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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의사들

떠돌이, 신용불량, 자살…“야간분만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

  • 이은영 신동아 전속기고가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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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저출산 영향으로 환자가 줄고 있는데다 의료수가 산정에서도 다른 과에 비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의 채권 발행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진료비와 대출 등으로 근근이 운영하는 병원을 위해서였다. 전국의 의원급 병원과 각종 전문병원들이 기업은행의 ‘메디컬 네트워크론’이나 하나은행의 ‘닥터클럽’ 등을 통해 빌린 자금은 한 해 3조~5조원에 달한다.

비영리 의료기관인 병원이 채권을 발행하면 자본 조달을 신용대출에만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형 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에 회사채 발행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그림의 떡’이다.

“한 해 평균 4, 5명 자살”

세태가 이렇다 보니 ‘병원 경영에 실패한 의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심부피부재생술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던 서울 강남의 T피부과 P박사가 사망했다. 강남 병원가에서는 사인(死因)이 심장마비라는 보도와 달리 자살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회에 2000만원이 넘는 고가 시술로 유명세를 떨친 부자 의사의 돌연사에 대한 의혹 제기다.

병원 관계자는 “최근 심부피부재생술을 받은 환자들로부터 부작용에 따른 치료비 보상 요구와 항의가 빗발쳤다”면서 P원장이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반면 강남의 피부과 개업의들은 “P원장이 몇 년 전부터 피부과 관련 의료기기를 만들고 심부피부재생술용 약품 제조법을 들여오는 등 제약사업에까지 손을 댔는데, 리스크가 엄청났다”면서 경영난을 언급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관계자는 “한 해 평균 4, 5명의 의사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부검대에까지 오르는데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의사의 자살은 빚에 쫓기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약물 사용이 확인되고 유서가 발견되는 등 사망의 원인과 정황이 명확한 경우 부검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통계치보다 많은 수의 의사가 매년 경영난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의사들은 자존심이 강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의대 동기에게조차 털어놓지 않는다”면서 “언론에 떠들썩하게 나오지 않는 한, 자살하는 의사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의협에서는 의사 자살 소식이 있으면 일반 사망자 통계에 포함시킨다”고 했다. 의협 통계자료에 따르면 1908년 의협이 창립한 이래 현재까지 노환이나 지병 등으로 죽은 의사는 모두 3693명이다.

기자가 만난 의사들 중 상당수는 의사직에 대한 일반인의 막연한 동경에 쓴웃음을 지었다. 의사들이 자살하는 속사정을 알고 나면 환상이 처절하게 깨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임상병리과 의사 출신인 국과수 박혜진 부검의는 의사의 자살에 대해 “목매거나 투신자살을 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확실한’ 약물을 사용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종족이 의사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죠? 의사가 딱 그런 경우 같아요. 겉으론 병원이 잘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빚더미죠. 자살한 의사 사례를 찾아보니까 부검대에 오른 의사가 생각보다 많더군요. 매년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씩 꼽으라고 해도 꼽을 수 있을 정도예요. 의사는 일반인보다 자살 방법을 쉽게 선택할 수 있어요. 약물을 잘 알고 접할 기회가 많거든요. 주로 마취에 쓰는 약물을 사용해요.”

셋 세기 전에 잠드는 마취제 프로포폴

박혜진 부검의는 “의사의 자살 동기는 100% 경영난”이라고 기억했다.

“2003년 치과의사가 자살을 했어요. 수술할 때 쓰는 이산화질소를 차 안에서 흡입했어요. 개업하면서 의료기계를 리스하고 비싼 건물을 임대했다가 못 버틴 거예요. 임플란트 교정 등 고가 시술을 하는 환자가 돈이 되는데, 안 온 거죠. 치과나 비만관리센터, 성형외과 등은 지역을 잘 선택해 개업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진료비 매출과 직결되거든요.

2004년 명문대 의대를 나와 정형외과를 개업한 의사는 너무 거창하게 시작한 게 화근이었어요. 은행에서 대출받고 제2금융에 사채까지 끌어들여 호화판으로 개업한 겁니다. 왜 그렇게 무리하나 싶겠지만 병원은 ‘규모의 경제’라고 하거든요. 10억 투자한 병원이 100억 투자한 병원을 못 따라가는 거죠. 요즘 소비자는 시설 좋고 깨끗한 병원을 찾거든요. 이 의사는 마취제로 사용되는 치오펜탈이라는 약을 먹었더라고요. 의사들 중에는 프로포폴 중독자가 많아요. 병원 경영이 힘들어 불면증에 시달리면 잠을 자기 위해 프로포폴을 쓰는 거죠. 프로포폴은 수면을 유도할 때 사용하는 정맥마취제예요. 셋 세기 전에 잠이 들 수 있고 깰 때도 깨끗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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