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명상, 순례, 에코 투어… “우리는 머무르기 위해 떠난다”

  • 권삼윤 문화비평가 tumida@hanmail.net

    입력2008-07-04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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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여행서가 봇물을 이룬다. 한 달에도 여러 종의 신간이 서점 매대에 오른다. 여행객 증가에 따른 대응이라 할 수도 있지만,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욕구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행서의 내용도 신변잡기와 개인적 감상 수준에서부터 현장에서가 아니라면 구할 수 없는 정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기류의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행지나 테마도 천차만별이다.

    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게 1989년이니 어언 19년의 세월이 흘렀고, 주머니 사정도 나아진 데다 세계가 이웃이 된 글로벌 시대를 맞았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서점의 에세이 코너에나 진열되던 여행서가 이제는 어엿하게 독립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여행 매대 표시판에는 ‘떠난 그곳에서 시간을 놓다’라는, ‘히피의 여행바이러스’(박혜영, 넥서스)에 나오는 카피까지 달아놓았다.

    여행서적의 원조 격인 가이드북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과거부터 명성을 얻어온 ‘세계를 가다’ ‘론리플래닛’ 시리즈부터 국내 필진이나 출판사가 엮은 토종 브랜드 가이드북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다루는 국가나 도시도 가히 세계를 아우를 정도가 됐다. 그만큼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는 증거다.

    여행서 흐름 이끄는 30대 여성

    최근 5년 동안 발간된 여행서를 통해 여행 트렌드를 살펴보니 해외여행 하면 모두 1순위로 삼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을 벗어나 이제는 독일(이상은 ‘삶은…여행 이상은 in Berlin’), 이탈리아(권삼윤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터키(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그리스(권삼윤 ‘꿈꾸는 여유, 그리스’), 스페인(김지영 ‘멈추지 않는 유혹, 스페인’, 손미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체코(최미선 ‘한 권으로 끝내는 퍼펙트 프라하’) 등 유럽의 다양한 나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전통적으로 강세이던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이제는 인도, 베트남(이지상 ‘호찌민과 시클로’, 최수진 ‘베트남 그림여행’), 라오스(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등을 대상으로 한 여행서가 등장했고, 아프리카, 호주, 중남미(박민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정석 ‘쉬 트래블스 1’) 등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서의 저자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고 연령대는 30대가 대부분이다. 직업을 보면 잡지사 에디터나 전직 기자, 작가, 패션 디자이너, 요리 전문가로 다양하다. 이들은 여행비를 감당할 정도의 경제력도 있고, 독신의 경우 생활이 자유로워서인지 여행을 쉬이 떠난다.

    그중에는 11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여행을 떠난 젊은 여성도 있다. 스스로는 백수의 길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서른셋 나에게 선물한 여행’(라비다로까)의 저자 양윤정은 시집갈 때 쓰려고 모은 적금을 털어 더블린에서 뉴욕까지 여행하면서 온전히 혼자 설 수 있었다며 여행은 자신에게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아나운서이던 손미나도 스페인 연수를 다녀온 뒤 ‘스페인, 너는 자유다’(웅진닷컴)를 내고 자유인이 돼 후속편 ‘태양의 여행자’(삼성출판사)까지 펴냈다.

    30대 젊은 여성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세상을 보는 나름의 눈을 가졌기에 현지인의 일상적 삶이나 생활문화, 대중문화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무작정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정숙영은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부키)에서 여행 중에 부딪힌 어려운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갔는데 이는 여성의 침착성이 제때 작동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만의 여행’ 추구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유럽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르고 싶어하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게 마련. 열정과 호기심이 그것이다. 열정이 있어야 세계를 가슴에 담을 수 있으니까. 여행자들은 도전 정신을 갖고 세계를 걷는다. 필요한 것만 배낭에 넣고 생생한 체험을 얻고자 낯선 곳으로 떠난다. 이런 이가 많아진 것은 여행서의 홍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워크캠프 봉사활동에 참여해 영어 실력과 세상 보는 시선을 갖게 된 대학생이 미국,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레바논, 케냐 등 24개국을 여행한 경우도 있다. 김성용은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21세기북스)에서 여행은 최고의 수업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최근의 여행 방식은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혼자서 또는 둘이 하는 자유 여행이 주류다. 따라서 여행서는 개인적 체험과 감상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문체도 감성적으로 흐른다. 이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느낌을 공유하게 되어 좋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되는 부분이 약해서 지루하다는 것이다.

    독자와 느낌을 공유하는 여행서로는 “여행은 일상의 도피가 아니라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히피의 여행바이러스’(박혜영, 넥서스)와, 젊은 아티스트 여섯 명의 여행기로 권태로운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특이한 제목의 ‘CmKm’(김진표 외, 시공사), 여행에는 우리가 꿈꾸는 100가지 로망이 담겨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여행자의 로망 백서’(박사 외, 북하우스)를 꼽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직장생활과 여행이 공존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다. 이런 이유로 필자도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프리랜서가 됐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여행을 할 수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팜파스)의 저자 조은정은 직장을 다니는 10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해왔다며 시간보다 열정과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고는 ‘직딩녀’를 위한 특급 노하우, 베스트 여행지를 소개한다. 또한 ‘열흘짜리 배낭여행’(김유경, 예담)은 열흘이란 짧은 기간에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 노하우를 들려주면서 직장인을 향해 당신도 한번 떠나보라고 권한다. 부록에선 코스별 이동경로도 추천한다.

    여행자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돈이다. 특히 젊은이에게 돈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 전부를 들고 떠나지만 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80만원으로 세계여행’(정상근, 두리미디어)은 작은 돈으로 여행 고민을 해결한 대표적인 케이스. 1달러를 쓰더라도 어떻게 하면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들려주는 실속파 에릭 토켈스의 ‘여행 달인의 비밀수첩’(미래인)을 함께 보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각양각색의 유럽 여행서

    해외여행이라면 으레 서유럽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우고 들은 것들의 대부분이 서유럽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파리나 로마를 동경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 열기가 아주 사그라진 건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첫 여행은 대개 그곳으로 향하는데다, 이전에 한번 다녀온 사람들도 “TV에서 직접 가본 유럽의 도시와 풍경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며 잠을 못 이루기”(이지상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때문이다.

    필자가 본격적인 여행기로 쓴 ‘두브로브니크는 그 날도 눈부셨다’(효형출판)도 서유럽 문화를 주로 다뤘다. 최근에 나온 ‘유럽, 그 지독한 사랑을 만나다’(김솔이, 이가서)는 유럽에 산재한 궁전과 성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 서유럽 여행기 중에서는 실생활을 들여다본 책들이 인기가 많다. 유럽의 문화현장에서 즐기는 노하우를 전해주는 ‘두 번째 우려낸 유럽 체험여행’(지일환 외, 안그라픽스)과, 시골과 뒷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을 깊고 용맹스럽게 기록한 여행기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났다’(백은하, 웅진지식하우스), 유학생 신분으로 파리, 베를린, 로마,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장기간 어울리며 그들의 연애관을 소개하는 ‘유러피언 러브스타일’(조승연, 해냄출판사)이 좋은 예다.

    감성코드형 유럽문화 답사기도 인기다. 유럽의 과거를 반추하며 자신을 되돌아본 ‘아, 유럽!’(조규익 외, 푸른사상)과, 중세유럽 풍경들과 사랑에 빠진 감상을 담은 ‘유럽에 취하고 사진에 취하다’(백상현, 넥서스BOOKS) 등이 대표적이다.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항. 휴양지로 유명하다.

    유럽 여행서 가운데선 시티가이드도 한몫하는데, 파리에 관한 것이 단연 으뜸이다. 파리만큼 낭만적인 도시가 달리 없어서다. ‘파리 블루’(김영숙, 애플북스)는 파리를 기억의 도시, 향수의 도시, 그리운 연인 같은 도시로 묘사한다. ‘두 번째 파리’(티파사, 에디터)는 패션 에디터의 눈으로 본 파리의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정재형의 Paris Talk’(브이북)는 파리에서 9년 동안 유학하며 만난 뮤지션들과의 대화를 담았고, ‘파리지앵’(이화열, 마음산책)은 13년간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살며 오감으로 체험한 일상을 그렸다. ‘파리의 이런 곳 와보셨나요’(정기범, 한길사)는 파리의 멋진 카페와 부티크, 고색창연한 서점, 화려한 호텔과 같은 옛것과 새것을 소개한다.

    물론 이 같은 감성코드, 시티가이드형 유럽문화 답사기는 서유럽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중유럽, 북유럽, 동유럽까지 대상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다.

    도쿄, 홍콩, 뉴욕

    주 5일 근무제와 휴가 변동제 실시에 따라 가까운 도쿄와 홍콩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이는 대형 서점의 판매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그렇지 못해 한동안 한국인들이 가기를 망설이던 곳이었다. 물가 또한 얼마나 비쌌던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져 젊은 세대들이 가장 많이, 가장 쉽게 찾는 곳이 됐다. 판매 1위를 달리는 도쿄 여행서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여행서로는 도쿄의 가게 500여 곳을 직접 취재한 보고서 ‘도쿄 동경’(박용준 외, 안그라픽스), 잘 알려지지 않은 도쿄의 뒷골목과 인테리어 숍, 온천을 소개하는 ‘동경오감’(박성윤 외, 삼성출판사), 일본의 선술집에서 만난 도쿄 사람들과의 대화를 담은 ‘태양의 여행자’(손미나, 삼성출판사), 3년 동안 디자인 강국 일본에 머물면서 캐릭터를 짚어본 캐릭터 디자이너의 ‘비비천사의 도쿄 다이어리’(서윤희, 길벗), 도쿄를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두나´s 도쿄놀이’(배두나, 테이스트팩토리)가 있다.

    홍콩은 쇼핑 천국으로 세일 기간이 되면 관광객들이 전세계에서 구름처럼 모여든다. 물론 이때 한국인도 한몫한다. ‘금요일에 떠나는 홍콩’(노소연, 랜덤하우스)은 쇼핑과 레스토랑, 마사지에 관한 정보가 풍부해 2박3일로 다녀오려는 이에게 적합하다. ‘I Love Hong Kong’(신서희, 랜덤하우스중앙)은 홍콩 여행 고수가 쓴 것이라 독자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클로즈 업 홍콩’(김형일 외, 에디터)은 3명의 저자가 1년 넘게 홍콩을 다니며 찾아낸 진수만 보여주며, ‘홍콩에 취하다’(허원정, 조선일보생활미디어)는 패션 멀티숍은 물론 홍콩 스타일까지 들려준다.

    뉴욕은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인데다 유학 목적으로든 여행 목적으로든 찾는 사람이 많다. 뉴욕 여행서는 문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뉴욕 걷기’(이채영, 북노마트)는 현대미술, 뮤지컬 등을, ‘뉴욕에 미치다’(김랑, 조선일보생활미디어)는 뉴욕 곳곳의 매력을 전해준다. ‘네 멋대로 행복하라’(박준 지음, 삼성출판사)는 특별한 공기를 마시면서 뜨겁게 살아가는 뉴요커의 일상을 들려주고, ‘친절한 뉴욕’(박루니 외, 아트북스)은 디자인 스쿨 학생들의 뉴욕 서바이벌을 다루고 있다. ‘뉴욕 아이디어’(박진배, 디자인하우스)는 거리와 건축, 갤러리, 부티크를, ‘뉴욕에 사는 여자’(권지현, 즐거운상상)는 생동감 넘치는 뉴욕의 재미난 일상을 묘사한다. ‘현대미술의 심장 뉴욕 미술’(이주헌, 학고재)은 뉴욕의 세계적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뉴욕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이유진, 21세기북스)는 유쾌한 에세이로 뉴욕 스타일 영어를 소개한다.

    가까워진 아프리카와 쿠바

    아프리카는 여행하기에 열악한 조건을 갖고 있다. 우선 기후가 그러하고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구하기 어렵고 명소도 드물다. 직항편이 없어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니 신뢰할 만한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행은 도전이라며 편안한 여행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달려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야생동물과 풍경에 매료돼 아프리카를 찬양한다. 이들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에코 투어’를 실감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이집트, 모로코를 제외한 아프리카 지역은 최근 들어서야 한국 여행자의 발길이 닿고 있어 이 지역 여행서가 ‘아직은’ 단계에 있다는 거다. 현재로선 아프리카 여행서 중 국가별 책으로는 알제리가 유일하다. 불문학자인 저자가 카뮈와 지드의 발자취를 담은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마음산책)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여행서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미노, 즐거운상상)의 저자는 8개월간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 남부아프리카 사람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야생동물과 풍광, 아프리카의 슬픈 현실 등을 그렸고, ‘우먼 인 아프리카’(정은선, 이가서)의 저자는 아프리카를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자신의 내적 성장 과정을 그렸다. ‘아프리카 초원학교’(구혜경, 한겨레출판)는 두 자녀와 함께 여행하면서 느낀 아프리카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다. ‘미애와 루이 가족, 45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자인)은 야생동물을 다뤘고,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정환정, 갤리온)는 아프리카에서 인생의 비밀을 찾았다.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인도의 타지마할.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다.

    우리에게 쿠바는 오랫동안 미지의 땅이었으나 서서히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그곳을 다녀온 이들의 여행서를 통해서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유재현, 강)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몰락을 면하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현실 사회주의국가일 뿐인 쿠바”를 바라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 ‘메구스타 쿠바’(이겸, 은행나무)의 저자는 쿠바 작은 도시들을 찾아 그 섬세한 부분에까지 눈길을 보내고는 “그래, 나는 진정 쿠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예담)는 느림의 여행을 하듯 천천히 쿠바를 관찰한다. 그 외에 쿠바를 다룬 책으로는 꼼꼼한 기록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그림을 엮은 ‘화가 사석원의 황홀한 쿠바’(청림출판)가 있다.

    여행하며 머물다

    두터운 여행서인 ‘캘리포니아’ ‘토스카나’를 연이어 내놓은 김영주는 “떠나는 게 여행이 아니라 머무는 게 여행이다”라고 말해 여행 상식을 뒤집었다. 그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그 여행지에 스며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체류 여행은 유학생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이 한다. 이런 여행기로는 5년간 파리에 살면서 파리의 면모를 소개한 ‘파리의 새벽, 그 화려한 떨림’(김승웅, 선)과, 음악 명문 프라하 콘서바토리로 유학을 떠났다가 민박집 주인이 된 얘기를 다룬 ‘스물한 살의 프라하’(박아름, 랜덤하우스코리아)가 있다. 그 외 파리에 살며 그곳의 엘리베이터, 산책, 빵, 슈퍼마켓, 영화관, 학교 등 일상적인 면을 소개한 ‘파리여행노트’(박은희 외, 한길아트), ‘정재형의 Paris Talk’(브이북)가 있다.

    여행의 기본은 이동. 여행자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비행기, 기차, 배, 버스, 자동차(렌터카), 트럭, 택시, 자전거, 도보 등이 있다. 여행기에는 이 중에서 비행기를 제외한 나머지가 소재로 등장한다.

    중국에 ‘칭짱철도 여행’(왕목, 삼호미디어)이 있다면 한국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세계기차여행’(윤창호 외, 안그라픽스)이 있다. 저자들은 빠름만이 최고가 아니라며 남아공의 블루 트레인, 알프스의 융프라우 등산기차, 히말라야 협궤기차,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세상을 본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린다’(김선욱, 한얼미디어)는 시베리아 철도에서 정차한 역들의 풍경을 그린다.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춰서 그 나라의 구석구석의 매력과 만날 수도 있는 수단은 다름 아닌 렌터카다. ‘자동차 유럽여행’(이화득 외, 서울문화사)은 낯선 도시에서 운전하며 겪게 되는 문제와 대응책을 알려준다. 저자는 렌터카를 몰고 떠난 여행에서 체험한 바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아메리카, 천개의 자유를 만나다’(이장희, 위캔북스)는 다양한 탈것을 이용해 미국을 멋지게 가로지른 자충우돌 여행기다.

    최근 자신의 두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세계를 달리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유럽을 자전거로 달린 이창수는 ‘나쁜 여행’(이젠미디어)을 내놓았고,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홍은택, 한겨레출판)의 저자는 “자전거만큼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할 수 있고 또 단련시킬 수 있는 여행방법이 또 어디 있던가”라며 “펑크가 열한 번 났고, 나를 추격해온 개는 100마리쯤 되는 것 같고, 여름철이었지만 영하 1도에서 영상 43도까지의 온도와 해발고도 10m에서 3463m까지의 높이를 체험했다”는 고충을 생생히 전해준다.

    낯선 곳을 찾는 즐거움

    도보여행은 자신과의 싸움이어서 그런지 명상이 중요시되는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보여행지로는 산티아고에서부터 프랑스 남부 생장피드포르에 이르는 800km 길이 으뜸이다. 산티아고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약칭인데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성지다. 이 길이 여행자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파울로 코엘료가 직접 순례한 다음 ‘순례자’라는 에세이를 내놓은 다음이다. 코엘료는 데뷔작인 이 작품을 통해 “순례 여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변화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김남희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미래앰엔비)를 펴냈는데, 이게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기 제1탄이다. 저자는 36일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서 코엘료가 그랬던 것처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문명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등 돌릴 힘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됐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김남희에 이어 많은 여성 여행자가 그 길을 걸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김효선, 바람구두)는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유럽의 문화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됐노라고 말하며 자신은 여행 이후 카미노(길)의 여인으로 거듭났다고 전한다. ‘엘 카미노: 별들의 들판까지 오늘도 걷는다’(신재원, 지성사)는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과 나눈 대화를 날짜별로 정리한 기록이고, ‘산티아고의 두 여자’(권현정 외, 김&정) 또한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와 풍경을 들려준다.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세계 항공교통의 요지인 두바이 공항.

    오지는 순수하다. 아름답다. 그리고 그곳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지는 찾아가기 힘들고 먹을 것, 잠자리 등이 불편하다며 꺼린다. 그럼에도 이런 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정승희는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사군자)에서 자신은 아마존에 중독됐다며 정보적 가치가 높은 사진을 많이 실어 간접체험을 가능케 했다. 한편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글의 제목처럼 옷을 입지 않아 저자가 이곳을 어떻게 다녔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때 묻지 않은 라파누이 섬과 카일라스, 캄차카를 다니며 쓴 ‘내 마음 속의 샹그리라’(이해선, 베텔스만), 말리 팀북투에서 현지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찍은 사진을 실은 ‘카불의 사진사’(정은진, 동아일보사)도 있다.

    아시아의 오지로는 네팔, 티베트, 중국 남부의 윈난(雲南) 등이 있는데 이곳은 사색을 하며 자아를 다지는 데 안성맞춤이다. 산악소설 ‘촐라체’로 주목받는 소설가 박범신이 쓴 명상 에세이 ‘카일라스 가는 길’(문이당)에선 티베트 여행을 통해 “필요한 것은 참된 영성이며, 모든 것의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이란 저자의 고백을 읽을 수 있다.

    고산지대인 티베트는 외부와의 접촉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영성이 풍부한 신앙의 땅이다. 그래서인지 내면을 되돌아보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이가 많다. ‘하늘로 열린 땅 티베트·타클라마칸 기행’(서화동, 은행나무)은 순백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그곳의 진풍경을 담았고,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이용한, 넥서스 BOOKS)는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무역로인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에 이른 탐험기다.

    음식을 먹으며, 그림을 그리며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을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여행은 이색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음식 기행기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음식 마니아여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이 분야의 여행서는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이들에 의해 쓰여졌다. 공교롭게도 저자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접시에 뉴욕을 담다’(김은희, 그루비주얼)는 저자가 뉴욕의 레스토랑을 답사하며 내린 평가를 담았다.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이민희, 고즈윈)는 치즈 마니아인 필자가 프랑스 치즈 공장에 가서 제조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빵빵빵, 파리’(양진숙, 달)는 파리의 빵집과 초콜릿 가게에 대한 정보를 실었고, ‘카페 도쿄’(임윤정, 황소자리)는 커피와 카페를 통해 도쿄의 내면을 읽는다. ‘커피 기행’(박종만, 효형출판)은 커피 마니아가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예멘, 터키를 잇는 커피로드에서 발견한 리얼 커피 이야기를 들려준다. 와인 전문가가 쓴 ‘김혁의 프랑스 와인 명가를 찾아서’(세종서적)는 프랑스 와인 명가 방문기와 함께 와인의 미묘한 맛을 소개한다.

    여행서는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대개 사진을 곁들인다. 여기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단단히 한몫한다. 최근 들어서는 예술성이 가미된 사진을 지면에 많이 실은 포토에세이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사진을 싣다 보니 어떤 이는 독특한 그림체로 독자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이런 스케치 여행서의 저자는 대개 그림에 재주가 있어 일러스트만으로 꾸미거나 사진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때 글은 자신의 느낌을 적은 단상 형식을 띤다.

    여행서로 본 최신 여행 트렌드
    권삼윤

    1951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무역과 졸업

    중동지역 등 60여 개국 여행

    저서 : ‘문명은 디자인이다’ ‘세계문화유산’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 ‘꿈꾸는 여유, 그리스’ 등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오영욱, 샘터사)는 로마의 유적을 스케치하고 단상을 덧붙였다. 저자는 후속편으로는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예담)와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예담)도 내놓았다. 전자가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사람들에 관한 에세이라면, 후자는 여행하듯 살자는 자신의 모토대로 그림일기다. 전문 화가가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그곳을 그리고 생각을 담은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랜덤하우스코리아), 만화가와 일러스트 작가가 8박9일간 도쿄를 동반 여행하면서 도쿄를 스케치한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시공사)도 이 분야의 빼놓을 수 없는 여행서다. 베트남 어디서건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풍경을 그려 만든 ‘베트남 그림여행’(최수진, 북노마드), 포르투갈 모로코의 14개 도시를 담백한 글과 물빛 수채화로 담아낸 ‘그곳에 가고 싶다’(원제무, 동포), 인도 라다크 지방을 다니며 그린 그림을 엮은 ‘라다크, 그리운 시절에 살다’(최용건, 푸른숲)가 있다.

    사진 전문서인 ‘미침’(신민식, 푸른솔)은 이탈리아, 베트남, 페루 등 8개국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로 꾸민 것이고, ‘나는 카메라만 잡으면 떠나고 싶다’(윤창호 지음, 안그라픽스)는 여러 나라에서 마주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다. ‘ON-AIR’(김아타 지음, 예담)는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김아타의 풍부한 상상력을 담아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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