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TV 토론 진행자가 말하는 ‘소통의 한계’

“MB가 소통 안 해 거리로 나왔다면서 상대 처지는 용납 못하더라”

  • 입력2008-08-08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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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토론 진행자가 말하는 ‘소통의 한계’
    재협상 가능한가?-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5월11일)이명박 정부의 ‘의사소통’ 무엇이 문제인가(5월18일)계속되는 쇠고기 논란, 어떻게 해야 하나?(5월25일)이명박 정부 100일, 민심수습 해법은?(6월1일)쇠고기 재협상, 불가능한가?(6월8일)인적·국정쇄신-어떻게 해야 하나?(6월15일)쇠고기 정국과 언론의 공정성 논란(6월22일)법질서 확립인가, 공안정국인가?(6월29일)벼랑 끝 대치, 정부와 촛불(7월6일)

    5월부터 7월 초까지 KBS ‘심야토론’이 내건 토론 주제들이다. 제목만 봐도 쇠고기 정국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는지 짐작케 한다.

    치열한 토론과 논쟁 끝에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이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며 합일점에 다가갔을까? 아니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적대감만 증폭됐을까.

    촛불은 잦아들었지만 접점이 커졌다기보다는 대립각만 더 날카로워졌다는 진단이 많다. 쇠고기와 촛불을 주제로 한 그 많은 토론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격렬했던 쇠고기 촛불 토론



    쇠고기와 촛불을 주제로 한 토론의 특징은 그 어느 토론보다 격렬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주제의 토론이 반복됐고, 토론 참여자들도 차분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SBS 토론 프로그램 ‘시시비비’를 진행하는 김형민 부국장은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이 종교나 신앙을 얘기하듯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며 지난 두 달간 토론진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반적으로 토론 전후에 참가자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시간을 갖곤 하는데, 쇠고기 수입을 주제로 한 토론 때에는 시종일관 분위기가 냉랭했다고 한다. 김 부국장은 “토론에 참석한 패널 가운데 일부는 ‘신념’과도 같은 근본적 인식의 차이를 보였다”며 “토론 과정에 지나치게 흥분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패널도 있었다”고 했다.

    “새 정부 들어 제기됐던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응축돼 나타난 것이지요.”

    KBS 심야토론과 KBS1라디오 ‘열린토론’을 진행하는 정관용씨는 쇠고기와 촛불집회를 주제로 한 토론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대선과 총선 두 번의 선거 이후 정치권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 민의를 표출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 정국을 이어간 것 역시 쇠고기 정국이 장기화하는 원인이 됐다.

    정씨는 “2004년 대통령 탄핵에 버금가는 극한 대결상태로 치닫다 보니 토론이 격렬해지고 반복됐다”며 “중간중간 굴곡이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타결 지은 뒤 그것이 잘못됐다고 촛불집회가 일어났고,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추가 협상한 것이 쇠고기 정국의 전말”이라며 두 달간의 쇠고기 촛불정국을 요약했다.

    TV 토론 진행자가 말하는 ‘소통의 한계’

    쇠고기 정국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소통을 주제로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그 많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는 더 많이 소통하게 됐을까.

    ‘토론 무용론’을 펴는 이들은 “결론도 없이 만날 싸우기만 하는 토론은 해서 뭐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토론을 진행하는 이들은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는 과정일 뿐, 합의나 결론을 내기 위해 토론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 논의하다가 합의에 이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같은 주제를 놓고 찬반으로 입장이 갈리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기 때문에 합의나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관용씨는 “방송 토론의 특징은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이 함께 토론하는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논지를 편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시청자와 국민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알리려 하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들은 토론의 결과보다 과정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토론은 과정의 미학’이라고 정의한다. KBS1라디오 ‘열린토론’ 제작에 참여한 한 작가는 “한 번의 토론으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토론은 불필요하다”며 “그것은 이미 결론이 있었다는 얘기고, 토론은 단지 하나의 형식,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정관용씨의 말이다.

    “합의가 목적이라면 비공개 토론을 하겠지요. 여야, 노사가 토론할 때 서로 절충점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방송 토론에서는 (절충점을) 내놓지 않지요. 어떻게 보면 방송 토론의 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시청자나 일반 국민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토론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전국에 생중계되는 TV토론 프로그램은 여느 토론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큰 이슈에 대해 시청자와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정관용씨는 “방송토론의 1차 기능은 정보 전달을 통해 국민의 이해를 돕는 것”이라고 했다.

    “TV토론은 합의보다는 쟁점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하고 복합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기능이 더 큽니다. 2시간 가까이 관련 전문가들이 나와 토론하는 것을 잘 지켜보면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다 제공받게 되지요. 하나의 이슈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와 논지를 펼치기 때문에 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쟁점이 파악되고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김형민 부국장도 “토론은 반드시 결론을 내리기 위한 자리는 아니다”며 “토론을 통해 찬반 입장을 들어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토론 과정에 공방이 격해져 난상토론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정보를 제공받는다기보다는 싸움 구경을 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때가 있다.

    “토론 참가자들은 저마다 더 많은 국민을 자기 의견에 동조하도록 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어요. 단 1%의 국민이라도 자기 의견에 찬성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원래 자기 의견과 같은 사람? 아니죠.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죠.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이슈에 대해 국민의 의견 분포는 정상곡선을 그립니다. 양쪽 극단이 적고 중간지대가 가장 많죠. 또 어떤 사안에 대해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수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 오는 게 토론 참가자들의 목적입니다.”

    정관용씨가 말하는 좋은 토론자의 자세는 이슈에 대해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은 중간층에게 설득력 있게 자기 논지를 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 상황도 적지 않다.

    일방통행식 토론 관전자

    “(중간층을 설득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토론자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패널은 정당이나, 노조, 기관 등 어딘가를 대표해서 나오잖아요. 토론을 끝내고 다음날 출근해서 자기 집단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려고 토론하는 사람도 있어요. 패널의 두 가지 목적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할까요? 자기 집단에서 박수 받으려고 토론하는 (후자와 같은) 사람은 하수죠. 철저히 자기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민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도 (토론에서) 상대방을 묵사발 만들면 자기편이 신나 하겠죠. 그런 것만 의식하는 겁니다. 박수 받으려고 토론하면 토론의 제1 목적, 더 중요한 핵심인 중도를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국민은 감정적인 토론을 싫어해요. 예의도 안 지키고 자기 말만 한다면서 오히려 반감을 갖습니다.”

    찬반 양측의 한가운데에 앉아 발언 기회와 발언 시간을 조정하며 토론을 원만하게 진행해야 하는 진행자에게 생방송 토론은 외줄타기와도 같다. 조금이라도 편향적인 느낌을 주면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게 마련이다.

    SBS ‘시시비비’를 진행하는 김형민 부국장은 쇠고기와 촛불 관련 토론을 진행하는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악플에 시달렸다. 정부나 촛불시위 반대 입장의 토론자에게는 발언 기회를 충분히 주면서 촛불시위 옹호론자나 쇠고기 수입 반대론자들의 발언은 중간에 자꾸 자른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작 김 부국장의 얘기는 달랐다.

    “쇠고기 정국을 이끈 촛불문화제 등은 새로운 소통 방식이었죠. 대의정치를 제대로 못해 국민이 직접 소통하고자 나온 것 아닙니까. 이왕이면 촛불집회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서 얘기하는 사람에게 ‘왜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나’를 말할 기회를 더 주려고 노력했어요. 새로운 현상이니까요. 그런데도 촛불 옹호론자들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말 자른다’며 매도하는 글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 답답했죠.

    안타까운 것은 촛불집회 등이 새로운 소통 방식이라면서도 정작 일방적인 소통을 하려 한 건 아닌가 하는 점이에요.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상대방의 의견을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잘 못해 직접 소통하려고 나왔다면서 정작 상대의 입장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는 큰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좀 더 여유를 갖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면 좋을 텐데, 자기 쪽에 기회가 더 안 온다고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시시비비’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악플의 내용을 봐도 ‘발언을 잘랐다’ ‘편파적이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토론의 내용이나 본질과는 상관없는 진행자의 진행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던 것. 이런 비판은 논리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인상비평에 그친 악의적인 댓글, 이른바 악플로 볼 수 있다. 누군들 자신의 생각과 같으면 선, 다르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반대자를 향해 일방적 독설을 쏟아내는 악플러를 당해낼 수 있을까.

    정관용씨가 ‘토론의 하수’라고 칭한 ‘자기 지지자들이 좋아할 주장만 펴는 패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과 맞으면 박수치고 다른 얘기를 하면 비난하는 일방통행식 고집불통 토론 관전자도 적지 않은 셈이다.

    김형민 부국장은 파리특파원 시절, ‘토론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논리 정연하고도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며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논객 중에 지금은 프랑스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토론은 토론자가 한 주제에 대해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논지를 끌어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쪽이 더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지, 또 상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하는지…. 한쪽 입장에 치우쳐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따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토론문화에 익숙지 않은 면이 있어요. 패널 가운데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고…. 그래도 촛불집회와 쇠고기 토론을 계기로 상대를 존중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정관용씨는 “(토론) 경험이 쌓이면서 전반적인 흐름이 나아지고 있다”고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를 평가했다. 다만 ‘토론은 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온 사람이나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소통한다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지 않으면 좋은 토론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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