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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정보왜곡·편향교육이 빚은 신민족주의, 중국은 절대로 세계를 이끌 수 없다”

  • 쑨원광 중국 산둥대 퇴직교수·물리학 / ‘번역·은송희’

‘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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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반대하면 ‘매국노’ ‘배신자’

‘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바링허우(八零後)’들은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을 바라며 이를 방해하는 모든 세력에 공격적으로 대항하는 특징을 보인다.

베이징올림픽 및 올림픽 성화 봉송과 관련해서는 서로 다른 몇 가지 의견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당국과 일부 ‘펀칭(憤靑·분노한 청년,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바링허우(八零後)’세대)’들의 관점이다. 이들은 베이징올림픽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올림픽이 되기를 바라며, 중국이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중국과 중국 정부의 영광을 드높이고 싶어한다. 그들의 눈에는 베이징올림픽을 저지하거나 올림픽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대역죄다. 그게 중국인이라면 매국노이자 배신자이며 해외의 언론매체라면 반중국 세력인 것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전세계에서 자유가 없는 국가, 인터넷 통제가 엄격한 국가,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신문기자들이 가장 많이 체포되는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티베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일부 국가에서는 개최장소를 바꿔서 올림픽을 열자고 주장했고, 일부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은 올림픽 개막식 불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중국 내에서도 일부 지식인들은 베이징올림픽 개최에 대해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다. 이들은 일찍이 중국 당국이 올림픽 개최에 앞서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정치범과 종교·신앙사범 석방, 해외에서 유랑하는 반체제 인사들의 귀국 허용, 정치적 이유로 입국이 불허된 인사들의 블랙리스트 삭제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올림픽 개최 전에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해외 분위기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일부 지식인들은, 베이징올림픽은 중국 공산당이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이므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 동유럽과 북한 등이 공산당 통치 아래 획득한 많은 금메달은 공산당 정권의 영광을 위해서 민중의 피와 땀으로 맞바꾼 대가라는 것이다. 동유럽 국가 다수가 공산당 정권이 붕괴된 후엔 올림픽에서 획득하는 금메달 수가 줄어들었지만 국민들은 민주와 자유를 얻었고 생활수준도 높아졌다.



올림픽 성화의 해외 봉송 과정에서 미국 유학생인 왕첸위안(王千源)이나 홍콩 대학생인 천차오원(陳巧文)처럼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한 중국인들은 반대자들로부터 비난과 욕설을 감수해야 했다. 왕첸위안의 부모가 살고 있는 칭다오 집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몰려가 소동을 피우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왕첸위안의 모교인 칭다오 제2중학교는 그녀의 학적을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의 배후에는 모두 편협한 민족주의가 반영돼 있다.

‘부청멸양(扶淸滅洋)’ 전통

중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청(淸) 말엽 의화단은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살리고 서양을 배격한다)’을 주장하며 외세를 배격하면서 교회당을 불태우고 전봇대를 도끼로 베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서양인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과거의 교과서에서는 그런 의화단을 사회 진보를 이끈 농민운동으로 칭송했다. 항일전쟁 중의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긍정적인 의미를 띤 데 비해 항일전쟁이 끝난 후의 민족주의는 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전부 외세를 배척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 6·25전쟁 때 중국 당국은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와 나라를 지키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대중운동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미국은 중국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국이라고 선전하며 미국이 한국을 지지해서 북한을 침략했다고 말했다. 그때도 중국의 언론매체들은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와 관리 속에 있었고 대중은 외국의 언론을 접할 길이 없었다. 해외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도 금지돼 있었다. 이를 어기고 해외 방송을 청취하는 사람은 ‘반혁명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때 형성된 사고의 영향과 그 뒤에 이어진 교육으로 중국인들은 미국을 멸시하고 적대시하게 됐다. 이런 생각은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6·25전쟁 발발의 진상에 대해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옛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많은 중국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민주 선진국들에 대해 아직도 적대 감정을 갖고 있다.

19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베트남 군대가 중국 영토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여론을 조성한 뒤 민족주의 정서를 이용해 베트남을 침략, 약 10만명에 이르는 사상자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야기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진지하게 분석해보면 중국은 캄보디아의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루주와 그 통치자인 폴 포트를 지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폴 포트는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975년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뒤 중국의 무산계급 독재를 모방한 암흑정치를 실시했다. 4년 동안 무려 200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대학살을 저질렀다. 이와 같은 참사는 어떤 면에서는 독일 나치즘의 잔혹성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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