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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⑤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흑인 여성’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원동력은 실력과 원칙!

  •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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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분명히 합시다. 당신은 시간당 6달러를 벌기 위해 점원 일을 하고 있고 난 당신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카운터 반대편에서 보석을 보여 달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차별은 사소한 축에 속한다. 당시 버밍햄의 분위기는 극렬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들이 테러를 가할 정도로 흉흉했다. 콘디가 아홉 살인 1963년 집 근처 교회가 흑인신도들이 있다는 이유로 백인 과격파들에 의해 폭파되었고 콘디 친구 두 명도 목숨을 잃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조사를 거부해 콘디 아버지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이웃들과 직접 야간 순찰을 돌기도 했다.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콘디가 나중에 총기 통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다행히 상황은 점점 좋아졌다. 열 살 때인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미국 내 모든 공공장소에서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법이 발표된 날, 콘디 가족은 일부러 백인 전용 식당을 찾아 역사적인 날이라며 자축하는 의식을 가졌다. 일종의 분풀이였던 셈이다. 콘디는 당시 식당을 찾은 가족의 모습에 놀라 음식을 넘기지 못했던 백인들 얼굴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쌓다

콘디가 덴버대학에 들어갈 당시 미국에는 윌리엄 쇼클리의 열성학(劣性學)이 번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IQ가 낮은 흑인들 때문에 인류가 퇴보한다’는 것이었다. 흑인 출산율이 백인보다 높아 ‘가까운 미래에 위험한 사태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다.



대부분 과학자는 대꾸할 가치가 없는 이론이라고 무시했지만 쇼클리가 트랜지스터의 공동발명자이자 반도체를 개발한 주역으로 노벨상까지 탄 과학자라는 사실 때문에 지지자 또한 많이 있었다.

어느 날, 콘디는 한 교수가 쇼클리의 논문을 인용하며 열변을 토하는 것을 억지로 듣고 있었다. 마침내 ‘서구 문화의 보물인 예술·문학·기술·언어학 이 모든 것이 바로 흑인보다 우수한 백인들의 지적능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대목이 나오자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강의실이 떠나갈 정도로 외쳤다.

“교수님, 저는 프랑스어를 할 수 있고 베토벤을 연주합니다. 당신들 백인보다 당신네 문화에 더 능합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육체적·심리적 한계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이와 직면한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고 하나는 인정하는 것이다.

콘디와 콘디 부모가 택한 것은 후자였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순응을 한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쌓았다. 무남독녀 외딸이 인종차별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콘디 부모의 전략은 ‘인내심을 키워주는 일’이었다.

콘디는 “부모님은 내가 비록 월 워스(옷이나 음식을 팔던 미국의 소매체인)에서 백인들과 햄버거를 함께 사 먹지는 못할지라도 나중에 커서 미국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고 가르쳤다”고 회상한다. 실제로 콘디의 부모는 “사회는 어떤 식의 장벽이든 이것을 넘어서는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딸에게도 “장벽을 개탄하는 대신 뚫고 나가는 방법에 골몰하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딸에게 한번도 “우리는 피해자”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콘디가 철이 들어 인종차별에 대해 질문할 때도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게 마련인 흑인 동류집단에 참여하는 것도 신중히 했다. 연좌농성이나 시가행진을 통해 집단의 동질성이 주는 힘과 위로를 거부하는 대신 묵묵히 딸의 실력을 길러줬다.

‘힘’을 바탕으로 한 콘디의 현실주의적 외교관도 사실은 어릴 적부터 받은 이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교육방식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콘디의 집안은 물질적으로 그렇게 풍요롭지는 않았다 해도 부모가 모두 교육자인 중산층이었다. 조부모와 부모는 대학까지 마쳤고 아버지는 목사이자 교수였으며 어머니도 고교 음악교사였다. 모두 험악한 인종차별이라는 고난의 시대를 묵묵히 타파하며 살아온 진정한 투사들이었다.

콘디는 음악, 발레, 외국어, 스포츠 등을 배웠으며 고전도 탐독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비롯해 다양한 악기 연주법도 배웠는데 특히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다. 글을 깨치기도 전에 악보를 먼저 읽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어인 콘돌체자(condolcezza·부드럽게 연주하라는 뜻)에서 딸 이름을 빌려온 모친은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영특한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고교 교사직까지 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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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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