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국제금융시스템의 사악한 본성에 대한 성찰

  • 조성일│출판평론가 pundit59@hanmail.net│

    입력2009-03-03 1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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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금융시스템의 사악한 본성에 대한 성찰

    ‘달러’ 엘렌 H.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이른아침/716쪽/2만5000원

    오늘 아침에도 주요 방송들은 뉴욕특파원이 보내온 미국 증권시장 상황에 대한 리포트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이 같은 일은 2008년 9월에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상사가 되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날씨나 TV프로그램과 같은, 반드시 매일 점검해야 하는 뉴스 꼭지가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이른바 경제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은 물론 떠오르는 세계시장 중국, 아시아의 금융중심지인 홍콩, 심지어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의 선진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 달러 때문이다.

    달러(dollar). 쉽게 말하면 미국 돈(화폐)이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 화폐만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사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다. 그래서 우리 돈인 원화와 같은 화폐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세계경제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달러에 문제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련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달러의 기능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달러가 ‘사기’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믿겠는가.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이란 부제를 단 ‘달러’(원제: THE WEB OF DEBT)는 이런 사실을 폭로하면서 지금 전세계를 거대한 빚더미에 빠뜨린 ‘속임수의 거미줄’을 추적하고 국가(세계)를 다시 건전하게 만들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달러의 ‘사기’ 발행에 대한 설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리라. 그러잖아도 이 달러 때문에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는데, 궁금증을 잔뜩 부풀린 이 리뷰가 그 궁금증을 빨리 해소시키지 않는다면 들고 있던 잡지를 집어던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다.

    달러의 태생적 한계



    원화를 한국은행에서 찍어내듯 달러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에서 찍어낸다. 한국은행은 우리가 알고 있듯 국책은행으로서 국가기관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면 우리는 정부가 돈을 찍어낸 것으로 안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무늬만 연방정부기구일 뿐 실체는 모건(Morgan)과 록펠러(Rockfeller)의 금융 토대인 시티뱅크와 J. P 모건체이스사(社) 같은 민간은행이 양대 주주로 있는 민간법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연방기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방준비은행이 달러를 찍어내면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낸 것으로 안다. 왜일까?

    사정인즉 이렇다. 연방준비은행은 40센트의 인쇄비를 들여 100달러를 인쇄하고, 여기에 10달러의 이자를 붙여 연방정부에 대출한다. 민간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이자를 안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미국 연방정부는 달러가 필요할 때 한국은행처럼 발권 기능을 통해 달러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은행에서 이자를 주고 빌릴 수밖에 없다. 이 돈은 정부가 대출(부채)을 받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며, 대출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이런 시스템은 미국의 민간 은행은 물론 전세계의 모든 은행이 그대로 따라 한다. 있던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부채가 늘면 당연히 시장의 돈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돈을 빌릴 때도 똑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은행이 가지고 있던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대출이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물론 예금자 보호를 위해 지급준비금제도라는 안전판이 있지 않으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지급준비금이란 게 대체로 전체 예금의 10%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10%의 준비금만 있으면 그 10배의 돈을 대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10달러의 준비금으로 100달러의 부채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90달러는 대출이 일어나기 전에는 없던 돈이며 대출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진 돈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엄청난 돈, 즉 대출(부채)을 만들어내고, 그 부채는 누군가의 몫이다. 이렇게 달러는 여러 가지 속임수로 만들어진 ‘빚의 거미줄(The Web of Debt)’로 세계 금융시장을 삽시간에 포획한다.

    이 책의 주장에서 또 하나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럼 연방준비은행은 뭘 믿고 연방정부에 돈을 빌려줄까 하는 점이다. 돈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인 담보물이 없으면, 빌리는 자가 누구라도 떼일 것이 분명하다면 빌려주지 않는 것이 금융자본의 본색이다. 그럼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은행에 무얼 담보로 내놓을까. 바로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 그 세금이라는 것이 현재 걷힌 세금이 아니라 - 걷힌 세금은 이미 담보물로 잡혀 있으므로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 앞으로 걷힐 세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세금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런 아비 없는 자식처럼 태어나는 달러의 속내가 이러하니 사악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화폐의 사전적 의미는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가 되며 그것의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화된 수단”이다. 그래서 화폐는 우리가 제공한 물건이나 노동력의 대가로 받는 것이므로 ‘재산’이 될 수 있고, 여기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상식이다.

    여기서 이런 상식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빚의 거미줄을 아슬아슬하게 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먹잇감 찾아 나선 오즈

    그런데 이 연방준비은행의 탈을 쓴 민간은행의 투자자, 즉 실질적인 주인은 누구일까.

    이 책은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처럼 커튼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저 환상적인 동화로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가령, 노란벽돌 길은 은행가들의 금본위제를 상징하고,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구두는 은화파의 주장을 상징하는 식이다. 허수아비는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공장 노동자를, 겁쟁이 사자는 실제로 은행가들에게 저항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는 불운한 정치인을, 동부의 나쁜 미녀는 월스트리트의 똘마니를, 그리고 커튼 뒤의 마법사 오즈는 거대한 은행가들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런 큰 거미들은 자질구레한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요즘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해지펀드 같은 것이다. 이들은 물리학자를 동원해 파생상품의 모호한 방정식을 고안해내는데 이로 인해 사상 초유의 거품이 만들어진다. 이들은 제3세계 국가들의 통화를 공격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환란을 부추긴다. 나중에 떨이 가격으로 그 나라의 자산을 긁어오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채를 확실하게 회수하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 같은 채권 회수 전담 깡패조직을 동원한다.

    이렇듯 그 ‘빚의 거미줄의 사악함’은 언뜻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또 요즘 전세계가 겪는 금융위기에서도 유독 우리나라 환율이 춤추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

    그럼 해결책은 없는가. 이 책은 일단 민간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갖고 있는 발권력을 초기 헌법에 명시된 대로 연방정부에 되돌린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연방정부가 연방준비은행에 진 부채가 없어지면 세금이 줄어들어 국민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경제성장이 촉진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울 필요도 없다. 당연히 지금 시스템에서 할 수 없었던 교육이나 환경, 의료보험 같은 분야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원 조달이 가능하게 된다. 노후를 보장하는 사회보장 시스템은 말할 것 없다.

    금융업은 브라이언이 말했듯 헌법의 위임에 따른 정부 사업이다. 적어도 새 돈 만들어내는 일만큼은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은행들은 지금의 비은행권 대출기관들처럼 갖고 있는 돈을 대출하면 거품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야바위 같은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거품 위에서 허장성세의 파티를 벌여왔고, 이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인에게 그 청구서가 골고루 분배되어 날아든 것이다. 미국에서 온 청구서이므로 원화가 아닌 달러로 지급해야 한다. 파티에 참석한 적도, 심지어 초대장조차 구경해본 적이 없는 우리가 왜 비용을 물어야 하는가? 답은 이번 한국어판을 내면서 별도로 쓴 필자의 다음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인들이 국제 은행가 내부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종당하지 않고 국민도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세계 통화시스템이 막후에서 어떻게 조종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이 미국의 관점에서 쓰이기는 했지만 세계 전체는 지금 여기서 말한 대립적 금융 세력 사이의 싸움에 휘말려 있다. 민간 중앙은행 시스템과 ‘공영’ 세력의 싸움이다. 민간 금융시스템은 지금 제 스스로의 무게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금이 바로 각국 국민들이 이를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할 기회다.”

    그렇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있는 현대 국제금융시스템의 핵심적인 결함과 사악한 본성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달러의 공포 앞에 있는 우리에게 주는 이 책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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