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토러스증권 설립한 ‘증권가 신화’ 손복조

“선진 지배구조 바탕으로 세계적 투자은행 만들 터”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8-10-06 1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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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러스증권 설립한 ‘증권가 신화’ 손복조

    ●1951년 경북 경주 출생<BR>●1974년 서울대 졸<BR>●2000년 티맥스소프트 사장<BR>●2001년 LG투자증권 상무<BR>●2002년 LG선물 사장<BR>●2004년 대우증권 사장

    의외였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그가 스트레스를 입에 올리고 초조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8~9개월의 준비기간에 돈만 쓰다 보니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어쩌다 기자와 만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탈리아 속담을 인용해 현재 심정을 얘기할 때는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경영자가 이익을 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업(業)을 일으킨(企) 창업 1세대들의 업적을 요즘 새삼 깨닫고 있다.”

    2007년 5월 대우증권 사장직에서 물러난 손복조 전 사장 얘기다. 그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출발선에 서 있다. 사무실을 구하고 ‘찜’해둔 업계 인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함께 일하자’고 권유하랴, 감독 당국으로부터 증권회사 설립 인가를 받으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셈이다.

    그 결과 탄생한 옥동자가 토러스투자증권(주).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빌딩의 2개 층을 빌려 아담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새 둥지를 꾸몄다. 8월25일 그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입구에 걸려 있는 황소 뿔 모양의 기업이미지(CI)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토러스는 황소자리란 뜻이란다. 황소는 증권시장의 강세장을 상징한다.

    “영업 첫해부터 수익 올릴 터”



    그는 2004년 6월 대우증권 사장을 맡아 업계 5위에 머물던 이 회사를 3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자기자본을 1조원 가까이 늘렸다. 2004년 3월 말 1조2449억원이던 대우증권의 자기자본은 그의 퇴임 직전인 지난해 3월 말에는 2조1126억원으로 늘어났다. 짧은 기간에 자기자본을 이처럼 늘린 것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반대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

    손 사장은 얘기가 무르익으면서 예의 모습을 금방 되찾았다. 영업 첫해인 올해부터 바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보통 금융기관은 초기에 정보통신(IT) 분야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설립 3년 후에나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그의 계획이 무모하달 수도 있으나 대우증권 시절 그의 리더십과 추진력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법도 하다.

    ▼ 대우증권 사장 퇴임 이후 여러 곳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겠다는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지난해 5월 대우증권에서 나오자마자 몇 곳의 증권회사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다. 물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고민했는데 영 내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면의 외침이 더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해 7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증권사 신규허가 방침을 밝힌 것을 계기로 꿈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새 증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 무렵 CEO로 와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하는 증권사가 있어 결정하기 어려웠다. 중간에 정말 거절하기 어려운 분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중하게 뿌리쳤다.”

    130년 역사 GE의 CEO는 9명

    ▼ 굳이 창업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있었나.

    “무엇보다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실현하고 싶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원인 중 하나도 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크게 정부나 1인 대주주, 또는 재벌이 지배하는 구조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정부 지배 금융기관 CEO는 대부분 단임으로 끝나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할 수 없다. 또 1인 대주주나 재벌이 지배하는 금융기관은 지배주주 1인이나 재벌의 리스크 때문에 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그룹이다. 결국 CEO가 장기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을 이끌어가기 위해선 과점 주주가 없는 선진적인 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나 노무라증권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금융기관이 나올 때가 됐다고 본다.”

    그의 이런 희망과 의지는 토러스증권의 지분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최대 주주인 손 사장 자신의 지분율은 10.1%. 전북은행과 행정공제회가 각각 10.0%, 대구은행이 9.9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임직원 및 기타 주주의 지분율은 40%. 주주는 골고루 분산돼 있는 셈이다. 창업 자본금은 300억원.

    그는 글로벌 투자은행의 CEO들은 보통 10~15년 동안 재임한다고 강조했다. 또 발명왕 에디슨이 설립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역사가 130년이나 됐지만 그동안의 CEO는 고작 9명이라고 설명했다. 평균 재임기간이 14년인 셈이다. 이 점이 GE가 지금까지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선 속된 말로 “자기 혼자 다 해먹겠다는 얘기 아니냐”는 반발도 있을 법하다. 또 “탁월한 실적을 올렸음에도 대우증권 사장을 3년밖에 하지 못한 데 대한 ‘울분’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특히 금융기관의 경우 CEO가 안정적인 임기를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선 단기 업적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박사는 “국내 은행의 자산증가율이 CEO 교체 직전 연도에 일반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CEO 재임기간이 긴 경우 은행의 경영 성과가 상대적으로 탁월하다는 게 김우진 박사의 설명이다. 김 박사는 “이들 은행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일한 영업 전략과 비전을 공유하면서 성장해왔다고 보이는데, 이런 노력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에 와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사실 대우증권 사장을 연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크게 섭섭하지 않았다. 2000년 6월 대우증권을 떠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내 할 일을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만 연임한다면 자기자본을 5조원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쉬웠을 뿐이다.”

    도전적인 인재 영입 작전

    손 사장은 “그래도 사장직에서 퇴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름 전에 미리 알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 대우증권을 떠날 때는 주총이 열리기 하루 전 오후 4시 무렵에야 해임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그의 얼굴엔 당시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짐을 찾으러 회사에 갔더니 내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와서 근무하고 있었고….”

    토러스증권 설립한 ‘증권가 신화’ 손복조

    그의 집무실 옆방에 마련된 접견실은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손 사장은 대학 졸업 후 1970년대 중반 ‘재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율산그룹에 입사해 젊음을 불태우다 율산 해체 이후인 1984년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이후 이 회사 기획실장(이사대우), 리서치센터 담당 상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대우증권이 산업은행 자회사가 되면서 2000년 6월 회사를 떠나 LG투자증권 상무, LG선물 사장 등을 역임했다.

    ▼ 임직원은 어떻게 충원했는가.

    “시장에서 검증된 사람을 중심으로 충원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삼고초려가 아니라 20번 가까이 찾아간 사람도 있다. 반면 ‘토러스에 참여하면 바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자 6억~7억원의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합류한 사람도 있다. 또 회사 비전을 설명한 후 ‘1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으나 헤어진 지 2~3시간 만에 바로 결단한 사람도 있다. 도전적인 인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외부 방문객이 ‘이 회사는 뭔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정말 임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임직원 스스로 자신이 회사 주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는 것 아니겠는가.”

    ▼ 회사의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소규모 자본금으로는 손실을 기록하면 금융기관으로서의 지속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따라서 얼마나 빨리 수익을 내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단 기존에 형성돼 있는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시장에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상품 운용(dealing)을 차별화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투자은행(IB) 업무나 자산관리 업무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자산관리 서비스 회사로 특화하고 싶다.”

    “브로커리지 시장이야말로 블루오션”

    시장에선 브로커리지 업무에 특화하는 게 손 사장의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브로커리지 업무에 승부를 걸었던 대우증권 사장 시절엔 운 좋게 시장이 강세로 돌아섰기 때문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는 것. 거꾸로 얘기하면 시장이 약세로 돌아서면 통하기 힘든 전략이라는 비판인 셈이다. 그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낸 얘기인지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내게 IB 업무나 자산운용 업무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대우증권에서 몰아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대우증권 사장 시절 업계 일각에선 ‘매매 수수료가 낮아지면서 브로커리지 업무는 천수답이 돼버렸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하루 거래액이 4조~5조원인 상황에 10%의 점유율만 가져도 4000억~5000억원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점유율을 높이면 실적을 올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브로커리지 업무를 강조한 것이다. 자산관리나 IB 업무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쪽은 시장 규모가 작아서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브로커리지 시장 외에는 달리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시장에서라도 좀 더 잘하자고 했던 것이다. 운 좋게도 증시가 살아나면서 큰 효과를 봤다. 물론 자산관리 업무나 IB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

    거점 지역에 대형 지점 설치

    ▼ 자본금 300억원을 키우려면 돈 되는 곳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리스크 관리도 신경 써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특정 종목에 자산의 몇 % 이상을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감독 당국이 정한 룰이 있고, 회사 내부의 규정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은 일정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회사 자본금 규모로 떠안을 수 있는 최대 리스크를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리스크를 떠안을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CEO의 중요한 임무라고 본다.”

    ▼ 지점 운영 계획도 조금 다르다고 들었는데….

    “서울 강남센터와 부산센터 그리고 대구센터를 오픈했다. 앞으로 서울 강북센터를 개설할까 생각 중이다. 지점 수는 적지만 지점 자체를 대형화할 계획이다. 증권회사 고객들은 그 회사 직원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은행과 달리 전국 곳곳에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손 사장은 증권업계의 수수료 경쟁에 대해서도 지극히 부정적이다. 마케팅에서 가격 경쟁이 최악의 선택이듯 수수료 경쟁 또한 궁극적으로는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면 몇만원 더 부담한다는 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증권회사가 성장하려면 수익력이 좋아야 하는데, 수수료 경쟁은 이런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 내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작은 규모의 증권회사들은 이합집산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조심스럽긴 하지만 자통법 시행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자통법의 원래 취지는 기존 금융기관의 업무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 간 인수·합병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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