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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전진우(全津雨)의 세상읽기

지금 이념 싸움이나 벌일 때인가

지금 이념 싸움이나 벌일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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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이하 호칭 생략)는 “미국인이 원하는 건 상식과 현명한 정부이며 국민은 이데올로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이 바라는 건 말다툼이나 저격이 아니라 행동과 효율”이라는 것이다.

인용한 오바마의 말에서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꾸면 어떤가. 틀린 말인가? 물론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전통과 문화도 다르고, 특히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따라서 오바마의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대입해놓고 옳으냐, 그르냐 다그치기는 어렵다. 또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여서 누구나 나름의 이념을 가질 수 있고, 공유된 이념적 가치가 사회를 지탱하는 바탕이 된다. 하지만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극단의 이념은 종종 그 배후에 패거리의 이해나 개인의 이익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공익(公益)이 아닌 사익(私益)에 봉사하는 이념, 국민은 그런 이데올로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한국인도 분명 동의할 것이다. 한국인 또한 상식과 현명한 정부를 원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말에서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진단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은 이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 분노를 확산시켰다. 졸속으로 진행된 한미 쇠고기 협상 이후 벌어진 촛불시위의 밑바닥에는 그 같은 심정이 깔려있었다. 비록 괴담의 악영향으로 왜곡되고, 반정부 세력의 개입으로 변질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새 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정부출범 초기에 초래한 신뢰의 상실은 뼈아픈 족쇄가 됐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밑의 단추도 제대로 꿸 수 없듯이 ‘촛불’에 덴 이 정부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했던 실용주의를 성급히 접은 듯하다. 좌파를 이대로 놔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조급함이 실용주의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무색케 했다. ‘좌파 청소’ 하듯 밀어붙인 기관장 교체가 그 단적인 예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새 정권과 생각이 다르거나 국정운영 방향에 동의할 수 없는 전임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특히 전 정권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공기업의 기관장이나 감사 등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점령군처럼 문화 학술계까지 일괄적으로 몰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보장한다던 임기제를 허물려면 그에 앞서 입법을 통해 최소한 절차의 정당성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조급하고 거칠게 행동함으로써 분열의 골을 깊게 했다. 배제의 리더십과 포용의 리더십에서 전자의 실(失)이 후자의 득(得)보다 크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득실을 따져볼 만큼의 여유도 없었을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실용은 얘기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YTN 사장 건은 무엇보다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후보특보였던 인사를 뉴스전문 방송의 사장으로 앉히는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란 보편적인 가치에 맞지 않다. 이전 정부도 다 그랬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려 한다면 애초 선진화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역사에 대한 우편향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10월 중순 좌편향 논란을 빚은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서술방향을 제시했다. 특정이념이나 역사관에 편향되지 않고 우리 역사를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서술하라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북의 남침으로 빚어진 6·25 전쟁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등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국사편찬위의 제안에 거부감을 느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학자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등을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본 관점이나 사용된 용어의 적절성 등을 재검토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무엇에 쫓긴 듯 필자들을 무시하고 출판사를 압박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더구나 극우성향의 인사가 다수 포함된 강사진을 동원해 고등학교 교실에서 특강을 하게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한가. 경제 살리려면 역사교과서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인지? 일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식에 벗어나는 것의 압권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근현대사 영상물이다. ‘4·19혁명’을 ‘4·19데모’로 폄하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은 빠졌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빼고 청계천 복원은 겉표지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름 하여 ‘기적의 역사’라고 하는데 근대화 산업화만 기적의 역사는 아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낸 것이 기적의 역사다. 어렵사리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산업화 민주화의 두 바퀴에서 민주화만 외면하는 몰상식이 놀라울 지경이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뒤늦게 4·19단체를 찾아가 사과하고 영상물을 회수해 폐기하겠다고 했다. 영상물이 배부된 경위를 파악해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장관도 모르게 영상물이 만들어지고 배포됐다는 것인가? 안 장관은 4·19단체에만 사과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사과해야 옳다.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은 낮아지고 양극화는 깊어지는 어려움을 맞고 있다. 일자리 감소는 빈부 양극화로 이어지고, 빈부 양극화는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박탈할 수 있으며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킨다. 지역감정에 이념의 양극화가 맞물려 국민통합을 저해한다. 미래의 동력은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남북문제의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풀어나가야 할 문제는 분명한 것 같은데 모든 것이 교착(膠着) 상태다. 매듭을 풀어나가는 것이 정치인데, 풀기는커녕 더 꼬이게 하는 형국이다. 해법은 역시 국민이 원하는 상식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갈등은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민생이 위협받는 비상 상태다. 시대착오적인 이념 싸움이나 벌이고 있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필자약력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신동아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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