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여기는 ‘이색동네’ 저기는 ‘우범지역’, 이중 잣대에 두 번 우는 이방인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9-03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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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마다 외국인 영어교사가 있다. 주변에 아는 국제결혼 커플이 3쌍은 된다. 이자카야가 생각나면 이촌동을 찾는다. 중국 음식은 연남동에서 먹어야 제격이다. 주말이면 이태원 맛집 순례를 한다. 외국인 100만 시대.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을 체험하게 됐다. 글로벌화, 높아진 한국의 위상,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단일민족 국가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모습을 훔쳐봤다. 즐겁게 한국을 살아가는 ‘외국 분’과 힘들게 한국을 살아내는 ‘외국 놈’의 모습이 공존했다.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인기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미녀’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모두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푸른 눈동자와 갈색 머리를 한 외국인들이 서툰 한국말로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TV 앞에 바짝 다가앉는다.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한국에 관심에 갖고 있는 이가 주는 호감, 이방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 이런저런 물음표들이 얽혀 빚어낸 인기일 것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명 시대. 사람 사는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한데 섞여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언어가 달릴지언정 외국인이 말을 걸어와도 두렵진 않다.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거주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이국적인 풍경은 이제 이태원만의 것이 아니다.

    2008년 8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16만명. 전체 인구의 2%를 차지한다. 90일 미만의 단기체류자 27만명을 빼도 90만명이다. 여기에 미등록 불법체류자를 더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체류 성격별로는 장기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50만명으로 가장 많다. 결혼이주자가 15만명으로 뒤를 잇는다. 이들 가운데 4만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유학생은 4만여 명이다. 한국이 글로벌 도시로 거듭난 건 1990년대 이후부터. 외국인 수는 지난 10년 사이에 약 3배로 증가했고, 지금 추세라면 2020년 전체 인구의 5%, 2030년 6%에 달할 전망이다. 상하이 홍콩과 같은 글로벌 도시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함께 외국생활을 한 이들은 모였다 하면 추억담에 밤을 새운다. 좌충우돌 창피하고 답답했던 일화는 시간이 흘러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꽃을 피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외국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도 외국인에겐 모래로 성을 쌓는 것만큼 힘들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리저리 ‘삽질’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사막에 혼자 떨어진 기분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살짝 닮고, 상당히 다른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어떨까. 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타공인 단일민족 국가가 아닌가. 실제 취재한 상당수 외국인은 택시 타기와 물건 값 바가지, 도우미의 부재 등 한국생활의 힘든 점을 토로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건 사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1월 서울시 글로벌센터가 문을 열었다. 외국인들의 생활 편의와 행정을 돕는 일을 한다. 작게는 휴대전화 개설부터 크게는 비자문제와 임금문제까지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2~6월에는 각 구청 산하 글로벌빌리지센터가 잇달아 개소했다.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연남, 역삼, 서래, 이태원·한남, 이촌 등 5곳이다. 빌리지센터의 업무 내용은 서울시 글로벌센터와 같되 거주 외국인의 특성에 따라 성격을 조금씩 달리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메카인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도 외국인 주민센터가 생겼다.

    지난해 동사무소의 이름이 주민센터로 바뀌었다. 외국인 주민센터라는 이름에는 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주민으로 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제공 서비스도 생활 불편에서 비즈니스 상담까지 다양하다. 분야를 불문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SOS를 칠 수 있는 곳이 외국인 주민센터라는 얘기다. 곧 외국인의 생활과 불편함은 센터에 고스란히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센터는 개성이 뚜렷했다. 같은 강남이라도 역삼센터는 비즈니스 컨설팅이, 프랑스인 마을에 있는 서래센터는 문화예술 관련 서비스제공이 주 업무를 이룬다. 연남센터는 중국인과 유학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한남·이태원과 이촌센터는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안산 원곡동 주민센터는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주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도 제각각이었다. 공통분모는 있겠지만 결혼이주자, 외국인 근로자, 외국기업 주재원이 겪는 문제가 같을 순 없다. 서울지역 글로벌빌리지센터 3곳(역삼, 서래, 연남)과 안산 원곡동 주민센터는 살짝 닮아 있으면서도 상당히 달랐다.

    안산 원곡동 외국인센터

    “107만원을 못바다습니다”


    안산 원곡동 외국인센터 외국인통역 상담실. 눈시울이 붉은 20대 중반 여성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해당 언어를 나타내는 국기들을 빙 둘러본 뒤 중국어와 한국어 서비스를 하는 강길선씨 앞에 앉았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두 달 전 이웃이던 조선족 한국어 선생 소개로 시집을 오게 됐습니다. 그 선생이 ‘괜찮다’고 추천했기에 중국에서 얼굴 한 번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침대에 올라오고 성적으로 희롱을 합니다. 남편은 지능이 떨어지는지 그 모습을 보고도 반응이 없고, 시어머니는 일하느라 늘 밖에 계시고…. 하루빨리 이혼하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1982년생이라는 그는 한족이었다. 시댁 가족에게 전화해 확인을 하려 해도 “무섭다”며 극구 말렸다. 울먹이며 한국인을 욕하는 모습에 강씨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강씨는 조선족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럴 때마다 중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고 강씨가 말했다.

    “107만원을 못바다습니다.” 틀린 맞춤법으로 부당함을 호소한 주인공은 조선족 유봉화씨.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스포츠마사지숍에서 일했으나 사장이 돈을 주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는 사연이었다. 강씨는 “젊은 여성이면 이혼문제, 나이 든 여성이나 남성들은 임금체불 문제가 100%”라고 말했다.

    영어가 가능한 파키스탄인 쿠람 씨. 그는 외국인통역 상담실에서 파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와 관련된 서비스를 맡고 있다. “법원 판결을 받고도 막무가내인 회사 때문에 퇴직금을 못 받고 있는 이가 많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 보이시죠, 알리 샤헤르자니.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날짜가 2007년 1월5일인데 회사에서 막무가내입니다. 그 회사가 파업 중인데 고용허가제로 나갈 시일은 다가오고. 답답한 상황입니다. 보통 이런 임금체불 문제가 많습니다. 금액도 크지 않아요. 100만원, 200만원 정도죠. 언어나 문화 문제가 아닌 먹고사는 문제만 순탄해도 행복한 거죠.”



    서울 역삼센터

    “무료 비즈니스 컨설팅 없나요?”


    거주설계사인 독일인 A씨. 2007년 여름, 프로젝트 일로 한국에 온 그는 한국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기초조사를 한 결과 본인이 다니는 건축설계회사의 한국법인 설립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컨설팅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프로젝트 일을 함께 하는 한국인 동료가 있었지만 상세한 내용까지 자문할 수는 없었다. 교회와 독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좌충우돌 뛰어다녔으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체계적인 컨설팅이 아쉬웠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법인 지사장이 됐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역삼센터의 도움이 컸다. 사실 외국인이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절차는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얼마나 잘, 효과적으로 설립하느냐에 이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철저한 타당성 검토와 마케팅 없이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구멍가게 하나 여는 데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낯선 땅에 투자하는 일이야 두드린 다리를 100번 더 두드려도 모자랄 일.

    “외국기업에 대해 플래닝부터 마케팅까지 맨투맨으로 밀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규모가 작은 외국기업은 사정이 더 어렵지요. 무료 투자자문은 코트라와 중소기업청 등에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트라는 국가기간 산업처럼 큰 산업을 위주로 하고 중소기업청은 글로벌 자문을 전문으로 하지 않습니다.”

    역삼센터 장유화 과장의 말이다. 장 과장은 대기업 등에서 외국인 투자자문을 맡아온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가. 지난 몇 달 동안 장 과장과 K씨는 매일같이 머리를 맞댔다. 투자관련 법, 법인 개설, 생산성 늘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주고받았다.

    한국은 창구가 다원화돼 행정절차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지사를 설립하려면 인가는 지식경제부 산하에서 받아야 한다. 또 투자촉진법에 의한 부분도 있고 국내 세무감사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현재 센터는 17건의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한 부동산 개발업자에겐 충청북도와 인천송도 부지를 소개했다. 지역투자 박람회에 참석해 꼼꼼히 모니터링한 결과 괜찮다고 판단한 곳들이다. 한 우즈베키스탄인은 교육, 여행, 결혼 등 우즈베키스탄을 안내하는 웹사이트 사업을 문의해왔다. 센터의 도움으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을 소개받은 그는 대사관과 연계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연남센터

    “남편이 교재비를 안 줍니다”


    연남동 주택가에 위치한 연남센터는 중국인 결혼이주자들의 사랑방이다. 한 여성이 한국어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그냥 지나가는 길에 센터 문을 열고 들어와 남편 흉을 보고선 자리를 뜬다. 연남센터 단골손님인 B씨는 5년 전 한국에 왔다. 결혼 소개소를 통해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남편과 결혼했다.

    “소개소를 통해 결혼했지만 한국에 정착해 잘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트러블이 엄청 많았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남편은 돈 주고 데려왔다고 그러는지 생활비도 잘 안 주고.

    아이를 보러 중국에 다녀오겠다고 해도 절대 반대하더군요. 결혼 전 낳은 딸이 하나 있거든요. 한국어를 배우려 해도 교재비도 주지 않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딸을 보러 중국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곳에서 몇달 간 한국어를 배우며 같은 중국인 결혼이민자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친구들이 남편을 설득해준 덕분이에요.”

    그는 “남편은 좋은 면도 많다. 하지만 둘이 대화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센터와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니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서울 서래센터

    “모두 바캉스 갔습니다.”


    서울 반포동 서래센터는 요즘 조용하다 못해 한적하다. 바캉스 시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마을인 서래마을에 위치한 센터 이용자는 대부분 프랑스인.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학현 씨는 “프랑스인들은 보통 여름휴가를 한두 달씩 떠난다”며 “6월에는 사람이 좀 있었다. 가을이 되면 방문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삼1동사무소 5층 역삼빌리지센터. 센터에 들어서며 어린 시절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을 떠올렸다. 원색 우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외국 소품이 어우러진 그곳은 기존 교습학원에 비해 천국이었다. 역삼센터 중앙에 마련된 TV에서는 CNN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쪽에 마련된 책장에는 영어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한글교본, 한국요리 만들기 같은 제목도 눈에 띄었다.

    곧 한국어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이 하나둘 센터로 들어섰다. 독일인과 중국인 등 3명이었다. 센터 직원에 따르면 오후 클래스 중 한 클래스는 학생이 11명인데 국적이 10개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의정 씨는 “역삼은 미국, 캐나다, 유럽 쪽 직장인이 많은데, 휴가철이라 발길이 뜸하다”고 했다. 이따금 상담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월세 200만~300만원도 OK

    빌리지센터의 센터장은 모두 외국인이다. 비전임 계약직으로 2년간 6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 역삼센터장은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27·이탈리아)씨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진으로 센터장이 되기 전 이미 얼굴을 알렸다. 밀라노 가톨릭대학원 국제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5년 밀라노에서 유학 중이던 김현준(30)씨를 만나 2년 전 한국에 왔다. 2007년 김씨와 결혼해 경기 안양시에서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크리스티나 센터장이 또박또박 센터를 소개했다.

    “역삼에는 8000여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어요. 주로 직장인, 영어강사, 사업가들이요. 센터는 이들에게 생활상담, 한국어교육, 문화공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주 업무는 비즈니스 컨설팅입니다. 테헤란 등지에서 사업가 분들, 혹은 사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우리 센터를 많이 찾습니다. 외국인투자 통계가 엉망인 상황에서 평범한 주민센터로 남기보다 투자자문까지 하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역삼 글로벌빌리지센터의 한국어 수업 모습.

    8000명의 생활상이 모두 같을 순 없다. 하지만 평균치를 내자면 역삼지역 거주 외국인들은 생활수준이 높다. 상당수가 영어강사를 비롯한 직장인과 외국기업 CEO, 중견간부들이다. 영어강사의 수입은 월 200만~300만원선. 외국기업 중견간부급 사원들은 우리나라 중산층 수입을 훨씬 웃돈다. 센터 직원은 “집을 구할 때 월세 200만~300만원도 괜찮다는 분이 많다”고 귀띔했다.

    생활의 불편은 크지 않다. 휴대전화 개설, 숙박시설, 자동차 구입 등은 대부분 회사에서 해결해준다. 그보다는 여가활동이나 문화생활에 대한 문의가 많다. 이를테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데 홈스테이는 어떻게 하느냐, 봉사활동은 어떻게 하느냐, 애니버서리(기념일)가 다가오는데 한강에서 디너파티는 어떻게 하느냐는 식이다.

    “교환교수나 외국기업의 한국지사에 파견 나온 사람의 가족들은 한국 생활을 알고 배우는 데 주력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머무는 동안 동양문화를 체험하겠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교환교수인 외국인 한 분은 서울-경기도 우수 관광상품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여행을 많이 다녀서 관광상품을 평가하기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은 거지요.” 남편이 캐나다인이라는 김의정씨가 말했다.

    “야!”는 가정부 부르는 말

    그렇다고 생활 상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살다 보면 종종 사소하지만 뜻밖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그런 곤란함을 해결해주는 것도 센터의 역할이다. “이사하는데 영어가 가능한 도우미가 없겠느냐” “이사한 양재동 집의 문을 바꿔달고 싶은데 문은 어디서 파느냐” “세금영수증 독해가 안 되는데 어떤 내용인지 알려달라”는 식이다.

    김씨는 “사소한 불편사항을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하다는 외국인이 많았다. 보통 자국민 친목 커뮤니티나 교회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은 센터가 생겨서 편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연남센터는 센터들 가운데 가장 이른 올해 1월 문을 열었다. 그래서일까. 말쑥하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다른 센터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여유롭고, 북적거리고, 제법 틀이 잡힌 느낌이었다. 연남 지역은 대만화교 거주 지역이다. 마포구에서는 연남동에 중국인거리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센터장은 중국 톈진 출신의 리위옌(35)씨. 중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한국인 남편을 만난 그는 2003년 한국에 왔다.

    화교가 많지만 센터 이용자는 대부분 한족, 즉 중국인들이다. 상담 내용은 결혼이주자들의 가정문제가 많다. 센터에 따르면 언어가 통하고 커뮤니티가 탄탄한 화교들은 이따금 비자나 법률상담 건으로 들를 뿐이다. 센터 직원 김려진씨가 말했다.

    “연남동과 마포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의 중국인 결혼이주자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카페나 소규모 모임을 통해 입소문을 탄 것이지요. 상담 내용은 결혼과 임금 체불문제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이주여성인권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전문 상담센터로 안내해드립니다. 센터도 상담하지만, 연결자 역할을 주로 합니다.

    결혼이주자 외에 이따금 부유한 중국인들도 한국어 수업에 참가하지만 오래 함께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이주자 분들과 어울리기 힘들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동네 분들의 경우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친구를 사귀는 데 큰 의미를 둡니다. 남편이 한국인이고 시댁식구들이 있더라도 가까이서 동포를 접하는 게 큰 힘이 될 테니까요. 여가생활 문의는 수영장, 나들이장소 등에 대한 내용이 많고 공연이나 전시 정보를 묻는 분은 드뭅니다.”

    생활상담 가운데는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도 많다. 다음은 외국인 며느리들이 한국생활에 대해 쓴 수기의 일부다.

    “필리핀에서는 ‘야! ’는 가정부한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수시로 ‘야! 야! ’라고 부릅니다. ‘야! 야! 냉장고문 닫아라.’ ‘야! 야! 국물이 너무 짜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포항 사투리라는 걸 알았거든요.”

    “우리 고향에서 생선머리는 버리는 재료인데 생선머리로 국을 끓이라고 합니다. 또 임신했을 때 먹는 음식이 아니라며 몇 차례 먹고 싶은 음식을 빼앗기기도 했어요.”

    서래마을 주부들

    서래센터는 강남구 반포동 서래마을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서래마을에는 프랑스인 주재원, 대사관 직원들이 모여 산다. 1985년 한남동의 프랑스인 학교가 이쪽으로 이사하면서 아이들 통학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언덕길을 따라 고급 빌라와 프랑스풍의 와인숍, 빵집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도 ‘몽마르트 길’이다.

    “르노, 케이티엑스 등 프랑스회사 기술자나 주재원, 그리고 CEO들이 삽니다. 대사관 직원도 있고요. 거주자 숫자가 많진 않습니다. 현재 100명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프랑스인들은 반포동 서래마을을 비롯해 서초3동, 방배4동 등 강남지역에 소규모로 무리지어 살고 있습니다. 방문자의 80%가 서래마을에 사는 프랑스인 주부들입니다.”

    프랑스인 직원 마리 피에르씨가 말했다. 서래마을은 그들끼리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편이다. 정보교환도 비교적 잘 이뤄져 큰 어려움은 없다. 서래센터의 상담은 생활불편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법과 봉투 구입, 가전제품 수리센터 연락처, 운전면허, 부동산 매매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주부 본인과 아이들이 이용할 테니스, 피아노, 영어, 요리, 문화체험, 공연, 여행, 미술에 대한 강좌나 이벤트에 대해서도 많이 묻는다.

    서래센터는 문화, 레저, 취미생활 상담을 모토로 한다. 상담이 소소한 생활편의 위주다 보니 주부들을 위한 교양강좌와 문화공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매듭, 한지, 한국어 강좌가 특히 인기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와인 클래스도 매번 사람이 꽉 찬다.

    지난 3월 개소한 안산시 외국인 주민센터의 앞마당에는 30여 개의 국기가 그려진 무대가 설치돼 있다. 내부에도 낯선 국기와 소품들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국경 없는 마을’이라는 원곡동의 축소모형 같다. 복도와 교실에는 한국어 수업, 컴퓨터 수업, 미용 수업, 태권도 수업 등을 듣기 위한 외국인들이 수시로 오간다.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 주민센터. 원곡동은 주민 5명에 4명이 외국인이다.

    원곡동 주민은 5명에 4명이 외국인이다. 등록 외국인은 전체 거주인구의 39.1%를 차지하지만, 미등록 인구까지 더하면 3만7000명이 넘는다. 원곡동은 반월단지와 시화단지에서 가깝다. 처음에는 입지조건이 좋아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들다가 외국인 편의시설이 갖춰지자 주거지로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오히려 원주민인 내국인들은 근처 신길동으로 빠져나가는 추세다. 갖고 있는 주택은 외국인에게 세를 놓는다. 외국인센터 직원 최미라씨는 “기숙사가 있는 몇몇 공장을 제외하곤 월세 23만~25만원 하는 고시원에서 2~3명이 함께 지낸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3층 건물인데, 서울 글로벌빌리지센터보다 규모가 10배는 더 크다. 역할은 다른 빌리지센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어와 컴퓨터를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 통역 상담, 문화체험 이벤트 운영 등을 진행한다. 여기에 보건소와 원곡순찰대, 그리고 국제결혼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갖췄다.

    ‘외국인 순찰대’

    “원곡특별순찰대는 매일 저녁 10시~새벽 4시 원곡동 지역을 순찰합니다. 일반 순찰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인과 방글라데시인 경찰이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언어 소통과 한국 공권력에 대한 거부감을 덜기 위해 외국인을 특별 채용했습니다.”

    최미라씨가 말했다. 상담을 제공하는 이주민통역지원센터에서는 직원 8명이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몽골,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8개국 언어를 지원한다. 이곳 역시 연남센터와 마찬가지로 결혼이주자들의 가정문제 상담과 임금체불 상담이 주를 이룬다.

    “이혼하겠다는 한족, 조선족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많습니다. 가정 폭력에 몸이 성한 데가 없으면서도 ‘중국에는 가기 싫다. 이혼해도 한국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결혼생활은 힘들어도 한국 환경은 좋다는 거지요. 중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이도 많습니다. 제 언니도 삼촌 초청 방문비자로 한국에서 10년 살다가 두 달 전 헤이룽장성으로 돌아갔는데, 다시 나오겠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여자 몸으로 공사판에서 4층 건물까지 오르내리며 고생을 하고서도 돌아오겠다는 겁니다.”

    인도네시아인 상담을 맡고 있는 김미연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돌아간 본국에서 오히려 적응을 못해 한국에 돌아오는 이들을 위한 역적응 훈련과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 김씨는 원곡동 주민과 외국 근로자가 한데 어울리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얘기했다.

    “이따금 외국인 문화축제 같은 걸 엽니다. 각 나라 음식과 물건을 팔거나 공연을 합니다. 고향 향수를 느끼려는 외국인들은 북적이지만 내국인은 찾기 힘듭니다. 지나가다가 한번 쳐다볼 뿐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외국인 100만명 시대라고 해도 그들은 국가별, 수준별로 여전히 울타리를 치고 삽니다. 주말에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보통이지요. 내국인은 외국인이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요. 인도네시아 친구 하나는 ‘한국인 친구가 하나 있다는 것만 해도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타지에서는 핏줄이 더 당기는 법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사이에선 문화가 생긴다. 반포동 서래마을, 동부이촌동 ‘리틀도쿄’, 혜화동의 필리핀 거리, 가리봉동의 조선족 연변마을, 동대문 운동장 인근의 중앙아시아 거리는 곧 서울이 작은 지구촌이 됐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외국인 거주지와 그들의 문화는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부유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밀집한 지역은 이색 맛집이 즐비한 관광지로 주목받는다. 반면 근로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은 우범지역으로 감시의 대상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부유한 곳도 빈곤한 곳도 모두 ‘그들만의 마을’에 머문다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거나 이해관계상 도움이 되지 않는 한 굳이 외국 친구를 둘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 그 생각의 틀에 갇힌 한국인은 한국인의 눈에도 딱딱해 보였다. 꿈, 돈, 가족…. 한국 속 외국인들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공통으로 말하는 한국의 매력이 있다. 바로 희망과 정(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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