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쓰나미 비켜가려면 소비지표, 금리에 주목하라!

  • 박경철 의사, 안동신세계병원장 donodonsu@naver.com

    입력2008-10-07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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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 3회에 걸쳐 기술적 분석이론, ‘경기순환론’에 대한 추종 투자를 강하게 비판한 시골의사는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투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호에 내놓았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투자의 제1원칙으로 투자 배제 대상을 지속적으로 찾을 것을 권한다. 그가 제시한 투자 배제의 판단 근거는 뜻밖에도 거시지표에 대한 올바른 이해. 거시지표로부터 시장상황을 파악한 후 공개된 증시자료와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완벽한 투자 지침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사랑과 불륜을 경계 짓는 기준선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법적 기준은 따로 있지만 일반인에게 사랑과 불륜의 경계는 다분히 주관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내가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가 되는 것.

    실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란 매우 힘들고 애매하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성공한 투기는 투자고 실패한 투자는 투기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당사자가 자신에게 왜 그곳에 자본을 투입했는지를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경우는 투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행위는 투기다. 예를 들어 누구의 추천으로, 어떤 정보를 들어서, 신문에서 보아서 등과 같은 답들만 떠오른다면 이는 투기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투자 결정이 투자대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 비교분석의 바탕에서 이뤄지고, 투자자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확신할 때만이 진정한 투자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가

    투자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인은 손실방지다. 손실은 잘못된 투자에서 오는 손실이 있고,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의 손실이 있으며, 잦은 거래로 인한 거래비용의 손실이 있다. 이때 투자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회비용의 상실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매수를 하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매도의 기회를 엿보는 투자자보다 장기적으로는 매수 기회를 엿보는 투자자가 많고, 그것이 증권시장을 장기적으로 상승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논리는 잘못됐다. 기회비용의 상실은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데 따른 손실이 아니라, 꼭 투자해야 할 종목을 사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손실을 의미한다. 가치투자를 하는 투자자에겐 시장 참여 자체에 대한 압력은 있을 수 없다. 이들에게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야 할 경우는 가격이 모두 비싸게 거래될 때다. 반면 그들은 다른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주식들이 널려 있다고 해서 시장에 선뜻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회비용의 상실은 실제 가치에 비해 절대적으로 싼 주식을 놓쳤을 때 발생한다. 거래 손실이나 기타 손실은 그 행위패턴을 바로잡음으로써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투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을 살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신이 공개된 시장자료를 통해(증권가의 분석을 통해) 대강의 후보군을 리스트업 했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을 살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파악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사지 말아야 할 것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가장 중요한 제1의 원칙, 즉 손실의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손실을 없애기 위해 해당 기업이 불황기를 기준으로 자사가 해야 할 의무를 실제 이행할 능력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부채를 상환하는 자금으로 증가한 당기순이익만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기업은 불황기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제대로 된 기업은 자금조달이 힘들고 채권에 대한 상환압력이 높아진 최악의 경기 상황에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어야 하고, 부채에 대한 듀레이션(채권 평균 상환기간)도 적정해야 한다.

    설령 기업의 유동자산이 많더라도 그것이 미래 특정 시점에 현금화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단기 유동성의 부족에 몰렸을 때 그 기업은 위기에 빠진다. 기업의 위험관리가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많은 투자자가 빠져드는 함정, 즉 안정성은 다소 낮더라도 수익성이 커 보이는 기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안정성이 떨어지는 기업을 먼저 배제하고 남은 기업 중에서 수익성이 가장 좋아 보이는 기업을 차선으로 선택하는 게 투자의 우선 순위다.

    투자 배제의 여러 원칙

    투자 배제의 다음 기준은 배당이다. 배당은 기업의 이익 안정성을 보여주는 척도다. 물론 수익의 전부를 배당하는 회사가 꼭 좋은 기업은 아니다. 또한 기업은 이익의 일부를 재투자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기업의 가치를 늘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약 기업의 재투자가 없다면 그 기업의 영속성은 보장받을 수 없다. 따라서 우량한 기업의 배당은 적정해야 하고 일정해야 한다.

    반면 기업이 순이익을 내고도 배당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이때 배당을 하지 않은 이유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손익계산서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잠재된 위험을 위해 배당을 내부적으로 유보하거나 신규 투자에 대한 경영진의 비밀스러운 목적이 따로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히 나쁜 징조는 배당을 꾸준히 하던 기업이 갑자기 하지 않을 때다. 이는 기업 재정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처럼 배당 성향이 나쁜 기업은 투자 리스트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자보상배율도 투자 배제 원칙의 한 기준이 된다. 이자보상배율이 높으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기업의 채무는 적정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이자로 지급되는 비용이 큰 기업은 경기가 악화되고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선 위기에 빠진다. 다음은 ‘계속기업(계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가능성. 이를 타진하기 위해선 손익계산서를 자세히 살펴야 하는데 거기에는 기업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기업이 계속기업으로 존재하기 위해선 수익이 창출되고 이자를 갚아야 하며, 경쟁기업의 진입을 막기 위한 신규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신사업에 진출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익을 내야 한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가총액/부채총액의 비율을 살펴보는 게 유용한데 이자보상배율은 조금 높다 해도 시가총액이율이 크다면 그 기업은 안정성이 있다. 이때 시장 측면에서 파악한다면 시가총액을 자산으로 봐도 무방하고 시가총액에 대한 평가를 부채에 대한 안정성으로 여겨도 된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8월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기업의 유동자산도 분석 대상이다. 이는 투자 판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고정자산은 별 의미가 없다. 이의 가치를 0으로 평가하는 극단적 분석가도 있을 정도다. 반면 유동자산은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그 기업의 자산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예를 들어 기업 보유 부동산이나 설비들은 상황에 따라 고철가격이나 공시지가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유동자산(현금, 유가증권, 매출채권, 재고자산) 은 현금화가 가능하고 그 예측도 정확하다. 기업이 정상적이라면 유동부채보다 유동자산이 반드시 많아야 한다. 보통 유동부채를 제외하고 남는 유동자산은 운전자본, 혹은 순유동자산이라고 한다. 기업은 보유현금이 충분해야 하고, 유동자산 대 유동부채 비율이 적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 평가 이전에 더 우선해야 하는 투자기준이 있다. 시장 상황에 대한 평가다. 종자와 묘목이 좋다 하더라도 기온이 낮고 태풍이 몰아치는 때에 좋은 작황을 기대할 수 없듯, 기업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할 때는 지금 시장 상황이 우호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시적인 안목과 분석이다.

    거시분석이 필요한 까닭

    미국의 경제 심장 월가는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지표들을 입수하고,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늘 분주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해지는 정보의 부하는 마치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굴러 내린 돌덩이와 같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양은 점점 많아지고, 해석은 갈수록 부정확해진다. 그래서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은 컴퓨터 시대의 개막과 함께 초창기 대중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지금껏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역량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실 시장 혹은 경제현상은 때때로 자신을 정확히 계측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일부러 그로부터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과거 1920년대에는 기업 실적 하나만 해도 입수 전쟁이 벌어질 만큼 돈다발을 안겨주는 보물이었지만 이제는 거시와 미시가 뒤엉킨 경제현상과 기업 요인, 그리고 시장요인까지 얽히고설킴으로써 특정 정보가 더 이상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최근 신문을 봐도 그런 현상은 너무나 명백하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정보량이 얼마가 되건, 신문마다 그것을 담아내는 시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월 스트리트 저널’이 예상외의 GDP 성장을 헤드라인으로 다루었다면, 바다 건너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기관의 추가 상각(償却)과 주택착공률 하락을 메인 기사로 다룬다. 혹은 동일한 신문에서도 고용지표의 생각 밖 호조와 함께 소비자 기대심리의 하락을 같은 면에서 다루고 있다. 거시적 판단을 위한 계량경제학의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지극히 단순한 방정식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a+b+c+d+e+…+y = z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a는 금리, b는 고용지표, c는 주택가격, d는 GDP 성장률과 같은 식으로 변수를 정해두고 각 변수는 그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둔다고 하자. 이에 따라 a + 2b +5c…+3y = z로 두고 z가 100 이하면 침체, 100~120은 중립, 120 이상이면 호황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과연 이 방정식에 따라 경기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주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계량경제학의 함정

    아마 기본적 경제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고 피식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경우 전문가들까지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국내 모 유명 증권사의 임원이 자신만의 계산 모델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공개적으로 마치 경제를 예측하는 비급이 손아귀에 있는 양 으쓱댔지만, 결과적으로 그 임원은 바로 그 순간부터 차라리 그러한 모델이 있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훨씬 나았을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변수 중에서 a는 b에 영향을 미치고, b는 다시 c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계량화할 수 있는 예측지표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을 판단할 정보를 구하길 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예측하길 원한다. 그래서 시장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과 그것을 전하는 사람, 그리고 다시 그것을 가공하는 사람과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의 거대한 먹이사슬이 구성된다.

    시장의 계량적 모델은 이처럼 시장을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도구이며, 기술적 분석에서 사용하는 이동평균선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기 어렵다. 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장 여러분이 거래하는 증권사의 리서치 자료나 아니면 대한상공회의소, 혹은 증권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보라. 거의 대부분이 차트로 만들어진 정보다. 그 차트들은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 물가의 증감을 다루거나 혹은 고용지표나 건설투자 지표, 때로는 금리 스프레드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차트를 해석하는 리포트를 읽어보면 ‘이중바닥(더블 딥)’이니 ‘삼중바닥(L형)’이니하는 이야기가 나와 있을 것이고, ‘과거 평균대비 과열이므로 조만간 침체가 예상된다’든지, 혹은 ‘소비자 심리가 개선되고 있으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식의 분석만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쏟아지는 모든 경제전망은 오늘 이전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으며, 혹은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비교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이코노미스트들이 가진 분석의 함정이다. 우리는 그저 그것이 옳건 그르건 주식시장에서 기술적 분석가들이 그어대는 추세보다는 이코노미스트들의 현학적인 자료를 더 신봉하고, 그것이 참이라고 믿을 뿐 실체는 같은 것이다. 심지어 노벨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마저 “계량경제학이란 수백 년간 나온 수많은 자료를 가지고 사실과 비슷한 근사치조차 내놓을 수 없는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지표 무시하는 애널리스트

    그렇다면 이런 경제 전망의 오류를 해결할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도출된다. 주식시장에서 주가예측은 이미 누누이 설명했듯, 모든 정보와 기술적 분석의 도구들을 동원하는 순간 오히려 오리무중에 빠져든다. 따라서 주가예측의 기초자산인 경기를 판단하는 데에도 복잡다단한 정보들을 모두 원용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나의 지적 범주 안에서 해석 가능하다고 믿는,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몇 개의 정보만 제대로 ‘비교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가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몇 가지 지표를 살펴보면 대충 소비 관련지수, 고용 관련지수, 재정 관련지수, 경제성장률, 금리, 인플레 등이다. 이들에 대한 정보는 매일같이 시장에 쏟아진다. 그로 인해 우리가 증시를 설명할 때, ‘지난밤 미국시장은 악화된 고용지수에 영향을 받아 하락했다’‘밤새 다우지수는 금리인하에 대한 축포를 터뜨렸다’‘주요 기업의 재고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간밤에 미국시장이 급락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시장이 국내 경제지표보다 미국 지표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즉 ‘지난밤 미국시장 하락의 영향으로 시장이 급락했다’ ‘미국 시장이 급등한 데 호응하여 전장에 강한 상승을 보였으나, 외국인 매도가 증가하면서 하락 마감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 투자자가 미국의 고용지표 하나, 주택 착공률 하나가 우리 시장에 실시간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는 의미이고, 이렇게 분석하고 리포트를 내는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일은 그저 미국에서 새로운 경제지표가 하나 나오기를 기다리는 갓 부화한 어린 제비나 다름없다’고 자인하는 것과 같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 애널리스트가 정작 한국시장, 즉 자국의 고용지수나 소비자 지출, 혹은 주택지표 등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심지어 금리 인상이나 인하의 중요한 이벤트가 있어도 ‘이는 시장의 예측범위 안에 있고 이미 선(先)반영되어 있으므로 중요치 않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이는 어쩌면 긍정적 낙관일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거시적 지표들은 무엇이고, 그것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둬야 할 사실은 이들 거시지표에 대한 해석이 시장 접근에 있어 가장 중요한 1단계 절차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시장이 아닌 기업을 사라’고 말하지만, 장티푸스가 창궐할 때 돼지고기가 팔리지 않고 돈이 넘쳐날 때 술집이 흥청거리는 이치를 생각해보면, 거시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미시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이치에 닿는 일임에 틀림없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표1’

    경기예측의 가늠자 소비지표

    그럼에도 그 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거시지표가 시장 예측의 실제에 있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한 답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틀렸다’다. 거시지표는 오히려 미시지표보다 이해하기가 쉽고, 최소한 기업분석보다는 훨씬 간단하고 유용하다. 누군가가 아무리 당신에게 ‘바텀 업’을 권하더라도 절대로 ‘톱 다운’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표2’

    먼저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거시지표들 중 투자에 원용할 수 있는 지표는 소비지표다. 미국 거시지표를 설명하며 상세한 이유를 덧붙이겠지만, 소비지표는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표임에 분명하다. 이는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2006년 11월에서 2008년 6월까지의 소비지표 ‘표1’을 보면 소비자 기대지수는 2008년 4월을 기점으로 100을 하회하면서 현저히 꺾였고, 소비자 평가지수는 이미 2007년 10월에 고점을 기록한 후 현격한 하향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그래프를 2006년 11월부터 살펴보면 2007년 후반까지 계속 증가하다가 현저한 하강국면에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을 해당 시기의 코스피지수 차트 ‘표2’와 비교해보면 의미 있는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코스피지수 차트에서 고점을 기록한 시점이 2007년 11월이고 2008년 4월의 반등 후 2008년 5월부터 투자심리가 확연하게 꺾이는 모양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거시지표와 주가지수의 의미 사이에 있는 연관성을 살펴보면 소비자 평가지수가 놀랍게도 주가지수와 거의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소비자 기대지수는 그에 약간 후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이 평가지수와 기대지수 두 가지를 합해서 ‘소비자 전망지수 CSI(Consumer Survey/Sentiment Index)’라고 하는데, 이 지표는 통계청의 정의에 의하면 ‘소비자들의 경기나 생활형편 등에 대한 주관적 판단과 전망, 미래 소비지출 계획 등을 설문조사를 통해 지수화한 것으로 가계의 소비동향 및 전망 등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는 지수로, 소비자의 경제에 대한 인식이 향후 소비행태에 영향을 준다는 전제하에 소비자의 소비지출계획 및 경기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해 경기 동향의 판단 및 예측의 지표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소비자 지표를 살펴봤다면 다음은 금리추이 ‘표3’을 봐야 한다. 그림에서 나타나듯 금리 역시 후행지표다. 금리는 시중 통화량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한국은행에서 결정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콜금리 목표치다. 보통 단기금융시장 금리는 시중자금의 사정, 중앙은행 통화정책 기조 등을 반영해 수시로 변동하며, 장기금융시장의 금리는 경기 및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현재의 경기상황 및 미래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표3’

    ‘표3’에서 보듯, 금리추이는 물가지표의 변화에 비해 상당히 둔감하다. 비록 이 그래프가 연간 평균을 이은 것이므로 변동성이 낮게 표현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런 사실엔 변화가 없다. 즉 우리가 항상 주식시장에서 입에 달고 다니는 금리라는 게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지 지표에 대한 사후적 조치이며 주식시장 입장에선 확인사살의 의미가 있을 뿐, 금리 인상 가능성과 인하 가능성을 두고 주식시장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언론에서 접하는 주식시장의 등락요인 중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금리 수준에 대한 이야기는 이코노미스트나 애널리스트가 만들어낸 사후보고서일 뿐 이미 시장의 기능은 그 이전 소비자의 행동, 물가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GDP의 참 의미

    여기에서 거시지표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지표가 있다. GDP, 즉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이다. 이 말은 국민이 아닌 지역, 즉 ‘한국 사람이 생산한’이라는 의미가 아닌 ‘한국 내에서 생산된’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외국사람이 한국에서 생산한 것은 GDP에 포함되지만 GNP(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s)에는 포함되지 않고, 한국인이 외국에서 생산한 것은 GNP에는 포함되지만 GDP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글로벌 시대에 한 나라의 경제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데는 GDP가 유용한 지표가 된다. 또 GDP는 중간생산물을 공제한 의미의 순가치를 말한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자동차의 최종 가격은 포함되지만 부품의 가격은 거기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다. 또 순가치는 자본 감가를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그야말로 국내 총생산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GDP 구성항목은 소비자 지출이 약 70%, 정부 지출이 약 19%, 자본 지출(총 민간 고정투자)이 약 16%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 GDP 항목은 소비자 지출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GDP에서 비중이 큰 소비자 지출은 다시 서비스가 약 60%, 비(非)내구재가 약 30%, 내구재가 나머지를 구성한다. 이 중 서비스 항목에는 의료비·여행·금융 서비스·오락·주택관리비 등이, 비내구재 항목에는 식품·의류·연료비 등 필수 소비재가, 내구재는 자동차·가구·기타 장비들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구매력이 떨어지면(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오락 유흥과 같은 서비스 항목을 줄이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GDP 항목 중 가장 큰 소비자 지출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줄이는 게 자동차나 골프채, 요트와 같은 운동장비가 속한 내구재일 것이고, 제일 마지막으로 줄이는 것이 필수 소비재, 즉 비내구재 항목이 될 것이다.

    구매력의 저하는 산업 생산 현장과 서비스 현장의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며,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면 기업은 자본지출을 줄인 후 고용을 줄인다. 다시 말해 고용지표와 자본지출은 이미 둔화된 경기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이후 고용의 악화는 다시 소비자 주머니를 가볍게 하지만 그래도 고용감소가 소비자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고용을 축소할 시점이면 이미 소비는 바닥에 이른 상태가 되고 앞서 말한 대로 비내구재나 필수 소비재는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용지표의 극적인 악화는 주식시장에선 이제 경기가 바닥에 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우호적인 지표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감은 서비스 지출의 감소가 주가하락과 동행할 경우 주가의 조정은 일시적인 조정이 아닌 추세조정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기의 순환관계를 간략하게 도표로 나타내면 ‘표4’와 같다. 이 그림은 우리가 늘 치열하게 부딪치는 현장 경제의 흐름이며 무엇이 선행성을 가지고 후행성을 가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그림뿐만 아니라 위에서 계속 살펴보았듯 분명한 사실은 경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금리와 소비자 지출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기침체’라 부르는 기준점(상용기준은 없지만 보편적으로 미국의 경우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한국의 경우 잠재성장률 이하의 성장, 중국과 같은 신흥국의 경우 약 3% 이상의 성장률 저하)에 이르기 전 소비자 지출은 그 알림판 역할을 할 것이고, 주식시장에서도 항공, 여행과 같은 서비스업종의 악화와 자동차, 가구, 전자제품과 같은 내구재 생산업종의 악화가 순서상 맥락을 구성할 것이다.

    이런 경기하강의 각 구간을 ‘Ahead of the curve(한글판: 경제를 읽는 기술)’의 저자인 조지프 엘리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1단계 : 경기가 팽창하고 낙관이 지배할 때 소비는 견조하고, 주가는 신고점을 경신한다.

    제2단계 : 긍정적인 경기전망에 약간 회의가 발생하고 거시지표 중에서 가장 앞에 서 있는 소비자지출 등 지표가 완만하게 둔화하는 기미를 보인다. 당연히 소매판매도 둔화된다. 문제는 이때도 자본지출은 늘고, 실업률은 저점에 이르는 등 좋은 고용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비록 기업실적의 성장세는 낮아지더라도 여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이런 둔화 기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때 주가는 약간의 조정을 보인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표4’

    제3단계 : 경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금리와 물가가 상승하며, GDP 성장세가 둔화된 것이 지표로 확인된다.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는 경착륙, 연착륙 논의가 시작되지만 여전히 고용지표는 안정적이고 기업의 예정된 투자나 자본지출은 집행되며 M&A 투자 등은 이미 계획한 대로 진행된다. 다만 주가는 고점대비 15-20% 내외의 하락세를 보이며 조정이 깊어지는 데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올 하반기 들어 소비시장이 얼어붙으며 고객이 줄어든 백화점.

    제4단계 : 본격적인 침체가 시작되며,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자본지출이 감소하며 M&A를 포기하거나 신규사업 진출을 접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 시장을 놀라게 하는 것은 실업률이 증가하는 고용지표의 하락이다.’

    태풍 전야

    이쯤 되면 시장은 경기하락이 올 것인지, 아닌지가 아닌 얼마나 진행될 것인지로 논점이 바뀌고, 전년 동기대비가 아닌 전 분기 대비 GDP 감소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는 경기침체의 시점을 찾아 얼마나 진행될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한 행동이다. 주식시장에는 비관이 휩쓸고 다시 10~20%의 추가하락이 나타나며 암울한 전망이 쏟아진다. 속속 나오는 거시지표들의 부정적 소식에 투자자는 공포에 질리며 주가는 바닥을 이룬다. 하지만 주가는 이 지점 어디쯤에서 서서히 반전을 모색한다.

    ‘경기침체’ 시대의 투자론
    朴慶哲

    1964년 대구 출생

    영남대 의대 졸업, 외과전문의

    現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머니투데이 전문위원, 한국소아암재단 고문, 일촌공동체 상임이사, mbn ‘생방송 경제 나침반 180도’ 진행자

    저서 :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필자가 이렇듯 거시지표와 경기순환 단계를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우리가 ‘경기침체 신호’를 ‘경기둔화 신호’로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너무 많이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경기침체가 지표상으로 확인되는 시점은 이미 주식시장에 쓰나미가 지나가고 강진이 도시를 휩쓸며 태풍이 들판을 황폐화한 후다. 침체가 확인된 후 이어지는 피해들은 쓰나미 이후의 전염병, 지진 이후의 여진과 같은 것인데, 우리는 그때서야 ‘아 이제 침체가 왔다’라고 장탄식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업이나 개인 투자자나 마찬가지로 저지르는 오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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