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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여간첩은 고문 조작…베어드 대령의 對남로당 정보원?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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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1930년대말 세브란스병원 근무 당시 자신의 상관인 치과과장 부소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

1932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성공회 기숙사에서 기거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시인 모윤숙과 같은 방을 썼다.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병원 치과과장 비서 겸 통역으로 일했다. 지인들은 그를 사교적이고 활동적이었으며 폭스트롯(사교춤의 일종)을 잘 추고, 패션 감각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모윤숙은 에세이 ‘회상의 창가에 서서’에서 김수임을 “마태복음을 줄줄 외는 기독교 신자” “아주 명랑하고 어떤 장소에서든 웃음을 한 바가지씩 들고 나오는 여자”라고 표현했다.

김수임은 이 무렵에 이강국을 만났다. 이강국은 당대 최고의 수재로 유명했으며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다. 전숙희씨는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에서 1929년 이강국이 원산노동자총파업과 관련해 구속됐을 때 모윤숙이 김수임을 데리고 면회를 가면서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됐다고 기록했지만, 사실이 아닌 듯하다. 당시 이강국이 구속됐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이강국은 1938년에 구속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김수임과 이강국은 각각 자신의 재판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40년대 초였다고 진술했다. 특히 김수임이 “1942년 동무의 집에서 윷을 놀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첫인상이 좋아 교제를 시작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은 사회주의운동을 함께 하며 동지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해방 정국에서 이강국은 여운형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회단체와 정당들이 연합 결성한 민족주의민족전선(약칭 민전) 사무국장에 오르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혀간다. 하지만 1946년 8월 동아일보에 미군정을 비판하는 칼럼을 발표하자 미군정에서 그에 대한 체포령을 내린다. 이에 김수임의 도움으로 북한으로 탈출한다.

반면, 김수임은 선교사의 추천으로 반도호텔에 취직한다. 당시 반도호텔은 미군정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미군 헌병대장 베어드 대령의 통역 겸 수행비서로 일했다.



베어드의 배신

‘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김수임 사건을 다룬 기사. 사진 속 여인은 김수임이 아니다. 김수임은 재판 전에 들것에 실려 들어올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

김수임이 어떻게 베어드와 인연을 맺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전숙희씨는 “김수임이 피했지만 베어드가 워낙 김수임을 좋아해 계속 쫓아다녔다. 결국 자기도 외로우니까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수임은 이강국을 월북시킬 때(1946년 9월) 이미 베어드가 마련해준 옥인동 집에 살았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났던 셈이다.

베어드 파일에 의하면 베어드는 김수임을 위해 집(옥인동 19번지)을 마련하고 동거했다. 김수임은 1949년 11월 베어드의 아이를 낳았다. 김수임의 친구였던 낸시 킴은 “그녀는 베어드 대령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는 당시 김수임의 유일한 남자친구였어요. 그는 그 집에서 여러 밤을 보냈습니다. 아이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김수임은 임신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서인지 출산을 전후해 6개월 동안 청량리 위생병원에 장기입원하기도 했다.

김수임이 한국 수사당국에 검거된 것은 1950년 4월21일이었다. 검거과정도 불분명하다. 김수임과 모윤숙은 생일이 비슷해 기숙사 시절부터 한날에 생일파티를 함께 하곤 했다. 그가 붙잡힌 날은 모윤숙의 생일(음력 3월5일)이었다.

검거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는 모윤숙의 에세이와 전숙희의 실화소설, 오제도 검사의 수기가 있다. 그런데 붙잡힌 상황 설명이 저마다 다르다. 모윤숙은 김수임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오겠다고 해 자기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고 기록했다. 반면 전숙희는 모윤숙이 먼저 김수임에게 자신의 집으로 와서 밥을 먹자고 전화를 해서 김수임이 집을 나섰다가 경찰에 붙잡혔다고 적고 있다.

당시 김수임이 살던 옥인동 19번지는 미군 관할 구역이라 한국 경찰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김수임을 붙잡으려면 그를 집 밖으로 끌어내야 했다. 그래서 모윤숙이 김수임을 밖으로 불러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명화 감독은 “베어드가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어드는 처녀였던 김수임에게 접근하면서 ‘본국에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사이가 안 좋아 이혼수속 중이다. 내가 한국근무 끝나면 결혼해 미국에 가서 살자’고 했다. 김수임은 그렇게 믿었을 것이고, 그래서 낙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윤숙의 증언에 따르면 베어드는 김원일의 백일잔치에도 참석해서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1949년에 베어드의 부인과 아들이 한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었다. 김수임을 속인 것이다.

또한 김수임이 한국 경찰에 잡혔을 때, 베어드는 그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김수임이 간첩이 아니라면 누구보다도 그걸 증언해줄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김수임의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서둘러 한국을 떠나 미국의 가족에게 가버렸다. 갓난아이까지 팽개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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