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 비화

“형사님,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이유 있습니까?”

  • 이수향│일요신문 사회부 기자 lsh7@ilyo.co.kr│

    입력2009-03-09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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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서에서 “건강에 안 좋다”며 자장면 대신 김치·된장찌개
    • 사람 죽인 뒤 지인 찾아가 “고향에서 따온 감인데 한번 드셔보세요.”
    • 살인도구로 쓴 넥타이, 재활용 안 하고 불에 태운 자기만의 의식(儀式).
    • 살해 여성들의 소지품과 옷가지 불태운 강씨, 유독 귀금속만 시신과 함께 매장
    • “흉악범 유영철과 비교당해 기분 나쁘다. 난 최소한 사체를 훼손하진 않았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 비화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7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강호순.

    1월22일 오후 5시. 연쇄살인범 강호순(39)이 형사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강씨가 근무하는 안산의 한 스포츠마사지업소. 강씨는 태연했다. 서글서글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 눈에 띄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형사들의 질문에 답해나가는 모습에서 연쇄살인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19일 실종된 군포 여대생 안00(20)씨와 관련된 질문에 강씨는 “(사건이 벌어진 시각에) 산본에서 애인을 만나고 곧장 집에 들어갔다”고 또박또박 진술했다. 형사들의 머릿속에는 ‘범인이 절대 아니다’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허탈한 첫 만남. 하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수사팀은 참 많은 노력을 했다. 강씨를 피의자로 확신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자료도 이미 확보한 상태. 첫 번째 단서는 CCTV였다. 경찰은 여대생 안씨가 사라진 다음날인 12월20일 수사본부를 차린 이후 줄곧 범인의 동선을 추적했다. 안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군포보건소와 휴대전화가 꺼진 안산시 건건동, 그리고 안씨의 신용카드로 범인이 현금을 인출한 안산시 성포동 등 6km에 이르는 구간에 설치된 CCTV 310여 대를 샅샅이 뒤졌다. 범행시간대(오후 3~7시) 이 지역을 통과한 차량은 7000대가 넘었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이정달 팀장의 말이다.

    “차량들의 실소유자와 명의자를 일일이 만나고 다니며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계산을 해보니 범인이라면 사건 당일 오후 3시22분께 우리가 예상한 동선을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관건은 그 시각 그 동선을 지나간 범인의 차량을 찾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씨의 검은색 에쿠스가 지목됐다. 수사팀은 예상 동선 중 일부인 안산시 건건동의 도로와 화성시 매송면 원리 도로 등에 설치된 CCTV에 공통적으로 포착된 이 차량에 주목했다. 수사팀이 예상했던 시간에서 약간 벗어나긴 했지만 문제의 차량은 그 무렵 분명히 수사팀이 지정한 동선에 출현한 ‘용의 차량’이었다.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증거를…”



    이 무렵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이 용의차량으로 지목한 강씨의 차량이 불에 탄 채 발견된 것이다. 1월24일의 일이었다. 수사팀은 같은 날 오전 11시 반 강씨가 일하는 업소로 다시 찾아갔다. 화재 부분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에 데리고 왔다. 이날 그를 대면한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한춘식 형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강호순은 그날도 근무 중이었다. 멀리서 지켜봐도 너무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화재 부분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고 하니 처음에는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멀쩡한 차량에 불이 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언제 보내줄 거냐’ ‘일하러 가봐야 한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범인이란 직감이 들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용의 차량에 불을 지른 건 강씨의 치명적 실수였다.”

    뜬금없는 차량 화재 외에도 수사팀은 강씨가 2008년 9월말과 12월말, 2009년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컴퓨터 운영시스템을 새로 포맷한 뒤 2007년 1월로 시간을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첫 번째 경찰조사를 받은 1월23일과 24일에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찰은 강씨가 컴퓨터 사용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확신했다. 수사팀은 1월24일 오후 5시30분 강씨를 긴급체포했다.

    강씨는 수사과정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수사팀이 새벽 4시 반까지 강씨를 다그치고 얼렀지만 그의 태도는 꼿꼿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증거를 가져오세요. 증거를…”이라며 배짱을 부렸다. 떨거나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 비화

    4번째 희생자인 중국 동포 김OO(37)씨의 시신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 화성시 L골프장.

    그날 강씨는 저녁식사로 형사들과 함께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형사들 사이에서 주눅 들거나 눈치 보는 일도 없이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다. 아주 팔팔했다.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경찰서 단골 메뉴인 자장면을 거절했다. 한춘식 형사는 “강호순은 건강에 무척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TV에서 녹차가 몸에 좋다고 하면 녹차를 집중적으로 먹고 안 좋다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음식은 건강에 안 좋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조사 기간에도 그는 몸에 무리가 없고 든든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주로 먹었다. 대체로 식사도 잘했다. 평소 등산을 즐겼다는 그는 170cm 정도의 신장이었지만 탄탄한 체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조사가 길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어딘지 모를 어색한 표정과 몸짓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눈동자도 흔들렸다. 마음이 동요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형사들은 사건 당일 아침부터의 행적에 대해 하나하나 짚었다. 하루 24시간 중 범행 전후 10여 시간을 완전히 해부했다. 예를 들면 ‘신발은 뭘 신었나’ ‘아침은 먹고 출근했나’ ‘뭘 먹었나’ ‘누구와 통화했나’ ‘넥타이를 매고 갔나’부터 시작해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었다. 그 결과 오전 11시 출근할 때의 복장과 범행 시간대인 3시22분경의 복장이 달랐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결국 무너졌다. 오전 5시경이었다. 강씨는 CCTV와 관련된 집중 추궁에 결국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했습니다.”

    강씨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범행 당일인 지난해 12월19일. 여자친구와 싸운 후 에쿠스 차량을 타고 귀가하던 강씨는 오후 3시10분경 군포시 보건소 인근 버스정류장에 홀로 서 있는 안씨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디까지 가세요? 집에 태워다 드릴게요”라며 안씨를 차에 태웠다. 이후 강씨는 보건소에서 800m 가량 떨어진 47번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연애 한번 하자. 나 그거(섹스) 잘한다”고 성관계를 제의했다. 안씨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다. 강씨는 주먹과 발로 폭력을 행사하며 안씨를 제압했고 2km 정도 차를 이동시켜 한적한 논두렁으로 끌고 간 뒤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안씨를 논두렁에 암매장한 강씨는 약 4시간 후인 오후 7시26분 안씨의 신용카드로 70만원을 인출했다. 경찰은 강씨의 자백을 토대로 안산 도금단지 부근의 논두렁에서 40~50cm 깊이로 묻혀 있는 안씨의 알몸 사체를 찾아냈다.

    “제가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씨로부터 안씨 살해 사실을 자백받은 수사팀은 그간 이 지역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 실종사건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데 주력했다. 먼저 납치에서 살해, 암매장과 현금인출까지 불과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것은 그가 절대 초범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안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할 당시 더벅머리 가발을 쓰고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가락에 콘돔을 낀 치밀함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많은 저녁시간대에 현금 인출을 시도한 점, 신용카드를 ATM기에 넣다 뺐다 하는 특이한 손동작을 반복한 여유도 마찬가지. 안씨가 반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살점과 모근 등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남았을 것을 우려, 안씨의 열 손가락 손톱 부분을 전지가위를 이용해 모두 도려낸 것은 연쇄살인사건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이와 관련, 2007년 초 ‘부녀자 실종사건 수사를 위한 분석자료’를 발표했던 경찰청 김원배 수사연구관은 강씨가 검거되기 전부터 범인을 ‘쾌락 및 쾌락성 살인’을 즐기는 자로 예측, ‘위험인물’로 지목한 바 있다. 김 연구관은 “쾌락살인은 행위 자체시 느끼는 쾌감을 얻기 위해 범행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연쇄살인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붙잡힌 강씨는 단순히 돈이나 성욕 해소가 아닌, 살인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지난해 1월 맞선을 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되는 등 강한 성적 탐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씨는 여죄에 대해서도 ‘증거를 내놓으라’며 완강히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팀을 애먹였다. 하지만 강씨의 점퍼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2008년 11월9일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에서 실종된 주부 김00씨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석 결과에 그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강씨가 살해한 여성은 무려 7명(노래방 도우미 3명, 대학생 2명, 주부 1명 회사원 1명)이었다. 이와 같은 강씨의 자백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형사들은 말을 잃었다.

    강씨의 자백에 의한 수사 결과, 강씨는 2006년 12월 노래방에서 만난 배00(45)씨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1월까지 20여 일 동안 5명의 부녀자를 살해했고 1년 10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두 명을 더 살해했다. 강씨는 피해 여성 7명 중 3명은 노래방에 손님으로 찾아가서, 4명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강씨는 노래방에 갈 때는 모자를 써서 얼굴을 최대한 가렸으며 버스정류장에서는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에게 접근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 비화

    1월28일 납치 살해된 군포 여대생 안OO(20)씨 암매장 현장검증.

    또 범행을 저지른 뒤에는 하루 동안 휴대전화를 꺼놨으며 전원을 다시 켠 후에는 가장 먼저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신용카드를 자주 사용했던 그는 부녀자 5명을 살해한 2006년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말까지 신용카드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 수사망을 피해왔다.

    그리고 축사를 오가며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7번째 피해자 안씨를 살해한 후에는 과거 근무했던 안산의 스포츠마사지업소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는 대담성도 보였다. 강씨의 범행은 다분히 계획적인 것이었다. 한춘식 형사의 말이다.

    “입을 열기 시작한 강호순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 뭘 하다가 언제 어떻게 죽였고 어디에 매장했는지를 줄줄 외듯이 말했다. 강씨는 노래방에서 만난 여성에게는 ‘맛있는 거 사겠다’ ‘대부도에 바람 쐬러 가자’ ‘좋은 데 데려가겠다’는 등의 말로 유인했다. 차에서도 강씨는 피해 여성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하다가 ‘사귀자’ ‘연애(섹스)나 한번 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꺼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여성이 기겁하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면 강호순은 태도를 바꿔 여성들을 제압하고 거침없이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피해 여성들은 강씨가 자신을 살해하리라는 상상도 못한 채 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 죽이고 싶은 날이 있다”

    조사과정에서 강씨는 자신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고 한다. 강씨는 자신이 평소 여성들에게 자상하며 다정하게 대한다고 여러 차례 자랑했다. 여자를 잘 다룰 줄 알며 정력도 좋아 여자들이 많이 붙는다는 얘기도 자주 했다.

    강씨는 피해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강간한 후 반항 여부와 상관없이 즉시 살해했다. 7명 중 2명과는 합의해 성관계를 맺었고 3명은 강간했으며 2명은 강간에 실패했다. 살해 방법은 동일했다. 일단 여성을 차에 태운 뒤 성폭행을 시도하거나 합의하에 성관계를 갖고 성행위가 끝난 즉시 살해했다. 성폭행을 시도하면서 여성이 반항할 경우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력을 자행했다.

    마지막 희생자인 안00씨는 광대뼈 부분이 함몰될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등산을 제외하곤 평소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농사일과 스포츠마사지사로 일하면서 다져진 몸을 여성들이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강씨는 조사과정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행을 시도하거나 몸을 묶고 살해할 때 두려움을 느껴 거세게 반항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의 몸을 묶고 살해할 때는 주로 자신의 넥타이나 여성의 스타킹을 사용했다. 합의해서 성관계를 한 경우에는 여성이 벗어놓은 스타킹을 이용해 목을 졸랐고 강간을 한 경우에는 넥타이로 손발을 묶은 뒤 강제로 스타킹을 벗겨 목을 조르는 식이었다. 반항이 심해 성폭행을 하지 못했던 마지막 희생자 안씨의 경우 안씨의 가방에 있던 쓰지 않은 스타킹을 사용해 목을 졸랐다.

    강씨는 평소 차에 양복과 넥타이를 가지고 다녔다. 범행 이후 옷을 갈아입거나 범행에 사용할 목적이었다. 범행에 한번 사용한 넥타이는 재활용하지 않고 여성들의 옷을 태울 때 같이 태웠다. 일종의 자기만의 의식(儀式)이었다. 주로 운전석 옆 보조석에서 성폭행을 했고 살해한 뒤에는 여성들의 시신을 뒷좌석으로 옮겨 암매장 장소로 가져갔으며 여성들의 소지품 중 현금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웠다. 다만 여성들이 몸에 부착하고 있는 각종 귀금속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발견된 피해 여성들의 사체에서 목걸이, 귀고리 등이 그대로 발견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성들의 시신 암매장 장소로는 주로 경사가 있는 천변(4번)이나 야산이나 논두렁(3번)을 택했다. 강씨는 무쏘 차량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할 당시에는 차에 삽과 쇠스랑 등을 싣고 다녔으며 에쿠스로 차량을 바꾼 뒤에는 여성을 살해 후 자신의 축사로 가서 삽 등을 싣고 나와 암매장을 위해 사용한 뒤 다시 갖다놓는 식으로 움직였다.

    시신을 암매장할 때도 자신만의 일정한 룰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50cm 정도 깊이로 판 뒤 시신의 얼굴을 땅 쪽으로 해 엎어놓고 높은 경사 쪽 흙을 긁어 시신을 덮는 식이었다.

    살해 대상을 선정할 때 여성의 외모나 스타일, 연령,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살인행각이었다. 살해 대상을 고르기 위한 과정도 생략되어 있었다. 여자를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길을 나선 뒤 먼저 눈에 띄는 사람, 자기의 차에 먼저 타는 사람을 죽이는 식이었다.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씨는 수사과정에서 “살인을 결심하는 날은 주로 어떤 날이냐”는 질문에 “그건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난 정말 사이코패스인 것 같다”고 답했다.

    많은 연쇄살인범이 살해 후 피해자의 물건을 한두 개쯤 보관하는 행태도 강씨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영철의 경우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발찌 등 귀금속을, 2006년 군포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김00의 경우 피해 여성들의 가방, 카메라 등을 보관하면서 ‘살인의 추억’을 곱씹었다. 그러나 강씨는 여성을 죽인 뒤 모든 물건을 태웠다. 강씨는 이에 대해 “여자를 죽이고 나면 흥분이 된다. 긴장도 되고 약간 불안해진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증거를 없앨 생각만 했다”고 조사과정에서 진술했다.

    여성을 살해할 당시 강씨의 태도는 여느 연쇄살인범들과는 달랐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던 유영철, 정남규 등과는 달리 강씨는 스타킹을 여성의 목에 친친 감아놓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를 많이 잡다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게 됐고 살인욕구를 자제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싫었다”는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강씨는 “(5번째 피해자인) 연00(20)씨의 경우 어찌나 겁을 먹었던지 반항은커녕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기만 했다. 너무 불쌍해 보여서 죽일까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난 정말 사이코패스 같다”

    현재 강씨는 다른 부분은 모두 털어놓으면서도 유독 살해동기에 대해서만은 말하지 않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 여성에 대한 혐오감 등 흔히 생각되는 연쇄살인범의 살해동기가 그에게선 발견되지 않는다. 검찰로 송치된 이후에도 강씨는 살인동기를 밝히지 않아 애를 먹이고 있다고 전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살해동기가 나오지 않아 수사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강씨가 밝힌 살해동기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어차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씨는 2007년 1월 노래방에서 만난 도우미 김00(당시 37세)씨와는 같이 밥도 먹고 합의해 성관계도 갖는 등 무척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살해했다. 첫 번째 피해자 배00(당시 45세)씨도 마찬가지였다. 강씨는 “합의해 성관계를 갖는 관계였으면 앞으로도 그냥 계속 잘 만나고 연애를 하지 왜 죽였느냐”는 수사팀의 추궁에 “강간이었건 합의해서 성관계를 가졌건 어차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데이트 분위기나 반항 여부와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강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 ‘공공의 적’을 언급하며 이런 말도 남겼다고 전한다.

    “형사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넷째 부인이 죽은 뒤 여자만 보면 살인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는 그의 진술도 살해동기라면 살해동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사팀은 이 진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내의 죽음에 따른 충격으로 여성들에게 살의를 느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강씨는 부인의 죽음으로 인해 수령한 수억원의 보험금으로 2억원대의 상가를 구입하고 에쿠스 승용차를 사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현재 강씨의 재산은 은행대출금을 빼더라도 7억5000만원이 넘는다.

    연쇄살인범의 살인동기와 관련해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은 “연쇄살인범은 겉보기와는 달리 내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통제에 있을 때 절정감을 느끼고, 같은 이유에서 자신의 범죄가 공개되는 것을 즐긴다. 이들은 피해자의 삶과 죽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쾌감을 느낀다. 성행위 같은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강씨는 사람을 죽인 후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았다. 같이 살고 있는 두 아들도 강씨의 이중생활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싹싹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할 뿐 그의 실체를 몰랐다는 표정이다. 일례로 강씨는 지난해 11월9일 수원에서 6번째 피해자인 주부 김00(48)씨를 살해, 암매장한 직후 곧장 오누이처럼 지내던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강씨는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찾아 와서 “고향에서 따온 감인데 한번 드셔보시라”며 권하고 방글방글 웃으며 차까지 마시고 돌아갔다고 한다.

    영화 ‘공공의 적’ 봤다.

    그렇다면 연쇄살인범 강씨의 삶은 어땠을까. 혹시 연쇄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일까.

    강씨는 1970년 충남 서천의 한 농가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2006년 남편이 사망하자 혼자 된 김00(65)씨는 인근 5일장에서 채소행상을 하며 강씨 남매를 키웠다. 서천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강씨는 충남 부여에 소재한 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군 복무 중 소를 훔치다 적발돼 불명예 제대했다. 강씨가 가진 9번의 전과 중 첫 번째 전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992년 강씨는 동거하던 첫째 부인과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6년 만에 이혼하고 만다. 1999년 결혼한 둘째 부인과는 6개월 만에, 2003년 결혼한 셋째 부인과는 한 달여 만에 헤어지는 등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3년가량 동거했던 넷째 부인은 혼인신고 닷새 만에 화재로 사망했다. 강씨의 전처들은 강씨에 대해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욱하는 성질이 있었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고 경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했다.

    강씨는 혼인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성격 차이”라고 짧게 말했다. 첫째 부인과는 너무 어릴 때 만나 철이 없었다는 게 그의 얘기. 하지만 강씨는 유독 화재로 사망한 넷째 부인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수사팀 관계자가 전해준 강씨의 말이다.

    “(넷째 부인이) 내게 무척 잘해줬다. 금실도 좋았다.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녔고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강씨의 자식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책을 써서 아들들이 인세라도 받게 하겠다는 진술이 화제가 된 일도 있다. 강씨는 수사과정에서도 “앞으로 분명 (내가) 유영철 같은 살인마에 비교될 텐데 내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합니다”라는 말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강씨는 자신을 유영철과 비교하는 언론보도에 유독 화를 냈다고 한다. “연쇄살인범인 것은 맞지만 나는 유영철처럼 잔인한 사람은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고. 강씨는 형사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사람을 토막 내지도 않았고 시신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죽는 모습도 보기 싫어 얼굴을 돌렸을 정도인데 나를 유영철 같은 흉악범과 비교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이러한 강씨의 태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잡기 위해 2년 가까이 ‘미치도록’ 뛰었던 경기지방경찰청 형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목소리가 쉬어버린 광역수사대 김동락 대장도 겨우 웃음을 되찾았다. “특진 턱으로 좀전에 직원들과 소주 한잔 마시고 왔다”는 이정달 팀장의 얼굴도 수사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 팀장은 “간만에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좀 할 수 있게 됐다. 함께 고생한 수사팀원들 덕분”이라며 사건 해결의 공을 돌렸다. 누적된 피로로 다크 서클이 짙어진 한춘식 형사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안 놀아준다고 투덜거리더니 요즘은 아빠 자랑에 신났다”며 웃어 보였다.

    강씨에 대한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추가 범행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강씨의 넷째 부인과 장모가 사망한 화재사고도 그중 하나다. 화재 발생 불과 1~2주 전에 종합보험과 운전자상해보험에 가입하고 부인의 화재 사망 5일 전에야 혼인신고를 한 것 등이 의혹의 핵심. 강씨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달라며 전국에서 올라온 실종사건 관련 서류도 여전히 수사팀 책상에 쌓여 있다. 강호순. 그에 대한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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