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전쟁이란 자원 낭비에 대한 실증적 분석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l.com│

    입력2009-03-03 18: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쟁이란 자원 낭비에 대한 실증적 분석
    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는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한다는 뜻이다. 개전 이유엔 늘 정의(正義)와 평화 추구라는 그럴듯한 옷이 입혀진다. 지금도 진행되는 미국-이라크 전쟁은 어떤가. 이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쟁은 언제 끝날까. 비용은 얼마나 들었고 양국 피해는 얼마나 되나.

    ‘오바마의 과제-3조 달러의 행방’이라는 책을 보면 여러 궁금증이 풀린다. 그러나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진다. 세계를 불행하게 만든 미국의 ‘전쟁 경제’ 정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전쟁을 일찍 끝내는 것. 오바마 대통령의 긴급 과제이기도 하다.

    저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와 린다 빌메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의 권위만으로도 이목을 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노벨상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편승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학자로 알려졌다. 세계은행(IBR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부총재를 지내며 현실 감각을 익힌 그는 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약소국, 빈민층 등 비주류에게 눈길을 돌렸다. 박제된 이론에만 매달리지 않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문장력이 뛰어나 신문 칼럼, 저서를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2001년에 낸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은 35개국에서 번역돼 100만부 이상 팔렸다. 재정 전문가인 빌메스 교수도 ‘뉴욕타임스’등에 기고하는 칼럼으로 명쾌한 논리력을 인정받았다.

    미군 사상자만도 6만2000명

    서문은 도발적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명백히 끔찍한 실수였다”고 시작한다. 미군 4000명이 숨졌고 5만8000명이 다쳤다. 부상자 대다수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 7300명이 부상을 당했다. 10만명 이상의 참전용사가 전장에서 돌아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전쟁공포증에 시달린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철권정치는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라크 국민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전쟁 이전보다 악화됐다. 도로, 학교, 병원, 주택 등이 파괴됐다. 주민들은 물, 전기 부족으로 생활이 피폐해졌다. 종파 간 폭력사태도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얼 위해 전쟁을 벌였는가. 이라크에 민주화, 평화, 번영을 줄 것이라던 개전 이유는 헛된 선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의 이라크 점령이 장기화하면서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저자들은 경제학자답게 전쟁과 관련한 비용을 꼬치꼬치 따진다. 물론 전쟁으로 빚어지는 인류의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저자들은 “그러나 진정한 전쟁 비용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면서 “다시는 무모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비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전쟁을 신속히 끝내면 비용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

    2003년 3월19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다스리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어 이 지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응징한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임을 과시했다.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군사작전은 TV로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미 오랜 전쟁 탓에 허약해진 이라크는 단숨에 투항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망은 빗나갔다. 미군은 5년 넘게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3년8개월간 지속된 제2차 세계대전, 3년1개월의 6·25전쟁, 4년간의 남북전쟁보다 더 긴 기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라크 상황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점이다. 이라크는 더욱 황폐화했고 이라크 안팎 국가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됐다. 여러 나라에서 미국이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이라크를 방문해 샅샅이 뒤졌으나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다. 미국이 전쟁 명분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라크 국민 70% 이상이 미군이 이라크에서 얼른 떠나기를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인식된다.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 국민 사망자 수는 적게는 10만명, 많게는 70만명이다. 이라크 밖으로 피신한 난민은 200만명이다.

    처음엔 500억달러 예상

    전쟁 직전에 전비 규모는 ‘별것 아닌’ 수준으로 추정됐다. 부시 대통령의 경제 고문이었던 래리 린제이는 2000억달러로 예상했다. 그러자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500억~600억달러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한술 더 떠 “전후(戰後) 재건 비용은 이라크 석유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비용은 급증했다. 2008년의 경우 전쟁 자체 비용인 군사작전비에만 월 평균 125억달러가 들었다. 2003년의 월 비용 44억달러보다 세 곱절로 늘어났다.

    비용 증가 요인을 살펴보자. 먼저 인건비가 크게 늘었다. 신병 모집, 전투수당, 위험수당, 보너스 등이 급증했다. 참전 지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을 쓸 수밖에 없었다. 군과 계약한 민간업체에 지급되는 돈도 엄청났다. 2006년의 경우 이라크에 약 10만명의 민간업체 직원이 고용돼 있었다. 1991년 걸프전 때 참가한 민간인 직원에 비해 10배 이상 규모다. 이는 정규군을 늘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간인 직원들은 미군 부대와 함께 이동하며 일하므로 위험하기는 엇비슷하다. 2003년 이후 민간인 계약직원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 직원을 경호하는 업무에도 돈을 써야 했다. 연합국임시행정처(CPA)의 폴 브레머 행정관을 경호하는 데에만 2700만달러가 들었다. 보안 전문기업인 블랙워터는 2003~ 2007년에 12억달러의 경호 계약을 따내 경호원 845명을 고용했다.

    보안 업체 경호요원의 1인당 평균 연봉은 연간 44만5000달러라는 고액이었다. 반면 정규군 하사관은 5만~6만달러여서 정규군인들은 불평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당을 인상했다. 인건비 증가의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의무 복무기간을 마친 군인 여럿은 줄지어 보안업체에 입사했다. 보안업체 직원들은 이라크 국민에게 가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흐리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군 시설 공사에서 도급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 비리가 만연한 것도 비용증가요인이다.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명분 아래수의 계약이 횡행했다. 군 관련 전문기업인 핼리버튼은 종횡무진 누비며 193억달러의 ‘좋은 조건’의 공사를 따냈다. 핼리버튼은 공화당에 114만달러, 민주당에 5만달러의 기부금도 냈다.

    연료비 상승도 주요 요인이었다. 전투에 드는 기름 물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개전 초기에 유가는 배럴당 25달러였지만 2008년엔 100달러로 치솟았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각종 장비와 무기를 개체하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었다.

    미군, 신속히 철수해야

    저자들은 전비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가 얼버무리는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폭로했다. 전사자 4000명에 대한 보상, 수십만 부상자의 치료비 및 연금, 참전용사 수십만에 대한 의료 및 사회보장비 등을 전쟁 비용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3조달러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런 거액은 미국 정부의 부채로 남을 것이며 두고두고 미국 재정을 부실화하는 암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됐을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이다. 저자들은 새 대통령이 미군의 신속한 철수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을 가져야 진정한 경제학자라는 경구(警句)를 저자들은 절감한 듯하다. 이 책의 제8장에는 그들의 깊은 내공이 담겼다. 구체적인 개혁안 18개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이목을 끄는 것은 ▲전쟁자금이 긴급 추가경정예산으로 조성돼서는 안 된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전쟁의 비용은 전쟁 특별부과세를 징수해서라도 현재의 납세자들에 의해 충당돼야지 후대에 떠넘겨져서는 안 된다 ▲재향군인의 의료보장은 재량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인정돼야 한다 ▲재향군인의 교육혜택을 늘려야 한다 등이다.

    책이 나오자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호응이 일어나고 있다. 제임스 갈브레이스 박사(평화와 안보를 위한 경제학자모임 회장)는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전쟁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이 유가와 경제성장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전쟁 때문에 급박한 국내 과제가 어떻게 무시되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상식을 위한 재향군인회’의 폴 설리반 사무총장은 “미국 재향군인 병원에는 이미 부상자 25만명이 입원해 있는데 전쟁이 끝나면 5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들을 치료하는 장기 계획을 지금 세우지 않는다면 사회적 영향은 파괴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보낸 한국도 이 책의 가치를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다소 막연히 반전(反戰)을 외치는 평화주의자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 책은 전쟁이 관련자의 비극뿐 아니라 자원 낭비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 책은 미국 권력층의 부패 구조를 적시함으로써 미국이 의외로 허술한 나라임을 들춰냈다. 하지만 사회과학자의 지성과 양심으로 이런 치부를 파헤친 저자들과 같은 지식인 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 병(病)’이 불치 단계에 이르지는 않은 듯하다. 개전 이유에 관한 진실을 찾지 못한 점은 아쉽다. 冬

    ‘오바마의 과제-3조 달러의 행방’조지프 스티글리츠, 린다 빌메스 지음/ 서정민 옮김/전략과문화/ 372쪽/ 1만8000원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