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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죄보다 인간을 더 미워한 세상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칠 것만 같아요!”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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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범함과 예술적 재능을 가진 소녀’
  • ● 신정아가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절절한 사연
  • ● “학위·논문 조력자들, 알고 보니 학위조작 브로커”
  • ● 1·2심 재판부 ‘신정아-변양균 게이트’ 모두 무죄 선고
  • ● 검찰 확인, 신씨 최종학력…‘고졸’ 아니라 캔자스대 중퇴
  • ● “누드사진은 합성사진, 한 사진가의 합성작품이 흘러나간 것”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거리마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1987년 5월, 대학교 1학년생이던 기자는 중학교 2학년 앳된 소녀의 가정교사였다. 때는 전두환 정권이 모든 개인교습을 금지하고 단속을 하던 즈음, ‘가난한 고학생’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불법 과외선생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녀 제자는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고등학교 시절 3년을 한 방에서 지낸 친구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말이 친구지 그와 나는 양쪽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불리는 사이였다.

고교 시절, 고향인 경북 청송을 떠나 대구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친구는 “이왕 하숙할 거 너희 집에서 하고 싶다”며 짐을 싸 들어왔다. “어머니 된장찌개 맛을 잊지 못해서”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생활고를 겪던 친구의 집안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려 했던 것이었다. 좁은 방에서의 3년, 시래깃국에 된장찌개만 먹던 생활이 힘겹기도 했을 터. 하지만 친구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친구의 집안은 경북 청송에서 택시회사와 주유소 3개를 운영할 정도로 부자였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많아 청송 진보에 들어오려면 그 집안 땅을 밟지 않고선 불가능하단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경기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인물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경력도 있었다. 아버지는 지병인 폐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40대 중반 나이에 고등학생인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등졌다. 이후 모든 살림은 어머니가 꾸려 나가야 했다.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고교 졸업 후 그의 어머니는 서울 서초동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맏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다 둘째아들인 기자의 친구조차 대입 재수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참에 친구의 여동생까지 서울로 전학을 왔다. 어머니는 청송 집과 서울 집을 오가는 생활을 했기에 갓 청송에서 올라온 막내딸의 공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기자가 그녀의 가정교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들 같은, 자식의 친구인데다 소위 명문대를 다니고 있었고, 이미 가정교사 경험도 있던 터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소녀 신정아

한국 나이로 15세, 그 꼬마 아가씨의 이름은 지난해 논문표절과 학력조작 파동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였다. 소녀 신정아는 부유한 집에서 자라 그런지, 경북의 골짜기 벽촌에서 거대도시, 그것도 최고 부유층이 사는 서울 강남지역 학교로 전학을 왔지만 구김살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15세 소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조리 있고 똑 부러지는 말투에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그야말로 가르칠 맛이 나는 학생이었다. “너하곤 질적으로 다르다”고 친구에게 농담을 건네면, “너에게 우리 집 기대주를 맡겨놓은 게 불안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막내딸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다. 숫제 “올인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에게 정성을 다했다.

꼬마 아가씨는 공부만 잘한 게 아니었다. 책을 사다주면 며칠 안 돼서 다 읽어치운 후 이것저것 물어볼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났다. 중학생이 소화하기에 벅찬 책들도 이해가 빨랐다. 악기도 잘 다뤘고, 특히 그림은 수준급이었다. 연습장에 끼적인 그림들조차 선의 터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공부했던 기자의 눈에도 그녀의 그림 실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술에 대해 일찌감치 비범함을 드러냈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딸의 재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던 소녀는 마음만큼 얼굴도 예뻤다. 함께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볼 정도. 사실 그녀의 미모는 대물림된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주변에서 보기 드문 빼어난 미인이었다. 부끄럼 많은 10대 소녀, 하지만 그녀의 성격은 화통했다. 네 살 위인 친구 오빠이자 과외 선생님에게도 말을 놓고 지낼 정도였으니…. 오빠들과 달리, 속에 있는 말을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화가 나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수를 쓰든 반드시 해내는 당찬 구석이 있었다. 기억에 그녀가 숙제를 해오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자의 가정교사 생활은 그 뜨겁던 1987년, 찬바람이 불기 전에 끝났다. 어머니는 계속 가르치길 원했지만 이미 소녀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 있었다. 매일 데모하러 다니느라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이후 그녀의 소식은 오빠인 친구를 통해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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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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