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쇠고기와 결별’ 항전? ‘나는 괜찮겠지’ 초탈?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6-11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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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온은 죽는다,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 아니다. 특정위험물질(SRM)이 아닌 부위도 위험하다, 아니다. 젤라틴과 콜라겐 함량 화장품을 발라도 위험하다, 아니다. 과장과 오해와 소문이 난무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앞두고 ‘광우병’에 앞서 ‘광인병’이 창궐한 듯 모두 열병을 앓고 있다.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생각 사이에서 중간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감정의 과잉을 가라앉히고 ‘먹을거리’에 초점을 맞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얽힌 시시비비를 가려본다.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Intro]

    한반도 전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들썩들썩하다. 벌써 한 달째다. 그러나 실체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문제는 ‘광우병 논란’이 시시비비를 가릴 성격이 아니라는 데 있다.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위험도가 달라진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광우병에 대한 연구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도 반대쪽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듣는 이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누구도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규명됐거나 규명되지 않은 광우병에 대한 의문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살펴본다.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1985년 4월 영국에서 젖소 한 마리가 이상증세를 보였다. 조용하던 암소는 공격적으로 변해 다른 소들에게 덤비거나 충돌했다. 비틀거리거나 뒷다리를 질질 끌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결국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한 그 소는 도축·폐기됐다.

    그 뒤 영국 남서부에서는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소떼가 몇 차례 더 확인됐다. 소의 뇌 조직은 구멍난 스펀지처럼 뻥뻥 뚫려 있었다. 이 새로운 질병은 ‘소 해면상 뇌증(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이라 명명됐다. 미친 소에서 나타난다 하여 ‘광우(狂牛)’ 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광우병의 원인은 사료 오염으로 추정된다. 풀이나 건초를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서 단백질 오염이 일어난 것. 1970년대 영국에서는 소에게 양고기를 사료로 먹였다. 그중에는 발작 증세를 보이는 병인 ‘스크래피’로 죽은 양도 있었다. 학자들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스크래피의 원인인 프리온이 소의 뇌에서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를 먹은 사람에게 이 프리온이 옮아가면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arient Creuzfeldt Disease·vCJD)을 유발하게 된다. 1995년 처음으로 확인됐으며, 광우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100% 사망한다. 주로 노인에게 나타나는 신경계통 질환인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reuzfeldt Disease·CJD)과 증상이 비슷해 같은 병명 앞에 ‘변종’을 붙였다. ‘인간광우병’으로도 불린다.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되자 전국적으로 재협상 요구 시위가 일어났다.

    무적의 프리온

    [프리온은 없어지지 않는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은 0.001g만으로도 광우병을 옮길 수 있다. 프리온은 단백질 입자의 3차원 구조가 변형된 이종(異種) 단백질. 고열, 자외선, 화학물질에도 사라지지 않는 ‘무적’으로 알려졌다. 근대의학의 질병 원인은 세균, 바이러스 등 미생물이었다. 하등동물인 미생물도 갖고 있는 유전자가 프리온에는 없다. 생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의학계는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전혀 다른 차원의 병원균이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리온의 소멸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이견이 있다. 유럽과학위원회에 따르면 프리온은 300℃에서도 견딘다. 133℃에서 3기압을 가하면 20분 이상 버티다가 없어진다는 보고도 있고, 600℃의 고온에서도 병원성이 소실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이 정도 고온도 버텨낸다면 요리법으로는 물론 웬만한 가공으로도 프리온은 사라지지 않는다.

    [광우병 걸린 소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고열, 고압, 화학물질에도 소멸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광우병 유발 물질인 프리온.

    아니다 :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안전하다. 광우병을 유발하는 프리온의 99% 이상이 특정위험물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 “특정위험물질에만 프리온이 들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살코기는 물론 혈액, 우유, 오줌 등 기타 부위에도 소량 포함될 수 있다. 도축 과정에서 타 부위로 오염될 수도 있다.”

    광우병 원인 물질인 프리온이 많이 들어 있는 부위를 특정위험물질이라고 한다. 뇌, 척수, 안구, 머리뼈, 척주(등뼈), 배근신경절, 회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정위험물질을 섭취하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한 연구에서 밝힌 위험도는 대략 뇌 64%, 척수 26%, 등배신경절 3.8%, 회장 3.3% 순이다. 특정위험물질에서 프리온의 99.45%가 검출되고, 나머지 부위에서 0.55%가 발견된다.

    따라서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섭취해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낮아진다. 그러나 ‘변형 프리온은 투입량과 발병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리온 1㎎을 투입했을 때와 0.001㎎을 투입했을 때 광우병이 발병한 소의 숫자가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0.55% 부위에 대해서도 조심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SRM 이외 부분도 안심 못해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안전하다?]

    특정위험물질이 깔끔하게 제거된다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축과정이 위생적이지 않으면 특정위험물질의 프리온이 다른 안전 부위로 옮아갈 수 있다. 특정위험물질을 처리하는 데 사용한 칼을 그대로 쓰거나 뇌, 척수 등 위험물질이 다른 부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등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다른 부위와 월령(月齡)의 쇠고기가 섞이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도축과정과 감시 정도는 기대할 만한 수준이 못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부터 시행하는 육류 검역 프로그램인 ‘해섭(HACCP·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을 위반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다. 1년 동안 소의 나이를 엉터리로 판정한 경우가 63개 도축장에서 86건,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지 않은 경우가 100건에 달했다. 특히 광우병 소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목장 전체 운영에 차질을 빚기에 목장주들은 광우병 의심 소가 발견돼도 조용히 도살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쇠고기 리콜 사태 이후 19개 도축장을 조사했을 때 목장의 20%가 해섭 지침을 위반하고 있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 내 도축장 검사는 수의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수의사들이 소가 피를 흘리는 구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도축장을 감시하기 위한 공무원의 숫자도 부족하다. 하루에 4000마리를 도축하는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면밀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소인 30개월령 이상 소의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도 실수가 많다.

    과거 우리나라로 수입되던 미국산 쇠고기에서도 특정위험물질인 등뼈가 발견된 바 있다. 따라서 도축 과정에서 특정위험물질을 완벽히 통제한다고 기대하기 힘들다.

    살코기·혈액도 조심해야

    참고로 등뼈가 특정위험물질에 포함되느냐는 미국, 일본, EU(유럽연합), OIE(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이 다르다. 미국은 30개월 미만 소의 등뼈는 식용으로 사용하고 30개월 이상 소의 등뼈는 사료의 원료로 쓰도록 하고 있다. OIE는, 확인할 수 없는 광우병 위험국가는 12개월령 이상 소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광우병 위험국가는 30개월령 이상 소에 대해 등뼈 교역을 금지하고 있다.

    [살코기로도 감염된다?]

    그렇다 : “소가 나이를 먹으면 살코기의 말초신경에서도 변형 프리온이 발견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쇠고기 살코기를 먹은 고양이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됐다.”

    아니다 : “살코기로는 변형 프리온이 전파되지 않는다. 임상증상이 발현되지 않는 건강한 소의 살코기는 안전하다.”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광우병은 프리온이 많은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하면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축과정이 위생적이지 못하면 프리온이 안전 부위에 오염될 수 있다.

    살코기는 월령에 관계없이 안전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지금까지 소의 살코기에서 프리온이 검출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일본에서는 말초신경에서 프리온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보고돼 말초신경과 붙어 있는 첨골, 비골 신경과 살코기도 위험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상 소에 프리온을 주입했더니 뇌, 중추신경, 말초신경절 순으로 프리온이 퍼져나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살코기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쇠고기 상태에 따라 살코기를 가려 먹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 광우병연구실 우희종 교수(수의학)는 “살코기는 일반적으로 안전하지만 쇠고기 상태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서울대 의대 김상윤 교수(신경과학)도 “증상이 아주 심한 소라면 살코기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살코기에 프리온이 있더라도 미미한 분량이기에 인간광우병을 일으킬 소지는 적다. 그러나 프리온은 최소감염량이 0.0001g인 만큼 30개월령 이상 소는 살코기도 먹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혈액으로 감염된다?]

    “소의 혈액에서는 프리온이 검출된 사례가 없지만, 수혈을 통해서 광우병 감염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2003년 12월 이후 영국에서 수혈을 통한 인간광우병 전염사례가 3건 확인됐다. 적혈구, 냉동혈장, 혈소판 등을 통해 광우병이 전염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1996년 이전 영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의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OIE는 BSE 최소위험국가 이상 국가 6개월령(도축시) 이상 소의 특정위험물질을 이용한 의료용 기구 수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외과수술 장비를 통해 광우병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30개월 이하의 소는 안전하다?]

    그렇다 : “광우병의 99.9%는 30개월령 이상 소에서 발견됐다. 확률적으로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광우병이 발병하는 경우는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다.”

    아니다 : “30개월 미만 소에서 실제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가 있고, 임상실험을 통해서도 28개월령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개인이 30개월 미만 소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20~30개월령 소 2마리가, 영국에서 수십 마리가 광우병에 감염됐었고 최근 경구감염 실험에서도 28개월령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단 1% 미만의 가능성이라도 일단 국내에서 광우병이 발병하면 손실은 엄청나다. 광우병에 걸린 개인도 불행하지만 수혈 등을 통한 감염을 예방하자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영국은 의약품용 혈액재료는 전량을 수입하며 인간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편도선 수술에서는 1회용 기구를 사용한다. 수술기구를 충당하는 데 연 5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일반 화장품은 안심

    [광우병은 화장품으로 전염된다?]

    일부 화장품에는 소의 성분인 콜라겐과 엘라스틴 젤라틴 등이 함유돼 있다. 이 물질들은 소가죽과 힘줄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광우병을 유발하는 특정위험물질이 아니다. 따라서 소의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이 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변형 프리온 단백질로 오염됐다 해도 피부의 각질층을 뚫고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의 피부는 일반적으로 분자량 500 정도의 물질을 통과시키는데, 프리온의 분자량은 3만3000~3만5000이다. 건국대 수의대 이중복 교수는 “상처를 통한 감염은 불가능하다. 변형 프리온이 말초신경을 거쳐 뇌까지 들어가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프리온에 오염된 화장품이 안구 점막으로 들어가는 경우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우희종 교수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소의 물질이 도축과정에서 프리온에 오염될 것을 우려해 화장품 원료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

    [미국소는 안전하다?]

    선택권 없는 ‘광우병 서바이벌 게임’ A to Z

    “저가의 미국산 쇠고기는 학교 급식에 주로 사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중·고등학생들은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광우병 학생시위 세력을 결집했다.

    그렇다 : “미국에서 2004년 6월부터 2007년 8월까지 고위험소로 의심되는 78만7000마리를 검사한 결과 단 두 마리만 양성으로 확인됐다. 둘 다 1997년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이전에 태어난 소였다. 이후에는 없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22세 여성은 인간광우병이 사망원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광우병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보다 진행이 느린데 그 여성은 발병 3개월 만에 사망했다.

    임상증상이 있는 소는 도축장에 못 들어가게 하고, 30개월 이상의 모든 소는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다. 광우병 감염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HACCP도 시행하고 있다.”

    아니다 : “미국에는 일어설 수 없는 소(다우너 소)를 포함해 광우병 유사 증세를 보이는 고위험소가 한 해 44만6000마리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40만 마리 정도가 30개월 미만이다. ‘미국에서는 한 해 44만 마리가 넘는 소가 광우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지만 현재의 검역 프로그램으로는 광우병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광우병 발생 건수가 적은 것은 검역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도축소 전부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유럽에서는 30개월 이상 소의 도축시 전수검사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샘플링 검사체제다. 0.01%만 검사한다. 주저앉거나 병들어 죽는 소에 대해서도 2%만 광우병 검사를 한다.

    사료정책도 문제다. 유럽이나 일본은 모든 농장의 동물에 대해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강력한 사료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료금지조치는 되새김동물에게만 되새김동물의 육골분으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25일 연방관보를 통해 공포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는 30개월 미만 소는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고도 사료로 쓸 수 있게 해 2005년 입법예고안보다 대폭 후퇴했다. 광우병은 사료정책과 관련이 가장 깊다. 우리나라도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모든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3단계로 강화하지 않으면 광우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질병통제센터는 ‘한 번 쇠고기 요리를 먹을 때 약 100억분의 1 확률로 광우병에 걸린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발병 건수로만 본다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은 미미해 보인다. 그러나 광우병 검역은 일부 소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최근 광우병 의심 소가 도축돼 어린이 보호시설까지 유통된 사건도 있었다.

    또 광우병 소 발견 시기는 2003년 12월이었다. 10년 잠복기를 고려하면 2013년에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수 있다. 지금 걸린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어떠한 근거도 될 수 없다. 또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추가 인간광우병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검역권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수입 쇠고기 전부에 대한 관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07년 도축장을 예찰했을 때도 미국이 정한 곳을 대상으로 삼았다. 불시 검문도 아닌 사전 통보 후 방문이었다. 한 전문위원에 따르면 그렇게 갔는데도 30개월 이상과 미만 소의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실수로 섞일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본은 도축과정에 대한 관리도 철저하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20개월령 미만 쇠고기는 도축과정에서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게끔 철저히 관리된다.

    수입 개방되면 30개월령 들어올 것

    [미국인들도 30개월 이상 소 먹는다?]

    그렇다 : “미국 도축 소 95%가 24개월령 미만이다. 30개월 이상 된 소를 미국인이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도축되는 경우 자체가 적다. 한국에 수입되는 쇠고기도 대부분 20개월 미만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특정위험물질이 제거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먹고 있고,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가 수입하는 쇠고기는 같은 품질의 쇠고기다. 내수용과 수출용 모두 도축이나 검사과정이 똑같다. 더군다나 한국으로 수입되는 쇠고기는 국내에 들어올 때 또 한번 철저한 검역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니다 : “미국내 도축소의 90% 이상이 20개월 미만이다. 반면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도축소의 99%는 20개월 이상이다. 미국 사람들이 먹지 않는 30개월령에 가까운, 또는 그 이상된 쇠고기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셈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수출하는 소가 24개월령 미만이라면 왜 30개월을 협정 조건으로 삼았는가. 협정 조건이 그런 이상 개방 이후에는 미국에서 소비되지 않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가 물밀듯 들어올 수밖에 없다.”

    소득 수준별로 소비하는 쇠고기가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24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를 안전하다고 본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그중에서도 찌꺼기 부위는 상업적 가치가 없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 수입업자들에 따르면 미국에 30개월령 미만 소의 LA갈비를 주문해도 머리뼈, 내장을 싼값에 함께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 수입업자들도 저가 쇠고기를 선호한다. 따라서 미국에서 소비하지 않는 30개월 이상 살코기 이외의 부위가 이윤을 노리는 업자들에 의해 한국에 다량 수입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하다?]

    아니다 : “특정한 유전자 하나가 인간광우병을 결정하지 않는다. 프리온 유전자는 MM, MV, VV 형으로 나뉜다. 문제가 된 한림대 의대 김용선 교수의 논문은 인간광우병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이 아니라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sCJD)에 대한 것이다. 한국인이 프리온 유전자 분석 결과 95%가 MM형 유전자를 가졌기에 sCJD에 약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MM형 유전자가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가설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렇다 : “논문이 sCJD에 대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광우병과 sCJD는 연관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sCJD 발병 환자 중 MM 유전자형이 많은 것은 사실인 만큼, 한국뿐 아니라 MM형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인은 광우병에 더 취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MM 유전자형의 취약성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조심해야 할 근거로는 충분하다.”

    한국인의 유전자형이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이 부분은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식습관이다. 우리는 외국에서 먹지 않는 부위도 즐겨 먹는다. 특히 미국과 달리 쇠고기의 여러 부위를 끓여 만든 음식이 많다. 곱창, 설렁탕, 곰탕, 도가니탕, 선지내장탕, 소머리국밥 등을 들 수 있다. 부대찌개, 순댓국, 우거지갈비탕, 해장국, 냉면, 뚝배기불고기 등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인기 있는 식당 메뉴 대부분에도 쇠고기가 들어간다. 다른 국가보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즐겨 먹기 때문에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분석이다.

    가려 먹을 수 있을까?

    [가려 먹으면 된다?]

    “질 좋은 고기를 들여오면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에 도움이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가려서 먹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쇠고기를 소비할 때는 어느 정도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우, 호주산 등 원산지가 표기되기 때문이다. 일반 식당에서 쇠고기를 먹을 때도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구이용 쇠고기를 파는 300㎡ 이상 규모의 업소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에 따라 메뉴판 등에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6월부터는 100㎡ 이상 업소, 탕용, 튀김용, 생식용, 찜용 등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단속 인원이 부족해 있으나마나한 제도”라는 지적을 수용해 단속인원도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100% 믿을 수는 없다. 한우, 육우, 젖소, 수입 쇠고기는 육안으로 구분이 불가능하다. 이윤에 눈이 멀어 업소들이 원산지를 속이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 원산지 확인의 근거로 삼는 고기의 등급판정 확인서와 도축검사 증명서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또 여러 가지 고기를 함께 취급하는 경우 고기들이 섞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음식점 등록이 한식, 경양식, 중식, 일식 등으로만 등록돼 있어 고기 취급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맹점도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DNA 검사로도 원산지 표시의 사실 여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DNA 검사로는 한우와 수입육만 구분이 가능하다. 미국산이 호주산으로 둔갑해도 알 길이 없다. 쇠고기를 원료로 하는 각종 먹을거리도 문제다. 과자, 수프, 탈지분유를 포함한 음료 등에 쇠고기 뼛가루가 들어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소량 포함된 성분은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Etro]

    4월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됐다. 이번 타결안의 핵심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제한 없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2006년 초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4대 선결조건을 통해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은 ‘30개월령 미만 소에서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 살코기’였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공표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은 협상이 타결된 뒤인 4월23일, 12개월 뒤부터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리는 월령에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게 됐다. 하지만 강화조치 내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30개월 미만 소는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고도 사료로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예정 시기와 내용 등도 명시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성급하게 연령제한을 풀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광우병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사료조치에 대한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양기화 연구조정실장은 “광우병에 대해서는 섣불리 안전하다, 위험하다를 말할 수 없다.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닌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위험하지만 얼마나 위험한지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은 현상을 앞서나갈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재앙을 본 뒤에야 사후약방문 식으로 사태를 수습해왔다. 과학은 경험법칙을 집대성해놓은 것이라서, 오늘까지 옳다고 믿었던 사실이 내일 틀린 게 될 수도 있다. 특히 광우병처럼 새로 발병한 병은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원인과 결과의 복잡한 고리를 연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저마다의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방어기능 100%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을 만들기란 힘든 일이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결정하면서 “도축과정 감시, 검역, 소의 안전도에 대해서는 국제 기준을 따랐으며, 들어온 쇠고기에 대한 소비는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100%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나라의 쇠고기 문호를 개방하는 처지에서는 무책임한 태도다. 일단 개방이 되면 본의 아니게 미국산 쇠고기와 그것을 원료로 하는 수백 가지의 제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수입업자들은 “가격 경쟁력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급식, 햄과 소시지 등 가공식품의 주원료로 쓰이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월령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는 시장논리에 따라 인기를 끌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설렁탕을 먹지 않겠다는 이가 많다. 99.999999 99999999…%안전하다고 해도 나머지 0.0000000000…1%의 가능성의 주인공이 내가 된다면 치사율이 100%인 게 인간광우병이니까. “지금 협상안대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장기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들려준 한 광우병 전문가의 이야기는 “나한테야 별일 있겠느냐”는 생각을 뒤집게 했다.

    “정부는 발병 가능성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한다. 그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값싼 쇠고기를 선택해도 좋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은 쇠고기는 물론 쇠고기와 관련된 모든 물품과 거리를 둬야만 인간광우병에 걸릴 벼락 맞을 확률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광우병이 우리나라 푸드 시스템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다. 개인적 재앙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광우병 발생국가가 되면 국가적 손실이 엄청나다. 과거 영국 미국 캐나다 정부는 광우병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보건과 육가공업계 이윤 간의 타협이라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확실한 인간광우병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초기에 정부의 관점에서는 제한적인 대응이 합리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질병은 기습적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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