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중국은 슈퍼파워로 거듭날 수 있나

실질 군사비 4500억달러의 위력, ‘상후하박’ 기형적 인구구조의 덫

  • 하태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입력2008-09-03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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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올림픽에 즈음해 ‘굴기(푞起)하는 중국’의 이미지가 온 천하에 퍼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유일 슈퍼파워 미국의 깊은 내부에서는 우려와 낙관이 날카롭게 교차한다. 중국은 과연 슈퍼파워가 될 수 있는가, 혹은 이미 슈퍼파워인가. 중국의 군사비와 인구구조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를 견제할 미국의 카드는 무엇인가. 주요 싱크탱크와 부시 행정부, 차기 유력 대선후보의 핵심참모에 이르기까지 워싱턴 인사이더들의 심중을 들여다보았다.
    중국은 슈퍼파워로 거듭날 수 있나

    최근 미국 위싱턴에 들어선 연면적 1만㎡가 넘는 중국대사관의 건설공사 당시 모습. 해외 중국대사관 중 최대 규모인 이 건물은 ‘중국이 슈퍼파워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워싱턴의 염려를 자극하는 아이콘이다.

    ‘중국이 슈퍼파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話頭)는 미국 워싱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다. 특히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2008년에는 워싱턴의 200여 개가 넘는 싱크탱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향 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장이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5·6월호에 기고한 ‘미국은 쇠퇴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가 현재의 세계질서를 ‘무극(無極)시대’라고 표현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의 탄생’을 내다보았는데 이는 바로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은, 냉전종식 이후 구가해온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서서히 종언(終焉)을 고할 기미가 보이자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의 부상을 은근히 신경 쓰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무한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는 중국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견제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일종의 현대판 ‘황화론(黃禍論)’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뒤 ‘아시아의 병자(sick man)’라는 조롱을 받아왔던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고조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풀리지 않는 숙제

    우선 부정적인 견해부터 살펴보자.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앨리스 밀러 교수는 중국이 이른 시일 내에 슈퍼파워가 되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 및 소프트파워를 종합해 볼 때 현재 슈퍼파워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조만간 슈퍼파워로 떠오를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는 것. 밀러 교수는 슈퍼파워에 대한 정의를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그 존재를 인정받고 때때로 한 지역 이상에서 동시에 압도적인 힘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전세계 패권국(hegemon)의 지위에 도달한 국가”라고 규정하며 대영제국이나 구(舊)소련, 미국을 예로 들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은 “전세계적 이슈의 영역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역내(regional) 파워’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중국은 슈퍼파워로 거듭날 수 있나

    “중국 역시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에 대한 협력이 국익에 더 부합함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우드로윌슨스쿨 석좌교수.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수전 셔크 교수도 중국의 현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화려하고 강력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구조”이며 “관건은 중국이 경제 기적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셔크 교수는 “중국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써온 탓에 2065년에는 인구의 54%가 60세 이상이 될 것이고, 22%만이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라며 “이 같은 인구구조는 경제분야의 슈퍼파워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한편 중국이 조만간 슈퍼파워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존 태식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10년 안에 적어도 군사분야에서만큼은 미국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슈퍼파워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매력지수(PPP·Purchasing Power Parity)로 비교해볼 경우 중국의 실제적인 군사비 지출은 미국의 지출에 맞먹는 4500억달러 수준”이라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국제뉴스 담당 편집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견해는 아예 중국의 슈퍼파워 등극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더욱 적극적이다. “중국의 ‘전세계적 파워(global power)’ 등극은 이미 예측의 영역이 아닌 현실”이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물론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이란 핵 위기 등 국제분쟁에서 중국은 서서히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stake holder)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이렇듯 워싱턴 내부에서는 중국의 슈퍼파워 부상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분명한 것은, 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슈퍼파워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갖춘 나라가 중국이라고 평가하는 데 있어 큰 이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견제냐 협력이냐, 워싱턴의 딜레마

    그렇다면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지’로 귀결된다. 미국 내의 이른바 강경파들은 ‘역사의 경험’을 근거로 중국의 부상은 불가피하게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역설한다. 새로운 힘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기존 힘의 균형을 깨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 1기 당시 네오콘 그룹이 득세했을 때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중국을 주적(主敵)으로 상정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 2기 정부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공동대응을 포함해 중국과 미국 간에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 관계를 구축하고 협력적 관계를 강화해나가는 방향을 채택했다. 이와 관련해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우드로윌슨스쿨 석좌교수는 “현재의 국제질서는 중국이 주장하는 화평굴기(和平·#54366;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서다)를 이뤄나가는 데 매우 이로운 환경”이라며 “중국으로서는 현재의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참여하는 것이 이 질서에 도전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보다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수전 셔크 교수는 중·미 간의 원만한 갈등조정만이 지역에서의 무력충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꼽았다. 그는 “미국은 중국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불안정과 빈곤 등으로 인해 느끼고 있는 취약성을 이해해야 하며, 그에 맞춰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평화보다는 재앙에 가까운 분쟁 상황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8년 대선에 도전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역시 중국을 봉쇄하고 대결하기보다는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 진영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편입시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슈퍼파워로 거듭날 수 있나

    “미국의 목표는 대(對)중국 봉쇄가 아니라 진출 협조”라고 강조하는 티모시 키팅 미국 태평양사령부(USPACOM) 사령관.

    오바마 후보의 아시아 정책 참모인 제프리 베이더 브루킹스 연구소 중국연구실장과 같은 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북아정책 연구실장은 ‘미 대선후보에게 고함’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대선주자들은 중국 지도자에게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대중 관계를 중시한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권자를 의식해 중국 문제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베이더 실장의 경우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그의 동북아시아 정책을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향후 대(對)중국관계는 물론 한반도 전략에도 깊은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 진영은 다소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매케인 후보에게 동북아 정책을 조언하는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의 경우 “중국 문제가 미국 대외관계의 주요한 초점이 될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 정책에서 중요한 나라는 역시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이라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매케인 후보 본인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미사일방어(MD) 체제는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로부터 미국의 안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일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같은 전략적 경쟁자들의 잠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을 다시 봉쇄한다면

    그러나 실제로 미국 내 일각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를 주장한다 해도 이러한 흐름이 구체적인 정책 형태, 특히 군사 분야에서 명시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논쟁의 영역에서는 경계와 우호가 엇갈릴 수 있지만, 정책에 서는 ‘협력이라는 최소한의 외피’를 벗기 어렵다는 한계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반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바다를 관할하는 티모시 키팅 미국 태평양사령부(USPACOM) 사령관이 지난 7월16일 헤리티지 재단에서 진행한 특강은 이 지역의 안보환경과 미국의 정책에 관련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투부대 사령관의 시각에서 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키팅 사령관은 “미국 군사전략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압도적 힘의 우위(preeminence)’와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역내에서 미국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내가 맡은 주요 임무 중 하나”라고 전제한 그는,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는 유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미국이 다자주의적 안보에 중점적인 투자를 하고 있음을 강조한 뒤 최근 미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인도 5개국이 참가한 합동군사훈련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팅 사령관은 “5개국을 선으로 이을 경우 중국 측에서 보기에는 마치 중국의 해상진출로를 모두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며 “미국의 목표는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진출을 돕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장친성(章沁生)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조리를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에 초청해 중국군 관계자들과 함께 환태평양훈련(RMPAC)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을 소개하며 “이 자리에서 장 조리에게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역내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중국에 ‘다른 신호’로 읽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역력하다.

    미국 정부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관계가 깊다. 미국은 최근 110억달러 상당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계획과 수십대의 F-16 전투기 인도를 보류했으며, 부시 대통령의 퇴임 시점까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중단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른바 ‘양안(兩岸) 관계’에서 중국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앞으로의 미중 관계가 단기적으로는 커다란 마찰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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