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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정보왜곡·편향교육이 빚은 신민족주의, 중국은 절대로 세계를 이끌 수 없다”

  • 쑨원광 중국 산둥대 퇴직교수·물리학 / ‘번역·은송희’

‘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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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양심’ 쑨원광 교수의 자기비판

티베트 사태는 티베트 승려들의 평화적 가두시위를 중국이 강압적으로 저지하면서 촉발됐다. 중국 언론은 티베트 승려들의 조작된 폭력 장면을 의도적으로 반복 방영했다.

베트남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크메르루주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전쟁을 일으켜 1979년 초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을 함락시켰다. 폴 포트는 서부 밀림으로 도망쳤고 베트남의 출병으로 캄보디아의 대부분 지역이 해방됐다. 이는 중국 정부를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폴 포트가 이끈 정권은 중국의 지지와 지도 아래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모델로 해서 세워진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련 사회주의 정권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이 이런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79년 10여 만의 병력을 집결시켜 베트남을 침공, 본때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런 침략전쟁이 중국 인민들에게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실상을 왜곡, 베트남이 중국을 침략했기 때문에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위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민족주의를 선동해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전쟁으로 중국 정부는 인민들에게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안기고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까지 이 전쟁의 정확한 실상과 내용이 실려 있지 않다.

‘나토가 중국을 깔본다’

1999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피격으로 3명이 사망하자 ‘나토가 중국을 무시하고 깔본다’는 여론이 형성돼 민족주의가 거세게 일어났다. 중국 정부가 조성한 이 여론으로 주중 미국대사관과 각 지역의 미국영사관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은 “실수로 인한 오폭”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은 미국이 고의로 중국대사관을 폭격했다고 여겼다. 도대체 이 사건의 진상은 뭘까. 중국 당국이 정보를 막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미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중국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중국 내 일부 지식인들은 중국 당국이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정책결정 과정은 투명하지도 않고 여론의 감독을 받지도 않으며 법적인 제재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6·25전쟁과 베트남 침략 등 중요한 사건에서 국민들을 속인 과거 전력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엄청난 전쟁을 일으키고도 수십년 동안 진실을 감추고 역사에 대해 책임질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중국대사관 폭격으로 3명이 사망한 사건을 조작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만큼 손쉬운 일 아닐까.



나토군의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이 발생한 당시 중국 공산당은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쳐 미국과 영국을 나쁘게 묘사했다. 이 사건을 통해 민중의 민족주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대중의 항의시위를 독려해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중국인들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을 증오하게 된 또 하나의 사례다.

나토군의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당시 유고에선 공산당 당수를 역임한 바 있는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독재자였다. 집권 기간 외세배척 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모두 네 차례의 전쟁을 일으켜 남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로 인해 30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5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밀로셰비치는 중국 공산당과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러던 차에 일어난 중국대사관 피폭사건은 중국 공산당이 민중의 항의시위를 지지하는 빌미가 됐다. 이와 같은 행위는 중국 공산당의 오랜 친구인 밀로셰비치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민족주의를 유지하고 선동하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사건의 전말이야 어찌됐든 간에 중국은 나토 등 선진국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목적을 이뤘다. 2005년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 자격을 얻으려 했을 때에도 중국에서는 대규모 반일시위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 역시 민족주의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

첨단 통신 등에 업은 新민족주의

요즘 중국의 민족주의는 ‘신민족주의’라고도 일컫는데, 신민족주의는 과거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과거의 민족주의는 주로 당국에 의해 계획과 정책이 결정되고 수직적으로 조직됐다. 1950년 북한과 함께 6·25전쟁을 일으킨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민족주의적 활동들은 민중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것이지 당국이 나서서 이끈 것이 아니다. 당국의 책임은 진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외국의 비판적인 여론들에 대해서 부적절하게 대응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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