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 검찰 ‘제 식구 감싸기’ 의혹

‘간부 수뢰증언’ 조서에서 삭제하고 “전문(傳聞) 증거라 가치없다” 묵살

  • 한상진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9-03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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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장검사에게 2억, 부장검사에게 1억 건넸다’고 들었다.”
    • “검찰이 ‘우리 식구들 부분은 빼자’고 제안했다.”
    • “검찰이 로비 리스트 변경 지시했다.”
    • 법원에 제출된 관련자들 수사기록 어디에도 ‘검찰 로비’ 관련 문구 없어
    •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K상무 진술조서에도 검찰 로비 조사 흔적 없어
    • 검찰 관계자 “전문(傳聞)증거라 가치 없고 진술 일관되지 않아 조사 불필요”
    ‘검찰을 상대로 로비가 있었다’는 고소·고발인의 증언과 증거를 검찰이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심지어 검찰이 고발장 내용 중 검찰 로비 부분을 빼자고 고발인을 회유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 검찰 ‘제 식구 감싸기’ 의혹

    이재철씨의 검찰 수사기록과 로비 리스트.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문제의 사건은 올해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운회사 신성해운의 국세청 로비의혹 사건이다(상자기사 참조). 이제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고발인 이재철(36)씨와 전 신성해운 공동대표 서민호(57)씨는 각종 증거와 증언을 공개하며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기자는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의 모든 증언을 동의를 얻어 녹음했으며, 이들은 자신의 증언에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대체 이 사건의 수사과정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기자가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올해 1월 초였다. 당시 기자는 고발인 이씨와 고소인 서씨가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을 입수한 뒤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수차례에 걸친 이씨·서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한편 ‘로비 리스트’ 등 각종 자료도 확보했다.

    고소·고발인이 거론한 신성해운의 로비대상 기관에는 청와대,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이 망라돼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은 점점 축소됐다. 애초 고발인의 주장에 담겼던 검찰, 국세청 수뇌부에 대한 로비 의혹은 조사대상에서 배제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국세청, 경찰 등 하위직 공무원들과 2~3명의 전직 고위공무원만이 조사를 받았다.

    “증거 없어 내사 종결”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6개월 넘게 수사가 진행된 이 사건은 결국 고발인 구속이라는 석연찮은 결과로 막을 내렸다. 로비를 한 사람은 있는데 로비를 받은 사람은 확인되지 않은 사건. 다음은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직후인 5월29일 발표한 수사 결과 내용 중 일부다.

    “전·현직 국세청 고위간부들의 경우 공여자와 수수자 모두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의혹에 부합하는 이재철의 진술은 ‘신성해운 K전무로부터 들었다’는 식의 전문증거(傳聞證據)에 불과해 증거로 할 수 없다. 그 외에 달리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어 모두 내사 종결했다. …(고위 간부를 제외한 나머지 국세청 직원들의 경우에도)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어 내사 종결했다.”

    사건 초기 언론에도 공개된 바 있는 ‘로비 리스트’는 이씨가 서씨와 협의해 만든 것이었다. 로비 리스트에는 총 10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국세청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 전 비서관 가족 3명, 경찰 1명, 검찰 고위간부 1명, 국무총리실 관계자 1명이었다. 로비 리스트 작성 경위에 대해 서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검찰(조사부)에서 로비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할 것을 요구해 이씨와 협의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에는 정 전 비서관 가족, 국세청, 경찰,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해 신성해운이 로비를 한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 로비 대상자는 더 많았지만, 이씨와 협의해 핵심 인사들만 추리기로 했다. 3~4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로비 리스트’에 등장하는 검찰 고위인사는 2004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이하 ○차장)다. 로비 리스트에 따르면, 2004년 당시 신성해운 세무조사로 불거진 검찰 조사 당시 책임자였던 ○차장은 서울 서초구의 한 술집에서 신성해운 K상무로부터 현금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사건무마 청탁을 부탁하려고 변호사와 함께 술집에서 2억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씨와 서씨는 ○차장의 금품수수 사유에 대해 “(세무조사 이후 신성해운이 서씨를 공갈·협박죄로 고소한 것과 관련) 서씨 구속과 (신성해운) 박○○ 사장 불구속 기소 후 집행유예 선처 부탁, K상무 본인의 선처 부탁”이라고 ‘로비 리스트’에 적었다. 서씨는 “그밖에도 2~3명의 검찰 직원에 대한 로비가 있었고 이 부분을 검찰 수사에서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로비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씨와 서씨 두 사람에 대한 조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차장을 포함한 검찰 측 로비 대상자들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법원에 제출된 두 사람의 진술조서 어디에도 ‘검찰에 대한 신성해운의 로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은 없다.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은…

    신성해운은 2004년 초 공동대표인 서민호씨의 고발로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시 서씨는 자신의 신성해운 지분을 신성해운 측에 매각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 신성해운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알고 이를 국세청과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 조사가 시작되자 신성해운은 이 문제를 해결할 로비스트를 물색하다가 이재철씨를 접촉, 그를 이사로 영입한다. 당시 이씨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실세인 정상문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의 사위였다. 2003년 9월 정 비서관의 딸과 결혼한 이씨는 2006년 초 이혼했다.

    이씨는 신성해운의 세무조사를 막아주는 조건으로 현금 30억원과 신성해운 주식 20%를 받기로 하고 주식양수양도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신성해운에 대한 세무조사와 그것으로 촉발된 검찰수사를 신성해운 측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청와대, 국세청, 검찰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로비를 하는 데 적극 협조했다. 이씨는 “정 비서관의 힘을 빌려 서씨를 구속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서씨는 신성해운 측으로부터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당해 구속(2004년 12월)됐다.

    이씨와 신성해운의 갈등은 국세청 세무조사가 ‘무사히’ 끝난 후 이씨가 신성해운 측으로부터 받기로 한 돈을 받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이씨는 신성해운 측에 약속한 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10월경 서씨를 찾아가 2004년 당시 신성해운의 로비 사실을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검찰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며 2004년에 있었던 신성해운의 권력기관 로비 사실을 공론화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자금으로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신성해운 측 관계자와 로비를 받은 사람들을 처벌해달라는 요구였다. 이씨는 “(한때 장인이었던) 정 전 비서관을 사건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고 줄곧 말했으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 전 비서관은 이 사건의 중심인물이 됐다.

    이 사건은 처음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당시 부장검사 김대호)에 배당됐다. 조사부는 이씨의 고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이씨가 제출한 고발장에는 이른바 ‘로비 리스트’도 포함돼 있었다.

    정 전 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난 2월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 검사 2명을 투입해 수사를 확대했고, 3월 말에는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보냄으로써 강력한 수사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수사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로비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고발인(이씨)이 첫 구속자로 기록됐다. ‘세무조사를 무마해주겠다며 신성해운 측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였다. 반면 10명이 넘는 로비 대상자의 실명이 거론됐지만 처벌받은 이는 나오지 않았다. 1억원을 받고 국세청 로비 무마를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은 정 전 비서관이 불구속 기소(변호사법 위반)된 것이 전부였다.


    “검찰 인사들은 빼는 게 좋겠다”

    지난 수개월간 기자는 이 사건과 관련, 검찰 관련 의혹을 추적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이씨(이씨가 구속된 이후엔 이씨의 가족·변호인)와 서씨를 만나 각종 자료를 확보했고 진술을 들었다. 자료에는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각종 녹취록, 세무조사·검찰수사와 관련된 서류가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서씨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로비 리스트가 검찰수사 과정에서 변질됐다는 것이다. 다음은 서씨의 주장.

    “처음에는 검찰에 10명의 명단을 담은 로비 리스트를 제출했다. 그런데 검찰(조사부)로부터 ‘검찰 부분은 빼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 (사건 초기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국세청 로비와 정 전 비서관의 금품수수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이 제안에 동의했다. 검찰을 돕는 것이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서씨의 주장을 검증하기로 했다. 먼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씨를 면회했다. 그는 기자에게 “서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다. 검찰이 ‘로비 리스트에서 검찰인사들은 빼야 한다’고 제안했다. 검찰(조사부와 특수부 모두)과 검찰 인사에 대한 로비의혹 부분은 수사를 하지 않기로 (검찰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최근 기자에게 두 차례 편지를 보내와 검찰수사 과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하나는 기자가 이씨에게 보낸 검찰 수사와 관련된 질의서에 대한 답변, 또 하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이었다. 이씨는 편지 곳곳에서 검찰에 불만을 토로하며 검찰수사에 협조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가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이해를 돕기 위해 편지 내용을 요약, 편집했음을 밝힌다).

    (‘로비 리스트에서 검찰 부분(○차장 검사)이 빠진 경위, 로비 리스트 변경을 지시한 검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2007년 12월경인지 (2008년) 1월인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 로비 리스트를 제출하면서 리스트를 수정했다. (조사부 소속) ○○○ 부부장이 지시하고 ○○○ 계장이 수정했다. 부장(검사)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수시로 ○ 부부장이 ○ 부장에게 보고하러 왔다갔다했다.”

    (‘검찰에서 검찰 로비 부분에 대해 조사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사부에서는 검찰(부분)에 대해 한 번(조사) 하다가 리스트 수정에 대해 두 번 하였다. 대부분 2007년 12월에서 1월 사이였다. 그 다음부터는 하지 않기로 (검찰과) 약속하였다.”

    (‘검찰이 ‘검찰 부분은 빼자’고 처음 제안한 시기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2007년 12월~2008년 1월 사이. (정확한 날짜는) 잘 기억이 안 남.”

    (‘검찰 인사들이 신성해운으로부터 돈을 받은 장소에 대해 진술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서초동에 있는) ○○○○(술집)라고 조사부에서 진술하였으며 특수부에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음.”

    (검찰 수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검사가 두 번 정도 불러서 ‘어떻게 되었든 회사는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특수부에서는 검찰에 대해 한 번도 말 나온 적 없으며 이야기하거나 조사하거나 물어본 적 없음. 검찰(간부에게 돈이 전달된) 술집(에 대한) 진술은 조사부에서 여러 번 했음.→서초동 ○○○○.”

    “현직 부장검사도 관련 있음.→이○○, 권○○(신성해운 측 로비스트), (신성해운) ○○○(상무)가 수시로 ○○○ 검사 만나서 술 마셨다고 증언. ○차장과 (2004년 당시 부장검사이던) ○○○ 검사는 조사도 안 함. 특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죄는 크고 하지만 경제는 살려야 하지 않나, 회사는 살리자, 합의를 봐라.’”

    이씨와 서씨의 주장대로라면 검찰은 검사들에 대한 신성해운의 로비 의혹을 축소·은폐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 로비 부분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기자는 최근 고소·고발인 측의 협조를 받아 최근 신성해운 사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기록을 열람했다. 전체 1만7000쪽이 넘는 분량 중 검찰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약 8000쪽 분량이다.

    확인 결과 법원에 제출된 수사기록 어디에도 ‘신성해운이 검찰에 로비를 벌인 의혹’을 검찰이 조사한 부분은 없었다. 아니, 확인하려고 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을 처음 고발한 이씨와 고소인 서씨의 진술조서뿐 아니라 10여 명에 달하는 관련자 조사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로비 리스트가 증거로 첨부되어 있는, 2007년 12월13일 작성된 이씨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에도 검찰 관계자에 대한 부분은 빈칸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사받으며 비밀 녹음

    검찰이 수사를 축소·왜곡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그밖에도 많다. 서씨는 자신이 검찰조사를 받던 당시 비밀리에 녹음한 음성파일 2개를 지난 6월 말 기자에게 건넸다. 확인 결과 서씨가 건넨 음성파일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 수사를 받던 1월4일 만들어진 것이었다. 장소는 서울중앙지검 812호 조사부 검사실.

    당시 검찰조사 내용은 주로 신성해운의 정·관계 로비에 대한 것이었다. 녹취록에는 신성해운이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로비했다는 서씨의 주장이 담겨 있다. 서씨는 “고발인 이씨로부터 들은 내용을 검찰에서 그대로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녹취록 내용 중 검찰 로비와 관련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2005년 8월 이재철씨가 신성해운의 로비 사실을 서민호씨에게 처음 알리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수사관 : 당신이 억울한

    서민호 : 예. (2004년 서씨가 신성해운으로부터 공갈 협박혐의로 고소를 당해 구속된 것과 관련) 억울하게 옥살이한 그 배경에는 자기(이재철)가 나서서

    수사관 : 배경에는

    서민호 : 자기(이재철)가 나서가지고 국세청하고 검찰하고

    수사관 : 자기(이재철)가 나서서

    서민호 : 청와대하고 예.

    수사관 : 국세청

    서민호 : 청와대, 검찰 로비를 했다.

    수사관 : 검찰이라고 그랬나요? 경찰이라고.

    서민호 : 예. 검찰에. 검찰이라고 그랬어요. 경찰이 아니고 검찰.

    수사관 : 검찰.

    서민호 : 청와대, 국세청 세무계.

    수사관 : 검찰에 로비?

    서민호 : 예. 로비를 했다. 그래서 그 로비한 각종 증거가, 증거 X파일을 자기(이재철)가 가지고 있으니까 미국으로 오너라.

    (중략)

    녹취록과 검찰조서의 차이

    서민호 : 그 다음에 (2004년) 당시 검찰에는 당시 형사부장한테 1억을 줬고, 그 다음에 ○차장검사한테 2억 줬고.

    수사관 : 형사부요?

    서민호 : 예. 형사 ○부장한테

    수사관 : ○부요?

    서민호 : 형사 ○부.

    수사관 : 진술을 확실하게 해야 돼요.

    서민호 : 아, 그래 형사부장한테 1억 줬다고 했습니다.

    수사관 : 형사 ○부장?

    서민호 : ○부장? ○부장인지. 형사부장이라고 했습니다. 형사부장.

    수사관 : 형사부장한테 1억 줬고.

    서민호 : 예. 부장한테 1억 주고. 예. 그리고 차장한테. ○차장한테 2억 줬다고 했습니다.

    수사관 : 이게 인제 신성해운에서 이렇게 줬는데, 그 돈을 자기(이재철)가 인제 가져가는 걸 봤지 자기(이재철)가 직접 전달한 것은 아니다.

    (중략)

    검사 : 이게 인제 그 오늘 진술한 부분은 들은 건 전부 다 어저께도 말했지만 전문 진술이에요. 전문. … 그거는 원칙적으로 증거 능력이 없거든요.

    서민호 : 아. 예.

    (중략)

    (서민호가 나가고 검사와 수사관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검사 : 관계기관, 담당자 및 국무총리. 우리 방은 요거랑 요거 2개 하는 걸로. 이렇게. 검찰이 들어간 건 딴 데 빼고

    수사관 : 네.

    이 녹취록은 검찰의 진술조서 작성 과정을 그대로 녹음한 것이다. 따라서 서씨의 녹취록과 이날 만들어진 검찰의 검찰조서는 내용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1월4일 작성된 서씨의 검찰 진술조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은 완전히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서씨가 “(신성해운이 2004년 당시) 국세청, 검찰, 경찰, 청와대 등에 로비를 했다”고 진술한 부분이 진술조서에는 “청와대, 관계기관에 로비를 했다”(검찰 수사기록 888, 890쪽 등)는 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관련 진술내용을 삭제한 것일까. 서씨는 이에 대해 “검찰이 1월4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우리 식구들(검찰)은 좀 빼자’고 제안했다. 진술조서를 모두 만들어놓은 후 내가 보는 앞에서 진술서에 기재된 검찰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신성해운이 검찰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은 그밖에도 여러 군데에서 감지된다.

    고소·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30일과 31일, 고발인 이씨는 이 사건의 동업자라 할 수 있는 서씨, 서씨의 변호인(문흥수 변호사)과 대화를 나눴다. 신성해운 정·관계 로비의혹의 전체 줄거리가 처음으로 이씨의 입을 통해 확인된 순간이었다. 장소는 변호사 사무실.

    “검찰 건드리다가는 역공당해요”

    당시 세 사람이 합의해 만든 녹취록은 서씨에 의해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됐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에 제출한 증거자료 목록에서 이 녹취록을 뺐다. 이씨가 신성해운의 정·관계 로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중요한 자료임에도 이 자료는 현재 수사기록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기자는 최근 서씨로부터 이 대화 녹취록도 입수했다. 녹취록에는 이씨가 주장하는 신성해운의 검찰 로비 부분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음은 녹취록 내용 중 일부다.

    이재철 : (2004년 국세청, 검찰 조사 당시 신성해운의 변호인 측이 신성해운 측의 대응논리를 관련자들에게) 외우게끔 했어요. … 그러니까 (신성해운 ○○○상무가) 검찰 가서도 증인 가서도 답변을 너무 잘하는 거죠.

    변호사 : (신성해운 상무) ○○○이가 서(서민호) 사장 치는 거는 자기들 진술만 가지고도 칠 수 있다 이렇게 본 거예요?

    이재철 : 예.

    변호사 : 그 (신성해운 측 변호인) ○○○에서 뭐 이렇게 되면 검찰에서 확인했다 이렇게 검증이 있었겠지. 또.

    이재철 : 그것도 있었고 만났으니까요.

    변호사 : 누구를 만나요?

    이재철 : 차장(검사)을 만났어요.

    변호사 : △차장?

    이재철 : 예.

    서민호 : ○차장이라고 그랬잖아요.

    이재철 : ○차장인가 △차장인가 만났어요. 담당

    변호사 : 형사부, 우리 서 사장님도 형사부

    이재철 : ○부였나?

    서민호 : 형사 ○부였죠.

    변호사 : 형사 ○부? ○차장이네.

    이재철 : ○차장이죠? 제 말 맞잖아요.

    서민호 : ○차장 맞습니까?

    이재철 : ○차장 만났고, 술자리를 한 거를 알고 있고 술 어디서 마신 것도 알고 있어요.

    (중략)

    변호사 : 그 다음에 검찰

    이재철 : 검찰은 제○차장한테 제가 듣기로는 1억인가, 2억 줬어요.

    변호사 : 검찰 제○차장이 지금 어디에 가 앉았는지.

    이재철 : 변호사로.

    변호사 : 변호사로?

    이재철 : 그런데 안 건드리시는 게 좋습니다.

    변호사 : 결국은 가재는 게 편이다?

    이재철 : 예. 그러다가는 역공당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국세청만. 제가 계속 왜 국세청을 하냐면 국세청만 건드려도 요것만 해도요, 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고발인 자료 변조 제안한 적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혹에 대한 검찰 의견은 뭘까.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정용진 검사(현 홍성지청 부장검사)에게 서씨의 주장, 그리고 각종 녹취록 내용과 검찰의 축소수사 의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정 검사는 서씨가 비밀녹음을 시도한 1월4일에 조사를 진행한 검사로 “진술조서 변경을 직접 제안했다”고 서씨로부터 지목받은 인물이다.

    정 검사는 “서씨는 신성해운의 로비 사실을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진술은 모두 이씨로부터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전문증거다. 당시 검찰은 서씨에게 ‘당신의 진술은 모두 전문증거이므로 이 부분은 이씨의 진술로 대체하겠다’고 알렸고, 이후 이씨의 진술을 받아 검찰과 국세청 등에 대한 로비 부분을 진술조서에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발인 자료를 변조할 것을 제안하거나 지시한 적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검찰이 검찰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의지가 있었다면 K상무를 상대로 이를 조사했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에 제출된 K상무의 검찰 진술조서를 살펴본 결과 검찰 로비와 관련한 질문이나 답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진술조서에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서씨의 변호인인 문흥수 변호사는 “검찰이 서씨의 진술조서 중 유독 검찰 관련 진술이 담겼다는 기록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이던 김대호 변호사(2008년 3월 사직)는 “공직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조사부에 이어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윤갑근 부장검사는 7월16일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성해운 국세청 로비사건, 검찰 ‘제 식구 감싸기’ 의혹

    이재철, 서민호씨에 따르면 2004년 신성해운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벗기 위해 국세청, 검찰 등에 로비를 했다.

    “(고발인) 검찰 로비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씨의 진술이 수사과정에서 자주 번복됐다. 한마디로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다. (2004년에) ○차장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형사 ○부장의 경우에는 ‘로비가 있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일 없다’고 하는 식으로 진술이 계속 바뀌었다. 검찰 인사가 포함된 로비 리스트도 수사과정에서 봤지만, 이씨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수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점도 분명 있었다. 조사부 수사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윤 부장검사는 또 “K상무를 상대로 조사할 건 다했다”라며 축소수사 의혹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검찰 로비에 대해 K상무에게 물어봤으나 ‘그런 적 없다’고 했다. K상무는 (검찰간부에게 돈을 건넸다는) 술집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에는 없지만 K상무에 대한 이러한 수사내용은 모두 조서로 남겨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수사를 더 할 수 있겠나.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불필요한 수사라고 판단했다. 이씨의 진술 중에는 증거능력으로 삼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윤 부장은 문제의 검찰조서를 보여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기록을 보여주는 건 적절치 않다”며 거부했다.

    “술집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수사팀의 해명에도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고소·고발인의 주장을 신뢰하기 어려웠다”는 검찰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도 당시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관련자들까지 ‘검찰 로비’ 가능성을 거론했다면 최소한 확인은 해봤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 중 ‘검찰 로비’의 흔적이 나오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4년 신성해운의 로비 당시 신성해운 측의 돈세탁(수표를 현금으로)을 도운 의혹으로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또 다른 K씨의 진술조서에서 그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것.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진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다음은 K씨의 진술조서 중 일부.

    (신성해운 측의 돈세탁 과정에 대한 조사에서)

    검찰 : 신성해운의 K상무가 어떠한 이유로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 이○○에게 수표를 주었고 이○○은 K상무로부터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하여 이재철, 이○○(이재철 부친), (또 다른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 권○○에게 주었는지에 대하여 진술인이 아는 사항은 어떠한가요.

    K씨 : 저는 당시에 (신성해운 측 로비스트) 이○○의 마르샤 차량을 운전하여 주기도 하는 등 잔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 권○○, 이○○(이재철 부친)의 대화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모든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중략)…K상무가 (로비스트) 이○○의 소개로 이○○(이재철 부친), 이재철, (로비스트) 권○○을 만나 이들을 통해 정부 고위관계자(또는 국세청담당관, 검찰 관계자 등)에게 로비를 하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검찰 : K상무가 당시 로비하고자 하였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K씨 : 예, 첫째는 세무조사 시 탈세 금액을 축소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 잘 마무리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중략)…당시 두 사람(이○○, K상무)의 주된 대화내용은 신성해운의 세무조사 및 검찰수사에 대하여 정상문 비서관이 움직이고 있고….

    물론 수사과정에서 진술조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특정 부분, 특히 제 식구(검찰)에 대한 로비 부분이 진술조서에서 빠지고 수사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검찰이 직접 고발인에게 고발장(로비 리스트)의 변조를 지시하거나 제안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서씨의 경우 전문증거라는 이유로 검찰 진술조서가 왜곡된 것도 문제다.

    “전문(傳聞)증거도 수사자료 가치 있다”

    그렇다면 법조계에선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검사장을 지낸 한 원로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고발인의 고발 내용을 변조했거나 이를 제안(혹은 지시)했다면 명백한 범법행위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한 고발인의 순수한 의도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전문증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증거라고 해도 그 진술이 사건에 결정적인 경우, 예를 들어 이번 경우처럼 고발인이 주장을 수시로 번복한다거나 진술 외에는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수사 자료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전문증거라는 이유로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검찰 수사과정에 대해 종종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없이는 법을 올바로 세울 수가 없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는 끝났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비를 받은 공직자 중 단 한 사람도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의 고발인은 현재 구속 수감돼 있다.

    반면 검찰이 “고소사건 및 세무조사 무마 로비활동을 주도한 핵심(수사기록 1만2769쪽)”이라며 힘들게 구속한 신성해운 K상무는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고소·고발인들은 K상무의 보석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된 사건. 증거가 없어 로비 대상자로 거론된 검사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설명은 한편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개운치 않다. 특히 ‘검찰 로비’ 관련 진술이나 조사내용이 수사기록에서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고소·고발인이 제출한 로비 리스트에서 유독 검찰 인사만 빠지게 된 경위도 의심스럽다. 대상자가 검사가 아닌 정·관계 인사, 혹은 일반인이었다 해도 그토록 소극적으로 조사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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