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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전투 앞두고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상부 지시에 곤혹”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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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북한의 해상도발이 증가했다는 게 당시 군 당국의 분석이었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6월5일 서해 NLL 근해에서 북한 함정이 우리 함정에 함포 3발을 쏜 사건이 있었다. 전투로 이어지지는 않았기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6월21일엔 북한의 유고급(70t) 잠수정이 강원도 양양 앞바다 어망에 걸려 아군에 포획됐다. 이때 북한 공작원 9명이 자폭했다. 7월11일엔 동해시 묵초동 해안에서 간첩 시체 1구와 수중추진기가 발견됐다. 11월20일엔 강화도 선수리에 소형 간첩선이 침투하다 발각돼 북한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남해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12월17일 전남 여수 돌산도 앞바다에서 간첩을 접선해 태우고 복귀하던 북한의 반잠수정이 격침됐다.

“절대 선제사격 말라”

박 제독은 북한이 동해와 남해에 잠수함과 반잠수정을 보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다음엔 서해를 노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해 NLL 근해는 예전부터 어로활동을 두고 남북 어선 간 충돌이 잦은 수역이었다. 아울러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맞고 있어 북미, 혹은 남북 간 협상에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내부 체제 단속을 하기 위해서라도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동쪽을 막으면 서쪽으로 들어오게 마련이죠. 함대사령관에 부임하기 석 달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40년 동안 바다에서 일어난 북의 도발 사건을 꼼꼼히 검토했죠. 북한 해군의 전력 배치와 훈련 상황, 전술을 분석해 12가지 예상 도발 시나리오와 대응책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그중 4가지가 맞아떨어졌습니다.”



박 제독은 인천항에 정박한 모든 함정의 장교들과 부사관들을 대상으로 북의 도발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했다. 낮에는 실전 훈련, 밤에는 교육이었다. 지휘관과 참모는 자정 무렵까지, 일반 장병은 오후 8시까지 교육을 받고 토론을 벌였다. 실전상황을 가상한 전술 토의를 벌이고 전장 환경과 북한 해군의 동향을 분석했다. 하사 이상의 모든 장병은 고유 임무를 부여받아 숙달훈련을 했다. 실제 전투상황에서 지휘관의 지시가 따로 없더라도 자동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햇볕정책 영향으로 군이 마냥 풀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내가 워낙 조이니까 주변에서 말이 많았죠. 장병들 사이에서 불만도 제기됐고. 당시 이남신 기무사령관이 부대로 나를 찾아와 ‘너무 조이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응수했죠. 그랬더니 ‘소신껏 하라’고 격려하고 돌아갔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무장한 2함대사령부 장병들은 1999년 4월 말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했다. 연평도 수역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은 그해 6월 초순. 북한 어선 20여 척이 선단을 이뤄 연평도 서남방 NLL 근처까지 남하했다. 북한 어선들이 그처럼 떼 지어 NLL에 다가온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때맞춰 등산곶 근해에 대기하는 북한 함정이 한 척에서 2~3척으로 늘었다. 이 함정들이 북한 어선들과 합류해 남진과 북상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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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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