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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09년 2월호 별책부록 Brand New|Hangang/Essay

한강의 기억과 비전

강은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 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한강의 기억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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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억과 비전

서울 상암지구 하늘공원에서 본 한강의 석양.강에 대한 유년의 추억은 우리를 키운 비밀스러운 힘의 기원이다. 성년이 되어서도 우리는 강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오른쪽).

한강에는 스무 개 이상의 다리가 있다. 그러나 그 다리들은 강을 생략하고 강을 건너뛰기 위한 것이지 강과 사람을 가깝게 이어줄 연결의 교량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강으로부터 더 멀리 떼어놓는 분리와 소외의 장치다. 강에 말 걸고 강과 친해지기 위해 걸어서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그 다리들은 대부분 보행자를 위한 다리도 사람을 생각해서 만든 다리도 아니다. 거기에는 보행자를 배려한 공간이 없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을 녹지 공간도 없다. 한강에서 에로스가 제거되었듯이 한강에 놓인 다리들도 철저히 사람들을 몰아내고 생명의 흔적들을 제거한다.

그것들은 그냥 시멘트 덩어리이거나 쇳덩이다. 옹벽과 연안도로들, 그리고 그 도로에 인접한 거대 아파트들만이 한강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한강의 교량들도 강을 죽이고 강을 소외시킨다.

한강을 되살린다는 것은 한강에 가해진 이런 소외와 박탈, 분리와 망각의 조건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한강 르네상스’라 할 때 그 ‘르네상스’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르네상스’라 불리는 것들의 핵심에는 두 개의 지향, 혹은 두 개의 가치가 놓여 있다. 하나는 생명과 사랑의 복구로서의 ‘에로스의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회복’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은 동어반복일지 모른다. 에로스의 회복 없이 인간회복은 가능하지 않고, 인간회복은 이미 그 자체로 에로스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강의 르네상스’에 부여할 수 있는 최선의 의미는 강과 인간, 강과 땅, 강과 모든 생명 가진 것 사이의 친밀한 접촉과 교섭, 대화와 공생의 관계를 한강에 되돌려주는 데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강을 되찾아주고 강에 인간을, 흙과 바람과 생명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이 관계 복구의 지향은 다른 어떤 목표보다도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며 다른 어떤 목표보다 우선한다. 그것은 지금 한강을 고립시키고 있는 분리와 소외의 조건들을 제거하고 수정해서 한강을 ‘강다운 강’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한강의 기억과 비전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도 역사의 흔적이 스며 있다. 왼쪽은 겸재 정선이 양화나루 일대를 그린 ‘양화진’(간송미술관 소장)으로 가운데 높은 언덕인 잠두봉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와 조선군이 교전한 현장이다. 사진은 오늘날의 잠두봉. 절두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강다운 강은 소박하게도 물과 흙과 바람과 불, 이 네 개의 기본 요소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의 리듬 위에서 영원히 교섭하는 강이다. 이 요소들은 어떤 고도기술의 시대에도 생명이 의존해야 하는 항구한 가치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조직하는 상징체계들은 이 네 개의 골간요소 위에 구성되어 있다. 영원한 생명의 세력을 가진 강만이 살아 있는 영원한 강, 구원의 강이다. 작가 호르헤 루이 보르헤스는 그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물과 공기처럼 영원한 도시”라고 노래했는데, 영원한 도시는 물과 바람과 흙과 불이 즐겁게 교섭하는 에로스의 강으로부터 태어난다.



한강의 기억

한강은 그 무심해 보이는 얼굴 너머로 슬픔과 상처, 좌절과 실패의 역사를 감추고 있다. 한강은 140년 전 조선이 처음으로 서양을 만난 곳이다. 그 최초의 조우가 충돌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886년 로즈 제독의 프랑스 제국 함대는 7척의 군함과 1000명의 병력으로 한강 양화나루까지 거슬러 올라와 잠두봉(지금의 절두산) 앞에서 조선군과 교전하고 강의 하구로 내려가 강화도를 점령한 뒤 한 달간 섬을 약탈한다. 그때 프랑스 군이 약탈해간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들은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다. 19세기 서양 제국주의의 파도가 조선의 강물과 맞닥뜨린 그 충돌의 순간으로부터 우리의 근세는 시작된다. ‘서세동진(西勢東進)’의 첫 물결이 밀어닥친 곳, 거기가 한강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현대 한국이 근대적 산업체계를 성공시키면서 그 성공을 자랑하기 위해 갖다 붙인 이름이 ‘한강의 기적’이다. 한강의 기억은 단순하지 않다. 한강은 풍경 이상의 기억과 역사의 강이다. 갈매기 날아오르고 유람선 뜨는 강의 풍경 이미지들을 한 꺼풀씩 벗기면 역사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들이 무더기로 드러난다.

이 역사의 강 한강에 대한 기억의 상당 부분은 폭력, 지배, 전쟁과 관계되어 있다. 한강 인도교는 철교와 함께 전근대의 반도 공간에 들어선 최초의 근대적 교량이다. 이 교량을 만든 것은 일제 식민세력이다. 반도 전역을 소위 ‘근대적 공간’으로 재편하려 했던 식민지배자들의 기획 속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화려했던 것의 하나가 한강을 가로지른 두 교량이다. 선사 이래 수천년 동안 나룻배와 뗏목의 기억만을 가진 강에 어느 순간 철근과 시멘트로 된 우람한 수평의 직선 구조물이 들어선 것이다. 조선인의 인지구조에 오랫동안 각인되어온 강은 물과 뭍의 무한하고 가변적인 접선이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섬세한 곡선이다. 수평의 거대한 직선 다리는 이 섬세한 곡선의 강을, 혹은 강의 곡선을, 한순간에 무력화한다. 그것은 곡선을 향한 모든 시선을 거두어 그 자신에게로 집중시킨다.

최초의 한강 다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놀라움은 이 영웅적 근대구조물을 향한 시선이동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던가를 잘 말해준다. 그 시선이동은 우리의 문화사적 성찰이 아직 주목하지 못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그것은 위풍당당한 영웅,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힘, 찬탄과 경배가 필요한 대상의 출현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식민지 수도 경성의 심리학에는 심대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의 핵심은 근대 구조물로 대표되는 ‘강대한 힘’에 대한 외경과 선망이 근세 조선인의, 그리고 마침내는 현대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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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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