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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칠순에도 애인 밝히는 저 대책 없는‘주책’허나 어쩌랴, 그래서 더 귀여운 것을…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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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양 사람한테는 생머리가 안 어울려요. 생머리는 막 갈라져. 뒷머리 숱이 없어서 뒷모습도 영 안 살고. 그런데 파마는 머리만 감으면 바로 스타일이 사니 얼마나 좋아요. 난 여자도 굵게 웨이브 넣은 게 좋아 보여. 정치 할 때는 젊어 보이라고 나흘에 한 번씩 염색했는데, 요즘은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지 몰라. 흰머리가 얼마나 멋져.”

백발의 파마머리, 대구국제뮤직페스티벌 이사장이라는 요즘 직함에 잘 어울리는 외양이다.

“뭘 해서든 너는 넘어설 거야”

신성일은 데뷔작 ‘로맨스빠빠’에서 막내아들 바른이로 나와 “내게 돈과 시간과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말이 씨가 됐는지 바람은 현실이 됐다. “영화에서 그 대사를 몇 번이나 하시더니 결국 소원 이루셨네요” 하자, 강한 눈매가 순식간에 초콜릿처럼 부드러워진다.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미소다. 시간은 영화 데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난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믿질 않는데, 수창초등학교 다닐 때는 갑을병(수우미) 중 갑만 받았어요. 어머니가 그 덕에 자모회장도 하셨고. 그러니 명문인 경북중, 경북고를 수월하게 다녔지. 딱지 치고 구슬치기 같은 건 관심 없었어요.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다 가는 게 좋았지. 그때도 자존심이 엄청 세서 아무리 추워도 외할머니가 기워주신 양말을 아예 벗고 다녔어요. 창피한 것보단 추운 게 나았거든. 공부도 그랬어요, 자존심 때문이었단 말이지.”



그랬던 그가 변했다. 어머니의 가출이 신문1면에 보도된 뒤부터다. 얼마 전 계주가 도망 가 세간의 화제가 됐던 강남 부유층들의 계모임 다복회처럼 큰 ‘산통’(계)의 계주였던 어머니는 자금이 돌지 않자 홀로 야반도주했다.

경북 영천에서 전원생활 강신성일

영천에서 근사한 한옥 짓고 즐거이 산다.

“사람들이 와서 절 길에서 질질 끌고 다녔어요. 엄마 있는 데 말하라고. 난 정말 몰랐어요, 서울에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형 둘은 나가 살고 있을 때라 여동생과 저만 해결하면 됐죠. 그런데 방법이 마땅칠 않아 이모네서 얹혀살았는데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불현듯 어머니가 곗돈 대신 받아 운영하던 약국하고 책방이 생각나데요. 사람들이 이거 있는 줄은 모르니 돈 되는 것만 처분하면 먹고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비싼 책들 챙겨서는 동네에서 병원 하시는 의사 선생님한테 사주십사 부탁드렸어요. 흔쾌히 도와주시는데, 어찌나 고마운지. 그걸로 어렵게 1학기를 버틴 거라….”

등록금 걱정하다 공부에 손을 놓게 됐으면서도 서울대 상대를 가겠다는 꿈은 놓지 않았다. 당시에 뚜렷한 꿈은 없었다. 법대 가면 판사, 건축과 가면 건축도, 의대 가면 정형외과 의사를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땐 돈 벌고 싶은 마음에 거푸 2년간 서울대 상대에 원서를 냈다. 결과는 불합격. 그는 공군소위인 형의 수원 관사와 서울을 오가며 살길을 찾는다. 그때의 그는, 룸펜처럼 이렇게 되뇌지 않았을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게 있어, 난 바보다, 바보.”(영화 ‘휴일’ 중에서)

“3개월 정도 종로에서 호떡장사를 했는데, 잘 안돼 바로 접었어요. 그러곤 먹고살 궁리하며 서울 여기저기를 어슬렁댔죠. 돈 없어 못 가는 재수학원 주변도 기웃대고. 그러다 충무로1가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손시향을 만났어요. 이 친구가 ‘검은 장갑 낀 손’이란 노래로 막 스타가 된 때였는데, 내 등을 툭툭 치고 지나가데요. 정말 기분 나빴지요.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위축됐던 때라 그런지 오기가 납디다. ‘넌 노래 잘해서 가수 됐지? 난 사람들에게 얼굴 잘났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니 뭘 해서든 너 이상으로는 돼볼 테니 두고 봐라.’다짐하고 고개를 드는데 마침 한국배우전문학원 간판이 보입디다.”

배우 학원비는 재수학원비보다 쌌다. 이 길밖에 없다 싶어 그랬는지 예전처럼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김기영, 이진순, 양광남 같은 거장들에게 “배역을 맡으면 그 인물에 철저히 동화돼라”는 스타니슬라프스키 배우수업을 받았고, 팬터마임을 익혔다.

그때 배운 사람 관찰하는 태도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구부리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지, 저 옷을 입은 사람의 직업은 뭘지 늘 관찰하던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고 연기하는 자양분이 됐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엑스트라 자리가 여럿 들어왔지만 생애 첫 데뷔를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뭘 하긴 할 거야. 해내긴 할 거야.” (영화 ‘5인의건달’ 중에서)

新 星 一

신필름에서 첫 배우생활을 시작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원서도 내지 않고, 신필름 신인배우를 뽑는 국제방송국 주변을 어슬렁대다 발탁된 것이다.

“솔직히 범상치는 않은 인물이지. 야망에 불타는 눈이고.”

스스로도 인정하나 보다. 하긴 지나치게 겸손하면 비호감이다. 신필름 대표 신상옥 감독이 “너, 나하고 5년 고생해볼래? 그럼 내일 아침부터 나와” 한마디 하자, 다음날 사무실 사람들이 모여 이름 짓기에 골몰했다. 새로울 신(新), 별 성(星), 한 일(一). 새로운 별 하나. 그날부터 강신영은 신성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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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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