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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

③ 화식열전

피죽도 못 먹으면서 仁義만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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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부처 노자(왼쪽부터)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작자 미상의 ‘상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이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다. 건설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다.”

중동이 사막지역이라 물 걱정을 하는 대통령에게 정 회장은 물은 어디서든 실어오면 된다고 답했고, 더운 나라이므로 낮에 자고 밤에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을 하는 정 회장에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따르는 건 당연했다. 정 회장 말대로 한국의 개미 같은 일꾼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시절, 30만명의 노동자가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가득 싣고 돌아왔다.

정주영 회장의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이 이 시절 빠르게 성장했다. 박 대통령과 더불어 기업인들에게도 공과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공’을 먹고산다. 정경유착과 같은 과오는 절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입고 먹는 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재산이다. 풍부한 재산은 엄청난 위력을 갖는다. 물론 그것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마천은 말했다.

재산 갖고 다투는 정치는 쓰레기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오래다. 그러므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나와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며,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기를 원한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공자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다. 사흘 굶은 사람에게 공자의 인(仁)이나, 부처의 법열에 대해 말한들 귀에 들어오고 행동으로 옮겨질 리 없다. 백성은 안락함을 추구하며, 그것을 보장해줄 위정자를 원한다. 사마천은 재산을 갖고 백성과 다투는 정치는 쓰레기라고 했다. 재산을 갖고 백성과 다투는 정치란 어떤 것일까? 부정부패, 치부(致富)를 위한 권력남용, 과중한 세금 부과 등 백성의 재산을 갖고 장난치는 일련의 나쁜 행위들을 가리킨다. 사마천은 부를 논하되 ‘돈만 벌면 된다’ 식의 논조를 펴지는 않는다.

‘장자’ 내편(內編) ‘소요유’에 상업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있다.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지만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 그런 모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장자’의 거대하고 비범한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할 때 이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송나라는 춘추시대에 번성했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에는 문화국가였으나 가난하고 보잘것없었다. 신흥국가 월나라는 야만적이어서 아름다운 모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송나라 사람이 어리석었던 것이다. 장자를 전공한 철학박사 강신주는 말한다.

“방금 읽은 짧은 단편으로 장자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송나라 상인이 되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끈덕지게 이 글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우리가 월나라에 가려고 한 이유는 그 나라에서도 모자가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리는 억만장자가 될 기대에 부풀어 월나라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월나라는 송나라와 달라도 너무 다른 나라였다. 월나라에서 사회적 위상을 나타내는 것은 모자와 같은 예복이 아니라 문신이었다. 이곳에서 모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상인이면서 동시에 상인이 아니게 된 것이다. 모자를 팔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상인일 수 있지만 모자를 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상인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월나라 저잣거리에서 모자 꾸러미를 든 채 우리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찔한 현기증은 우리 자신의 자아동일성이 와해될 때의 느낌이다. 상인이면서 동시에 상인이 아닐 때 오는 현기증, 이것이 바로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차이’에 돈이 걸려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차이’를 알아야 한다. 세상에 차이가 존재하기에 너와 나,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왕과 신하도 있을 수 있었다. 사람마다 먹는 것, 사는 것, 자는 것이 다르다. 사람들의 생김새만큼이나 각 나라의 풍습도 다르다. 이 차이를 잘 알아차리고 이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자가 되는 법이다. 송나라 상인은 이 차이를 알지 못했다. 월나라와 송나라의 차이, 이 간단한 차이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바로 부자와 빈자의 차이다. 부자가 될 사람은 새로운 문신 기술을 배워 월나라에 갔을 것이다.

사마천은 부를 축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상업이라고 했다. 장사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여기에서 사서 저기에서 파는, 아주 간단한 ‘차이’의 연금술이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늘 차이를 보고 느낀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깝다. 돈의 흐름 역시 자연의 현상처럼 움직인다. 사마천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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