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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병·의원 처방전 80% 이상 마약류… 간질·우울증 치료제 등 허가외 약물 무차별 처방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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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처방된 향정약품 중 각성제는 2군에, 항불안제는 3군에 속해 있다. 살 빼는 약을 달라고 했는데 왜 의사는 이런 약들을 권한 것일까. 우선 처방된 향정약품의 제품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한결같이 이상반응과 주의사항 난에 ‘때때로 구역, 구토, 식욕부진’과 같은 부작용이 설명돼 있었다. 흔히 마약중독자들이 금단증상(오한, 발열, 환각, 정신이상)에 시달리다 뼈만 앙상한 채 숨을 거두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자살을 충동질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우울증 치료제를 살 빼는 약으로 처방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마약류 처방은 합법?

현재 국내에 비만치료제로 정식 허가된 의약품은 식욕억제제인 리덕틸과 지방대사 억제제인 제니칼 두 종류뿐. 그렇다고 향정약품이나 우울증 치료제를 식욕억제제(비만치료제)로 쓰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의사들이 향정약품이나 우울증 치료제에 대해 “허가가 나 있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다. 향정약품의 고유 효능과 효과는 비만치료가 아니지만 부차적 효능에 식욕억제 효과가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각성제는 주의력결핍장애 치료제로, 항불안제는 불안과 긴장 증세 치료제 등으로 정식 허가가 나 있지만 식욕억제제로도 쓰이는 게 바로 그런 사례. 약을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구갈 구역 구토 메스꺼움 등 부작용(副作用)이 오히려 약물의 부차적 효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딱히 이들 향정약품이 비만치료제로 허가가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식욕억제제로 사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이들 약이 모두 임상시험과 독성시험을 통과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시판 허가가 난 약품의 처방권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다. 다만 다른 용도로 쓸 땐 보험급여를 신청하지 않으면 될 뿐이다. 이들이 모두 보험급여에서 제외되어 있다 보니 정부는 향정 식욕억제제가 어디서 얼마나 쓰였는지 정확한 통계를 잡을 길이 없다. 다만 식약청은 이들 향정약품의 비만치료제 사용을 한 번에 한 제품만 쓸 것과 4주 동안(대한비만학회 가이드라인)에 한정토록 권고하고, 고혈압치료제나 간질치료제, 이뇨제 등 허가외 약품과의 병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허가외 약품의 향정약품 병용 처방으로 처벌받은 병의원은 전무한 상태다.

이처럼 이미 국내에는 향정약품과 허가외 약품을 비만치료용으로 섞어 쓰는 처방 관행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버젓이 이런 처방을 내는 병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블로그와 게시판도 적지 않다.



약물로 살을 빼준다고 인터넷과 귀동냥으로 알아낸 서울시내와 수도권 비만클리닉 4 곳을 찾아가 건강검진표를 내보이면서 살 빼는 약 처방을 부탁했다. 비록 앞서의 이비인후과만큼은 아니지만 처방전엔 1개 이상의 향정약품에 허가외 약품이 하나 둘씩 섞여 있었다. 간질 치료제, 고혈압 증상 완화제, 당뇨병 약, 제산제, 해열진통제, 종합감기약, 항우울제 중 하나는 꼭 들어갔다. 심지어 의원들 중에는 정부의 향정약품 권고치(4주)를 무시하고 두 달치를 한꺼번에 처방해주는 곳도 있었다. 병용 처방 금지 규정과 처방제한 권고를 어겼지만 의사들은 매번 기자의 항의에 “당연한 일을 했는데 뭐가 잘못됐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비만치료에 향정약품과 허가외 약품의 병용 처방을 남발하는 이런 세태는 과연 기자의 경험에 한정된 것일까.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에 이에 대해 문의했지만 정확한 통계치나 조사 결과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실에서 식약청이 발행한 비만치료제 처방분석 연구보고서를 입수했다. 400쪽에 가까운 이 보고서의 정식 명칭은 ‘비만치료제 소비자행태조사 및 효율적 사용방안 연구’. 발행처는 식약청이고 주관 연구기관은 (사)소비자시민모임이었다. 연구기간은 2007년 7월부터 2008년 5월30일까지였으며 연구용역비는 5000만원. 시민단체가 주관연구기관이지만 식약청이 예산을 들이고 확인작업과 세미나를 거쳐 보고서를 발행했으므로 이는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로 인정된 셈이다. 보고서는 무슨 영문인지 ‘대외비’로 지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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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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