고장’은 있어도 ‘사고’는 없었음이 입증됐다.

    공식적으로 INES가 도입된 이래 한국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은 단 한 번 있었던 ‘등급 2’의 일반 고장이다. 그리고 ‘등급 1’의 단순 고장이 8번 있었고,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경미한 고장(등급 0)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이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 대국답게 원자력발전소를 매우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우리의 표준형 원자력발전소인 영광 5호기와 6호기는 IAEA로부터 심층 안전진단을 받았다. 원자력발전소의 운전 정비는 물론이고 발전소 운영조직과 행정, 그리고 방사선 안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서 3주간 전세계 원자력 전문가들의 정밀진단을 받은 것이다. 진단 결과 국내 표준형 원자력발전소는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췄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IAEA는 출범 이래 수십 차례 전세계의 원자력발전소를 점검했는데, 영광 5, 6호기가 가장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한국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를 찾자면 먼저 수준 높은 운전원의 자질을 들어야 할 것이다. 운전원의 학력이나 교육훈련 수준이 대단히 높다. 이들은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통해 집중 교육을 받는다.

    둘째는 원자력발전소의 철저한 정비다. 발전소 정비기술이 뛰어날 뿐 아니라 고장이 날 만한 부품은 미리 찾아내 교체하기 때문에 원전 불시 정지가 드물고 안전한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셋째는 운전 절차를 확실하게 지키는 일이다. 발전소 직원들은 미리 정해진 운전 절차서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나 교육과학기술부 전문가들은 발전소에 상주하면서 발전소 운전 절차가 엄격하게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처음 도입하던 시절에는 반(反)원전이니 반핵이니 하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원자력발전소는 돈이 없어서 못 짓는 것이었지 안전성 따위의 문제는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한국은 경수로인 고리 1호기 건설에 이어 바로 고리 2호기 건설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캐나다의 지원을 받아 중수로인 월성 1호기 공사에 들어갔고, 이어 같은 중수로로 월성 2호기를 짓고자 했다. 그러나 캐나다는 한국의 재정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월성 2호기 건설을 늦췄다. 고리 2호기를 짓고 있는 한국이 월성 2호기를 지을 돈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고리 3, 4호기에 이어 영광 1, 2호기 건설을 추진하자 캐나다 측은 ‘판단 미스’를 인정하고 몸이 달아 월성 2호기 건설을 서두르게 됐다.

    TMI 사고 후 격렬해진 反원전 운동

    한국에서 이렇게 원자력발전소 건설 붐이 일고 있을 때 미국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1979년의 TMI(Three Mile Island) 원전 사고가 그것이다. 이 사고는 기기 오작동과 운전원의 실수가 겹쳐 일어난 것으로 전세계 원자력발전 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고 반핵단체들의 반핵운동이 터져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으니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86년에는 구(舊)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이 더욱 큰 규모의 사고를 일으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운전원의 실수가 겹쳐서 일어났다. 그로 인해 전세계의 환경단체들과 반핵단체들이 연계해서 원자력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단체와 반핵단체들이 국내 원자력발전소를 상대로 본격적인 반대활동을 펼쳤다. 그리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사회적 수용성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이 무렵 원전의 방사선이 원인으로 알려진 무뇌아와 기형아, 그리고 기형 송아지 사건 등이 큰 비중을 가진 뉴스로 보도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정밀조사를 한 끝에 모두 원전 방사선과는 상관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널리 퍼지고 난 다음이라 전문가들의 의견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후 반핵운동은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의 부지 확보 쪽으로 옮겨져 방폐장 부지 확보가 여러 차례 무산됐다. 방폐장 부지선정 사건으로 관련 부처 장관 여러 명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반핵단체를 포함한 환경운동단체들의 위력은 나날이 커져갔고 원자력발전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결국은 신규 원전 건설이 늦춰지고 원자력발전 사업자가 민원에 시달리는 시대를 맞았다.

    탄생 30년, 한국 원자력발전 현주소
    송명재

    1948년 정읍 출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졸업, 미국 미시건대 박사(보건물리학)

    대한방사선학회·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부회장, 미국 보건물리학회 평의원

    저서 : ‘아인슈타인의 실수’ ‘방사선의 세계’ ‘방사선피폭평가’ 등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방폐장 부지가 주민투표로 결정되고 원자력 안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원자력발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상당히 개선됐다. 그 결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인근 주민들의 수준 높은 협조를 받아 계속 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자력발전 사업의 앞날이 그만큼 밝아진 것이다.

    에너지난, 원전기술 개발로 극복하자

    지금 전세계는 에너지전쟁 중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방안 가운데 하나가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는 것이다. 안전한 원자력으로 값싼 에너지를 확보하고 원자력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계 최고의 원자력발전기술을 갖춰야 한다. 원전 이용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손 기술이 원자력발전 분야에도 그대로 투영돼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난이 심각한 지금 우리는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원자력발전 기술을 연마하는 데 계속 정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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