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법적으론 하자 없다, 그러나 법대로 해서 안보에 구멍 뚫리면…”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11-04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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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555m, 112층으로 지으려는 제2롯데월드와 서울에어쇼가 열린 공군 성남기지.

    월간조선’9월호에‘제2롯데월드 건물과 항공기 충돌 가능성은 1000조분의 1’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공항에서 연간 5만회 착륙 가정할 경우 (항공기가 112층의 제2롯데월드와 충돌할 가능성은) 200억년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한 확률’이라는 부제를 단 이 기사는 공군과 마찰을 빚고 있는 제2롯데월드를 지어도 좋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공군보다는 롯데 측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는 대만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508m의 건물(101층)을 지으면서, 인근에 있던 송산(松山)공항의 비행항로를 바꾸고 새 비행항로가 육군부대 상공을 지나 말썽이 일자 이 부대를 이전시킨 것을 예로 들며 대만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안보논리 對 경제논리

    제2롯데월드는 112층 높이 555m 로 설계돼 있는데, 공군은 1994년부터 이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해왔다. 롯데와 공군은 큰 틀에서는 모두 보수세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갈등은 전형적인 ‘보(保)-보(保) 갈등’이며, 안보논리와 경제논리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에 대해 ‘월간조선’이 내놓은 첫째 해법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제2롯데월드는 미 연방항공청이 정한 서울공항의 정밀계기착륙 절차상 부수구역에 들어가 있었다. 주 구역은 항공기가 착륙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날아가는 구역이고, 부수수역은 항공기가 주 구역을 벗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마련해놓은 여분의 구역이다.



    그런데 2002년 6월 미 연방항공청은 부수구역의 면적을 대폭 줄였다. 비행 안전기술과 장비가 발달해 부수구역의 면적을 넓게 잡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미 연방항공청의 부수구역 기준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부수구역으로부터 780m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항공기 착륙을 도와주는 각종 장비도 발전했으므로 항공기가 선회 접근해도 제2롯데월드는 항공기 이착륙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월간조선’은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재임 중이던 2006년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일명 도시계획)을 결정하며 제2롯데월드의 높이를 555m 112층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월간조선’이 내놓은 둘째 해법은 ‘정치논리’로 풀자는 것이었다. 둘째 해법을 설명하기 위해 ‘월간조선’은 대만의 101빌딩을 사례로 들었다. 101빌딩 인근에 있는 송산공항의 활주로는 동서(東西) 방향으로 놓여 있다.

    항공기는 바람을 안고(正面風) 이륙하거나 착륙한다. 바람을 받아야 위로 뜨는 힘인 ‘양력(揚力)’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착륙할 때는 ‘반드시’ 정면풍을 받아야 한다. 정면풍이 아니라 바람을 등진 상태에서 착륙을 시도하면 양력이 상실돼 갑자기 뚝 떨어질 수 있다. 지상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말해 활주로 근처에서 똑 떨어진다면, 이 항공기는 활주로가 아닌 지상과 충돌하게 된다.

    항공기는 랜딩기어를 이용해 ‘활주(滑走)’할 수 있는 곳에 내려야 안전을 보장받는다. 활주로가 아닌 곳에 내리면 랜딩기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활주로에 내리더라도 양력을 상실한 채 내리면 부러질 수도 있는 것이 랜딩기어다. 이러한 사고 가능성을 줄이려면 항공기는‘무조건’ 바람을 안고 착륙해야 한다. 따라서 활주로는 오랫동안 그 지역의 바람 방향을 분석해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쪽으로 건설한다.

    정치논리 동원된 송산공항의 101빌딩

    그러나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바뀐다. 항상 동서 방향으로만 불라는 법은 없다. 이때는 남동풍 계열인지 남서풍 계열인지를 따져서, 남동풍이면 동쪽을 향해 이착륙하고, 남서풍이면 서쪽을 향해 이착륙한다.

    송산공항의 활주로가 동서로 놓였다는 것은 이 지역의 바람이 주로 동에서 서로, 아니면 서에서 동으로 분다는 뜻이다. 101빌딩은 동서로 건설된 송산공항 활주로에서 남쪽으로 4km쯤 떨어진 곳에 건설됐으니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동풍만 분다면 101빌딩은 송산공항에 착륙하는 항공기 안전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 동풍이 불면 항공기는 이 공항 활주로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착륙할 것이기 때문이다. 활주로 서쪽으로 착륙하는 항공기는 송산공항 북쪽에서 방향을 틀므로, 활주로 남쪽에 있는 101빌딩은 항공기 안전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 방향이 서풍(西風) 계열로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풍이 불면 항공기들은 동쪽에서부터 착륙에 들어가야 하므로, 이 공항 남쪽에서 선회하면서 착륙준비를 한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101 빌딩이 있으니 선회하는 비행기는 이 빌딩과 충돌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101 빌딩 건설은 대만에서도 큰 문제가 됐었다. 대만은 이 문제를 항공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대응으로 풀었다.

    대만의 민용(民用)항공국은 항공기가 송산공항 남쪽을 선회하게 될 때는 101빌딩을 피할 수 있도록 더 크게 선회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새로 만든 이 비행항로가 송산공항 인근에 있는 육군부대의 상공을 지나게 됐다. 당연히 대만 육군이 “우리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은 보안상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은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대만 총통이었다. 당시 대만은 경제가 좋지 않았으므로 천 총통은 101빌딩 건설이 유도할 경기부양을 기대하며 ‘육군부대를 옮기면 된다’고 정리했다. 이로써 101빌딩이 건설될 수 있었다. 이 빌딩은 지금 타이베이(臺北)시의 명물이 돼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서풍이 불 때 송산공항 남쪽을 선회해야 하는 항공기의 비행항로를 보다 크게 돌리고, 그로 인해 육군부대의 보안 문제가 일어나자 총통이 개입해 부대를 이전시킨 것은 정치적 해법이 동원된 전형적인 사례다.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월간조선’이 대만 사례를 적시한 것은, 서울공항 문제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암시로 해석될 수 있다.

    국방장관 면박 준 이명박 대통령

    과학과 정치 논리로 문제를 풀자는 롯데 측과 월간조선의 논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지난 4월28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 석상에서 공군 측 입장을 대변하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을 향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보세요.” “그런 식이니까 14년 동안 결정이 안 난 것 아닙니까.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세요”라며 면박에 가까운 지적을 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면서 군 통수권자다. 이런 대통령이 면박성 지시를 했으니 공군과 국방부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날짜를 정해놓고 해결하라’고 한 말을, 올 연말까지 대통령이 원하는 해답을 찾아내라고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실무자들이 생각하는 ‘옳은 답’이 아니라 ‘대통령이 원하는 답’을 찾는 것이 우선이 될 가능성이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2003년 서울 송파구에 내걸린 서울공항 이전을 요구하는 현수막과 성남시 일대에 뿌려진 같은 내용의 전단.

    실무자들이 생각하는 ‘옳은 답’과 대통령이 ‘원하는 답’이 다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경제를 살리려면 이 대통령은 기업가의 기(氣)를 살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지나치면 이 대통령은 ‘재벌의 대통령’노릇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서울시장은 서울 경제를 살리는 데 진력해야 하므로 안보와 사고(事故)는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마지막 사람’이기에 한쪽 논리로만 사안을 보아서는 안 된다.

    대만의 101빌딩과 한국의 제2롯데월드 사례를 좀 더 상세히 비교해보기로 하자.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시 인근에는 도원(桃園)과 송산이라는 두 개의 민간 공항이 있다. 과거 도원공항은 장제스 총통의 호를 따서 중정(中正)공항으로 불렸으나 천수이볜 총통 시절 ‘도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원공항은 세계와 대만을 잇는 국제공항이다.

    송산공항은 중정공항이 개장한 1979년 이전까지 대만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자 국내공항의 기능을 했으나 도원공항이 개장하면서 국내선 전용공항이 됐다. 한마디로 도원공항은 한국의 인천공항, 송산공항은 김포공항에 견줄 수 있다.

    101빌딩은 민간공항인 송산공항 옆에 있지만, 제2롯데월드는 군 공항인 서울공항 옆에 있다. 서울공항은 대통령 전용기와 외국 정상이 타고 온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사용하는 위장 명칭이고, 실제 이름은 ‘공군 성남기지’다.

    성남기지는 휴전선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공군기지이지만 전투기는 배치돼 있지 않다. 성남기지에는 ‘공군 1호기(Air Force One)’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와 백두·금강 정찰기, CN-235와 C-130 등의 수송기, 그리고 탐색구조대대를 관리하는 공군 제15혼성비행단이 포진해 있다. 따라서 이 기지가 공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투기가 배치돼 있는 기지보다 크다.

    성남시는 과거엔 경기도 광주군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1960년대 후반 서울시가 무허가건물을 철거하면서 그곳 주민을 위한 이주단지를 이곳에 지으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그리하여 1973년 광주군에서 독립해 성남시가 됐고, 그 2년 후 공군은 서울 여의도에 있던 기지를 성남으로 옮겼다.

    산으로 올라간 성남시

    공군기지는 대략 200만평의 평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공군기지 주변에 대해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하거나 선회 비행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군용(軍用)항공기지법(이하 기지법)’에 따라 엄격한 고도 제한이 적용된다. 기지법에 따라 고도 제한을 받는 곳도 비산비야(非山非野)로 이어지는 평지가 대부분이다.

    1975년은 군의 힘이 막강하던 시절이라 공군은 성남시에서 가장 너른 평지를 징발해 여의도 기지를 이전시켰다. 그로 인해 성남시는 남한산성이 있는 쪽으로 시세(市勢)를 확장하게 됐다. 성남시는 ‘산으로 올라간 도시’가 돼버린 것이다. 이것이 성남시의 운명인데, 민주화가 이뤄지자 이런 성남시 운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성남시의회가 중심이 돼 성남기지 이전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수도권에 3~4개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보고했는데, 상당수 언론이 신도시 후보지 중 하나로 성남기지를 거론한 것이 이 운동이 일어난 계기가 됐다. 성남기지가 나가면 성남시는 신도시를 지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성남시의회는 즉각 성남기지 이전 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단독으로 하면 힘이 약하므로 성남기지를 이전했을 때 발생할 이익을 함께 누릴 것으로 보이는 서울의 송파구의회, 강남구의회와 손을 잡았다. 성남기지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분당과 같은 신도시가 건설되면 성남시는 물론이고 송파구와 강남구의 경기도 좋아진다.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에 성남시의회와 서울의 송파·강남구의회는 성남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전단을 뿌렸다. 송파구의회는 의원 전원이 성남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청와대 등에 제출했다. 물론 공군은 성남기지 이전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러한 때 3개 기초의회는 잠실에 112층짜리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롯데그룹을 원군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잠실에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성남기지의 이전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는 3개 기초단체 의회를 명시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당시 이미 미 연방항공청은 정밀계기착륙 절차상의 주구역과 부수구역을 대폭 줄인 시점이었으므로 제2롯데월드는 서울공항의 부수구역 바로 바깥에 건설될 수 있었다. 롯데는 이에 주목해 성남기지는 그대로 두고 제2롯데월드만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성남기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들자 노무현 정부는 성남기지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끈 서울시는 롯데 측 주장을 수용해 석촌호수 주변에 555m의 112층 건물을 짓는 도시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지방자치법이 정한 ‘행정협의조정’에 걸려 아직도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은 152조부터 158조까지를 묶어 ‘행정협의회’ 절로 규정해놓았는데, 여기에는 행정기관 사이의 행정조정 임무가 규정돼 있다. 그리고 149조에는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둬 행정기관 사이에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이를 조정하는 일을 하도록 해놓았다.

    법적으로는 롯데 주장이 옳아

    제2롯데월드의 건축 허가는 서울시의 몫이다. 그러나 제2롯데월드 인근에 성남기지가 있으니 서울시는 공군을 대신한 국방부와 협의한 후 허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공군의 의견을 수용해 지금까지 행정조정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가 행정조정에 응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제2롯데월드 건설은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이 대통령은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행정조정을 해주라는 뜻으로 면박성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공군은 상당한 위기감을 갖게 됐다. 공군은 제2롯데월드 건설이 필연적으로 성남기지 폐쇄로 이어지고, 이어 지역의 다른 기지도 폐쇄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공군은 안보를 책임진 기관이다. 법은 평시에는 통하지만 유사시에는 통하지 않는다. 안보는 법으로 따질 수 없고 과학으로 재단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법에 근거해 제2롯데월드를 짓자고 하는 롯데의 주장에 공군은 곤혹스러워한다. 공군과 롯데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기지법이 정한 비행안전구역 문제부터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기지법은 비행안전을 위해 군용기지 부근에 6개 구역을 설정한다고 규정해놓았다. 기지법이 정한 1구역은 활주로 양끝에서 61m까지와 활주로 정중앙선에서 좌우 300m까지의 구역이다(그림 1 참조). 따라서 1구역은 폭이 600m, 길이는 활주로 길이+122m의 직사각형 공간이 되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들어설 수 없다.

    항공기는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활주로 전방에 내리거나 활주로 옆 잔디밭에 내릴 수도 있다. 활주로를 중간 이상 지나서 내리는 바람에 활주로 끝을 벗어나는 오버런(over run)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항공기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활주로는 물론이고 그 주변의 일정 지역엔 어떠한 시설도 짓지 말아야 한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제2구역은 ‘그림 2’에서처럼 1구역의 양쪽 끝에서부터 앞쪽으로 7620m를 나간 사다리꼴 구역이다. 1구역 끝의 길이가 600m이니, 이 사다리꼴은 윗변이 600m이고, 밑변은 2438.5m, 수직 높이는 7620m인 공간이 된다.

    제2구역은 활주로에 내리거나 이륙한 항공기가 직선으로 날아가는 공간이다. 보통 영어로 클라이밍 코리도(climbing corridor·‘이착륙 회랑’이라는 뜻)라고 하고, 법적으로는 ‘접근경사표면’이라고 한다. 제2구역은 항공기가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구역이므로 비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높이의 건물은 지을 수 있다. 롯데가 지으려는 제2롯데월드는 제2구역 바로 바깥에 위치한다. 600m길이의 윗변으로부터 따지면 7260m쯤에 있다‘그림 2 참조’.

    ‘그림 3’에 표시된 3구역은 2구역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윗변이 2438.5m, 밑변이 4877m, 높이가 7620m인 사다리꼴 공간이다. 3구역은 착륙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적지로 날아온 항공기는 활주로의 정중앙으로 내려야 하므로, 공항 근처로 날아오면 기수를 활주로 방향으로 돌리는 기동에 들어간다. 3구역은 여러 방향에서 날아온 항공기가 기수를 활주로 방향으로 맞춰 하강에 들어가는 공간이므로 2구역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고도제한이 적용된다.

    그런데 3구역, 2구역, 1구역을 거쳐 착륙하는 항공기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착륙하지 못하고 다시 상승해야 할 때가 있다. 지상에 강력한 돌풍이 일어 착륙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관제사는 랜딩기어를 활주로에 댄 항공기에 대해서도 재이륙을 지시한다. 이 지시를 받은 항공기는 바로 ‘이탈’을 시도한다. 활주로나 공항 좌우로 빠져나가 선회비행을 하며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3구역 부근으로 날아가 선회하면서 관제탑의 착륙 지시를 기다린다. 활주로를 향해 내려오던 항공기가 황급히 이탈할 경우 빠져나가는 공간이 ‘그림 4’에서 ④⑤⑥으로 표시한 4구역과 5구역, 6구역이다. 4구역은 많이 내려온 항공기가 이탈하는 곳이라 고도제한이 엄격하고, 5구역과 6구역은 항공기가 고도가 높은 상태에서 이탈하는 곳이므로 고도제한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롯데, 헌법 소원 심판까지 청구

    대만의 101빌딩은 바로 송산공항의 6구역에 지어질 계획이었는데, 101빌딩은 6구역이 정한 고도제한 높이보다 높았다. 그래서 대만의 민용항공총국은 101빌딩이 들어서는 곳의 고도제한을 완화하고, 이탈한 항공기가 선회하는 항로를 101빌딩의 바깥으로 돌려버렸다. 101빌딩을 위해 특혜를 준 것이다. 그리고 새로 허가한 6구역 항로가 육군부대 위를 지나자 천 총통이 나서서 부대를 이전시켜버렸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그러나 제2롯데월드의 사정은 101빌딩과 다르다. 제2롯데월드는 2구역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6구역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기지법에 따라 고도제한을 하는 여섯 개 비행안전구역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제2롯데월드가 접하는 2구역은 많은 항공기가 이용하는 성남기지의 주활주로가 아니라 부활주로에 의해 획정된 2구역이다(그림 5참조). 부활주로는 비상시를 대비한 것이므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서울 강북의 중앙부에는 청와대 상공으로 항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P-73이라는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돼 있다. 부활주로의 3구역은 P-73 비행금지구역과 인접해 있어, 청와대 안전을 위해 공군은 가능한 한 부활주로의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이렇듯 제2롯데월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부활주로의 2구역과 6구역 밖에 있으니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은 기지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롯데의 주장은 법적으로 옳다.

    대만은 기지법에 규정된 6구역을 조정하고, 육군부대를 이전하면서까지 초고층 빌딩을 짓게 해주었다. 그런데 한국은 기지법에 저촉되지 않는 제2롯데월드의 건축을, 행정협의조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하지 않으니 롯데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롯데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정부가 재산권 행사(제2롯데월드 신축)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놓고 있다.

    답답한 롯데는 공군을 설득하기 위해 ‘윈-윈’을 하자는 제의까지 해놓았다. 즉 “성남기지가 보유한 비행안전장치만으로도 항공기가 제2롯데월드와 충돌할 가능성은 1000조분의 1 이하이지만, 비행안전을 더욱 높이기 위해 최첨단 장비를 공군에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그림 5’ 성남기지에는 역 V자 형태로 주활주로와 부활주로가 놓여 있다(그림 아래부분). 제2롯데월드는 부활주로에 의해 형성된 2구역과 6구역 바로 바깥에 위치한다.

    “MB는 군 최고사령관 자격 없다”

    행정조정을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윈-윈 방안까지 제시한 롯데의 공세에 대해 공군은 법률로 대응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법이 정한 행정협의조정을 빌미로 버티는 것은 공군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어서다.

    그러나 공군은 공개적으로는 자기 논리를 펼치기가 어렵다. 많은 부분이 비밀을 요하는 군사작전과 연결돼 있는 데다 섣불리 반대 논리를 펼쳤다가 군 통수권자로부터 “항명하는 것이냐”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석상에서는 성남기지 문제에 대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이 대통령은 국군 총사령관의 자격이 없다”는 등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없는 공군의 주장을 모아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공군은 “대만의 송산공항은 민항기가 뜨고 내리는 민간공항이지만, 성남기지는 공군기가 뜨고 내리는 작전기지라는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민간공항은 안전한 이착륙을 중시하기에 관제사와 조종사는 무리한 항공기 운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군기지는 유사시에 대비해야 하기에 필요할 땐 무리한 운항을 할 수밖에 없다.

    민간공항은 사고를 피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항공기가 몰려들어도 1분30초에서 2분 정도‘시차’를 두고 항공기를 이륙시키고 착륙시킨다. 그러나 공군기지는 다르다. 전쟁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전쟁은 보통 기습으로 시작되는데, 이때 적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은 아군의 공군기지다.

    적군의 공군기지 폭격이 시작되거나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공군은 항공기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램블(scramble· 긴급발진)’을 걸어 기지 안의 모든 항공기를 이륙시킨다. 스크램블이 걸리면 군용기는 시차를 두고 한 대씩 이륙하는 경우가 없다. 서너 대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한꺼번에 이륙한다.

    “공군기는 거칠게 운영한다”

    스크램블이 걸려 한덩어리로 이륙한 군용기는 이륙 직후 안전을 위해 서로 간격을 넓힌다. 주구역과 부수구역으로만 날아가지 않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때 부수구역 바깥에 초고층빌딩이 있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개전 초기는 워낙 다급한 때인지라 공군은 주활주로는 물론이고 부활주로도 이용한다. 이때는 P-73 비행금지구역도 무시한다.

    성남기지에 앞서 다른 기지가 먼저 폭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기지에서 무더기로 이륙한 전투기들이 파괴되지 않은 성남기지를 찾아 날아온다. 또 작전에 투입됐던 전투기도 이곳으로 돌아올 수있다. 개전 초기 공습작전에 투입됐다가 돌아오는 전투기에는 ‘생환’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전투기는 추적해오는 적기와 지상의 적 방공망을 피해 지그재그 비행을 하며 돌아오므로 많은 연료를 소모한다. 연료가 부족하면 본래 기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성남기지 착륙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주구역과 부수구역을 따지지 않고 착륙을 시도할 때 갑자기 초고층 건물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들은 평시에도 다른 기지나 공항에 내리는 훈련을 반복한다. 그러나 다른 기지는 자기 기지만큼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착륙에만 신경을 쏟는 상황이라면 성남기지 주변에 있는 초고층 빌딩의 존재를 놓칠 수도 있다. 민항기는 법령이 정한 절차에 따라 얌전하게 조종하지만 군용기는 기본적으로 거칠게 조종한다. 따라서 송산공항 사례를 성남기지에 적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공군의 시각이다.

    “요즘 항공기에는 첨단 장비가 구비돼 있는데 왜 초고층 빌딩을 피하지 못하느냐”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 지적은 일견 날카로운 것 같지만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육안으로 초고층 빌딩이 보이는데도 날아가서 들이박는 것은 테러리스트뿐이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한 조종사들은 초고층 빌딩이 보이면 무조건 회피 기동을 한다.

    문제는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계기(計器)비행을 할 때 일어난다. 계기비행은 육안으로 전방을 보는 데 한계가 있을 때 하는 비행을 말한다. 밤이거나 연무(煙霧)나 안개가 낀 상황, 혹은 구름 속을 날아야 할 때인데, 항공기 조종은 대부분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육안 비행보다는 계기비행이 훨씬 많은 것이다.

    계기는 정확하지만 오차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실수를 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계기가 주는 정보를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계기가 제공하는 정보를 잘못 받아들여 일어난 사고는 상당히 많다. 2006년 6월7일, 도입한 지 얼마 안 돼 가장 좋은 성능을 자랑하는 F-15K 전투기 한 대가 동해안에서 훈련하다가 바다로 떨어졌다. 엔진도, 계기도 이상이 없었고 조종사도 전혀 위기 사인을 보내지 않았는데 벌어진 사고였다.

    비행착각이 일으킨 사고

    이에 대해 상당수의 조종사는 사고 조종사가 순간적으로 ‘버티고(vertigo·비행착각)’에 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분석한다. 깜깜한 밤 해상으로 나와 고속으로 전투기를 몰다 보면, 조종사는 바다에 떠 있는 선박에서 나오는 불빛을 별빛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이러한 착각은 낮은 고도에서 전투기를 뒤집어 비행하는 ‘배면(背面)비행’ 상태에서 잘 일어난다. 이때 조종사가 상승을 하겠다며 기수를 올리면 전투기는 순식간에 바닷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이때 계기는 경고등을 번쩍이거나 소리로 위험을 알려준다. 그러나 워낙 짧은 시간이기에 조종사는 신호를 놓치고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킨다.

    이러한 비행착각은 급기동이나 위험한 기동을 하지 않는 민항기 조종사에게서도 발생한다. 민항기는 비행착각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두 명이 조종하는 데도 비행착각에 걸리는 것이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비행착각에 빠져 사고를 내는 경우는 악천후에 착륙을 시도할 때 자주 발생한다.

    날씨가 나쁘면 착륙을 시도하는 기장과 부기장은 예민해진다. 이들은 계기 정보에 주의하지만, 안전한 착륙을 위해 두 눈으로 활주로를 보고 내리려고 노력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상 가까이 내려왔는데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거나 갑자기 측풍이 불면, 기장과 부기장은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상승을 시도한다. 그리고 다시 착륙을 시도하는데 이것도 실패하면 기장과 부기장은 극도로 긴장한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활주로를 찾는 데 집중해 계기 정보를 똑같이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기장과 부기장이 모두 비행착각에 빠져 사고를 일으킨 사례로는 2002년 4월15일 부산 김해공항 전방의 신어산을 들이박은 에어차이나 사고가 꼽힌다.

    1982년 6월1일 육군 특전사 요원을 태운 공군의 C-123 수송기도 성남기지를 이륙한 직후 인근에 있는 청계산에 충돌해 전원 사망했는데, 이 사고도 나쁜 날씨 때문에 비행착각에 빠진 조종사가 계기 정보를 소홀히 보다가 일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항공기는 비행 중 엔진이 꺼지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이 2006년 1월27일과 2월13일 연이어 추락했는데, 이유는 결함으로 인한 엔진정지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F-16은 엔진이 하나인 단발기이므로 엔진이 정지하면 바로 추락한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F-15K처럼 엔진이 두 개인 쌍발기를 선호한다.

    성남기지에 이착륙하는 대통령 전용기와 정찰기, 수송기 등은 전부 두 개 이상의 엔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복수 엔진을 갖는 항공기도 갑작스러운 엔진 정지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대형기는 대개 엔진이 양쪽 날개에 달려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엔진이 멈추면 이 항공기는 갑작스러운 선회에 들어간다.

    이때 노련한 조종사라면 신속하게 수직 꼬리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급격한 선회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항공기를 기지로 끌고 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를 초고층 빌딩 옆에서 당한다면 노련한 조종사도 속수무책이 된다.

    대구기지 없이 어떻게 독도 지키나

    공군은 국민과 롯데를 향해 이런 식의 설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하면 ‘공군은 위험한 행동을 하고, 성남기지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대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공군기지를 위험한 곳으로 인식한다면 국민은 더욱 소리를 높여 성남기지 폐쇄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군이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필연적으로 성남기지 폐쇄나 이전(移轉) 주장이 나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이 건물 입주자들은 심심찮게 건물 옆으로 지나가는 군용 항공기를 보게 될 것이다. 제2롯데월드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건물 옆으로 날아가는 항공기를 예사로 보아 넘길 것인가.

    사회적인 힘을 가진 이들은 자기 안전을 위해 성남기지 이전을 요구할 것이다. 입주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면, 그때도 롯데는 “성남기지를 이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인가. 공군은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이 대통령보다 더한 압력원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의 압력으로 성남기지가 폐쇄되거나 이전하면, 다른 기지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일어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공군은 우려한다. 공군은 이럴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지금도 공군기지 이전운동이 강하게 일고 있는 대구기지와 광주기지, 수원기지, 청주기지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기지이전 운동이 가장 거세게 벌어진 곳은 대구다.

    대구에서는 김범일 대구시장과 유승민 의원 등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구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의원의 측근으로 박 의원도 유 의원이 주도한 대구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차기 대권 후보인 박 의원이 서명했다는 것 때문에 공군은 대구기지 이전운동을 예삿일로 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군의 입장은 ‘대구기지도 성남기지처럼 대체 기지가 없기 때문에 절대 옮길 수 없다’다. 공군은 대구기지를 옮길 수 없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이유는 대구기지가 남방 항공작전을 지휘할 남부공군전투사령부라는 점이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공군 작전을 위해서는 전국 각지의 레이더가 수집한 정보를 전투기에 알려주는 중앙방공통제소(MCRC)가 있어야 한다. 공군은 오랫동안 미 공군이 오산기지에 건설한 MCRC를 미 공군과 공동으로 운영해오다 2003년 대구기지에 제2 MCRC를 완공했다. 덕분에 공군은 남방에서 오는 위협을 방어할 남부전투사령부를 만들 수 있었다.

    둘째, 대구기지에는 F-15K가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독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항공작전을 위해 출격할 수 있는 전투기는 비행거리가 긴 F-15K 뿐이다. 다른 전투기는 탑재하는 연료량이 적어 독도에서 오래 작전할 수가 없다. 공군이 F-15K를 대구에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F-15K는 위협적인 전투기이기에 유사시 적은 이 전투기가 있는 기지부터 폭격할 것이므로 F-15K를 최후방인 대구기지에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배치가 독도 방어가 중요해진 지금 큰 의미를 갖게 됐다. 대구기지에는 독도 상황을 훤히 볼 수 있는 MCRC와 출격할 수 있는 F-15K가 있으니 독도 작전의 중추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대구기지가 폐쇄된다면 이는 독도를 일본에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공군의 주장이다.

    F-15K를 다른 기지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작전을 마친 전투기는 이글루에 넣어 보호하는데 F-15K와 같은 대형 전투기가 들어갈 대형 이글루는 대구기지에만 건설돼 있다. F-15K를 다른 기지로 옮기려면 기존 이글루를 허물고 대형 이글루를 지어야 한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의 잠실 제2롯데월드 심층진단
    셋째, 대구기지에는 공군군수사령부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군수사령부는 F-15K 작전을 지원할 물품을 바로 보급할 수 있다.

    독도는 행정상 경상북도에 속하기에 대구에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공군은 “대구기지는 독도 방어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MCRC와 F-15K, 그리고 군수사령부까지 갖고 있는데 왜 독도를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은 우리를 나가라고 하느냐”고 토로한다.

    수치를 근거로 한 과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일 뿐이다. 1000조분의 1이라는 매우 낮은 확률도 막상 사고가 일어나면 의미 없는 수치가 되고 만다. 2001년 9월11일 뉴욕에서 민항기를 탈취한 테러범들이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테러범들이 쌍둥이 빌딩 가운데 하나를 들이받았을 때, 미국 방송은 불타는 쌍둥이빌딩을 화면에 비추면서 보도했다. 그런데 그 장면 뒤로 또 다른 테러범들이 탈취한 여객기가 쌍둥이 빌딩의 다른 하나를 들이받았다. TV가 현장 중계를 하고 있는데 똑같은 테러가 반복된 것이다. 1000조분의 1이 아니라 1000경분의 1 확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성남기지를 이용하는 대통령 전용기와 정찰기는 테러의 첫째 표적이 된다. 따라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테러범들은 성남기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빌딩에서 성남기지를 이용하는 요인을 테러하거나 이들이 탑승하는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다. 테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초고층 빌딩 자체를 테러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성남기지가 폐쇄되면 대통령 전용기와 외국 정상이 탄 항공기는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으로 이착륙을 해야 한다. 국내외 정상이 공항을 이용하면 경호처는 수시간 전부터 공항 이용을 중지시킨다. 항공기 승객 중에는 분초를 다투면서 사는 비즈니스맨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공항에 나갔는데 경호문제로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됐다고 하면 이들은 분통을 터뜨리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람 중에는 제2롯데월드 입주자도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28일 청와대 모임에서 “외국 귀빈들은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는데, 이는 국내외 정상이 일반 공항을 이용할 때 국민이 겪을 불편을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입장을 바꿔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 옆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다고 가정해보자.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곳이지만,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 인접한 곳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고 하면 우리 언론과 식자층은 “공항 부근의 초고층 건물은 테러를 부르는 자살 행위”라는 지적을 훨씬 많이 내놓을 것이다.

    대통령이 김포 이용하면 모두가 불편

    제2롯데월드 건설이 기정사실처럼 되고 성남기지 이전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자 요즘에는 이 기지에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제2롯데월드가 멀찍이 떨어지도록 성남기지의 활주로 방향을 바꾸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 지역의 바람을 오랫동안 분석해 활주로 방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한반도대운하 건설이 불투명해진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롯데 처지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은 의외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롯데 측 설명에 따르면 20~40층짜리 오피스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가는 평당 단가는 400만~600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은 뼈대를 강하게 해야 하기에 평당 1200여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건축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임대료를 높이면 입주자가 적어진다.

    롯데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2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한다. 이유는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이 “단 1주일이라도 좋으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 회장의 비원(悲願)과 기왕에 사놓은 땅이 있다는 점 때문에 경제성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랜드마크를 지으려고 한다는 것이 롯데 측의 설명이다.

    서울시에 랜드마크가 있어서 나쁠 일은 없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과 힘겨운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성남기지에 영향을 주면서까지 지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안보도 지키고 경제도 살려야 한다.

    잠실은 롯데그룹의 발상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롯데가 굳이 이곳에 랜드마크를 지어야 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롯데 측은 ‘경제성만 따진다면 평당 분양가 5000만원에 이르는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것이 가장 낫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석촌호수 주변에는 30~4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초고층빌딩은 다른 곳에 지어도 되지 않겠는가.

    2001년 9월11일 테러리스트들은 납치한 여객기를 몰고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시켰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그는 제2롯데월드를 다른 곳에 지을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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