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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8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먹을거리 자주권’은 21세기 새 테제 제주도엔 제주음식이 없다 박물관 쇼윈도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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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음식 없는 레스토랑

1992년, 나는 김치를 연구하는 식품학 교수들을 도와 김치연구회라는 모임의 총무를 맡은 적이 있다. 그때 독일 유학에서 막 귀국해 고향 제주도의 한라전문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오영주 박사를 처음 만났다. 그는 김치를 먹는 한국인의 대장과 독일의 양배추 절임음식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먹는 독일인의 대장, 그리고 이것을 먹지 않는 독일인의 대장에서 일어나는 영양학적 차이를 연구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학자였다. 그는 각각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똥을 분석해 그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똥박사’라고 부른다.

2004년 그를 다시 만나 ‘왜 제주도의 호텔에서 제주음식을 먹을 수 없느냐’는 질문을 했다. 대학에서 장차 외식산업의 조리장이 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누구보다도 고향 제주도의 음식에 대해 애착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을 받아줄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국가에서 주관하는 조리사 자격증 시험에는 조리학의 기본적인 기술을 점검하는 것이 기준이지, 결코 ‘향토음식’의 기술을 테스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호텔에서는 한식보다는 양식을 해야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 제주도의 고급 호텔에서 제주음식을 맛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호텔이 모두 그렇다는 것 아닌가! 이후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전국의 호텔 뷔페식당에서 ‘향토음식’이 주된 메뉴로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밥·김밥·육개장·해장국·홍어회·김치와 같은 한식이 호텔의 뷔페식당 메뉴로 나오지만, 한식당을 호텔 내부의 전문식당으로 운영하는 호텔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의 일부 고급 호텔에서 한식전문점을 운영했지만, 이후 손님이 줄어들자 아예 폐쇄한 곳도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주도 호텔에 ‘향토음식’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오영주 교수는 틈만 나면 제주도의 호텔에서 ‘향토음식’을 제공하자는 제안을 했단다. 하지만 호텔의 조리사들은 ‘향토음식’을 제공하려면 정해진 레시피(만드는 방법)가 있어야 하는데, 레시피가 없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했단다. 더욱이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레스토랑’ 주방에 대해 과학적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란 인식이 강한데, ‘향토음식’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정방폭포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를 가면, 바다로 향하는 경사진 언덕에 요사이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육지에서 이름이 난 갈치조림·고등어조림·오분자기 된장국을 판매하는 식당이 나온다. 이 식당의 남자주인은 서귀포가 고향이지만, 그의 부인 박씨는 경상남도 창원 출신이다. 두 사람은 강원도 묵호에서 만나 혼인을 하고 잠시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15년 전에 서귀포로 돌아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 부인은 이 식당의 주방장이다. 그녀가 만든 생선조림은 매우면서도 칼칼한 맛이 일품이어서 육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끈다.

하지만 박씨 부인은 대학에서 조리학을 배운 적이 없다. 비록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서귀포의 향토음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해보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이 마산이나 부산, 그리고 묵호에서 익힌 음식솜씨를 발휘해 제주도의 신선한 갈치와 고등어로 조림을 해서 손님에게 제공할 뿐이다. 그래도 맛있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래서 서귀포 사람에게 횟집이 아닌 ‘향토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면 대개 이 집을 으뜸으로 꼽는다.

최근 육지에서 제주음식으로 알려진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은 제주도만의 ‘향토음식’은 아니다. 갈치는 제주도 연안은 물론 남해안에서도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신선한 갈치는 주로 해안 도시에서 소비되었고, 육지에서는 살짝 말린 것을 먹었다. 유통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내륙지역에서는 말린 갈치에 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무를 넣고 조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지금도 충청남도 강경의 역전에 가면, 말린 갈치를 조린 갈치조림을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있다. 당연히 해안 도시인 부산이나 마산에서는 살이 통통한 생갈치로 조림을 해서 먹는다. 심지어 갈치로 끓인 갈칫국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향토음식’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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